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님의 안식일 (출 20:8-11)

  • 잡초 잡초
  • 243
  • 0

첨부 1


- 이중표 목사 (한신교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날들에 대한 특별한 구별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중심하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사는 날의 계산은 일주일 단위로 계산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대개 한 달을 계산하고 사업의 수지를 맞추고 계산합니다. 학생들은 1년을 계산해서 그 단위를 정합니다. 그러나 농사 짓는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서 계산합니다. 계절에 맞추어서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날은 주일날입니다. 주일날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일날 복을 받고 또 주일날 우리는 은혜를 받고 주일날 우리 모든 삶의 축복이 이 날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주일의 신비를 안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 천지를 만들었지만 그 천지에 거할 처소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빛을 만들었으나 빛 가운데 살지 않으시고 궁창을 만들었으나 궁창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지 않으셨습니다. 산이 아름답다고 해서 하나님이 산속에 거하지 않습니다. 온 천지에 꽃동산을 만들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꽃 속에 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사람과 함께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엿새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레째날 안식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6일동안 세상을 만들었으나 하나님이 그 6일동안 세상을 만든 것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었고 이레째날 하나님께서 안식한 그 날은 하나님이 거할 처소의 신비를 친히 우리에게 계시해 준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3절을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그래서 모든 날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하루 하루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레째날은 하나님께서 ‘이 날을 복 주사’ 이 날을 복 주었다고 했는데 이 날을 거룩하게 했다고 하는 것은 인간과 함께 거할 신비의 세계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계속 하나님께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 매일 매일 빛과 궁창과 그리고 육지와 바다와 모든 생물을 다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루 하루에 하나님께서는 보시기 좋았다 하면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된다는 말이 여기 없습니다. 저녁으로부터 아침의 하루가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에게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 1-2절에는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래서 여기 보면 이레째날 안식일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그런 날이 아니고 이 날은 무슨 날이냐? 해 아래 있는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된다’는 것은 해가 있기 때문에 지구가 돌면서 저녁이 있고 아침이 있는데 이 안식일은 저녁과 아침이 없는 날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신비입니다. 그러면 무슨 날이냐? 이 날은 하나님의 날이라는 겁니다. 은혜의 날이라는 겁니다. 주 안에 있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안식일을 준 것은 창조의 하루가 아니라 우리의 사는 날 전체를 하나님의 날로 함께 살자는 의미에서 처음 안식일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안식은 곧 뭐냐? 영생이요, 안식은 곧 뭐냐? 천국의 세계요, 안식은 뭐냐? 하나님의 거룩한 모든 복을 다 받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신비의 은혜를 받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이 안식일이라는 말은 안식을 주신 날, 그런 뜻입니다. 안식을 받는 날, 그래 안식은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내가 받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다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그 안식에 인간을 초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고의 은혜요, 축복이고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죄로 말미암아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죄가 가져온 비극이 뭐냐? 물론 하나님의 형상의 상실, 하나님의 말씀의 불순종 많은 말을 했지만 그 죄의 형태를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안식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안식의 관계가 깨져버렸다는거죠. 안식의 관계가 깨져버렸어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요, 불행이요, 이것이 심판이요, 이것이 바로 저주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비극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런 안식을 회복하는 모형으로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 가운데 안식일을 지키라 이렇게 해서 안식일이 구약에 지키는 날로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은 어느 하루가 아니고 영원히 안식하는 날로 주신거에요. 처음 주실 때는, 우리가 쉽게 생각할 때 엿새동안은 계속 하나님께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하루 하루의 날을 주었는데 이레째날 안식일은 하루가 아니에요. 이레째날 하루가 아니라 여드레째날도 안식일, 아흐레째날도 안식일 계속해서 창조 이후에는 안식일로 주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안식을 잃어버렸어요. 그 날들을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통해서 다시 안식을 회복하는 날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8절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는 것은 이제 너희가 잃어버린 안식의 회복을 그 날 은혜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내가 일하므로 사는 날이 아니고 하나님이 천지를 다 만든 것을 기념하는 날이 구약의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레째날 쉬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 날을 기억하고 거룩히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로 신명기 5장 1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이 말씀은 신명기서에 나오는데 이것은 안식일에 한 단계 신비한 비밀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안식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으로부터 해방을 받던 날을 기억하고 이 날을 지키라 너희가 애굽에 있을 때는 안식일이 없었다. 매일 노예로 일만 했다. 그런데 여기 와서는 안식일이 있다. 이 안식일을 지킬 때 너희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아, 우리가 애굽의 종 되었을 때는 이 날이 없었는데 우리가 해방을 받으므로 말미암아 이 날이 있다.’ 그래서 해방의 날로, 자유의 날로, 해방 공동체의 날로 지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창조가 완성된 그 날을 기억하는 엿새후의 날에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지키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는 출애굽기 31장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그래서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은 다 같이 살아버리는데 교인은 거룩하게 하루를 딱 정해서 예배를 드리므로 너희가 거룩해지는 날로 구별되는 날로 이 세상 사람들과 내가 구별된 사람이다 라고 하는 표징을 얻으라는거에요.

