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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의 뿌리는 순종 (약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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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남오 목사 (예문교회)

이 세상은 분명 하나님께서 설계하셔서 만들어 놓으신 걸작품이다. 창조 이후 이 세상은 인위적인 모든 것까지도 결국은 하나님의 창조 원칙을 위배하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 건물을 한번 생각해 보자. 무거운 쇳덩어리인 H빔으로 정교하게 오차 없이 다림줄과 수평기를 통해서 세웠습니다. 왜 그런가? 조금만 오차가 생겨도 힘의 균형의 뒤틀림으로 얼마 못 가 그만 무너지고 만다. 고상한 말로는 물리학의 원리 좀더 유식하게 표현한다면 중력의 법칙에 의해 물체는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력의 법칙이 뭔가? 어렵게 해석할 필요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물은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고상한 해석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순종이라는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물체는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려는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원칙 앞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 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그렇게 원칙을 세워놓으셨을까?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무의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셨고 또한 필요하셨기에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한 측량과 다림줄 또는 수평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우리의 눈짐작과 감각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오차의 범위를 좁힐 수 없다. 즉 이런 상태에서 지은 집 에서는 절대 평안과 행복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력의 법칙에 순종해야 하는 인간이 그 중력 앞에 정확하게 순종하므로 자유를 누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각과 감정, 짐작정도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확한 측정을 위한 측량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율법 또는 성경이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잘 보라.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자유를 원하는가? 율법을 행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행복을 얻게 된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싫든 좋든 원튼 원하지 않튼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 가운데 나타나는 다양한 원리들을 순종해야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종 없는 자유는 결단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원리는 어떤가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안하고... 이것이 자유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이 빈번하게 행하는 실수들이 뭔가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가장 갖고 싶은 전자제품을 구입서 전원에 연결 했는데도 작동이 안 될 때 우리는 사용설명서를 읽으려 하지 않고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보다 안 되면 그 때서야 겨우 사용설명서를 펼쳐봅니다. 우리는 꼬여진 그 문제가 쉽게 풀리는 엄연한 원리와 원칙이 있는데도 자기 방식과 아집으로 시도해 보다가 해도 해도 안 될 때 사용설명서인 성경으로 돌아옵니다.

요한복음 8:31-32절의 말씀을 왜 쉽게 받아 넘기시려 합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 다음 이 중요하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뭐한다고요?)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을 우리는 후반부만 많이 인용하는데 사실 앞부분을 무시하면 제아무리 진리가! 말씀이! 나를 자유케 한다고 외쳐도 소용없는 일이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기만 한다면”~ 이것이 중요한 출발점인 순종이다. 그러면 “너희를 반드시 자유케 하리라“

행복자로 준비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간절하게 갈망하며 소원하고 계십니까? 지금 답보 상태에 빠진 절박한 문제가 무엇인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아무도 예외가 없다”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을 어디에서 구하는가?입니다. 이 차이점에서 울고 웃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지면을 통해서 행복을 만드는 법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2:24-25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비록 내 시각으로 또는 사회적 통념으로 답이 안 나오더라도 손해가 되더라도 말씀의 수평기와 다림줄을 들고 순종하십시오. 그리하면 세상의 통치자이시며 운영자이신 하나님이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외침처럼 반드시 복을 받을 것입니다. 왜 말씀의 매뉴얼을 살펴보지 않고 혼란과 방황과 갈등을 하고 계십니까? 왜 말씀의 법칙을 외면하고 근심하며 울고 계십니까? 왜 말씀을 능력을 붙잡고 기도의 자리로 나와 울부짖지 못하십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들을 분명 보여주시리라” 예레미야를 향하신 하나님의 간절한 심정을 왜 들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나는 내 길을 간다.’ 하고 어리석게 마이 웨이만 외치고 계십니까?

빌립보서 4장11절부터 보시면 바울은 눈물어린 심정으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호소합니다. “내 처지가 어려워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줄도 알며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굳이 과학적이며 신학적이며 학문적인 논리와 근거를 들지 않고서도 이 세상이 움직여가는 모든 원리는 하나님의 의해 시작되고 마쳐집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비켜나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행복해지시기를 원하십니까? 자유하기를 원하십니까? 말씀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행동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간절하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철저하게 의지해 버리세요. 그리고 당당하게 결단하십시오. 지금 아무리 행복을 방해하는 가시가 나를 짓누르더라도 바울처럼 ‘내게 주신 그 것이 내게 족합니다. 하나님!!!’

디모데후서 2:-5절을 통해 디모데를 향해 사랑으로 가르쳐주는 바울의 외침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스러운 군인답게 그대가 받을 고난을 달게 받으시오. 군에 복무하는 사람은 자기를 뽑아 준 상관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살림살이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또 운동선수가 월계관을 얻으려면 규칙대로 경기를 해야 합니다.”

무더운 이 여름 가장 정확한 다림줄이며 수평자이며 저울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펴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결단과 모든 문제의 길을 갖고 계시며 그 문제를 만드신 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의 부르짖음을 통해서 다시 한번 행복자로서 복을 받고 사는 자로서의 발걸음 내 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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