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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높이시는 자 (단 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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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뉴턴이 발견한 운동의 세 가지 법칙 중 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하면, 그 물체 역시 상대의 물체에 똑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총을 쏘면 총알이 앞으로 나가면서 총이 뒤로 밀리는 현상이나 또한 주먹으로 벽을 치면 벽도 같은 힘을 주먹에 가하면서 때린 사람의 손이 아프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 현상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 법칙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신계에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주변 사람에게 행한 대로 언젠가 꼭 되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선을 행하면 선으로 받게 되고 악을 행하면 악을 받게 되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인정하고 배려하고 칭찬하고 높여주면 그와 같은 원리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지만 욕하고 비판하고 아프게 하고 상처를 입히고 배반하고 깎아내리면 그와 같은 내용으로 자신이 받게 되는 원리를 말합니다. 이러한 우주 운행의 원리를 이해하면, 우리는 삶에서 지혜를 얻게 됩니다. 곧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게 되었을 때,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하늘이 차려 준 밥상으로 알고 달게 받는 것입니다. 

하늘이 차려준 밥상

하나님은 물질계를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운행하시고, 정신계를 「뿌린 대로 거두는 시스템」으로 운행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고통스런 일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세상 운행 방식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통을 받는 것은,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해 벌을 받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책임적인 존재로서 살아가게 하려는 뜻인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은 비겁하고 나약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건강하고 강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책임을 지는 존재로 성장해 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뿌린 대로 거두는 시스템」으로 인간사를 꾸려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에는 하나님의 그러한 뜻이 배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벌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하늘이 차려 준 밥상이고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아니겠습니까?

예전엔 초등학교에서 성적을 「수, 우, 미, 양, 가」의 5등급으로 나눠 매겼습니다. ‘수’나 ‘우’가 많으면 부모님으로부터 칭찬을 듣지만, ‘양’이나 ‘가’가 많으면 꾸중을 듣습니다. 그런데 「수, 우, 미, 양, 가」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수’(秀)는 빼어날 ‘수’자로, 빼어나게 우수하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 ‘우’(優)도 역시 우수하다는 뜻입니다. 글자로만 보면 ‘수’와 ‘우’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美)는 아시다시피 아름다울 ‘미’자입니다. 이 정도 성적이면 아름답다, 곧 참 괜찮다는 뜻이죠. 그 다음 ‘양’(良)은 양호하다 할 때 ‘양’이니까, 역시 좋다, 어질다,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성적의 다섯 등급에서 네 번째로 분류되는 ‘양’마저 무척 좋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지막 등급에도 아주 긍정적인 뜻이 들어 있습니다. ‘가’(可)는 가능하다고 할 때의 ‘가’입니다. 옳다는 말이며,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성적을 맞더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옛 선생님들의 성적표 작성법에는,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시려는 아름다운 사랑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수, 우, 미, 양, 가」제도에서 우리는 귀한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곧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이 주어졌을 때, 「수, 우, 미, 양, 가」정신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좀 씁쓸한 일에 대해서, 이건 아름다운 일이야, 하며 ‘미’를 주고 조금 고통스런 일에 대해서, 이 정도면 양호하지, 하며 ‘양’을 주며 최악의 불행에 대해서도, 아직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하며 ‘가’를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하늘이 차려 준 밥상으로 알고 달게 받아 먹는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늘이 차려 준 밥상으로 알고 달게 받는 모습, 그것을 「순명」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운명에 순종한다는 뜻이지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일어나는 일임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에 저항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순명」의 길을 걷는 사람이 바로 순한 사람입니다. 그는 까다롭지 않고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넉넉한 여백이 느껴지고, 조금은 바보 같아 보이고, 걸림이 없는 사람입니다. 매사에 「수, 우, 미, 양, 가」 정신으로 임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 순한 기운으로 이웃에게 진심어린 사랑을 전합니다. 타인에 대해서도 늘 「수, 우, 미, 양, 가」정신으로 대합니다. 그런 순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사면의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또한 그의 선행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그는 많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한계가 있어 너무 큰 것이나 너무 작은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많고, 더 큰 것이 있는데 그 중에 영적의 세계가 있습니다. 영적세계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 신비한 세계입니다. 믿음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놀라운 신비의 세계를 영의 눈과 영의 귀로 영적 세계를 보고,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세계,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가게 되는 것이 신앙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그저 수양삼아 하는 것이거나 교양을 쌓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고 보는 것이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전후에 있는 말씀들을 보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왕궁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어느 날 바밸론 왕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예사로운 꿈이 아님을 왕은 알았습니다. 분명 미래에 대한 예언적인 꿈이라는 것은 분명한데 그 꿈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답답하여 견딜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나 오직 그 꿈으로 인하여 번민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2:1절에 보니까 "느브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했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나라의 유명하다는 마술사, 주술가, 점장이와 점성가들을 불러 “내가 꿈을 하나 꾸었는데 그 꿈을 알 수 없어서 마음이 답답하니 너희들이 그 꿈의 내용과 해몽을 나에게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왕의 말을 들은 이들이 한결같이 대답하기를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께서 그 꿈을 종들에게 말씀하여 주시면 해몽하여 드리겠습니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꿈 내용을 이야기 해 주어야 꿈 해몽을 할 수 있는 것이지, 꿈 내용도 이야기도 하지 않고 왕이 꾼 꿈을 알아내어 꿈 해몽을 하라고 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둘러 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어찌해야 될지 몰랐습니다.

