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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스바의 결단 (삼상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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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10년만에 찾아온 무더운 여름입니다.
요즘 전국이 무더위로 인해 불쾌지수는 말할 것도 없고, 더구나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 현상'으로 잠을 설쳐대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만사가 귀찮고 그저 시원한 것만 찾게 됩니다. 믿음생활도 한여름에는 참 어렵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니 우직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습니다.
심방도 어렵습니다. 심방을 받는 가정도 서로가 부담스럽고. . .전도도 쉽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날씨 타령만 하는 곳에는 짜증 불평만 있게 될 것입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합니다. 수련회 장소에는 에어콘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합숙하다 보면 힘든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즐거운 것입니다. 은혜가 넘치고 새 힘이 넘치는 수련회가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모여 기도하는 곳에는 언제나 같이 하십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에 그곳에 진노를 거두시었고 오순절 때에 120명의 성도가 모여 기도한 곳에 주에 성령이 임재하여 큰 성령을 체험케 하시고 홍해바다 언덕에 모세를 중심으로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 기도를 들으시고 바다가 갈라지는 역사가 있었고, 벧세다 언덕에 5천명의 군중들이 모인 곳에 주님은 그들에게 은혜와 양식을 공급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주님은 당신에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언제나 역사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시대는 영적으로 혼미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죽음 후, 내세에 대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모든 삶들이 그런 시각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본받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련회에서는 오늘 이 시대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지기 위하여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강의를 할려고 합니다. 이 시대를 본 받지 않을려면 이 시대를 바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영적 현실을 잘 인식하여야 합니다. 이런 영적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거기에 따른 정확한 처방을 할 때만이 이 세대를 본ㅂ다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의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지 약 200여 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국 전에 모세를 통한 설교입니다. 모세는 신8:에서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 .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그 염려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방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가나안 땅에 입국하자마자 바로 하나님의 명령(은혜)을 잊기 시작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는 커녕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방신을 쫓았습니다.
엘리 제사장 때에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혼돈하고 어두웠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의 직분을 악용해서 제사를 무시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아주 어두웠습니다.
그 때 주전 1075년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투가 있었습니다. 소위 ‘아벡 전투’혹은 에벤에셀 전투라는 전쟁입니다(삼상4:9-11). 블레셋과 전쟁 때 법궤를 빼앗깁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에게 패하여 보병 삼만이나 죽었으며, 그보다 그렇게 소중한 하나님의 법궤를 빼았겼으며,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까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충격적 소식을 듣고 엘리는 의자에 앉았다가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며느리(비느하스의 아내)는 만삭중이었는데 갑자기 진통을 하며 아이를 낳으면서 ‘이가봇’하며 죽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이가봇, ‘이스라엘에서 영광이 떠났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법궤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 법궤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어서 언약궤라고도 합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재터에 가지고 가면 자동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가치관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법궤를 전쟁터에 끙끙. . 고생하며 가져 다녔지만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기는 커녕 그 법궤마저 뺏기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주술적으로 미신적으로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잘못된 신앙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를 지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과 엘리의 두 아들이 죽고 난 다음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 나서면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사무엘 선지자를 좋아했고, 그를 통해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때에 블레셋에 빼앗겼던 하나님의 법궤가 되돌아 온 것입니다.
법궤가 돌아온 후에 하나님의 궤가 기랏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여년 동안이나 지나는 동안에 사무엘선지는 온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미스바로 모이게 합니다. 잃어버렸던 신앙을 재 정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건을 '미스바 회개 기도운동'이라고도 부릅니다.
미스바 사건은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국권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런 회복의 사건이 필요한 때입니다.
첫째로 미스바의 집회는 일치된 마음으로 모인 집회였습니다.
5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교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는 모이는 데서 일어납니다. 모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은 하나된 마음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모이기를 힘쓴다면, 그 어려움을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모이지 않으면 교회는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모든 공적인 예배, 기도회등 모든 모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나 하나쯤 빠져도 괜찮지 뭐!' 이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생각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허무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벧전 5:8) 이 영적 전쟁터와 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일치된 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일치된 마음에 가장 큰 적은 '나 하나쯤'하는 마음입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것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보고 모이는 곳에는 영적인 힘이 약화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냄새가 풍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사모하는 마음이 중심이 되지 않는 모임을 ‘예배’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모여서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여서 기도하고. 화목하는 마음으로 모이는 그 곳에 하나님의 큰 역사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초대교회는 모이기를 힘썼던 교회입니다.