공장에서 똑같이 회사에 다니면서 일합니다. 돈 법니다. 집에서 삽니다. 그런데 주일날 딱 믿는 사람들은 성경 찬송을 들고 교회에 나올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너희와 나는 다르다.’ 이것을 구별하는 날로 정하라는거에요.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요일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주일이라고 말합니다. 일요일이라는 말은 해 아래 있는 날로, 우리는 주님의 날로, 또 세상 사람들은 공일이라고 말합니다. 빈 날이에요. 그래서 거의 다 인생이 어디에서 인생이 망치느냐 하면 엿새동안 일할 때는 일을 열심히 하느라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레째날 다 망해요. 왜? 그 날 쉬면서 다 노름하고, 도박하고, 죄 짓고 탕진해서 다 망합니다. 그래서 전부 빈털터리가 되요. 엿새동안 일하면서는 다 똑같이 벌어요. 그런데 이 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날로 성일로 지키고 세상 사람들은 공일로 다 헛것으로 만든다는거에요. 참 신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을 잘못하면 안됩니다. ‘오늘이 공일 날인가’ 망하는 소리에요. 또 ‘오늘 일요일인가’ 이것은 안믿는 사람 소리에요. 반드시 우리는 교인들 가운데 더러 ‘오늘 일요일인가’ 이 사람 머릿속에 완전히 하나님이 없어요. 교회는 다녀도 따라서 합시다. “주일날, 성일날” 믿습니까? 자기가 언어를 잘 써야 되요.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 찬송할 수 있어요. 또 기도할 수 있어요. 또 선한 일을 행하고 성경 읽고 다 거룩해지는 연습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거룩은 나를 구별해야 됩니다. 엿새동안 일하다가 주일날 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할 때 내 인생에 있어서 이것이 바로 자기 존재에 대한 거룩을 얻는 날이라는거에요. 그래서 주일날을 우리가 구약에서 안식이라고 말했고 신약에 와서는 주님의 날로 주일로 바꾸어졌는데 구약에서 안식일을 줄 때 세 가지 의미를 주었어요. 첫째는 “너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이것이 첫째고 둘째는 “너희는 애굽에서 노예로부터 해방을 얻었다.” 세 번째는 “너희는 거룩한 사람들이다. 성민 공동체다.” 이제 이 세계에서 너희는 이 날을 지키므로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거에요.

그래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우리는 잘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믿는다고 하는 것이 속으로만 믿기 때문에 표시가 안납니다. 믿는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다른게 없어요. 그런데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을 딱 보면 ‘아 이 사람은 믿는 사람이구나!’ 이게 바로 거룩한 표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거룩한 이제 사람들로 성별하면서 이 날을 가리켜서 복 주시마 약속하셨습니다. 이 날을 복 주는 날로, 하나님은 안식일을 복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전부 다 복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오늘 여기 와서 하나님 앞에 이 날을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지금 복받는 날입니다. 복이 따로 있는게 아니에요. 오늘 여기 나온 것 자체가 복 받고 있는거에요. 복 받은 확증이에요. 이것은 곧 뭐냐? 내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받는데 이사야 선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3~14).
이 안식일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을 말하는데 반드시 안식일을 지킬 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너희가 이 날을 즐거운 날이라 존귀한 날이라 이렇게 여기고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이 날은 좋은 날이다.

