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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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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근수 목사 (홍성교회)

피서의 계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서(避暑)를 위해 산으로 바다로 떠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피정(避靜)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수양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이러한 예수님의 목적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그곳은 요단강의 발원지로서 헐몬산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시내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기도와 묵상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있는 벳새다를 경유해서 요단강을 따라 더 북쪽으로 여행하여 가이사랴 빌립보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헤롯 대왕이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흰 대리석으로 건축한 거대한 신전이 있었습니다. 헤롯 빌립도 티베리우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웅장한 신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헤롯 아그립바2세는 네로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신전을 건축하고 네로의 도성이라고 개명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황제를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로마 황제, 곧 가이사(Caesar)가 그들의 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이사는 그들의 가장 위대한 신(神)이었습니다. 가이사가 그들의 자랑이었고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가이사리아누스(Caesarianus-황제 신봉자)들이었습니다.

가이사리아누스들은 우아한 헬라문화와 강력한 로마제국의 혜택을 누리며 세련된 모습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새로 개발된 신도시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얻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재주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도시는 미래에 대한 열정과 활기로 가득했습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열정과 용기,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충만했습니다. 가이사리아누스들은 이 모든 역동성이‘가이사의 힘’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도시에서 정체성(Identity)의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자신들이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자신들의 사역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도시에서 예수님은 어떤 의미를 가진 분인가? 그리고 나는 이 도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인가?

예수님께서 따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 제자들이 다가왔습니다(눅9:18).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가이사랴 빌립보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애써 갈릴리 지방 사람들이 한 말들을 되살리며 대답했습니다. “세례 요한 같다고 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참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스라엘의 유명 인사들에 비견될 만한 대단하신 분이시라고 대답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황제의 도시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군요).”
그 순간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키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머릿속이 하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주는 왕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너무도 당찬 고백이었습니다. 그곳은 가이사랴 빌립보였습니다. 가이사가 왕이었습니다. 가이사가 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충만했습니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이사랴 빌립보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화려하고 세련된 가이사리아누스들의 삶을 보며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흉내를 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우리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주춤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묻습니다.‘이 세상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께 관심이 없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 세상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또 누구십니까?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는 나의 왕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아멘.
여러분은 크리스티아노이(Christianoi-그리스도 신봉자들)입니다.
가이사의 힘을 신이라고 믿는 가이사리아누스의 세상에서 예수님이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복을 선언하셨습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복 있는 사람의 대답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대답은 육신의 대답이 아니라 하늘의 대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나온 대답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에서 나온 대답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믿음은 교리 공부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삶 속에서 필요한 대답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이 믿음이 사탄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복 있는 믿음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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