미스바에 모인 무리들은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일치한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한 마음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세상의 세계에도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는데 영적인 세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120명의 성도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투옥되었을 때에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행 12:1-5) 베드로 사도는 합심기도를 통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베드로가 옥에서 풀려 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둘째. 그들이 모인 목적은 회개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의 대한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죄는 마치 병과 같습니다. 병이 생기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죄는 영적인 삶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말씀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기도가 끊깁니다. 미워하게 되고 좀처럼 용서하지 않게 됩니다. 병의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건강이 회복이 되듯이, 죄를 제거해야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게 되고, 기쁨이 회복되고, 축복이 회복되고, 승리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책임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못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회개의 자세가 된 사람들은 핑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핑계하고 전가하는 것을 제일 싫어 하십니다. 에덴동산에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회개 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다윗에게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은 허물이 많은 죄인이었음에도 회개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죄를 지적했을 때 즉시 눈물로 회개하며 침상이 썩도록 회개했습니다.
오늘날까지 다윗의 별이라는 이스라엘 국기의 상징이 되기까지 성군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죄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영적 지도자였던 사무엘은 하나님을 찾으며, 회복을 추구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너희가 온 마음으로 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가운데 서 제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의 말을 듣고 금식하며 온전한 제사를 드리며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6)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욕심부리고 먹고 기도하는 것 보다 목숨을 걸고 금식하며 기도할 때 놀라운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과 겸손으로 회개한다는 구체적인 표현으로 금식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금식은 죄에 대한 회개의 가장 구체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금식은 자연 치유력이 있다고 합니다.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할수록 활성산소의 발생량이 많아져 노화를 촉진하고 수명 또한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습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금식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금식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 .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 .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6-9)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 십 년 동안 불레셋의 압제 아래 살아온 것이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책임을 지려는 운동입니다.
내가져야 할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습니다. 그게 곧 회개운동입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회개하는 마음이 있을 때 교회는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는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가정은 화목하고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카톨릭에서는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룩한척하고 자기가 안했기 때문에 나는 상관없다는 바리새인 같은 자세를 가지게 되면 거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결코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중심으로 한 미스바 영적 대각성 운동이 일어난 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새롭게 바뀌게 됩니다. 미스바의 회개운동은 무너져가던 신앙을 회복하는 운동이었습니다. 타락하고 피폐해진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님의 왕국답게 개혁하는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회개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의 영혼은 점점 더 황폐화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복이 필요한 때입니다. 기쁨의 회복, 삶의 회복, 능력의 회복, 사명의 회복 . . .
잃어버린 것들이 있습니까? 회복되기를 원하십니까? 회개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금식하며 . . .
셋째, 기도에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기도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길 수 없는 중에 이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스바 회개의 집회중에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블레셋은 일찍이 철기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여기에 비해 이스라엘은 청동기문화에 불과합니다. 10-11절에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벨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으로 살 때에 일어나는 사단마귀의 공격은 하나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환란, 고통, 질병, 어려움이 와도 . . . .그 때는 마귀의 제삿날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말씀가운데 깨어있지 못할 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사무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뢰를 발하여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하여 이스라엘 앞에서 대패하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이 기적적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그 곳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였습니다. 12,13절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이 에벤에셀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싸울 때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대신 싸우십니다. 삼상17:47 다윗은 골리앗 앞에 당당히 서서 이렇게 외칩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오늘날 우리의 국가적인 정치, 경제, 사회문제 . . .모든 문제의 해결은 신앙적인 것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 됩니다.
* 일치된 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 핑계하지 마십시오. 책임전가하지 마십시오.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곳에 하나님이 가까이 게십니다.
* 기도하는 모임에는 어떤 사단의 공격도 이겨 낼 수있이습니다.

이번 여름에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도움심을 회복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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