이 날은 참 존귀한 날이다.’ 이렇게 자기만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내 집에 유하는 일꾼까지 데리고 주인이 자기만 와서 예배를 드리고 가고 나머지는 다 일 시키고 있다면 이것은 참 비극입니다. 왜? 전부 다 비인격적인 인간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적어도 주인이 예수 믿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날 딱 문을 닫고 “월급은 똑같이 줄거야 하루 같이 예배드리자” 그러면 안믿는 사람도 ‘야 우리 주인께서 이 날은 월급을 똑같이 주면서 같이 예배를 드리자고 하니 얼마나 이게 복있는 날이냐’ 거기에서 뭘 얻느냐? 존경을 얻습니다. 존경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자기 주인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그런데 일을 시키면 그 주인을 볼 때 뭐냐하면 ‘돈 버는 사람’ 그럽니다. 주인의 얼굴을 보면서 돈을 보고 있어요. 또 주인의 얼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우리 주인은 자기만 예수 믿지 우리보고 교회 가자는 말을 안해’ 딱 그럽니다. 이게 참 스스로의 비극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가지 기억하세요. 일주일 돈을 다 버나 엿새만 벌고 한번 계산해 볼까요? 일주일동안 다 벌면 7만원을 법니다. 하루에, 하루에 7만원씩을 번다고 한다면 일주일이면 7X7=49만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엿새를 번다면 42만원을 법니다. 42만원을 벌고 하루를 온전히 다 쉬면서 은혜를 받을 것이냐 49만원을 벌려고 그냥 주일도 없이 아등바등 일할 것이냐 여러분 머릿속에 생각하시죠. 그러면 7만원 없어가지고 가난해집니까 7만원 못벌어서 불행해집니까 7만원 못벌었다고 내 인생이 초라해집니까 이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어요. 100만원 월급을 받았는데 십일조를 바치면 10만원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십일조를 안바치고 살면 100만원을 다 쓰는 것이고 십일조를 바치면 90만원을 씁니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100만원을 다 쓰면 돈에 주인이 없습니다. 100만원을 다 쓰면 자기가 주인입니다. 그런데 90만원을 십일조를 뗄 때는 하나님이 주인이 됩니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느냐? 돈을 쓰는데 하늘로부터 지혜가 달라집니다. 100만원을 다 가지고 제가 쓰려고 하면 그 돈 가지고 왔다 갔다 하다가 어디로 가느냐 하면 백화점 앞을 지나다닙니다. 그러다가 바겐세일 그것을 딱 봅니다. ‘아이구야 싼거 있구나!’ 그래서 가가지고 바가지를 팍 써버립니다. 왜? 싸다고 거저 산 것이 바가지입니다. 왜? 쓸데 없는 것을 사니까요. 그런데 십만원이 줄어들면 무슨 생각을 하느냐? 아이고 ‘십만원이 줄었지 아껴 써야지’ 그래서 알뜰하게 살면서 돈이 가치있게 됩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바칠 때 하나님이 주인이 되고 하늘의 지혜를 얻고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어 돈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얻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다 써버리면 바가지만 팍팍 쓰는거야 친구한테 바가지, 백화점에서 바가지 오다가다 바가지 그래서 결국 남는게 없어요.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요.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이 가운데 주일날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문 닫아버리세요. 문을 닫아버리세요. 문을 닫고 쉬면서 사세요. 돈을 더 억척스럽게 벌었다고 해서 그 돈이 자기에게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절대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 돈 많이 벌었다고 해서 그 돈 가지고 자기가 가치있게 쓰지를 못합니다.

