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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 (삼상 9:15- 삼상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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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황요한 목사 (평안의교회)

제28회 아테네 올림픽이 꼭 보름 남았습니다. 376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마지막 비지땀을 흘리면서 금메달을 향하여 열심히 경주하고 있습니다. 9개 종목에서 적어도 13개의 금메달을 따는 것이 이번 대회의 목표라고 올림픽위원회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대회와 전국대회에서 상위에 입상한 이들이 다시금 올림픽 대표 선발전이라고 하는 어렵고도 힘든 선발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그들의 가슴에 태극기 휘장을 달수 있습니다. 국가대표가 귀한 것은 그들이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이기때문입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저는 우리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 나라의 대표라는 자부심이 있다면 얼마나 기쁨이 클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기름을 붓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역을 위해 세우신 세 종류의 지도자에게 허락하시는 특별하고 공인된 예전입니다. 왕을 세우실 때, 예언자를 세우실 때, 그리고 선지자를 세우실 때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종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기름을 붓도록 하셔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명실공이 하나님께서 인정한 지도자로써의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9장 15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 지도자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사무엘에게 명하셨을 때, 그는 사울에게 기름을 부음으로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공식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9장과 10장에서는 왕이라는 표현보다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하는 표현을 본문 기자는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란 곧 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귀납법적으로 생각을 하면, 왕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기업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기업이란 회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대표성을 갖는 '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30년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에게 약속하신 일관된 약속은 다름이 아니라 '땅'에 대한 것이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땅을 주리라" 그리고 하나님게서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셨습니다. 아주 오래전 아브라함 시절부터 약속해 주셨던 땅을 그들은 애굽에서의 기나긴 430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 줄로 믿습니다.

12지파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앗고, 그 땅을 지파별로, 가문별로 분배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땅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중요한 터전이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지금 사무엘을 통하여 행하신 기름을 붓는 행위는, 이스라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사람을 지도자로 삼아 하나님께서 행하실 주권을 위임받는 너무나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사울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암나귀 떼를 잃어버린 것을 찾으라고 하는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갔다가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성실한 그의 마음이 숩이라고 곳까지 이르게 되었고, 너무 멀리와 오히려 아버지가 우리를 염려하시겠다며 돌아가자고 했을 때 지혜로운 사환의 충고가 사울의 인생을 이렇게 역전 시키는 동기가 된 것입니다.

여기 지금 사환이 뭐가 아쉬워서 그것도 자기 돈으로 주의 종 사무엘을 만나게 하는 일에 그렇게 애를 쓸 필요가 있습니까? 그런데 사환은 진정으로 주인의 아들이 주 앞에서 귀한게 쓰임 받는 것을 소원했기에 그는 최선을 다한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만한 동역자가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지요.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찾아오기 전 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내일 베냐민지파의 한 청년이 너를 찾아 올 것이다. 그러면 네가 그 청년에게 기름을 부어라. 기름을 부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가 없습니다. 왕으로 세우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에게도 충격적인 이야기지요. 그 청년을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을 세운 일에 자신의 어떤 사전 답사를 한 적도 없습니다. 면담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일 너를 찾아오는 그 베냐민지파의 젊은이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명령은 때때로 우리에게 전폭적인 순종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기다려 보세요. 하나님, 제가 그 사람 면담도 안 해 봤는데, 만나보지도 않았는데, 알아보지도 않았는데, 좀 천천히 좀 하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에 우리가 그렇게 또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할 때가 있지요.

제가 가끔 여러분에게 어떤 신앙적인 사명을 드리면 여러분이 대부분 순종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 분들도 있지만, 가끔씩은 ‘제가 글쎄요, 제가 기도해 보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는 분들도 있습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아주 건방진 것이지요. 목사 앞에서 기도해 보고 해 보겠다는 말은 거절하는 말보다 더 부정적으로 들립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요구에 절대적으로 순종을 고백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두말 하지 않고 자기를 찾아온 베냐민 젊은 청년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울의 입장에서는 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자기는 양떼를 찾으러 갔다가, 염소떼를 찾으러 갔다가 주의 종을 만나고 나서 그리고 돌아가자고 하는 사환의 권면을 받고 주의 종을 만났을 뿐인데, 주의 종은 자기를 만나자 마자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바로 내가 어저께 너에게 말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라. 사무엘은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왕이 행하는 공인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마치 수많은 난관을 뚫고 국가대표가 된 올림픽 선수들처럼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이 땅에 지도자로 세운다고 하는 공인된 예식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돌아오는데 사울에게는 참으로 긴가민가 합니다. 내가 진짜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인가? 내가 진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인가? 굉장히 그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세웠노라고 하는 세가지 확실한 징조를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 하십니다.

