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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의 일생(9) : 하나님의 시간표 (삼하 2:1~4a,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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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후서 3장 8절 말씀이죠. 그는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다르셔. 하나님의 하루는 천년과 같단 말이지. 정말 대단해.” 그리고는 얼른 계산기를 두드려봅니다. “하루가 천 년이라 ... 그러면 무려 365,000배가 된단 말이네” 그는 신이 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더도 말구요 1만원만 주십시오.” 그러면 얼마 달라는 거죠? 36억 5천만 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응답이 즉각 왔습니다. “그래, 좋~다. 그런데 더도 말구 하루만 기다려라.” 그러면 얼마나 기다리라는 거죠? 천 년입니다. 욕심을 부리다가 보기 좋게 한 방 맞은 겁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마치 자기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심부름꾼인 것처럼 말입니다. 당장 좋은 것을 많이 달라고 졸라댑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욕심을 성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 아니고, 더더욱 성숙한 신앙의 모습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자기에게 참 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 신앙은 하나님을 나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내 마음과 내 생각을 하나님께 맞추는 겁니다. 이게 곧 ‘신본주의 신앙’이요 ‘하나님 주권 신앙’입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거나 서두르지 않습니다. 비록 당장은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립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시간표’(timetable)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만 살면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복스러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다윗이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 시간 다윗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이 갖고 계셨던 시간표는 어떤 것이었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윗이 그 시간표를 깨닫고 순종할 때 얼마나 복된 인생을 살게 됐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우리도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시간표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시간표에 맞춰 살아감으로 진정으로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시간표 :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분류 설교전당 우리 인간의 시간표는 무조건 ‘지금’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급하게 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필요하면 하나님도 지금 당장 역사하시고, 우리에게 좋은?것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하나님은 시간을 적당히 멀찌감치 잡습니다. 그리고 범사를 조종하며 타이밍을 맞춰 가십니다. 그래서 결국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예비하셨습니다.(삼상16:13, B.C. 1025년 경) 그런데 정작 왕이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입니다. 그것도 단번에 왕이 된 게 아니라, 두 단계에 걸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1차적으로는, 삼하2:1~4a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만의 왕이 됩니다.(B.C. 1010년 경) 그러니까 기름부음을 받은 지 15년이 흐른 뒤입니다.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핍박 받은 지는 10여 년 흘렀을 때입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죠. 2차적으로는, 삼하5:1~5에 기록된 대로 전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왕이 됩니다. 대략 B.C. 1003년경입니다. 5:5절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대략 7년 6개월 유다 지파의 왕 노릇을 했습니다.

얼른 인간적인 생각을 해 보면 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쫓겨 다니며 오래 동안 고생했는데, 이제 사울왕도 죽고 없어졌으니 하루라도 빨리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나라도 혼란스러워서 정말 그게 좋은 듯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무려 7년 6개월이란 세월을 지체하십니다.
너무 답답하고 지루해 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그랬을까요? 다윗을 더 많이 연단하시려는 뜻도 있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를 맞춰주시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타이밍을 맞추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당시 상황을 마음속에 그려보시면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 당시 사울 왕이 죽었지만 아직은 혼란기입니다. 사울 왕가에 남은 세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사이에는 일부에서나마 사울 왕 죽음의 배경에 혹시 다윗이 개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의 눈길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윗이 핍박을 피해 다니다 블레셋에 망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충분히 의심받을 만하죠. 자칫 잘못하면 쿠데타 세력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 가운데 다윗이 왕이 되면 통치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겁니다. 물론 다윗이 거느리던 군사들이 있었으니까 무력으로 정복할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단계적으로 다윗이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갖도록 했습니다. 먼저 유다 지파는 다윗의 출신 지파니까 쉽게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 후 7년 6개월 동안 이런 저런 변화가 있었고, 결국 나머지 지파들도 스스로 자기들이 몰려와서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5:3절.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소원하시고 계획하셨던 신본주의적 왕국(神本主義的 王國)의 모습입니다. 다른 이방 나라의 왕처럼 권력의 힘으로 군림하고 탄압하는 게 아니라,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왕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이 이뤄지기까지 시간을 끄셨던 겁니다. 이게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시간표에 잘 순응했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다윗의 성숙한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시간표를 바라보는 자세 : 신뢰, 인내, 순종

다윗은 오랜 세월 신앙의 연단을 통해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인식하면서 그에 따른 합당한 신앙 자세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 결과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신앙 자세는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①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 : 다윗은 오래 전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시면서 약속하신 것을 100% 믿었습니다. 이런 신뢰의 믿음이 없으면 다윗이 자기 본위로 인간적인 행동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랜 세월 자신의 삶을 신실하게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분이 작은 오차도 없이 자기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부도율이 0 %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애3:20~22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다윗은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굳게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27:14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사람도, 권세도, 물질도 신뢰할 게 못되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할 만한 분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만 굳게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②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 : 다윗은 이미 오랜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그도 사람인데 어찌 고난의 세월이 고통스럽지 않았겠습니까? 그 역시 인간적으로 고난의 종지부를 속히 찍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기다려야 된다니 맥이 빠질 법도 합니다. 그런데 그는 안달하지 않습니다. 허겁지겁하지 않습니다. 진득이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결국 승리하게 되죠.