저는 오늘 여기에 앉아계신 이완주 장로님을 보면서 늘 그런 감동이 와요. 장로님 늘 그랬거든요. “저는 어느날까지 의사로 일을 하고 저 인도나 어디 멀리 가서 내 여생을 헌신적으로 살다 마치고 싶습니다.” 늘 종종 그러셨어요. 그래도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인도까지 가나 그런 생각을 늘 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노동자에 전문 의원을 만들어서 친히 원장이 되어서 그저 일하는 보람을 얻어서 사시는 모습을 볼 때 한없이 존경스러워요. 그것도 자기 것을 바치면서 월급 받는 것도 아니에요. 몇 억을 갖다 투자하고 투자하면서 자기가 투자했다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꼭 한신교회에 헌금을 하고 한신교회가 바쳤다. 한신교회가 이 병원을 세웠다고 그러면서 당신은 가서 원장으로서 희생적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거기에서 뭐 월급 나오겠습니까 나온다고 해야 뭐가 나올게 있겠어요. 날마다 외국인 노동자 살려달라고 쫓아오는 사람들 보면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 피곤한 몸으로 감당할까 그것도 어제 신문 보면서 걱정이 되도만 주께 맡겼습니다. 기도 많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주일을 지킨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날을 즐거운 날이라 존귀한 날이라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땅의 높은 곳으로 올리고, 땅의 높은 곳으로 올린다는 말은 너를 모든 사람이 존경한다 그런 뜻입니다. 또 이뿐만 아니라 '너를 야곱의 업으로 축복한다‘는 말은 야곱이 땅에서 형통의 복을 받았습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복을 네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오늘 마가복음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하느냐?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날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은 곧 너를 위해서 있는 날이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하느냐?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은 ‘이 날의 주인은 곧 나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다는거에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키는데만 힘을 썼습니다. 안식일을 날을 지킨다는게 중요한게, 그러니까 저들은 금요일날 오후 여섯 시부터 토요일날 오후 6시까지 그날 시간만 딱 되면 그냥 자동차도 다 스톱, 음식점도 문 닫고 가게도 문 닫고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서 이 날은 거리도 어느 정도 걷지 않고 규례가 있어요. 이것을 지키는데만 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게 아니고 이 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는거야” 하나님을 만나므로 말미암아 너희들은 은혜를 받고 너희들은 해방을 얻고 그리고 너희들은 곧 뭐냐? 성결에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한 하나님을 다 만나게 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성자 하나님, 그리고 날마다 성결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 이 세 가지 의미를 거룩한 날로 안식일의 의미에 담아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이 날이 오면 엿새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너희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보라 너희를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받으라’ 날마다 너희가 이 세상과 구별되기 위해서 성결케 하시는 성령의 능력, 그 은혜를 받으라는 그 의미에서 안식일을 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날만 지키고 그걸로 남을 정죄하고 따지고 오히려 멍에를 만들어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께서 ‘이 날은 나를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니고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주신 날이다. 그런데 이 날의 주인이 나다. 너희가 이 날 나를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면서 우리에게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 날 내 안에서 나를 만나 나와 함께 살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3장 56절에 친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마지막 구약의 안식일을 예수님께서 친히 그 십계명에 좇아서 무덤 가운데서 마지막 지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에 최후로 예수님이 끝내버립니다. 어떻게? 무덤 속에서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와 함께 새로운 날을 받은 것입니다. 이 날이 주일날입니다.

이제 우리는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는게 아니에요. 이 날은 바로 주님과 함께 무덤 속에서 나를 장사지내고 새로운 날로 우리가 사는 그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일로 우리는 이제 구약의 모든 안식을 끝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날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날로 우리가 살게 될 때 첫째로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이제 이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늘 나는 이제 옛 사람이 아니고 새 사람이다. 나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나는 예수에게 속한 사람이다. 나는 새 생명의 사람이다. 이것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 고백이 바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날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죄인은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배라고 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오늘 우리가 여기 와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고백을 하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름철이 되면 휴가를 가려고 준비하는 사람이 있어요. 휴가를 가도 괜찮아요.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어떤 날도 이 날 보다 내게는 복받는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1-2). 그러면서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절기를 지키러 가고 그들이 이제 시온산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날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알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늘 교회에 오는 날이 대로가 되어야 됩니다. 교회 가는 날이 짜증스러워서 불평하는 날이 되지 아니하고 확 열린 날로 그래서 은혜받으러 가는 길로 이 날을 삼아야 한다는거에요.

