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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님 (마 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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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만 목사 (아름다운교회)

예수님은 따라 오라고 부르신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는 것은 그들의 거룩함이 손상을 당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부정한 것과 접촉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식사할 때 양반과 상놈이 함께 식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유대인들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그들의 스타일 구기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와만 식사하신 것이 아니라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같은 공동체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함께 식사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은 그들의 친구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7 3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눅 7:34)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왕따들의 친구셨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이십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의 친구셨습니다. 4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부자나 권력자나 유명한 사람들의 친구가 아니라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의 친구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이십니다.

사람들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도소에서 들어갔다 나온 전과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과자들은 취직도 잘 되지 않고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워서 또 다시 나쁜 사람들을 만나는 바람에 반복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귀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난함도 억울한데 또 사람들로 하여금 따돌림을 당하니 더욱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불렀던 찬양처럼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괴로울 때 다가와서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신실하신 나의 참 친구이십니다. 외로울 때 찾아 와서 친구가 되어 주는 사랑 많은 나의 참 친구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가 괴로울 때 다가오셔서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참 좋은 친구이심을 믿습니까? 외로울 때 찾아 와서 친구가 되어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에게 사랑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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