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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요 1: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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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수 목사 (동신교회)
   
  누군가가 당신을 하루 24시간 지켜보고 있다면, 그것도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만 아니라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것과 사상, 그리고 세계관과 가치관까지 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언제나 보고 계시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 모세의 율법에서 가르친 그 메시야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그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빌립은 나사렛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나다나엘이 빌립의 말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와보라”는 빌립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자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나다나엘이 “나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물었고 예수님은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보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신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1. 예수님은 당신을 보고 계십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에 예수님은 이미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나다나엘을 보신 것 같이,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를 보고 계십니다. 성경에는 도처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보고 계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4:6이하에 보면 보좌 곁에 네 생물이 있고, 네 생물 앞 뒤에는 눈이 가득 차 있습니다. 네 생물에는 각각 날개가 여섯 개가 있고 그 날개 앞 뒤에 눈이 가득합니다. 그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있는데, 일곱 눈이 있고 이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일곱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주목하시는 하나님의 눈임을 시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성령을 보내사 여러분과 나의 모든 삶과 생각과 계획을 보고 계시며 우리들의 앞날의 계획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향하여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한 말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기에 넉넉하고 충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며, “그 손에 간사한 것이 없다”는 뜻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기에 거짓되거나 무가치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나다나엘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고 계심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삭개오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를 보시고(눅19:1), 베드로 같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결단하는 것을 주목하시며,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은 과부를 보심같이 그의 헌신을 살피십니다. 나인성 과부의 애통함을 보신 예수님, 예수님을 배반하고 마음 아파하는 연약한 베드로를 보신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나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2. 예수님은 왜 당신을 보고 계십니까?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보고 있는 것은 그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보고 있는 것은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위험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학생들을 주목하는 것은 그 가르친 것을 이해하고 그 배운대로 실천하는 가를 살피시기 위함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천문학자요, 수학자 임과 동시에 신학자였습니다. 그가 지동설을 연구하고 “천체의 혁명”을 주장했을 때 많은 핍박과 위협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마틴 루터나 요한 칼빈, 그리고 멜랑히톤과 같은 이도 그를 비판했고, 그를 옹호하는 자를 사형에 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진리를 따라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같이 주변이 어지럽게 변하고 환난과 핍박이 올지라도 믿음의 진리를 따라 힘 있게 사는 것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기 위해 당신과 나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찬송가 523장의 가사를 쓴 미국의 월터(Howard Walter)는 인도의 선교사로 갔다가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프린스턴 신학교와 유럽의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지성인이었지만 인도와 같은 제3국에 가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용기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지금도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3. 나다나엘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위대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라고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제자(바돌로매)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나다나엘 같은 믿음의 고백을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6장 69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고, 11장에서는 마리아가 같은 고백을 하며, 20장에 가서는 도마가 “나의 주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20장 31절에서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며, 보고 계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로고스(λογοs)이심을 시사합니다. 로고스는 세상의 모든 창조물의 원인이요 존재능력이며 목적이 되시고, 또한 근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은 “당신이 어떻게 나를 아시느냐”라고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며 제한적인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적이며 근원적이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질문과 대답을 소유하고 생활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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