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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름수련회-2] 신나게 :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 (롬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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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재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어제의 주제는 “참되게”이었고 오늘의 주제는 “신나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된 삶을 기대하실 뿐만이 아니라 신나는 삶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재미없게 살도록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신나게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신난다는 말은 ‘신명난다’, ‘신바람난다’는 말의 준말로서 기쁘다, 기분좋다, 의욕이 넘친다, 활력이 넘친다, 어깨춤을 추다 이런 뜻이 강조된 말입니다. 이 단어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사람은 신(神)이 일어났을 때, 신(神) 바람이 불었을 때가 기쁘고 즐겁고 신나고 활력 있고 살 맛 난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성령님을 여호와의 신(spirit)이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 사람이 신난다는 것은 그 영혼이 깨어난다, 살아난다 이런 뜻입니다. 즉 사람은 영혼이 살아나고 깨어났을 때, 힘이 나고 즐겁고 기쁘고 활력있고 살 맛 난다는 뜻입니다.

또 흥미로운 것은, 요새 사람들은 잘 안쓰지만, ‘신나다’의 우리말 동의어에 ‘영산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산(靈山)은 신령한 산이라는 뜻이지요? 사람은 신령한 산에 올랐을 때, 신(spirit)이 살아나서 즐겁고 기쁘고 살맛나고 기분 짱이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모두에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람이 언제 신바람이 납니까? 성령을 받아서 영혼이 깨어 살아났을 때, 사람은 신바람이 나서 살아갑니다.
생각을 폭을 조금 넓히면, 사람이 신나게 살아가는 것은 조건들과 장비들을 갖추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착각하고 사는 것이 이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권력을 얻으면, 신나게, 행복하게 살 것처럼 여기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강금실 장관 퇴임하는 모습 보니, 권력의 짐을 벗으니 오히려 너무 즐거워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영광이 잠시 뿌듯함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그러나 영혼 깊이에서부터 일어나는 신바람은 오히려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또 사람들은 오락을 즐기면 신이 날 줄 알지만, 사실은 그것도 아니지요? 오락거리들을 갖추어서 그 순간은 재미있을 수 있지만, 그것들이 사람을 진정으로 신바람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영어 단어 레크레이션(recreation)은 ‘다시’(re)와 ‘창조하다’(creation)의 합성어인데, 여러분 오락을 즐기면 여러분 자신이 다시 창조가 됩니까? 물론 오락이 주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신바람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요새 휴가시즌이라 다들 휴가들 떠나지요? 일상에 쌓인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산과 바다에서 즐겁게 지내지만, 일상에 돌아왔을 때 그 신선한 느낌이 얼마나 갑니까? 우리처럼 영적인 가족들과 수련회하면서 사랑의 교제의 즐거움도 나누고 하나님 말씀도 듣고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그래서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셔야 신바람이 나지요. 사람이 진정 신나게 사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진정으로 인생을 신나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사람은 성령을 받아서 그 영혼이 살아나야 인생을 신나게 살아갑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행복하게, 열정적으로, 우울하지 않고, 담대하게, 평안을 누리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비로소 살아갑니다.

여러분,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신났을 때가 언제였던 것같습니까? 제 생각에는 <출14장>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넜을 때였을 것같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이 나타났을 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에게 신바람이 주체할 수 없이 마구 불어닥칩니다. 그들은 감격에 겨워서 흥에 겨워서 성령의 마구 인도하심을 따라서 노래하고 춤을 추고 축제의 도가니를 만들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을 때 신바람이 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은 어떻게 경험하며 누릴 수 있습니까?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배운다면, 사실 그 답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도 많고 원망의 소리도 나왔지만, 그러나 모세의 영도 아래 애굽을 나왔고 홍해 앞에서 모세가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조용히 해라! 좀 가만히 있어라!”입니다. 그러나 사실 어린이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것이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넘어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혀 있고 뒤에는 바로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데, 그 때에 모세의 명령을 따라 잠잠히 가만히 있기가 쉬웠겠습니까?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의 명령에 따라 잠잠히 기다렸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 경험됩니다. 우리를 신바람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분명하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때에 누려집니다.

또 여러분,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교회는 언제 제일 신났을 것같습니까? 단연 손꼽을 수 있는 장면이 사도행전 2장,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 때이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였을 때, 신바람이 난다는 것,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39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난다는 것, 이것이 신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성령을 받아야, 성령께서 충만하게 그 심령에 임재하여야 신나게 살아갑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 충만은 사람이 욕심을 내서 떼쓴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사람들이 흔히 잘못을 범하는 것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던 사람들의 결과를 모방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제자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충만하게 임재하심을 받자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방언을 하고 찬양을 하고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보이고, 신바람이 불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하여, 방언을 하려고 하고 마음을 고무시키는 찬양을 하고 그리고 목소리를 크게 한다거나, 안하던 말을 마구 한다거나, 죽치고 앉아서 큰 소리로 기도를 오래하려고 한다거나, 망가지기로 결심한 사람인 양, 술 취한 사람의 흉내를 냅니다.