왕은 더 극성을 부리면서 이야기 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나의 명령은 확고하다. 너희가 그 꿈의 내용과 해몽을 나에게 말해 주지 못하면 너희의 몸은 토막이 날 것이며, 너희의 집은 쓰레기더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그 꿈의 내용과 해몽을 말해 주면, 내가 너희에게 선물과 상과 큰 명예를 주겠다. 그러니 그 꿈과 그 해몽을 나에게 말하여라"

바벨론의 술사들이 왕에게 다시 이야기 합니다. “임금님께서 아시고자 하시는 그 일을 임금님께 알려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일찍이 그 어떤 위대한 왕이나 통치자도 마술사나 주술가나 점성가들에게 이와 같은 일을 물어 본적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물으신 것은 너무 어려워서 육체를 가진 사람과 함께 살지 않는 신들이라면 몰라도 아무도 그 일을 임금님께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10절) 세상 사람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왕이 꾼 꿈을 알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이 아니면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성이 나서, 크게 화를 내며 바벨론의 지혜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왕이 꾼 그 꿈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바벨론의 술사들과 점장이들, 용하다고 하여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사람들 모두 왕의 꿈을 알아낼 수 없어 몰살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에 다니엘이 지혜자들을 죽이려고 나온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에게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습니다. “임금님의 명령이 어찌 그렇게 가혹하십니까?” 이때에 근위대장 아리옥이 모든 일들을 설명해 주었고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된 다니엘이 왕에게로 가서 아룁니다. "임금님께 임금님의 꿈을 해몽해 드릴 수 있는 시간을 저에게 주십시오"(16절)라고 간청하여 허락을 받고는 집으로 돌아와 믿음의 친구들에게 이일을 알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 은밀한 일에 저희들에게 알려 주시어 바벨론의 지혜자들과 함께 죽지 않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다니엘은 왕에게 큰소리 치고 집으로 돌아와 믿음의 친구들과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 위기를 면하게 해 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 최고의 무기는 기도입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어려운 일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은 만나 주시고, 숙제를 풀어주시고 어려움이 전화위복이 되게 하시어 그 일로 인하여 높임을 받게 해 주십니다. 기도는 허공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만나 주셨고 왕의 꿈을 보여 주셨고 알게 해 주셨습니다. 9절 “이에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기도하는 다니엘이 하나님으로부터 환상으로 왕이 꾼 꿈을 보게 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는 왕에게 꿈으로 보여주신 분이 하나님이요, 왕이 꾼 꿈과 그 해석을 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다니엘에게 왕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이 환상으로 그 꿈을 다시 보여 주셨고, 그 꿈 해몽까지 알려 주셨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기도로 대화하고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대화가 없기에 문제가 꼬이는 것이고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은 만나 주시고, 하나님 만나면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굴을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며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영원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전적으로 믿는 믿음의 사람을 쓰시고 높여 주신다

