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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 - 회개 (마 21: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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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철 목사 (왕십리교회)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마태복음21:30,31)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며 외친 말씀과 예수님의 사역에서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은 “(마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였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의 전도훈련중 그들이 나가서 먼저 외친 말씀도 “회개하라(막6:12)”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도 설교에서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회개는 신앙의 삶에 먼저 있어야 하고 반드시 있어야 할 절대적인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소유하려면 반드시 회개의 과정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회개의 삶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신앙의 근본적인 요청이며 진리의 절대적인 가르침인 것입니다. 신앙을 위한 가르침이나 훈련과 양육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회개의 역사입니다. 참된 신앙인의 삶은 회개의 삶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회개의 삶은 신앙생활의 한 부분이나 요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 가겠습니다”고 대답하고는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싫습니다”고 대답하였지만 뉘우치고는 포도원에 가서 일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가겠다고 대답하고는 가지 않은 맏아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일하기 싫어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으나 뉘우치고 포도원에 간 둘째아들의 모습입니다.

가야할 타당성과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포도원에 가서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신앙,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진리를 타당하다고 수긍하는 신앙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알고 수긍하지만 그 알고 수긍하는 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바로 맏아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둘째아들은 포도원에 가서 일했습니다. 그것은 회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아들의 회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회개는 알고 수긍하는 대답만이 아닌 참여이자 체험이며 실제적인 것입니다. 회개는 아버지와 함께하며 아버지의 기쁨을 가지는 것이며 아버지와 하나된 결과를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우선적인 것은 회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회개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말씀 뒤에 당시의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21:31-32)”
회개 없는 당시의 지도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었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세리와 창기들이 회개함으로 구원받고 하나님나라의 삶을 소유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배웠고 안다는 것 중요합니다. 내가 교양적인 사람이라는 것 그것도 중요합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바로 살았다는 것 중요합니다. 내가 교회 오래 다녔고 신앙의 연조가 깊다는 것 그것도 중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어 놓았다는 것, 내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 내가 교회에서 유력한 사람이라는 것 이러한 것들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세상에서는 중요할 지라도, 천국의 삶을 소유하는 데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천국의 삶에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의 삶입니다. 회개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천국의 삶을 위해서는 회개가 중요합니다. 회개가 있어야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있어야 그곳에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 회개가 있어야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생명이 있습니다. 회개가 있어야 그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회개가 있어야 힘있는 희생과 헌신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란 말을 기피하고, 그것과 어떠한 관련도 맺기를 거부합니다. 그것은 회개라는 용어가 흉악한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 같고, 어딘가 즉결 재판소의 냄새를 풍기는 것 같고, 하나님의 사랑과는 전혀 모순되는 것 같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진정한 사랑에 이르게 해주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회개하고 있지 않거나 회개의 삶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리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서 회개의 원리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아들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싫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깊이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의 말씀을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이야기 가운데 방탕한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팔아 아버지를 떠나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사치와 향락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흉년이 들자 먹고살기 위해 돼지 치는 자가 되어 우리에서 돼지먹이를 뺏어먹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방탕한 아들은 돼지우리에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며 아버지를 중심에 두고 생각한 것입니다. 생각의 결과는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중심에 두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리 깊고 진중 하게 생각할 지라도 그 생각은 편견이며 감정이고 고집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의 감정과 고집과 편견에서 자유 하게 하고 천국의 삶을 소유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할 때는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싫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데서 포도원으로 가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출발입니다.

