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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앞으로 나아가라 (출 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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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역사란 일반적으로 발전을 이루어 가는 역사가 있고 퇴보를 가져오는 역사가 있습니다. 전자는 건설적인 역사요 후자는 파괴적인 역사입니다. 건설적인 역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점 더 나아지는 역사를 말하는 것이고 파괴적인 역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나빠지는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나온 역사를 보면 어떤 나라는 건설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민족이 있습니다. 만면에 어떤 나라는 퇴보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의 역사는 말할 수 없는 격동의 시기를 보내었지만 성장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참으로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전쟁 직후에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나라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전후 50년 동안 우리나라는 계속 발전하고 성장하는 역사를 기록해온 나라가 된 것입니다 반면에 북한을 보면 지난 50년의 역사를 볼 때 퇴보의 역사를 기록한 나라입니다. 파괴적 역사를 쓴 나라입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수많은 교회를 파괴하고 수많은 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을 죽이는 역사를 기록한 나라입니다. 더 나아가서 정치적으로도 일인 독재 체제의 역사를 기록해 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때문에 지금 세계를 향해서 구걸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계속해서 발전만 하는 역사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발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란 발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역사도 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세계 문명 시리즈라는 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는 네 곳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약 5천년 전에 엄청나게 발전된 문명을 가졌던 민족이 있었습니다. 인류 초기에 이미 엄청난 문명과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민족입니다. 그 4대 문명을 보면은 첫째가 메소포다미아 문명이고 다음으로 이집트 문명이며 그리고 중국의 황하 문명과 인도의 인더스 문명입니다. 지금부터 5천년 전에 이미 문자가 있었고 법률이 있었고 지금도 놀라는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인류의 4대 문명의 발상지가 지금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어렵게 살고 있다는데 오히려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5천년 전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는 지금 엄청나게 발전하는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나라는 지금 제자리걸음과 같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어떤 나라는 오히려 퇴보하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 가정을 통해서 이해를 하면 쉽습니다. 어떤 가정은 과거에는 참으로 어렵고 가난한 가정이었는데 현재는 누구도 부럽지 않는 가정으로 발전한 가정이 있습니다. 반대로 과거에는 누구도 부럽지 않는 가정이었는데 현재는 너무도 초라하고 힘들게 된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가정도 부모의 시대보다 자녀의 시대가 발전한 가정이 있고 부모의 시대보다 자녀의 시대가 퇴보된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100년 전 10대 기업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GE

그래서 나라든지 가정이든지 과거보다 더 발전된 삶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어떤 철학자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친구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땅위에 살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다는 소리를 듣도록 살아야 하지 않겠나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는 그 사람으로 인하여 역사가 더 나아지게 되고 역사가 더 밝아지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역사 속에는 그 사람으로 인하여 역사가 더 후퇴하고 역사가 더 어두워지게 한 사람도 있습니다. 가정에도 어떤 자녀는 가정을 더 나아지게 하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자녀는 가정을 더 나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더 어둡게 하는 자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부모가 땀 흘려 이루어놓은 자녀 때에 다 잃어버리는 이야기들을 많습니다. 이런 가정의 역사는 퇴보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이제 발전과 퇴보라는 측면에서 교회의 역사를 보고자 합니다. 교회도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에도 발전하는 역사를 가진 교회가 있고 퇴보하는 역사를 가진 교회도 있습니다. 지상에는 현재에도 끊임없이 발전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새로워지는 교회가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도 퇴보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서 현재에 계속해서 퇴보하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현재 세계 속에는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과거의 부흥과 성장이 퇴색이 되어 박물관이 되어 가는 교회당도 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한 평생의 역사란 바로 교회의 역사입니다. 금년은 우리 교회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0주년이라는 말은 성경에 희년이라고 말씀했고 일반적인 표현을 빌리면 교회가 세워진지 반세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50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길지 않는 역사이지마는 이 짧은 교회 역사 속에서도 성장의 시기가 있는가 하면 분쟁과 퇴보의 시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 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교회의 역사에 어둠을 주고 성장을 방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역사 속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발전하는 일에 쓰임이 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퇴보하는 일에 속해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벗어나 홍해 앞에 도착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따라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의 분수령에 서게 된 것입니다. 역사의 분수령에 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앞을 본 사람이 있고 뒤를 돌아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분수령에서 앞을 본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홍해 앞에서 뒤를 돌아본 사람들은 역사의 진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다시 과거의 역사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창조적인 역사보다는 과거에 얽매여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결코 새로운 역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아무리 어려워도 과거의 역사로 돌아갈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성도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결심해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과거의 역사에 붙잡혀서는 안됩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나올 때 다단과 고라같은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나가는 일에 항상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든지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목을 잡는 일에 적용시켰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이스라엘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 선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항상 교회의 역사를 만드는 일에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내 인격과 삶들이 하나님의 교회의 지체로써 교회의 역사를 창조하는 일에 힘이 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반드시 교회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그냥 발전하고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의 손으로 무너진 성전을 세우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역사라는 자동차를 타고 달리고 있습니다. 역사라는 자동차에는 역사라는 자동차를 몰고 가는 운전사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역사라는 자동차에 몸을 맡기고 세상이라는 창 밖을 구경하는 구경군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역사라는 자동차가 고장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역사라는 자동차를 타고 있지만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역사 속에 갇혀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역사입니다. 말씀을 앞세우고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역사는 앞으로 나가는 역사를 말합니다. 성경에 뒤를 돌아 본 사람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과 롯의 처가 그러한 사람입니다. 기드온 300명 용사 이외의 백성이 그러했고 데마가 그러했습니다.
2004-08-15 0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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