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복절] 길을 내라! (사 40:1-5)

  • 잡초 잡초
  • 341
  • 0

첨부 1


- 설교 : 장빈 목사 (동광교회)

# 1

오늘은 8월 15일, 주님의 거룩한 날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도 잊지 못할 제59회 광복절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처참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났던 날,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방송을 들으며 역사의 어둠을 뚫고 민족의 빛을 다시 되찾았던 날, 해서 우리는 이 날을 광복절이라 부릅니다. 빛을 회복한 날, 광복절 말입니다.

광복을 맞이한 날, 우리 겨레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 벗님 어찌 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정인보 선생의 글에 윤용하 선생이 곡을 붙인 광복절 노래입니다.

하지만 1945년의 해방은 우리 민족의 온전한 독립과 완전한 광복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해방과 동시에 북에는 소련군이, 남에는 미군이 들어와 군정을 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우리 민족의 원죄인 분단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아무리 고쳐 생각해 보아도 우리 역사에 천추의 한으로 남을 일입니다. 결국 못난 이 민족, 남과 북으로 갈린 채,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기에 이르는데, 우리 남쪽은, 1948년 5월 10일, 유엔 감시단의 감독 하에, 총선을 단행합니다. 그 결과 저의 어머님이 그렇게도 좋아하셨던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됩니다. 후에 파리에서 열렸던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았던 남한의 대한민국 정부, 이 정부가 수립된 날도 8월 15일이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말입니다.

하지만 민족을 둘로 나누어 버린 원죄는 우리 역사에 여러 비극들을 초래하고 맙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 1949년엔 민족의 큰 별, 백범 김 구 선생이 암살을 당합니다. 또 다시 이듬 해 1950년, 그러니까 광복된 지 5년,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2년 만에, 이 땅엔 6.25전쟁이 발발합니다. 마침내 1953년 7월,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무려 3년 동안, 우리 민족은 그렇게도 모질게 형제가 형제를 죽이면서, 씻을 길 없는 죄를 범하고 맙니다.

온전한 광복을 이루어내지 못한 대한민국의 자유당 초대 정권 역시 민족의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역사에 수많은 오점을 남기고, 1960년, 퇴장당합니다. 자던 아이도 일어나 웃을 만한 내용의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했던 이승만 대통령, 정권욕을 이기지 못하고, 1960년 3월 15일, 4대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하여, 또 다시 3.15부정선거를 획책하다, 그만 4.19 혁명을 촉발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도 일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는데, 그의 생을 좀 더 대통령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우리 후손들에게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수록 안타깝습니다.

그 후 1960년 7월 29일, 다시 총선을 실시한 대한민국에는, 장면 총리를 중심한 민주당 정권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한 해를 지탱하지 못하고, 이듬해 1961년 5월 16일, 일단의 군인들에 의해, 역시 강제로 퇴장당합니다. 그 때 구국의 일념으로 정권을 임시로 장악한다던 군부, 그러나 구국의 소명을 완성하기 위해 1963년 10월 15일, 다시 총선을 실시하고, 박정희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킵니다. 그렇게 시작된 박정희 유신정권 역시 수많은 영욕 속에 18년 동안이나 유지되다가, 1979년 말, 대통령 자신이 자기 부하의 총탄에 맞아 비운의 최후를 맞이하면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암살자의 총에 맞아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던 자기 아내의 뒤를 따라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우리 민족의 원죄가 해소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런 채로 우린 다시 광복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원죄 역시 죄라는 사실입니다. 죄엔 벌이 따릅니다. 죄를 용서받지 못하는 한, 해서 죄의 문제로부터 온전히 구원받지 못하는 한, 죄로 인한 저주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민족의 원죄를 해결하고, 용서의 은총을 입지 않은 한, 민족의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혹하다고 비켜 갈 수 없는 어김없는 현실입니다. 여기에 우리 성도들이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원초적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 먼저 민족의 제단에 엎드려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젠 문제의 핵심이 옮겨졌습니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시작부터 우리 모두는 죄인이었습니다. 너만 죄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은, 최소한 민족 분단의 원죄를 막아내지 못한 방조범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 전체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민족의 원죄를 사함 받지 않고서는 우리 민족이 온전한 광복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린 새벽마다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어, 온전한 광복을 주십사고 말입니다.

