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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가치를 높이라 (골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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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광호 목사 (영생감리교회)

세계적으로 웰빙의 바람이 불고 있다.
생활 문화 환경 모두에 웰빙이 들어가고 있다. 환경친화적인 생활을 하려고 한다.
모두가 건강을 생각하고 있다. 건강식품의 개발이 활발하다.
우리교회도 이정구박사가 클로렐라 찐빵을 개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전 세계적인 ‘웰빙(well-being)’붐을 타고 환경친화적인 보디케어용품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더 타임스지에 따르면 찰스 왕세자는 영국의 유명 헤어드레서 대니엘 갤빈주니어와 손잡고 ‘천연 원료’만을 사용한 샴푸, 비누, 샤워 젤 등 각종 보디케이용품을 출시하기로 하고 신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판매 이익은 찰스 왕세자가 운영하고 있는 ‘웨일스공 자선재단’에 전액 기부된다.

찰스 왕세자는 내년에는 영·프 평화협정 체결 100주년을 맞아 라임과 레몬, 오렌지를 배합해 만든 ‘앙탕트 코르디알’이란 이름의 소프트 음료를 개발해 음료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데톡스요법이라는 것이 있다. - 몸에 축적되는 독소를 제거하는 여러 형태의 활동이다.

인간은 산소를 마시고 이 산소를 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로 바꾸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부산물로 산소유리기가 발생되는데, 이 유리기는 유해 환경에서는 건강한 세포를 공격해 단백질과 지방을 파괴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도시에서 유해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이 산소유리기는 노화의 원인이자 암, 관절염, 심장병 같은 퇴행성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지나친 스트레스나 각종 세균에 의해서 독소는 더욱 증가된다.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카페인 음식, 지나친 육류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데톡스 요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귀찮더라도 꾸준히 해서 생활습관으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효과를 느끼지 못하지만 어느덧 가벼워진 몸과 건강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웰빙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건강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겅강하게 살고자하는 욕망이 있다.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권력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건강하지 못하다면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웰빙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먹는 음식, 생활 용품, 소모품, 주거 환경, 모든 사람들과 관계되어진 것들에 웰빙의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건강을 우선하는 현대사회의 당연한 모습일 것이다.

웰빙족-강남족이라고도 부른다. 왜냐하면 돈이 없으면 웰빙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웰빙을 하는 사람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웰빙이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높여주지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요? 웰빙을 하면 행복이 찾아옵니까? 아닙니다.
웰빙을 하는 사람들이 가치있는 삶을 삽니까? 아닙니다.
매우 이기적입니다. 극히 개인주의적입니다. 나와 가족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저는 늘 듣는 안타까운 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 기독교인은 이기적이라는 말입니다. 굉장히 기분이 나쁜데 또 틀린 말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이타적입니다. 그런데 교인은 이기적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이 우리의 주님 예수의 사랑이십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잘먹고 잘자고 잘살까에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중심적입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좋은 대학을 가야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하지 않는 삶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의 교훈은 ‘NOT FOR SELF/ 입니다. ’나를 위하지 않는 삶‘이 그 학교의 이념입니다. 그 학교가 필립스아카데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을 멋지게 만들어갑시다. 육적인 웰빙에만 관심 같지 말고 영적인 웰빙에 관심 갖고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갑시다.
이기적인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타적인 삶을 삽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1.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삶의 방향과 목적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100세의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 - 하나님께 감사 하세요. 주어진 것에 만족하세요.

송정교회 김태숙집사님이 계신다. 그의 인생은 처절할 정도의 인생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홀로 월 30만원의 생활보조비를 받으며 사시는 분이시다. 집에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냄새가 난다. 교회에는 꼭 나오시는데 항상 힘이 없느 모습에 졸 때가 많으시다. 웰빙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생살이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 집사님이 1800만원의 통장을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전액을 장학헌금으로 바쳤다. 그 돈은 그 집사님의 전 재산이다. 그 집사님은 목사님 이 돈 누가 훔쳐 가면 어떻게 해요. 나를 죽이고 가져갈지도 몰라요 하면서 늘 불안해하셨다. 저는 집사님 그 돈 가지고 있지 말고 집사님을 위해서 쓰세요. 맛있는 것도 잡숫고, 삶의 질을 높이라고 권면했었다. 그런데 그 돈을 모두 교회에 바친것이다. 집사님의 얼굴이 환해지셨다. 하나님께 드리니까 누가 훔쳐갈 걱정이 안하고 너무 편해지셨단다. 그 집사님은 오로지 1800만원이 그의 삶의 의미였고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 방향과 목적을 하나님께로 돌리니까 그의 삶을 휠씬 더 가치있는 삶으로 바꾼 것이다. 하나님께 드림으로 삶의 가치를 높이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송정교회 장학재단이 존재하는 동안 항상 기억될 것이다.

