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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영광을 보리라 (사 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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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고신복 목사 (산성교회)

아무리 훌륭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할찌라도 현실적으로 잘 짜여진 목표가 없으면 힘이 분산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성공은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하며, 목표의 결과를 수치로 나타낼 수 있도록 구체화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삼 년 만기 이천만 원짜리 적금을 든다./ 토익 점수 팔백점을 딴다./ 자동차 일종 보통 면허증을 취득한다./ 교양 도서 백 권을 읽는다./ 체중을 구십키로에서 칠십오키로로 줄인다. / 삼개월 안에 담배를 끊는다./ 소년 소녀 가장을 월 삼만원씩 지원한다./ 하루 만 보 이상 걷는다./ 하루에 30분씩 영어 회화 연습 한다./ 늦어도 회사에 15분전 이전에 도착한다./ 부모님께 월 20만원씩 용돈을 드린다./ 매주 두 시간 이상 자녀들과 놀아준다./ 하루에 영어 및 중국어 문장을 한개 씩 외운다./ 월 첫 날과 주 첫 새벽은 기도로 시작한다./ 성경 말씀을 하루에 3장씩 읽는다./ 예배 시작하기 10분전에 도착한다./ 하루에 한 사람 이상은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화한다.
목표는 구체적으로 정할수록 달성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목표를 명확하게 하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라 할찌라도 입추를 지나 말복을 거치게 되면 가을의 선선함이 다가 올 것입니다. 찜통과 같이 우리를 힘겹게 하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소망을 갖고 인내하면서 서로를 위하는 헌신과 봉사 앞에서는 바람앞에서 밀려가는 구름과 같을 것입니다.
근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이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대두되는 현 시점에서 59번째 맞는 광복절이 다시 한 번 민족과 교회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는지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광복절을 맞을 때마다 일제의 강권통치에 굴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 흘려 싸운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했던 <투쟁과 희생적인 삶>을 떠올리면서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이 거기에서만 머무르면 어설픈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고마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한국 민족사의 눈으로 보는 8·15 광복은 우리 민족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지만 세계사의 눈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 <국제 정세의 부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함석헌 선생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에서 “8·15 광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떡”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8.15광복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으시고 세계속에 한국인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하나님의 은총이며 배려인 줄 믿습니다. 이번 8.15광복절을 통해 우리민족과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저력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그 영광을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521장(어느 민족 누구게나)을 부르신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우리 성도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서로가 위로해야 합니다.

에스겔37장과 이사야40-45장에서 보면 식민지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굳건하게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을 하면서 모진 핍박과 어려움과 그 무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민족적. 신앙적 정체성을 지켜 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록 지금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어두울지라도 그 어둠이 머지 않아 물러가고 빛이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극한 어려움에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여 위로하고 격려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언자들은 희망과 위로를 통하여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60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포로 생활을 하면서 죽은 자, 썩어 문드러진 뼈다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 뼈들이 살이 붙고 가죽이 씌워졌으며 숨이 돌고, 모두들 살아나 제발로 일어서서 큰 무리를 이룰 것이라고 희망과 위로를 합니다. 에스겔은 환상을 통하여 외세의 압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민족을 이루게 되리라는 희망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희망을 가지고 낙심하지 않는 자들에게 위로를 합니다.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로 하여금 “너희는 위로하라. 내백성을 위로하라.”라고 시작합니다. 이사야의 메시지의 핵심은 “새 출애굽”입니다. 이것은 과거 역사 출애굽에 비교하여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귀향할 것을 예언하며 위로합니다. 이사야는 희망을 갖는 백성들에게 위로합니다.

