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작은 것도 아름답습니다! (사 43:16-21)

  • 잡초 잡초
  • 347
  • 0

첨부 1


- 설교 : 김흥규 목사 (인천내리교회)

I. 작은 것을 아름답게 여기시는 하나님

유명한 경제학자 슈마허(E. F. Schumacher)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라는 책을 썼습니다. 현대인들이 언제나 "더 크게, 더 많이, 더 멀리, 더 빨리, 더 풍족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을 비판하는 책입니다.

슈마허는 기술 과학 문명을 맹신하며 무조건적인 발전을 지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자연으로 돌아가 소박하고 작은 것들을 귀하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더 크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인간의 생명 그 자체를 위협하는 기술 문명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것에 눈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대체적으로 큰 것을 좋아합니다. 누가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이름도 없는 작은 동네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큰 도시에 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세상이 다 아는 큰 회사에 다니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시골에 몇 명 되지 않는 학교를 나왔다는 것보다는 전교생이 수 천명에 이르는 큰 학교를 다녔다는 것을 더 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 숫자도 얼마 안되고 예배당 건물도 작은 교회는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건물이 웅장하고 교인수도 많은 교회가 사람들의 이목을 더 쉽게 끌기 때문입니다.

큰 것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큰 것이 아름답게 보일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작은 것이 큰 것보다 훨씬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작은 것이 큰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잊어서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것을 작게 만드시고 작은 것을 크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큰 것만 선호할 경우 하나님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고 미천한 것에는 힘이 없기 때문에 자연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갈대 상자에 누워있던 사내 아기 모세가 아닙니까? 하나님은 까닥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 어린 아이가 자라나 바로 왕과 대결해서 승리하게 만드셨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정치 종교적으로 큰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을 어린 아기 사무엘을 보내서 건지셨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석녀(石女)로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마른 태를 여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나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온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아, 그리스도께서는 10대 소녀 마리아로부터 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 처녀의 태 속에 들어갈 만큼 낮아지고 작아지셨습니다. 그것도 해산할 방이 없어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짐승들의 냄새나고 시끄러운 소리 들리는 마굿간에서 나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애굽의 바로 왕을 이기고 출애굽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마른 막대기 하나였습니다. 크고 강한 최신식 무기나 갑옷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소년 다윗이 거인 장수 골리앗을 싸워 이긴 것도 훌륭한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단박에 쓰러뜨렸습니다.

기드온과 300 용사들이 미디안 군대를 물리친 것도 강하고 날샌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나팔과 횃불을 숨긴 항아리였습니다. 여러분, 기생 라합은 또 어떻습니까? 여리고가 멸망당했을 때 라합과 온 가족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두 사람의 정탐꾼을 자기 집 창문에서 달아 내린 붉은 줄 때문이 아닙니까?(수 2: 15-21)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가 도시락으로 싸온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5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작은 자, 미천한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99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길 잃어버린 양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찾고 기뻐 잔치를 베푸셨던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집 나간 탕자가 돌아왔을 때 버선발로 맞았을 뿐만 아니라 큰 잔치를 베푸셨던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작고 미천한 것을 더 귀하고 아름답게 여기셨다는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것을 무시하셨다는 말씀은 성경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언제나 작은 것이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미천한 것이 귀합니다!

II. 지렁이 같이 작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른바 제 2 이사야서로 알려진 40장부터 55장은 계속해서 유다 백성들의 구원과 회복, 희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 백성들에게 주시는 신탁(神託, ORACLE)의 말씀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지요.

주전 587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세 번째로 유다 왕국에 쳐들어와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습니다(왕하 24: 18-25: 30; 대하 36: 11-21; 렘 37-39 참조). 무엇보다도 유다 백성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이 때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 느부갓네살 왕은 시드기야 왕의 아들들을 시드기야가 직접 보는 앞에서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빼고 쇠사슬로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잡아갔습니다. 이 때 아주 가난한 사람들만 예루살렘 땅에 남고 대부분의 귀족들과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저 유명한 바벨론 포수(捕囚)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때로부터 유다 백성들은 원수 나라인 바벨론에서 무려 70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바로 이와 같이 바벨론 제국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다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이른바 예루살렘 귀환의 희망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여러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이스라엘만큼 신비하고도 끈질긴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한국의 충청북도 크기 만한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작은 나라를 뽑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작은 것을 택하셔서 큰 것을 부끄럽게 하시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아서 지구상에서 그 자취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를 수없이 많이 겪었던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주후 70년 경에 예루살렘 제 2 성전이 로마에 의하여 무너짐으로서 이스라엘은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랑민, 즉 DIASPORA가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그 당시 전 세계 유대인의 1/3이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 민족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작은 것, 미천한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끝없이 이끌어 가시는 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 42: 3 말씀처럼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듯이 이스라엘이 멸망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본문 말씀은 아무리 강대한 바벨론 제국이라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권세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임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빼앗긴 고국, 잿더미가 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이지요!