오늘의 본문 말씀 골3:1절에는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위’란 왼쪽 오른쪽 방향을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생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인생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빛에 다니며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지리니 주는 저희 힘의 영광이심이라”(시89:15-17)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주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무거운 것과 얽메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
삶의 가치가 높다는 것은 삶에 거룩함과 아름답고 선한 것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봄으로 우리의 삶의 가치가 높아질 것입니다.

2.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느 여집사님이 아파트 아주머니들과 교제하게 되었는데 헬스장을 다니고 노래방을 다니게 되었답니다. 문제는 대화였습니다. 모든 대화의 주제가 남자친구, 애인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더라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관심으로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슬며시 빠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본문5절-11절은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땅에 지체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곧 음란과 부정과 악한 정욕과 욕심입니다.

둘째는 분과 악의와 훼방과 우리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죽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번민하게 될 것입니다. 내 몸의 더러운 것은 씻어내야 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종양은 잘라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분과 악의와 훼방과 부끄러운 말이 그것입니다.

필립 네리 라는 성인에게 어느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남을 중상하고 비방하는 죄를 범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필립은 말했습니다. “부인 부인의 죄는 아주 큰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그보다 휠씬 크십니다. 자 이제 속죄를 위하여 제가 말씀 드리는대로 하십시오. 가셔서 닭을 한 마리 사서 일정한 거리를 걸으면서 그 털을 계속 뽑으십시오. 그 일이 끝나면 돌아오십시오.
그 부인은 그의 말대로 다 행한 후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필립은 다시 말했습니다. 자 이제는 부인이 걸었던 길을 되돌아가서 아까 길거리에 버렸던 닭털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워 오십시오.
부인은 어떻게 그것들을 되 주워올 수 있겠습니까? 여기 저기 생각 없이 떨어뜨렸구요. 바람에 날라 갔을 텐데요.
그러자 필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 부인이 비방한 말도 이와 같답니다. 다시 주워 담으려고 해도 담을 수 없습니다. 자 이제 돌아가셔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십시오.”

삶의 가치를 높이려면 모든 악의와 부끄러운 말을 버려야 합니다.
음란을 품고 결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부정과 악한 정욕과 욕심을 가지고 결코 가치 있는 삶을 만들 수 없습니다.

분과 악의와 훼방과 부끄러운 말이 왜 나옵니까?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결국 욕심이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역심이 인격을 무너뜨립니다.

욕심을 가지고 가난한 농부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왕을 아십니까?
그는 모든 영화와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의 질은 최고였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웰빙을 추구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는 가치 있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악한 정욕과 욕심 때문입니다.

3.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누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속해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위에 속한 자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속한 자는 땅엣 것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거지는 거지처럼 삽니다. 거지가 왕처럼 살 수 없습니다.
왕은 왕처럼 살아야 합니다. 왕이 거지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무엇인들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목사이다. 나는 성도이다. ~~다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처럼 생각해야 하고 살아야 합니다.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말씀은 땅의 것을 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세주의나 금욕주의로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이것을 명쾌하게 답해 주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먼저 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삶의 가치를 높이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한1서 4:12)

루즈벨트는 유래 없는 4선의 대통령이다. 그는 역경을 딛고 승리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38세에 민주당 부통령후보가 되었다 그런던 그에게 인생의 캄캄한 터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1920년 대선에서 참패를 당했다. 그리고 채 1년도 못되어 소아마비에 감염되어 중증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7년을 소아마비라는 중증장애와 싸우다 정계로 복귀한 루즈벨트는 뉴욕주지사에 당선되었고 4년후 3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소아마비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사재를 털어 웜스프링스 재활병원을 세웠다 그가 4선에 당선된지 4개월만에 뇌출혈로 타개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소아마비를 정복하는 꿈은 루즈벨트 혼자만의 꿈이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의 꿈이었으며 그의 승리는 모든 장애인의 승리였다.
소아마비 연구에 지원된 연구비만 4천5백만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이 거금이 소아마비가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모든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이루어졌다.

나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삶이 아닙니다. 너를 위한 삶, 이 땅의 약자들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공동의 유익을 위한 것에 가치를 두는 삶이 높은 가치를 지닌 삶입니다.

4.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닙니다.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최고의 실력자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영생교회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각 분야의 최고의 실력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더욱 바라기는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 32년 네델란드 출생으로 30대에 노틀담 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1971년부터는 예일 대학의 교수로 재직. 그는 1981년 자신의 풍요로움에 대한 죄책감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하여 강단을 떠나 페루의 빈민가에 가서 민중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으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혼의 안식을 느끼지 못했다. 다시 강단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의 캐나다 토론토 공동체인 데이 브레이크로 들어가 1996년 9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는 훌륭한 교수요 저술가였다. 그러나 그는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봉사자의 길을 택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더 나은 삶을 원하십니까? 그런데 그것이 나만을 위한 계획은 아닙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성공하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나 무엇을 위한 성공인지를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삶의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가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삶의 방향과 목적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분과 악의와 훼방과 부끄러운 말이 그것입니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누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닙니다. 무엇을 하느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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