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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드러운 유혹 (고전 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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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흥규 목사 (인천내리교회)

I.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고린도 교인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동시대성(同時代性)

신약 성경은 수많은 구약 성경을 인용합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구약 성경을 인용하기도 하고 해석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바울이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인용하고 해석하는 방법은 아주 독특합니다.

사도 바울은 애굽을 탈출해서 광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이 현재의 고린도 교인들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벌을 주셨던 것을 중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 교인들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죄악을 똑같이 되풀이 할 경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 후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1세기 당시의 고린도 교인들,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 사이에는 분명히 유사성이 있습니다. 시대적인 상황은 서로 다를지 모르지만 인간 실존이 경험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동일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덴마크의 실존 철학자 죄렌 키르케고르(Soeren Kierkegaard, 1813-55)의 말을 빌려서 '동시대성'(GLEICHZEITIGKEIT)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수 천년이라는 시차와 지리적 차이를 뛰어넘어서 옛날 사람들이 직면했던 문제들을 오늘 우리도 그대로 경험한다는 사실이지요.

II.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진 부드러운 유혹

그렇다면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우리 다같이 1-4절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바울 선생은 여기에서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 13: 21-22과 14: 22의 말씀을 그대로 언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애굽을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주셨다는 사실과 홍해 바다를 건너도록 도우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구약 성경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애굽을 탈출하면서 구름과 홍해 바닷물로 세례를 받아서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고 신령한 물을 마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령한 식물은 출 16: 4-36에 나오는 만나를 의미합니다. 신령한 음료는 출 17: 6과 민 20: 7-11에 기록된 것처럼 모세가 반석을 쳐서 생수가 솟아난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령한 식물 만나와 신령한 음료 생수를 마셨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떡과 포도주를 통해 주기적으로 성만찬을 나눈다는 사실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신령한 떡과 신령한 물을 마심으로서 성만찬에 참여했다는 것이지요!

성례전(SACRAMENTS)을 말할 때 개신교회에서는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일곱 가지의 성례전을 말하지만 개신교회에서는 오직 세례와 성만찬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인들이 물로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는 사실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홍해 바닷물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였다는 것이지요. 고린도 교인들이 물로 세례를 받아 거룩한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한 거룩한 백성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만찬을 통해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특권을 누리듯이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만나와 생수를 먹고 마심으로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선생은 왜 세례와 성만찬이라는 두 가지 성례전을 가지고 현재의 고린도 교인들과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일까요? 바울의 요점은 아주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였고 만나와 생수를 마심으로서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지만 이것이 유혹과 죄로부터 완전히 보호해주는 개런티는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인들이 세례받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었고 정기적인 성만찬에 참여한다고 해서 유혹과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자, 그렇다면 바울이 지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보기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도 받았고 만나와 생수로 성만찬까지 나누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연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을까요?

우리 다함께 7-9절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여러분, 여기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잘못을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상 숭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 32: 1-6의 말씀을 특별히 염두에 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절한 사건입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게 되지 아론이 주축이 되어서 우상 숭배 놀음을 했던 것이지요. 바울이 7절에서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는 인용 말씀은 바로 이 금송아지 사건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적으로 타락했습니다. 민 25: 1-9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해서 모두 이만 사천 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약간의 착오로 이만 삼천 명이 죽었다고 인용했는데 이것은 이만 사천 명을 착각한 것입니다. 어쨌든지 간에 음란한 행위 역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크게 타락시키는 시험거리였던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은 민 21: 4-9에서 길로 인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불뱀에 물려죽은 사건을 가리킵니다. 결국 구리 놋뱀을 만들어 장대 높이 달고 이 구리뱀을 본 사람들은 다시 살아났던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9절에서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당하였다는 말씀은 바로 이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것은 민 14: 1-38과 16: 11-35에 보면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신 영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쏟아 부은 것에서 잘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이라도 불편한 일이 생겼을 경우 하나님께 즉시 원망을 했습니다. 믿음 없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지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도 받았고 신령한 만나와 신령한 생수를 마셔서 성만찬에도 참석했던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와 같이 수시로 죄를 지었습니다! 우상숭배와 간음, 시험과 원망 등과 같은 죄의 유혹에 너무도 쉽게 넘어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본문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세례받고 성만찬을 나누었다고 해서 죄와 멸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죄의 결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당했다는 것이지요!