10장 2절에 보면 내가 오늘 너를 떠나서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으로 지나갈 때 두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암나귀들을 찾았지 않았느냐? 그 암나귀들을 찾았노라.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았음을 그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들이 사울에게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았다고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하나님께서 베냐민지파의 사람 사울에게 그런 확증을 주는 것입니다. 내가 그 곳에서 두 사람을 만날 터인데, 이곳에 온 목적인 암나귀떼를 니가 찾지 않았느냐? 그들이 너에게 암나귀떼를 찾았노라고 전해 줄 것이다.

두 번째 3절의 말씀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에 세 사람을 너와 만나게 하리라.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가졌고, 한 사람은 떡 세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는데, 그 세 사람이 너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들이 너에게 문안하고, 너에게 떡 세덩이 중에 두 덩이를 너에게 대접하게 될 것이다.

전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드리려고 하는 그것이 없어서 사환의 것을 빌려서라도 그것을 이루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에게, 선택된 사람들에 의해서 네가 섬김을 받으리라. 내가 왕이 되었나? 내가 왕인가? 내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 사람이 맞는가? 그런 자신의 부분에 의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를 확증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5절입니다. 선지자의 무리가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가지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울이 선지자의 무리들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만나면 너에게 여호와의 힘이 임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힘이 너에게 임한다면 너는 두가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너도 예언을 하게 될 것이다. 은사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서? 은혜 충만한 사람들을 만나서, 은혜 충만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면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성가대 하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주요 모여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떤 찬양을 할까? 어떻게 하면 찬양을 잘 할까? 어떻게 하면 찬양하는 사역에 빠지지 않고 잘 할 수 있을까? 서로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게 되겠지요. 가능하면 우리 성가대는 부부들이 앉았으면 좋겠어요. 부부가 못 앉은 사람들은 실망해서 그러지 말고요. 가능하면 그런 분위기로 가면 좋겠어요.

사실은 이제 교회의 일이 부부로 가야 합니다. 축구선교회 기도회 모이는 것 부부로 모이고요, 테니스선교회는 벌써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부부가 모여야 합니다. 평안의교회가 부부가 많이 활동하는 교회로 유명한데, 모든 영역이 이제는 부부로 가야 합니다. 식당을 가 보세요. 과거에는 남자끼리 밥을 먹거나, 여자끼리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거의 대부분 4명 아니면 5명,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들, 거의 대부분은 이제는 가족끼리 식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모습이, 삶의 패턴이 달라졌어요. 가족끼리 하는 행사를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는 시대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어떠한 공동체에 내가 포함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과 가까이 하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은사 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저 모여서 목사 흉이나 보고, 교회 비판이나 하고, 그런 사람들과 모이고, 그런 정보만 얻게 되고, 그런 얘기들만 하게 됩니다.

어떤 얘기가 들리면 어떤 루트가 있어요. 누구로부터 시작이 되서, 누구를 통해서, 누구에게까지 왔다. 그 루트가 아주 뻔합니다. 마음이 안타깝지요. 저 사람은 저런 부정적인 마인드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할까? 저 뒤에서 툴툴 거리는, 저 뒤에서 찡찡거리는 그 생활에서 이제는 앞장 서서 VIP로 헌신적 그룹에 언제나 저의 삶이 변화될까? 안타깝지요.

은혜 받은 자리, 은혜 받은 사람과 함께 하는 자리는 내게도 영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 첫 번째 변화는 너도 예언을 하게 될 것이다. 너도 은사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울이 주의 종들과 주의 사람들과 만나서 은혜를 하고 예언을 하는 소문이 사람들에게 들렸을때,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한 줄 아십니까? 사울도 예언자 중에 있어? 그 사람 언제부터 예언했는데? 언제부터 은혜 충만했어? 그 사람 언제부터 예수 믿었어?

