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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 9: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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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신복 목사 (산성교회)

“젊은이들은 능력(competence)을 기본으로 하되 인격(character)과 헌신(commitment)까지 포함한 ‘3C’로 세계화 시대에 도전하세요.”, “공직자로 3년을 지내면서 미국인들이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인재를 등용한다는 것을 알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능력을 기본으로 하지만 인격과 헌신의 자세가 없으면 인재로 등용될 수 없지요.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며 자신보다 지역과 사회 및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인격을 갖춰야 합니다. 거기에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꿈을 갖고 헌신할 것을 요구하지요.”

실명이라는 치명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2001년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라는 재미 한국인으로서는 최고위 공직자로 임명된 강영우(姜永佑) 박사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충고이며 권면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특히 'C'를 하나 곱하여 <‘4C'×C로 세계를 도전하라>로 권면하고 싶습니다. 즉, 3C의 공식에다 Christ의 능력을 곱해 세계화 시대에 도전하면 그분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분명히 성공을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능력, 인격, 헌신이야 말로 온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헌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말하는 기독교적인 언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생의 헌신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10:45). 예수님의 헌신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성가 179장, <살아 계신 주>를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내가 곧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

비버리지 주교가 나이가 많아 임종에 이르렀을 때 주위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 전속사제 한사람이 가까이 가서 “제가 누구신지 아십니까?”하니까 “당신이 누구요?” 그러더랍니다. 그의 아내가 다가가서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하니까 역시 “당신 누구요?”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했더니 금방 대답하기를 “물론이지요 나는 40년간 그와 사귀어 왔습니다. 그분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랍니다”하고 분명하게 대답하더랍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예수님만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에 사업에 실패하거나 병들어 죽게 되거나 이해 할 수 없는 극한 어려움에 처할찌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참된 능력자이십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침을 가지고 병을 고치는 능력에 대한 이상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신앙은 손가락에 자상이나 화상을 입었을 때 본능적으로 그것을 입속에 집어 넣어서 아픔을 그치게 하려는 것을 기억한다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저명한 로마의 편집가 플리니(Pliny)는 침의 사용에 관해서 한 장 전체를 삽입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술에 따르면, ‘그것은 뱀의 독에 대해서 훌륭한 예방제이며, 간질병에도 특효라 했습니다. 태선(苔蘚)이나 나병(癩病)의 반점은 단식하고 있는 자의 침을 사용하므로써 나을 수가 있습니다. 안질은 아침 단식하는 자의 침을 매일 아침 바르는 것으로써 고칠수가 있습니다. 암종이나 목의 근육통 같은 것도 침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손가락에 화상을 입는다든가 하면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먼저 그것을 입으로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혹이 생기면 침을 바르면 낫는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 소경은 침으로 병을 고치려는 시도를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막연한 신앙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같은 방법으로 침을 뱉아서 그를 고치셨습니다. 침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안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소경을 알았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긍정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 소경된 자를 바라보면서 두가지의 보편적인 관점에서 진리를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죄와 괴로움과의 관계를 설명하려 하시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재해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으신가를 나타내기 위한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재난과 슬픔과 고통, 실망, 그리고 상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이며, 괴로움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 줌으로써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때가 있는 동안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기 위해서 낮을 주시고 쉬기 위해서 밤을 주신 것입니다. 날은 저물게 되며 일하는 때는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라는 밤이 있기에 일할 수 있을 때에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든지 간에 그 정해진 시간 안에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크리스천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과 동포에 대한 봉사에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일입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바로 이 순간이 내가 일할때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세상의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경의 생각은 세가지 단계를 거쳐 진전하며, 그것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신앙을 가진자가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1) 소경은 처음에 예수님을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내 눈을 보게 하였다"(11절). 그는 우선 예수님을 매우 놀라울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경은 예수님과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이 처음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성은 마음을 사로잡히기에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에 가장 고귀한 생애를 노래한 시가 있다면 예수님의 생애가 분명히 거기에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세계의 가장 위대한 문학이 수집된다면 그것에 예수님에 대한 비유가 있을 것입니다.

2) 그는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볼 수 있도록 하셨다는 사실에 견주어 예수님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을 때 그는 "예언자니이다"(17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투시하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람이 따른다고 하면 개인이나 사회 민족이나 국제간의 여러 가지 문제는 그 모두가 해결되고 말 것입니다.

3) 최후로 소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범주에서 예수님의 일을 평한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바는 인간의 힘을 초월하고 예수님께서 알고 계시는 바는 인간의 오성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그는 이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한 때 많은 현명한 회의가(懷疑家)들이 모여 않자 예수님께 대하여 논의하고 있던 장소에 동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위대한 일을 한 인물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아니라고 간단하게 처리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나폴레옹은 말했다. "제군! 나는 인간이란 것을 알고 있는 터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이상의 존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 단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면 나는 말하노라. 온 인류 가운데서 그만을 나는 따를 것이며, 언제나 그 사람에게만 나는 따라 가겠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면,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나는 맹세하노라. 천국이나 지옥에라도 그를 따르겠노라고 땅이나 바다나 공중이라도."

예수님을 깊이 알면 알수록 그 놀라움은 점점 더 커져가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핵심으로 기록되었데, 로마서 1:1-3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복음』이라 하였습니다.

다윗의 혈통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 선지자들로 이미 약속되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16절을 읽어 보면서 16절의 말씀가운데 “복음”이라는 말씀을 삭제하고 그 삭제한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 라는 말씀을 삽입해서 한번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절).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입니다. 또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롬1:16절).

복음에는 어떠한 요소가 있기에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까? 첫째로, 복음에는 생명의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 안에서만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것이며, 새롭게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불멸의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셋째로, 구원의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넷째로, 평안의 요소입니다. (엡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다섯번째, 믿음의 요소가 있습니다. (행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여섯번째, 소망의 요소가 있습니다. (골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일곱 번 째, 사랑의 요소가 있습니다. (빌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아가페적인 헌신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툼이 있고 분쟁이 있는 한계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무한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안에 평안과 기쁨이 있고, 구원과 영생이 있음을 감사하면서 오늘도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주의 평강과 은혜가 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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