사람이 어떻게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여 주시는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사람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사도행전 2장의 제자들의 모습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때의, 제자들의 심경이 어떠했을 것같습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본 후,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과 권능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받고 기다리는 이 제자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겠습니까?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예수님,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야이심을 그들은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마음 속에 예수님이 그리스도 주님이심을 거듭거듭 고백하였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전히 자신들이 예수님을 배반했던, 부인했던 아픈 기억들이 더욱 선명하게 기억되어 회개의 마음을 붙들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몸 둘 바를 몰라하고 있었을 것이며, 어느 때보다도 예수님께 순종하며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저 속 깊이에서부터 올라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께서 그 마음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에 사도들이 함께 서서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향하여 설교한 후, 이렇게 초청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람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침례를 받으라고 초청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성령을 받습니까?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분명하게 믿고 고백하는 심령에 성령은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이 일 후로, 바로 뒤이어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에서 다시 한번 복음의 초청을 전합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여 돌이켜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유쾌하게 된다는 것, 신바람 난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어떻게 그 심령이 유쾌하게 되고, 신바람이 납니까?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진정으로 믿을 때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하십니다. 유쾌하게 하십니다. 진정으로 신나게 살게 하십니다.

우리나라 교회에 1910년대에 평양의 장대현교회로부터 시작된 부흥의 운동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요? 후에 이 광경을 본 서양의 마펫 선교사가 “성령의 놀라운 불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써 냈습니다. 그런데 이 부흥운동의 특징은 성경을 읽고 목사가 그 뜻을 풀어주는 사경회였습니다. 군중심리에 의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성경말씀에 기초한 통회와 깊은 회심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부흥운동의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들어 보셨습니까? 1906년에서부터 평양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의 시작을 미국 선교사인 게일이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 갑자기 길선주씨가 일어나 자신은 형제들을 질시했을 뿐만 아니라 방위량(블레어)선교사를 극도로 미워했다며 보기에도 비참할 정도로 땅바닥에 구르며 회개했다…
한 교인이 일어나 자신의 죄를 자복하기 시작했다.그는 음란과 증오,특히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했다.그는 기도하면서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울었고,온 회중도 따라 울었다.우리는 그 순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있음을 분명하게 느꼈다”
                          -1909년 게일의 `과도기 속의 한국' 중에서 -

성령의 놀라운 불길은 이렇게 죄를 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나는 삶은 회개에서부터 시작입니다.
회개한다는 것, 죄인인 척 하라거나 기죽어 있으라는 것, 어거지로 떼굴떼굴 굴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어제의 “참되게” 말씀에 여러분 자신을 정직히 비춰 보십시오. 여러분은 정말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여기십니까? 예수님을 예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관계하고 계십니까? 신나는 삶은 참된 삶을 향한 갈망의 결과입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해 보겠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교회, 제자들이 제일 신났을 때가 또 언제였을 것같습니까? 제 생각에는, 오순절 이후의 교회생활, 그 때 또한 제자들이 제일 신나게 살았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행2:43-47>에 나타나 있습니다.

“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이 사람들, 초대교회 사람들이 이렇게 신나게 살아가는 동력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물론, 앞에서 말한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이 주동력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계속해서 신나는 생활로 이어가게 한 또 다른 동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성령을 받은 이들이 계속해서 신나는 교회생활, 신앙생활을 하였던 동인은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내가 살아있을 때에는 숨을 쉴 때가 아니라 사랑할 때이다” 16세기 카톨릭의 시인이었던 로버트 사우스웰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사랑하며 살아갈 때 신바람이 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사랑하며 살아갈 때 성령의 바람은 계속 됩니다.
상대적으로 소위 교회가 썰렁한 때가 언제입니까? 교인들이 마음 닫고 있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하여 무관심할 때, 사랑이 없을 때 교회는 썰렁합니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우리 민족 신앙의 어른, 길선주 목사가 사경회를 인도하면서 성령의 불길로 교회에 회개 운동이 일어날 때마가 그가 덧붙여 강조하였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지탱할 수 없다.”
신난다는 말, 다르게 표현하면 열심이 샘솟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 단어 중에 enthusiasm은 열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안에”라는 뜻의 전치사 "en"과 하나님을 뜻하는 “theos"가 합해서 생겨난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열심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신바람이 일어납니다.

<요일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신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 안에 기쁘게 거하시며 당신의 사랑을 넉넉히 베풀어 주십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사랑은 오염되기 쉬운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는 열정과 능력으로 신나게 살아가게 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경험, 성령의 충만,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내려질 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신바람나게 살아갑니다.
당신은 당신의 남은 생애를 그냥 살고 싶습니까? 신나게 살고 싶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우습게 알았던(?) 당신의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 주님, 절대적인 왕이심을 고백드리십시오.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에, 뜻에 온전한 순종을, 충성을 드릴 것을 고백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의 이웃들, 미워하였던 죄를 회개하고, 나의 이웃들에게 무관심하고 마음 닫고 살고 있는 죄악을 회개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다시금 고백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8>

내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평화가 넘쳐나고 내 심령 안에서 기쁨이 넘쳐나는 삶이 신나는 삶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은 참된 삶(=의)과 신나는 삶(=평강과 희락)을 실현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1장 11-13절>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당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모두 내어드리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의 초청 앞에, 값진 진주를 만난 진주장사처럼, 밭의 보화를 발견한 농부처럼, 당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올인하여 응답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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