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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위한 일에 함께 참여한 자 (빌 1:3~11, 출 40:17~3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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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석공 목사 (광야교회)

2004년08월08일 설교 
 
  1961년 4월 미국 CIA가 과테말라에서 훈련시킨 망명 쿠바인 1300여명이 쿠바 남부 피그만 해안에 상륙했으나 쿠바 혁명군의 신속한 대응으로 4일 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침공 계획을 세운 것은 케네디 대통령을 보좌하는 우수한 인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계획에 참여한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생각이 같을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지 뜻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결코 그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의 마지막 기도로 잘 알려진 요한복음 17장 21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자기를 후원한 일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며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 그에게 도움을 줬습니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그에게 협력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복음 안에서 교제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5절 말씀에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라고 번역된 것은 “교제”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교제”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따스하고 친밀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교제”는 그보다는 좀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 안에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을 꾸준히 후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그가 쓸 것을 보냈습니다. 그 후 로마에 있는 그를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도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고맙게 생각한 것은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그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았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알았으며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복음 전하는 일에 항상 함께 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교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섬김이라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섬김이란 구체적으로 짐을 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예나 지금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은 있게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져 슬피 우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이웃을 위해서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그 필요를 채워 줘야 합니다.

  강남의 어느 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교회나 대체로 여전도회 회원들이 돌아가며 주방 봉사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여집사 한 분이 자기 차례가 되자 돈을 주고 파출부를 고용하여 자기 대신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난 여태까지 집에서 손에 물 한 방울도 묻힌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뭐가 되는 것입니까? 돈이 없어서 주방 봉사를 해야 하는 꼴이 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워야 할 회막에도 얼른 볼 때에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사소한 일들도 하지 않을 것 같으면 결코 회막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는 별로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일도 있게 마련입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일이나, 예배당 마당을 쓰는 일, 또는 주차장 정리와 같은 일들은 영적인 일과는 별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도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으며, 특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하나가 되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해답 또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기쁘게 간구한다고 할 때 적어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그 기도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많이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감옥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별로 기도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하여 간구하는 경우는 더욱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하나가 되기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그리고 바울처럼...

  또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항상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항상 그리워했습니다. 그들도 글르 항상 생각하며 그리워했습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사랑은 결코 감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그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 까닭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교회는 채워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 안에 참 사랑이 없을 것 같으면 주님도 거기 계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다른 말로 용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용서해야 합니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타일러서 듣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거듭 타일러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마 18:16 참고) 심지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 하면 주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즐거운 잔치였습니다. 용서 이후의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서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용서 그 자체보다 그 후의 기쁨 때문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참 기쁨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월남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상이군인들을 위하여 대대적인 위문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공연의 책임자는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밥 호프를 초대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밥 호프는 너무나 바쁘고 또 선약이 있어서 갈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밥 호프가 없는 공연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그가 끈질기게 부탁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상이군인들을 위로하는 아주 중요한 공연에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결국 밥 호프가 타협안은 제시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5분 정도만 얼굴을 보여 주고 내려와도 괜찮겠습니까?” 책임자가 그렇게 해도 좋다고 하자 밥 호프는 그 공연에 출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공연 당일 막이 오르고 밥 호프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군인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밥 호프는 5분이 지나도 공연을 끝낼 생각을 않는 것이었습니다. 10분, 15분, 25분이 넘었는데도 그는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거의 40분 동안 공연을 하고 내려오는데, 이상하게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연 책임자가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밥 호프가 눈물을 닦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저 앞줄에 있는 두 친구 때문에 그랬습니다.” 앞줄에 상이군인 두 사람이 앉아서 열심히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한 사람은 오른팔이 없었고 또 한 사람은 왼팔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른팔이 없는 사람은 왼팔을, 왼팔이 없는 사람은 오른팔을 사용해서 두 사람이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을 보면서 밥 호프가 말했습니다. “저 두 사람은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팔 하나씩을 잃어버린 저 두 사람이 힘을 합해서 함께 기쁘게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된 기쁨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만남과 사귐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복음 안에서 서로 섬김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복음 안에서 서로를 위해서 기쁘게 기도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용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서 우리가 참 하나가 됨으로 말미암아 어두운 세상을 방황하며 절망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을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주님 앞으로 인도하여 살리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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