III. 고린도 교인들이 직면한 부드러운 유혹                               

그렇다면 바울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처럼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조목조목 예로 들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본문 6절의 말씀에 그 목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다같이 읽어봅시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렇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를 하나의 거울로 삼아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계의 목적으로서 삼으려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들도 유혹을 참지 못해서 우상숭배와 간음과 시험, 원망에 빠지지 않았느냐? 너희 고린도 교인들아, 너희가 세례와 성만찬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거룩한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랑하지 말라! 너희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와 간음과 시험과 원망하는 죄를 지을 수 있고 그 마침은 멸망이 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준엄하게 경고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11-13절 말씀에 더욱 더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한 편으로 근신하라고 당부하고, 또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면서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 선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거울로 삼아 말세를 만난 고린도 교인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경계해야 한다고 일갈합니다. 특히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이 겸손해질 것을 부탁합니다. 세례받고 성만찬을 나눈다고 해서 죄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착각해서 교만한 마음을 품는 고린도 교인들은 늘 넘어질까 조심하고 자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바울은 본문 말씀을 희망과 용기로 가득찬 하나님의 약속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말세를 만나 죄의 유혹이 심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험을 만날 때 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첫째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흔히 겪는 보통의 시험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아주 특별한 시험을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누구나 다 인간이면 당하는 시험을 당할 터이니 너무 시험과 유혹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위로인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인 까닭에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시련을 결코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는 목사로서, 장로는 장로로서, 권사는 권사로서, 집사는 집사로서, 일반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시험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의 범위내에서 시험거리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반드시 피할 길을 열어주셔서 우리가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시련을 만나 우리 홀로 끙끙거리지 않게 하시고 항상 피할 길을 허락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IV. 부드러운 유혹을 이기는 우리가 됩시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불같은 시험을 잘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의 생활 속에서 가볍게 다가오는 죄의 유혹을 이기라는 교훈이 아닙니까? 부드러운 유혹을 이기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한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신령한 양식 만나와 신령한 음료 생수를 먹고 마심으로서 성만찬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세례와 성만찬의 특권을 누렸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매일 매일 다가오는 사소한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우상숭배와 간음, 시험과 원망 등의 사소하고 가벼운 유혹을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고린도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받고 성만찬에 참여한다고 해서 섰다고 자만하는 교인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하여 약간의 우상숭배 정도야, 약간의 간음 정도야, 약간의 시험과 약간의 원망 정도야 신앙 생활하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로 영적인 긴장이 풀어졌던 것입니다. 부드러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와 같이 가볍고도 사소한, 부드러운 유혹을 이겨내야지만 진정한 신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옳습니다. 알콜 중독이나 마약 중독, 도박 중독 등의 'HARD TEMPTATIONS'도 분명히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하면서도 부드럽게 우리를 유혹하는 'SOFT TEMPTATIONS'이 종국에 가서는 훨씬 더 큰 문제를 만듭니다! 개구리는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을 경우 금방 뛰쳐나오기 때문에 쉽게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찬물에 집어넣고 서서히 온도를 조금씩 조금씩 높일 경우 천천히 죽어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무서운 죄의 유혹은 우리가 쉽게 물리칠 수 있지만 가볍고 부드러운 유혹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TV를 너무 오랫동안 시청하시는 분들은 그것이 부드러운 유혹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인터넷에 거의 중독이 되다시피 한 분들 역시 부드러운 유혹에 빠져있음을 아십시오. 쇼핑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십니까? 부드러운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다른 사람 흉보는 가십에 시간을 많이 보내십니까? 부드러운 유혹에 빠져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가족을 등한히 한 채 골프나 낚시 등의 취미 생활에 탐닉하고 계십니까? 부드러운 유혹에 빠진 것입니다. 주일 성수하는 일, 기도하는 일은 싫은데 세상 놀이는 즐겁습니까? 부드러운 유혹에 빠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이와 같이 수없이 많은 부드러운 유혹들이 우리의 정신을 혼란하게 만듭니다. 부드러운 유혹이 가장 무서운 것이 있다면 우리를 점점 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데 있습니다. 신령한 생활로부터 점점 떨어지게 해서 결국 육신의 사람으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인용합니까?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이 해이해져서 부드러운 유혹에 빠진 것을 경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여러분, 듣기 좋은 말만이 복음, 즉 'GOOD NEWS'가 아닙니다. 때로는 경고가 훨씬 더 좋은 복음, 즉 'GOOD NEWS'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SMOKE ALARM,' 즉 연기 경보 장치가 삑 울릴 때 화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고가 오히려 'GOOD NEWS'가 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와 고린도 교인들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들에게 좋은 경보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믿고 이 모든 경책을 'GOOD NEWS'로 받아들입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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