사실 사울은 외모가 준수한 사람이라고 성경이 거듭 이야기를 했습니다. 잘 생겼다는 이야기지요. 키도 휜칠 했습니다. 외국사람들은 자기의 외모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있어요. Smart라고 하면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울에게도 약점이 있었어요. 외모는 준수하고 스마트 했는데 영적인 부분에서 약점이 있었습니다.

늘 기도하고 은혜 받았던 사람이라면 은혜 받고 기도하고 은사충만한 것에 대해서 ‘아이고, 아무개 집사님, 성령 충만해. 그 분은 말 할 것도 없지.’ 이렇게 동의가 될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아무개가 이번에 방언한대. 이번에 사회봉사단에서 헌신한 줄 몰라. 그 사람이 언제부터 봉사했대? 언제부터 그렇게 했어?’ 그렇게 비아냥 거리고, 조롱하는 그런 상황이라면 그 전에 그런 이미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지요.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외모지상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명품이 아니면 쓰지도 않고, 입지도 않아요. 양복도 명품, 시계도 명품, 구두도 명품, 핸드백도 명품, 심지어는 넥타이도 명품, 어느 책을 보니까 젊은 회사원들은 만나면 악수하면서 넥타이를 뒤져 본답니다. ‘아이고, 이 친구 싸구려구만.’ ‘아이고, 이 친구 명품 넥타이 했는데..’ 대우가 달라진답니다. 그러니까 중고품이라도 명품을 차고 명품을 입으려고, 중고품 명품 가게가 아주 성황이랍니다.

명품이 자기를 대변해 주는 거지요. 자기의 부족한 것을 명품이 채워 준다는 거예요.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10만원짜리 양복을 입어도, ‘목사님은 양복이 되게 비싸보이네요.’ ‘이거 꽤 비싼거야. 이거 당신들은 어려울걸?’ 자존심을 건드리지요? ‘아휴, 얼마짜린데요?’ ‘이거 꽤 비싼건데?’ ‘아휴, 목사님이 입으신거니까 한 70만원 정도 하겠지요.’ ‘그 정도 밖에 안돼?’ ‘아휴, 더 되나요?’ 그러면 굉장히 또 올라가지요. ‘얼만짜린데요?’ ‘사실은 이거 10만원 줬어.’ 믿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치가 있으면 싸구려를 입어도 명품처럼 보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죽 인간이 부족하면 명품 가지고 자기 인간의 가치를 높이려고 그러겠어요? 요즘 또 우리에게 외모지상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외모를 통해서 두각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 웰루킹(Well-looking)족입니다. 우리 말로 하면 얼짱 몸짱하는 말입니다. 외모를 통해서 자신을 좀 돋보이게 하는 성형수술하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읍니다. 올해는 코 3mm 높이고 내년에 열심히 돈 벌어서 턱을 3mm 깎아야지......

자기의 외모를 위해서 돈을 벌고, 돈을 쓰고, 그렇게 해서 좀 대우좀 받아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외모 지상주의가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 너무 심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이 시간에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울은 외모가 준수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 가지고 지도자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내면에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들을 채우셔서 은혜의 체험을 하게 하고, 성령의 체험을 하게 하고, 그래서 6절에 보면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할 뿐만 아니라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 달라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의 심령이 새로워지고, 그의 영적인 모든 부분에서 평형을 이루는 그러한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이 징조가 내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지금까지 이 세가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너를 만나서 이런 일들이 생길 때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은 진정으로 확증이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너를 세웠다는 것을 내가 확신을 가져라 그 말이예요.

사람들이 변화된 사울을 만났습니다. 사울이 은혜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그의 심령이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그의 삶이 이제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려고 할 때에 사람들이 그것도 11절에 보면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 변화되기 이 전에 사울을 알고, 은혜 받기 이전에 사울을 알았던 사람들이 사울도 예언자 중에 있었느냐?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두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전이 아니라 이후인 줄 믿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때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때는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너가 너를 세웠노라고, 내가 너를 택했노라고, 너는 나의 백성이라고 하나님의 귀중한 일들을 우리에게 맡기시려고 할 때에 우리가 준비된 모습으로, 때로는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채워주시려고 인도하실 때에 그 인도하심에 순종해 가면서 주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는 평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우리, 그 주님의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언제나 은혜의 중심에 있게 하시고, 언제나 성령 충만의 중심에 있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저희들을 변하여 새사람 되게 하옵소서.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 오늘도 이 주님의 세우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저희들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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