사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좋은 날이 많이 있지만 이 날보다 더 좋은 날은 없어요. 휴가 가면서 희희낙락 하면서 ‘야 좋은 날이다.’ 그러다가도 양심에 찔리는 것을 느껴야 되요. ‘내가 주일날 교회에 가면서 이렇게 한번 한바탕 못웃었지 내가 주일날 교회에 가면서 이렇게 기뻐해야 될텐데 내가 잘못 되었구나!’ 자기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마음도 가져야 됩니다.

저는 전에 우리 후배가 미국에서 내가 좀 도와주었더니 무슨 약을 가지고 왔어요. 식물성 좋은 건강에 좋은 약이라고 그것을 갖다 주면서 목사님 아무도 주지 말고 목사님만 두었다가 혼자 잡수시라고 이것이 최신 개발된 약인데 이 약을 먹으면 불로장수 한다고 그래요. 그래가지고 박수를 치면서 “자네가 참 좋은 사람이네” 하면서 웃고 그것을 감추려고 한쪽으로 문을 열고 가는데 주님이 책망하셔요. “너는 불로 장수한다고 하면 희희낙락거리고 내가 영생 불사약을 주는 하나님 말씀과 그 영생의 구원의 은총을 준 것에 대해서는 언제 박수 치고 기뻐한 일이 있었냐” 그래 제가 그것을 들고 가다가 잠잠히 서 있었습니다. 양심에 꺼려요. 그래 시간이 지나도 안나오니까 문을 열고는 “목사님 왜 그렇게 서 있습니까?”  “여봐 자네 때문이네 자네가 사준 불로 장수한다는 이것을 가지고 가다가 주님한테 되게 혼났네”
여러분, 이 날은 참으로 즐거운 날, 존귀한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존귀한 날이에요. 나를 복되게 한 날이에요. 그래서 이 날이 나에게 최고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 날에서 우리는 참 이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안식을 얻는 날이 되어야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주께로 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라는게 누구입니까? 모든 인생아 다 내게로 오라 그 말이에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어떤 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에요. 전체 인생이 다 수고한 자에요. 부자나 가난한 자나,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잘된 자나 안된 자나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요. 다 내게로 오라

이 수고라고 하는 말을 제일 많이 쓴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솔로몬입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산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영화를 누린 사람이 솔로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가 무엇이 유익한고” 그는 그런 영화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수고로운 존재를 알았어요. 해 아래 사는 인생의 그 고달픔을 알았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안식을 얻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안식을 주십니다.
세 번째로 이 날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이 날이야말로 내 인생에 최고의 날이다. 왜? 모든 문제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히틀러가 1913년 10월 17일 영국을 침략했습니다. 그날 아침이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웰링톤 장군의 반격으로 완전히 참패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반역한 히틀러는 주일날 아침이 하나님을 믿는 영국 사람들에게는 쉬는 날이니까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망했습니다.
1941년 12월 18일 진주만을 일본이 습격했습니다. 주일 아침 다 군대가 쉬는 날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런데 결국 4년 후 원자탄으로 저들은 심판을 받아 항복해버렸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아침 북한군은 남침했습니다. 그런데 UN군으로 저들을 완전히 이북은 초토화 되어버렸습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날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날이고 예배하는 날인데 이 날을 침략하고, 반역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도전할 때 하나님은 가만 두지 아니하고 그 전능하신 손을 펴셔서 저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받는 날이면서도 또 하나 두려운 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을 하나님의 예배하는 날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날로, 하나님이 주시는 그 복을 받는 날로 쓰지 아니하고 자기 날로 쓸 때 하나님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한 하나님의 주님의 만나는 은혜의 날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