# 2

제59회 광복절을 맞이한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절절한 시 한편이 있어, 여기 들고 왔습니다. 저 자신, 오랜 만에 꺼내 읽으며, 조국을 향한 나의 마음을 가다듬은 시편이었는데요, 시가 너무 길어 오늘은 발췌해서 읽어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를 쓰신 분은, 그 자신 온 몸으로, 이 민족의 죄 값을 치렀던 분이기도 합니다. 마음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조국은 하나다!>  - 김 남 주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모르게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밤길 위에도 쓰고 새벽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이제 쓰리라
인간의 눈이 땋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맨 처음 보게 되는 천정 위에 쓰리라
쌀밥 위에도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쓰는 모든 말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탄생의 말 응아 위에 쓰리라
갓난아기가 어머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위에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세워 놓은 모든 벽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남인지 북인지 분간 못하는 바보의 벽 위에
체념의 벽, 의문의 벽, 거부의 벽 위에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오색종이 위에도 쓰리라 축복처럼,
만인의 머리 위에 내리는 눈송이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다에 가서도 쓰리라 모래 위에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나는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세월이 와서 긁어버리면 나는
수를 놓으리라 가슴에 내 가슴에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지워버릴 수 없게 긁어 버릴 수 없게

가슴에 내 가슴에 수를 놓으리라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 라고.
겨레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 3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절망적일 때 보이는 희망이 진정한 희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을 넘어야 희망이 오는 법,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절대 절망의 상황이란 없다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대하기 가장 버겁고 두려운 상대는 스스로 포기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적 역시 스스로 포기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절망의 원인은 내 안에 있습니다.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이젠 나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한 평생 살면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스스로 포기하는 일입니다.

해서, 오늘 주신 본문 말씀에서, 우리 하나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간단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위로하는 일이라 하십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하십니다. 가서 위로하라는 겁니다. 아직 희망이 있다고 선포하라는 겁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 어서 말하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제59회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성도들이 해야 할 일, 그것은 이 땅의 백성들을 위로하는 일입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어려워 죽겠다고 아우성치면 칠수록 우린 더 큰 소리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진정한 위로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내 백성을 위로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40장 2절을 보니, 우리가 가서 전해야 할 위로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군요. 참으로 위로가 되는 귀한 말씀, 함께 읽으며 우리 가슴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 40:2 / (읽기) / 먼저 주목하고 싶은 대목은, 정다이 말하라는 것과 외쳐 고하라는 대목입니다. 절망으로 포기하려는 심령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위로할 것이로되, 그러나 단호하게 선포하라는 겁니다.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대목은 그렇게 정답게, 그리고 단호하게 전할 말의 내용입니다. 역시 두 가진데요, 하나는 복역의 때가 끝났다고 말하라는 것이요, 둘은 죄악의 사함을 입었다고 외치라는 겁니다. 붙여 읽으면 죄악의 사함을 입어 이젠 복역의 때가 끝났음을 선포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 각주 1번을 보니, 복역의 때를 전쟁의 때라고도 하는군요. 그리고 2절의 맨 뒤를 보니, 모든 죄를 인하여 치러야 할 대가를 배나 치렀다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민족의 원죄로 인한 복역의 때, 전쟁의 때가 끝났다는 겁니다. 이제 그 죄로 인하여 받아야 할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젠 가서 위로하라는 겁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확실하게 믿으시고, 어서 가서 이 위로의 메시지가 필요한 이에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젠 복역의 때가 끝났다고, 죄악의 사함을 입었다고, 온전한 빛을 허락하신다고, 그러니 다시 시작하자고, 그렇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 내 백성을 위로하는 일입니다.

# 4

그런데 오늘의 말씀과 관련하여 우리가 자주 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죄악의 사함을 입은 다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역 기간이 끝난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광복이 찾아온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해서 우리 주님,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오늘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말씀, 함께 들어봅니다. / 40:3 / (읽기) / 거기 네 개의 단어에 표시해 보실까요? 광야, 길, 사막, 대로. 그리고 둘 씩 연결해 두시지요. 광야에 길을, 사막에 대로를!