본문 말씀은 이와 같은 포로 귀환의 대사건을 출애굽과 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16-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여기에서 하나님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신 사건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구원해내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포로 귀환은 제 2의 출애굽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와 같은 제 2의 엑서더스는 첫 번째 엑서더스보다 훨씬 더 웅대한 것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은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과거에 홍해를 건너면서 경험했던 출애굽을 잊어버리라는 것은 그 사건이 미미한 사건이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첫 번째 출애굽이 분명히 위대한 사건이었지만 장차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될 제 2의 출애굽이 훨씬 더 위대한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잊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9절 초반부에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할 것이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 2의 출애굽, 즉 예루살렘 귀환의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신다는 약속이지요!

그렇다면 이 때 하나님은 어떤 놀라운 일을 보이십니까? 우리 다함께 19-21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에 길을 내시듯이, 물 없는 사막 한 가운데 강을 내시듯이 이스라엘 역사에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말 못하는 들짐승들까지도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광야와 사막 한 가운데 생긴 물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람 앞에 꺼져가는 심지같은 유다 백성들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까지 지켜주십니다.

강대국들에 비하여 유다 민족은 너무나 작고 비천한 민족이지만 하나님은 이 민족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작은 민족을 들어서 크게 쓰신다는 것입니다! 

III. 작은 것을 크게 만드시는 하나님

여러분, 작은 것이 아름답습니다. 작은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작은 민족이 아름답습니다. 작은 교회가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메가 처치, 즉 대형 교회들도 모두 몇 명 안 되는 성도들이 모여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27년 전에 이 곳에 처음 세워졌을 때 13 명으로 출발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얼마나 더 크게 성장할지 모르지만 그 때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은 수가 모여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앙 생활했을 그 때를 기억하며 늘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큰 것을 작게 만드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작은 것을 통하여 큰 것을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림으로서 제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필라델피아의 어떤 교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한 교회의 주일 학교 어린이들의 숫자가 급증해서 어린 여자 아이 하나가 소외되었습니다. 교실이 너무 비좁은데다가 학생 숫자도 많아지자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 이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이 소녀는 페니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주일 학교 교실을 더 많이 가진 교회 건물을 지었으면 하는 소원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페니를 모은 지 2년 만에 이 소녀는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그 2 년 동안 사람들은 이 소녀에 대해서 여전히 무관심했습니다.

그런데 소녀의 유품을 정리하던 가족들이 소녀의 침대 옆에 있던 지갑에서 페니 57 개와 조그만 종이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종이 쪽지에 소녀는 교회가 더 큰 주일 학교 교실을 짓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서 페니를 모으고 있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이 소식이 이 교회의 담임 목사인 러셀 콘웰(Russell Conwell)에게 즉시 알려졌습니다.

목사님은 주일 예배 시간에 이 소녀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래도 주일학교 교실을 늘려야 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소녀의 이야기가 많은 교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이 이야기를 듣던 교인들 중에 부동산 중개업자 한 분이 은혜를 받고서는 자기 땅을 선뜻 기증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땅을 꼭 57 페니만 받겠다고 해서 소녀가 땅을 산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이 신문 방송을 타고 필라델피아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모금 운동에 참여해서 큰 교회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이 교회는 현재 3,300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성전과 수많은 교실이 딸린 아름다운 건물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소녀의 감동적인 이야기 때문에 템플 대학교(Temple University)와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Good Samaritan Hospital)이 생겨났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이 템플 대학교 한 방의 벽에는 57 페니를 모은 소녀의 사진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작은 것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것을 통하여 큰 일을 이루시는 분임을 믿으십시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