절망의 시대, 위기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시대에서 필요한 것은 한끼 한끼의 밥이 아니라 절망에서 일어 날수 있는 희망과 위로입니다. 희망과 위로만이 이 시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위로하고 칭찬하는 자가 이 시대의 참 리더가 될 수 있으며, 위로와 칭찬받는자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자녀를 교육할 때도 무지한 부모는 몽둥이만을 가지고 교육하고, 평범한 부모는 행동의 모범은 보이지 않고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지혜로운 부모는 몸소 모범을 보이면서 자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산수 50점 받아오면 "우리 아들 반이나 맞추었네 조금만 더 하면 아주 잘하겠구나!"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면 그 꼬마는 신이 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칭찬과 위로가 가능성을 이루게 합니다. 1930년대 미국을 경제 대 공황에서 구출하고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유엔을 창설한 플랭클린 루스벨크 대통령이 있기까지는 ‘낙관적인 인생관’과 ‘재치’로 남편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준 아내 엘레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즈벨트가 자녀의 죽음과 자신의 건강문제로 인해 비탄에 잠겼을 때 루즈벨트의 아내였던 엘레나가 재치 있고 긍정적인 언어로 위로하고 격려함으로 남편의 위대한 세계의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긍정적인 면에 칭찬을 아까지 말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경영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범고래 샴>에 대한 얘기입니다. 무게가 3t이 넘는 '바다의 포식자가' 범고래가 관중들 앞에서 멋진 묘기와 익살 스러운 재주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고래에 대한 조련사의 칭찬과 격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범고래 샴이 가르쳐 준 지혜로 '긍정적인 것을 강조하라' '잘한 일에 초점을 맞춰라' 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교육학에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사가 어떤 학생에 대해 우수하다는 기대를 갖고 가르치면 그 학생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우수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이론입니다. 긍적적인 면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일하는 작업환경에서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근로자의 작업 성과는 상사의 관심과 주목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근로자들의 작업성과는 근무시간이나 임금이 아니라 주위의 관심과 상사의 주목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호손효과(Hawthorne Effect)'가 있습니다. 환자들이 치료받는 효과에도 적용됩니다. 환자에게 관계없는 약을 위장하여 진짜 약처럼 위장하면 효과를 발휘한다고 합니다. 어떤 약속에 특정한 유효 성분이 들어 있는 것처럼 위장해 환자에게 주면 진짜 약처럼 효과를 발휘한다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든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마련입니다. 그가 누구든 간에, 귀하게 큰 사람이든 험하게 큰 사람이든 살며 부대끼다 보면 여기저기 마음의 상처를 입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처들은 조금만 치료하면 곧 회복되게 마련이지만 어떤 상처는 장시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처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위로와 칭찬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보약이 되는 것은 <칭찬과 위로>입니다. 우리들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칭찬과 위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위로하시고 칭찬하십니다.

(욥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욥21:2)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
(시71:21)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
(시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사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51:12)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2.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명자라는 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사명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자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위임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위임된 자를 거룩한 자, 이것은 하기오스(hagios)라고 하는 형용사에서 파생한 동사형인데 <거룩하다>(hloy)라는 뜻입니다. 이 어휘는 항상 사람이나 장소나 그리고 어떠한 사물이 특정한 목적이나 임무를 위해서 다른 것들과 구별된다고 하는 개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이나 사물을 일상 생활에서 흔히 있는 일과는 다른 특정한 임무를 위해 따로 선별해 놓기 때문에 그것을 거룩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1)안식일은 거룩한 것입니다(출20:11). 그것은 다른 여느 날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따로 구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제단은 거룩한 것입니다(레16:19). 제단은 단순한 돌덩어리나 단순한 구조물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것은 특별한 임무를 위하여 세워지고 성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제사장은 거룩합니다(대하26:18). 제사장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됩니다. 그들은 특별한 일과 사명을 위해서 구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십일조는 거룩한 것입니다). 그것은 제사장, 거룩한 축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쓰기 위한 구별된 것이기 때문입이다.

요한복음8:12에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흡사 화초가 태양 빛을 전혀 받지 아니하고는 꽃을 피울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들의 생명도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시는 빛으로 비취일 때까지는 아름다운 향기나는 꽃을 피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과 교회를 향하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악 중에 있고 타락 속에 있는 유다를 향하여 이 희망을 주시면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민족과 교회를 향하여서도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이 하나님의 용기 주심, 기회 주심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희망을 주실 때, 그 희망과 용기 주심을 잡아야 합니다.

이 혼란과 방황 속에서 아직도 사회와 정치가 미숙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끈질기게 우리에게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시려고 합니다. 이 희망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의 역사에 순종하여 복음을 들고 세계를 향하는 한국, 사랑을 들고 세계를 향하는 한국, 그런 한국을 만들어 가야 될 것입니다.

죄악의 자리에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분열되는 자리에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오해와 폅협의 자리에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자리에서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3. 식어진 열정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우리 민족들은 광야에 길을 내다가, 사막에 대로를 평탄하게 하다가, 골짜기를 돋구다가, 험한 곳을 평지로 만들다가 열정이 식어졌습니다. 어느 정도 길을 내다가 어느 정도 평지를 만들다가 안도감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다시 식어진 열정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식어진 열정에 불을 붙을 때만이 우리는 다시 되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에스겔과 이사야를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것을 믿고 열심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열심만이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열심만이 우리가 다시 살 수 있는 길입니다.

기도의 열정/ 말씀으로 살겠다는 열정/ 사랑으로 살겠다는 열정/ 다시 시작하겠다는 열정
봉사의 열정/ 성결의 열정

과거의 예언자들은 열정에 불붙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아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나의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다"고 탄식하였습니다. 피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속에서 불이 탄다고 합니다. 골수에 사무친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예배를 드리는데 불이 타야 합니다. 주일 예배, 주일 오후 예배, 수요 예배, 성경 공부에 불이 타야 합니다.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은 기도의 불, 말씀의 불, 봉사의 불, 전도의 불, 성결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우리를 선택하심을 믿고, 다시금 일어나기 위해서 식어진 열정을 회복하시고, 희망을 잃지 않고 악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미 주신 하나님의 저력을 발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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