여러분, 사람들이 성급하게 구는 것은 대개 왜 그렇습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품고 성급하게 움직이면 자칫 잘못하면 망합니다. 약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잠19:2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 하느니라

성급하게 욕심 부리다 혼이 난 사람이 있죠. 야곱입니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형 에서를 제치고 족장으로 선택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진득이 기다리면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이뤄주실 겁니다. 그런데 성급하게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달려듭니다.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사질 않나, 눈과 귀가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 축복 기도를 받지 않나 ...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오히려 큰 일을 당합니다. 형 에서가 살기등등하게 죽이겠다고 달려듭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집을 떠납니다. 밧단아람으로 행해 가다가 빈 들판에서 돌베개 베고 자는 야곱의 쓸쓸한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후 20년을 고생 고생합니다. 자기는 잔머리를 굴려서 약삭빠르게 차지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늦어진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 하도 스피드 시대가 되다 보니까 머리를 잘 굴려야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어요. IQ, EQ가 좋아야 하듯이 JQ가 좋아야 한답니다. JQ는 ‘잔머리 지수’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잔머리 굴리면 당장은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JQ보다 FQ가 좋아야 합니다. FQ는 신앙 지수(Faith Quotient)를 말합니다.
우직해 보여도 신앙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어렸을 때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식구가 많아서 가마솥에다 밥을 했잖아요.
배가 고프면 어머니가 부엌에서 밥하는 데 가서 살그머니 뚜껑을 열어봅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면 밥이 설익습니다. 또 묘목을 심고 며칠 후 궁금합니다. 그래서 뿌리를 뽑아봅니다.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다시 심었다 또 뽑아보고 ...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면 나무가 그냥 죽고 맙니다. 성급하게 굴면 이렇게 됩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조급하고 성급한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도들도 그런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풍자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인내의 신앙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저에게 인내를 주십시오. 지금 당장 주십시오.” 정말 곤란합니다.

현실이 힘들고 답답해도 진득이 인내하며 기다릴 때 승리합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십시오. 애매하게 감옥살이하는데, 감옥에서 관원장 둘을 만납니다. 하루는 불안한 기색이 있어 물으니 꿈을 꾸었다는 겁니다. 해석해 주니까 정말 그대로 떡맡은 관원장은 처형당하고, 술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됩니다. 출옥한 관원장이 나가면 요셉을 도와주겠다고 하더니 감감 무소식입니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래도 요셉은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로부터 만 2년후 하나님이 좋은 때를 맞춰 역사해주셨습니다. 창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 ”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 전전긍긍합니다. 그때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죠. 급히 왕에게 불려갑니다. 바로왕의 꿈이 7년 풍년, 7년 흉년임을 해석해줍니다. 그리고 흉년이 너무 심해서 큰일 날 것임을 알려주면서 비방까지 알려줍니다. 감동받은 바로 왕은 요셉을 일약 국무총리로 세웁니다.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출옥하면서 금세 그를 꺼내 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죠.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현실이 답답해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③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 :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급해도 정도를 걷는 게 중요합니다. 다윗은 정도를 걸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했었죠. 사울을 두려워 하다가 국경을 넘었고 블레셋에 망명해서 아기스 왕에게 붙어살다가 혼이 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기본적으로 정도를 걸었습니다. 정도는 곧 하나님의 뜻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사무엘상 24장과 26장을 보면, 최소한 두 번 사울 왕을 결정적으로 살해할 수 있는 기회에 그냥 살려 주었습니다. 측근 부하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다그쳤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에게 손을 댈 수 없다면 끝까지 선을 지켰습니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본문 삼하2:1절을 보면 다윗이 이제 얼마나 철저하게 정도를 지키려고 애를 썼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그는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여쭈었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헤브론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만, 정도(正道)로만 걸어가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인생을 책임지시고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사람이 어렵고 답답하게 되면 반칙을 범할 유혹에 빠집니다. 그렇게 하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다른 길로 가다가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길로 가면 안 되죠. 예를 들어 요즘 휴가철에 자주 보는 풍경인데요,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주차장처럼 꽉 막혀 서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을 보니까 휑하니 비어 있고 자동차들이 씽씽 달립니다. 그러면 건너가야 되나요? 아니죠. 아무리 이쪽이 막혀있어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막혀도 정도로 가야 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신대륙의 바하마 열도에 도착한 것은 1492년 10월12일이었다. 그런데 항해 도중에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선원들이 항해가 길고 어려워지니까 자꾸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동쪽으로 갈 것을 고집했습니다. 계속 가면 신대륙이 나온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바로 전날인 10월 11일 선원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돌아가자고 데모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마침내 바하마 제도에 상륙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매일 기록한 항해 일지는 언제나 이런 말로 맺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동쪽으로 전진하였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낙심하지 않고 정도를 걸어가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갈6:9에도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시간표는 어떤 겁니까? 혹시 지금 당장으로 일관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 생각에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 인생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란 사실입니다. 나님이 최선으로 계획하신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눈앞의 현실이 답답해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대로 정도를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는 다윗의 신앙을 본받아 남은 생애 꼭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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