종교개혁자 Martin Luther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의를 이루고자 노력했습니다. 루터는 폭우가 쏟아질 때 천둥 번개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 빠져드는 자신을 보고 자신의 의에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의를 이루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 규정과 의무를 성실히 행하며 며칠씩 금식하며 수행했습니다. 로마를 방문해서는 황금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올라가며 순례자의 길을 걸음으로 의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애쓰고 노력했지만 그의 마음에 의가 이루어짐으로 나타나는 진정한 평안을 찾을 수 없게되었습니다.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할 때는 스스로 자신이 옳고 의롭다고 인정할지라도 그곳에 기쁨과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참된 평화와 기쁨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중심이 되어 만든 의로는 기쁨과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생각은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자기스스로 의를 이루어 보려고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 왔던 그의 신앙의 삶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기자신이 의로운 자가 되어보려는 생각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의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왔던 신앙과 다른 방향을 찾게된 것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의인들의 의(righteous)는 인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의를 이룬다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소유하는 데서 천국의 세계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의롭게 여겨주십니다. 그 의를 믿고 받아들이는데서 인간에게 참된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힘으로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도록 하신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4장 5절에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를 얻는 진리를 루터는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중심의 신앙에서 하나님 중심의 종교개혁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루터의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진지하고 깊게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둘째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싫습니다” 라고 불순종하는 것이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뉘우치며 돌이켰습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자기를 발견하고 그것이 심각한 잘못임을 깨닫는 것이며 그 잘못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음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두려움과 함께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해 줍니다.

다윗왕은 자신의 휘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그러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꾸짖었습니다. 다윗의 범죄의 자리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다윗은 이런 자신의 부끄러운 죄악을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자신을 깨닫고 뉘우치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집회가 1주간 열렸습니다. 모든 참석자들은 은혜를 사모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이 되어도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는 길선주 장로(3. 1운동 민족대표 33인준 하나, 평양장대현교회 담임)는 안타까웠습니다. 1500여명이 운집한 집회였으나 웬지 성령의 은사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통성기도시간에 길 장로는 성령께서 함께 하지 못하는 집회가 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던 중 그 원인이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습니다. 목사님은 성령의 감동 속에 일어나 우렁찬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는 아간과 같은 놈입니다. 저 때문에 우리 회중이 은혜받지 못했습네다. 언젠가 제 친구 한사람이 임종하면서 제게 부탁하는 말이 ‘장로님 나는 이제 죽겠는데 나 죽은 후에 내 재산을 잘 처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 아내가 무식해서 할 수 없으니까 꼭 부탁합니다’ 했습네다. 저는 그 과부의 재산을 다 정리하기는 했으나 그 중에 일백원을 잘라 먹었습네다. 저는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저는 내일 아침 일찍이 그 돈을 부인에게 돌려주겠습네다.”
이 같은 길선주의 공개적인 자복이 터지자 모든 청중은 일시에 자복하며 은혜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평야 대 부흥운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것이라고 봅니다.(한국교회 신앙체험사 인용)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뉘우치고 돌아서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이 회개의 삶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도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뉘우치고 돌이켜 아버지의 의도를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포도원에 가서 일했습니다. 회개는 생각하거나 뉘우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받아들이고 그 의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의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도를 믿고 받아들여 순종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인 구원을 받게 되고 천국의 생활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맏아들처럼 “네,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둘째 아들처럼 “못 가겠습니다”라고 하였으나 뉘우치고 돌이켜 아버지의 의도대로 가서 일하는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잘못된 죄인가를 깨닫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의 의도대로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회개입니다.
천국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바로 그 천국의 문은 회개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하는 자신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에 대하여 무감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의도를 경시하고 무시했습니다. 그곳에 회개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둘째 아들과 같이 회개의 삶을 사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진지하게 생각하십시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그 잘못됨에 뉘우치고 돌이키십시다. 하나님의 의도를 받아들이고 순종하십시다.
맏아들과 같이 되지 마십시다. 둘째아들처럼 회개의 삶을 선택하십시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둘째아들의 모습을 가질 것을 요청하십니다. 회개의 삶을 살아야 천국의 삶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어떤 의사가 학생들에게 수술기구의 소독의 필요성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수술기구를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완전하게 근본적으로 소독을 하지 못하면 치료하기 만든 기구가 살인하는 기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삶은 아름답고 복되며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삶은 회개라는 소독 약품을 가지고 철저히 소독할 줄 모르면 그 신앙은 사람을 죽이는 수술도구와 같이 우리를 망가뜨리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회개의 삶과 함께 만들어져 가는 것이 되어야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과거의 것이거나 미래의 것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있어 천국이 이루어지려면 지금 회개의 문에 들어서야 합니다. 지금 내게 천국의 기쁨과 영광이 없다면 회개하십시다. 회개의 신앙을 회복합시다. 회개의 삶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회개의 삶으로 천국의 생활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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