공동번역 성경은 같은 구절을 이렇게 풀어줍니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그렇군요. 죄악의 사함을 입은 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군요. 광야에 길을 내는 일이지요. 복역의 때가 끝난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군요. 사막에 대로를 내는 일이지요. 광야를 건너 가나안 복지로 갈 수 있는 길, 사막을 건너 광복으로 나갈 수 있는 길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 3절을 보니, 길을 예비하라 하셨군요. 왜 길을 내라 하지 않으시고 예비하라 하셨을까? 답은 간단합니다. 길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길을 내는데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길을 내는 자는 오늘 보다 내일을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 결코 새 길을 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남이 닦아 놓은 길로만 가려고 합니다. 왜? 그것이 광야에 길을 내는 쪽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4절 말씀을 보니, 길을 내는 자가 해야 할 일이 엄청납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 메워야 합니다. 크고 작은 산들은 낮추어야 합니다. 고르지 않은 험한 곳은 평지가 될 때까지 깎아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광야에 길을, 사막에 대로를 내라 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아직 그 곳엔 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없이 펼쳐진 광야요, 어딜 보아도 모래 언덕일 뿐입니다. 길이 없으니 생활필수품조차 공급이 원활치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길을 내는 자, 아직 길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길을 내는 자, 광야와 사막을 상대로 싸워 이겨, 마침내 그 곳에 길을 내고 맙니다. 해서 길을 개척하는 자의 삶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렇게 새 길을 내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있습니다. 스스로 길을 내지 않는 자는 결코 받아 누릴 수 없는 보상, 길을 내는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우리 함께 읽으며 오늘 나에게 주시는 복으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40:5 / (읽기) / 그렇습니다. 길을 내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상,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길을 내는 자, 하늘의 영광이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길을 내는 자, 날마다 빛을 따라 안전화게 걸어가게 됩니다. 해서 우린 이렇게 찬송합니다.

<찬송 502장 부르기 / 태산을 넘어 험 곡에 가도!>

1. 태산을 넘어 험 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2.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

<후렴>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 5

그랬습니다. 광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함께 가야 할 길을 내는 큰 역사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광복의 감격을 승화시켜, 남과 북, 동과 서, 아니 우리 동포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미래로 향한 길을 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내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민족을 새 하늘 새 땅으로 안내할 대로를 닦는 일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아니, 길을 내기는커녕, 우리 민족은 있던 길조차 막아버리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광야에도 길을 내야 할 우리가, 반만년 유구한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이 갈고 닦아 물려주신 그 길조차 막아버렸던 것입니다. 사막에조차 대로를 내야 할 우리인데, 삼천리금수강산을 가로지르던 그 큰 길마저 막아버렸던 것입니다. 길을 내라 하셨는데, 길을 막았으니, 그것이 죄가 된 것입니다. 해서 민족 분단은 우리 민족의 원죄가 되고 말았으며, 우린 지금도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해서 기쁨의 날이어야 할 광복절이 다가오면 오히려 슬퍼지는 것 사실입니다. 해서 감격에 겨워 열창해야 할 광복절 노래가 기쁨의 노래가 되지 못하는 것 사실입니다. 오히려 광복절을 생각할수록 부끄러워지는 것 사실입니다. 왜? 길을 내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길을 내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하신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어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해서 하나님, 가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하십니다. 이 민족의 복역의 때가 끝났다고, 이젠 죄악의 사함을 입었노라고, 59년 동안 그만큼 치렀으면 되었노라고, 가서 위로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힘을 합하여 다시 길을 내라 하십니다.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남과 북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길, 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길, 주의 길을 내라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말씀 속에 이 길의 주인이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군요. 3절이지요? 누구의 길이라 하십니까? 여호와의 길, 우리 하나님의 대로! 그렇습니다. 길은 주님의 길입니다. 내가 닦는다고 해서 내 길이 아닙니다. 내가 낸 길이라 해도 모든 길은 주님의 길입니다. 이 말은 주님이 열어주시지 아니하시면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뜻이요, 또한 길을 내는 목적은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해서 우리 주님, 내가 곧 길이라 하셨던 것입니다.

# 6

오늘은 광복절, 우리 민족의 가장 기쁜 날, 오늘 우린 길을 내라 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함께 길을 내고, 그 길을 함께 가야 하는 우리, 마지막으로 다시 시인 김남주 님의 시 한편 선물로 드리며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이 땅에 길을 내야 하는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마음의 길인데요, 제목은 <함께 가지 우리 이 길을!>입니다.

<함께 가지 우리 이 길을!> - 김 남 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면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어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어차 건너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겐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주신 말씀 마음에 새기며 잠시 명상 기도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