왕이 꿈을 꾼 다음 잊어 버려 바벨론의 모든 술사들이 죽게 되었을 때 다니엘인들 무슨 재주로 왕이 꾼 꿈을 알아맞히겠으며 또 그 꿈 해석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니엘보다 많은 경험이 있고, 실력 있다고 하는 자들도 저마다 못한다고 하는 일을 다니엘은 무엇을 믿고 담대히 왕에게 나아가 시간을 주시면 왕이 꾼 꿈의 내용을 알아내어 해몽하겠다고 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 믿고 큰 소리 친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고 자신의 간구를 들어 주시고  이일로 인하여 주의 영광이 들어나게 해주신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손에 잡은 것 없고, 눈에 본 것 없고, 귀에 들은 것 없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다니엘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은 쓰시고, 높여주시고, 주이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살아계심을 믿는 그것이 믿음이고,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시고, 믿음의 사람을 높여 주시고, 믿음의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은 쓰셨고, 높여 주셨고, 귀한 일들을 맡겨 주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다 믿음이 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신자 중에도 믿음 없는 자가 있습니다. 기도는 해 놓고 바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의심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왕에게 보여주신 꿈을 자신에게도 보여 주실 줄 믿었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이렇게 믿고 행동하는 다니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또 다니엘은 주어진 결과를 갖고 모든 영광과 존귀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아 왕의 꿈을 본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2:20절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페하시며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 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또 어두운 데와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 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네게 보이셨나이다”

왕 앞에 나아가서도 자기를 들어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높였다.

2:27 “왕이 물으신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내게 알게 하셨나이다. 30절 “내게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나이다”.

다니엘은 왕 앞에 나가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알게 해 주셨고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고 확실하게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자신이 했다고 하지 않았고 자신이 알아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지혜가 아니고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자기를 들어내지 않고 하나님을 드러냈고 하나님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자가 바로 교만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셨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기가 한 것인 양 생각하고 우쭐대는 자를 하나님은 거꾸러뜨리십니다. 그러나 겸손한 다니엘,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돌린 다니엘을 하나님은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겸손과 존경

겸손한 사람은 대접을 받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벗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따돌림을 당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환영을 받습니다. 자기를 낮출 줄 아는 것은 큰 지혜입니다. 어떤 지혜보다 겸손을 배우는 지혜가 가장 큽니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려는 사람이 생기지만 교만한 사람은 좋은 충고를 듣지 않으므로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주위의 충고를 감사한 마음으로 듣습니다. 겸손은 말만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자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여 더 배우려는데 있습니다. 겉만 겸손한 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마음속이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며 지식이 많은 사람은 존경을 받습니다. 존경을 받는 사람은 주변사람들에게 힘이 됩니다. 존경을 받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이웃들이 달려들어 같이 협조를 하고 염려를 해 줍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도 존경을 받지 못하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고소해 합니다. 재물이 가장 귀한 가치처럼 보여도 진짜 귀한 것은 이웃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만물을 보더라도 인간은 맨 마지막에 만들어졌기에 그 어떤 만물보다 앞서지 못합니다.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이 다른 어떤 피조물과 이야기하거나 관심가지신 것이 아닙니다. 겸손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그들에게 다가가셨고, 큰 복과 사랑을 받아 에덴동산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겸손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그 모습이 거만해지고 험악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만불손한 모습의 극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요 그 명령을 지키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자기의 원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인류가 그러했고, 노아의 홍수의 때가 그러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욕심으로 말미암아 남게 된 것은 교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이 본모습인 양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은혜 받고 성령 받으면 맨 먼저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본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본모습이 아니라, 그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본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인위적으로라도 하나님 앞에 겸손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어야 합니다. 높고 높은 창조주이신 그분의 권위를 높일 때 살아계신 주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낮은 자존감과 패배감이 겸손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힘으로 삼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도 아들이셨으나 자기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 높이셨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끝없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던 모습이 바로 겸손이었습니다.

2:46절입니다. “이에 느브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왕이 다니엘에게 절했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일이며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47절에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오 모든 왕의 주재로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높여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은 다니엘을 높여 주신 것입니다. 사무엘상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 하리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그를 존중히 여겨 주시는가 하면,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최고로 높이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복 받는 비결 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서를 통해서, 다니엘이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와 대화를 통해서 포로로 잡혀온 초라한 한 소년이 위기를 만나 죽음 직전에 있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시와 이상과 꿈으로 장래 일을 알려 주셨고 이일을 통해서 놀랍게 높임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높일 때에는 어떤 이도 그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고, 그를 높이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높인 자 어느 누구도 그를 낮출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그 높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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