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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능력 (히 11: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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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목사 (승동교회)

히11:33∼38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은 힘이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강하게 해 줍니다. 따라서 믿음 위에 굳게 설 때 우리는 모든 시련과 환난을 극복하고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됩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였습니다. 독일은 무인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시도 때도 없이 영국을 폭격했습니다. 그 때문에 영국은 난리가 났습니다. 불안해서 낮에는 일을 할 수도 없고, 밤에는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수 백년 동안, 수 천년 동안 보존해 온 값진 문화재가 마구잡이로 파괴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영국의 언론들은 연일 계속해서 정부와 지도자들을 맹공격했습니다.
"도대체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수상과 각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제 우리나라는 다 망했다."
그러한 기사를 읽는 영국 국민들의 마음은 더없이 착잡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깊은 절망감이 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례 기자들의 모임에서, 한 기자가 이런 뜻깊은 제안을 했습니다.
"여러분, 본시 우리 영국의 언론은 예리한 비판을 가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비상 시국을 맞이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구를 탓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잠시 동안만이라도 비판하는 것을 삼가도록 합시다. 그 대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사를 쓰도록 합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영국의 언론들은 논지가 달라졌습니다. 밝은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의 제 일면에는 국민들이 두 손을 모으고 열심히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장면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주일마다 성경책을 들고서 교회로 모여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광경이 신문을 장식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사의 내용도 밝아졌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기에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이 나라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나라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이런 등등의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기사들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영국 국민들은 그러한 기사들을 보면서 잃었던 희망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맞아!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붙들고 계시는데, 우리나라를 누가 감히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과연 그들의 믿음에 그대로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영국은 이겼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패했습니다.
오늘은 광복 59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날입니다. 나라의 사정이 몹시도 어렵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의 실정은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누가 누구에게 돌을 들어서 던지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59년 전 우리에게 광복을 주셨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는 광복의 기쁨을 제대로 간직하지도 못하고, 좌익 우익으로 나누어서 서로 다투었습니다. 한쪽은 신탁통치를 찬성한다고 연일 데모하고, 한쪽은 신탁통치를 반대한다고 데모했습니다. 급기야 그 와중에 교회들까지 휘말렸습니다. 서로 다투면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6.25동란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정신차리라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징계를 하신 것입니다.
요일5:4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믿음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무슨 힘으로 일제 36년의 치하에서 벗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선진들의 믿음에 응답하셔서 광복의 기쁨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힘들 때일수록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나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의 능력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에서 믿음의 능력을 세 가지 다른 면으로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능동적인 면으로 설명을 합니다. 믿음은 이기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면서 살아갑니다.
둘째로, 수동적인 면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견디어 내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면서 살아갑니다.
셋째로, 수직적인 면입니다. 믿음은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영원한 본향에서 받을 상을 소망 가운데 바라보면서 이 땅을 나그네처럼, 이 땅을 분토처럼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우리에게 큰 믿음, 반석과 같은 믿음,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능동적인 면에서 본 믿음의 능력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이루어 낸 승리로운 삶을 9가지로 나누어서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차례대로 읽어가면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우리가 무슨 힘으로 광복을 얻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선진들의 믿음에 응답하셔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에 응답하셔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힘입니다.
둘째, "의를 행하기도 하며."
사울 왕은 다윗을 시기해서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계속 쫓겨다니는 가운데 사울 왕을 죽일 수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사울 왕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다윗은 믿음으로 의를 행했던 것입니다.
셋째, "약속을 받기도 하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는 것은 믿음의 힘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들어 늙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그들의 몸은 죽은 자와 방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들에게 대를 이을 아들을 주리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의 믿음대로 그들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믿음의 힘입니다.
넷째,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다니엘은 왕명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다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뢰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사자들의 입을 막아주셨습니다. 그 다음날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올리어졌을 때 그의 몸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힘입니다.
다섯째,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믿음으로 풀무불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남았던 이들이 누구였습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였습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샤랴였습니다. 그들의 바벨론식 이름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였습니다. 역시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여섯째,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의 칼날을 피했습니다. 골리앗은 자기의 칼을 의지하고 나왔다가 다윗에 의해서 자기의 칼에 자기의 목을 베이고 말았습니다. 또 다윗은 자기의 뒤를 쫓는 사울 왕의 칼날을 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믿음을 보시고 다윗의 방패가 되어 주셔서 그 모든 칼날에서 막아 주셨던 것입니다. 믿음의 힘입니다.
일곱째,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믿음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담대하게 왕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는 왕상2:4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 곧 다윗의 후손이 끊이지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를 이을 아들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여덟째,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어떻게 기드온의 300명이라는 적은 수의 인원을 가지고 135,000명이나 되는 미디안 연합군의 진을 물리치고 승리했습니까? 역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내 손에 붙여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나아갔기에 승리했던 것입니다.
아홉째,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때 선지자 엘리야가 기도해서 다시 살렸습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때는 선지자 엘리사가 기도해서 다시 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의 믿음과 여인들의 믿음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든 일을 당했습니까? 믿음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안 됩니다. 결국은 믿음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승리를 안겨 주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우스 때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밀라노 칙령을 선포해서 기독교 신앙의 자유을 인정했던 콘스탄틴 대제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불신자였습니다. 또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몇 개의 교회들을 파괴하기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가만히 살펴보니까, 자기 신하 중에 상당수가 이미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신하들을 불러 놓고 관직과 기독교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더러는 관직을 택하고 신앙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관직을 버리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관직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황제가 그들의 표정을 눈여겨보니까 관직에 머물기 위해서 신앙을 저버린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비굴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관직을 버린 사람들은 모두가 평안한 모습이었습니다.
황제는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결심했습니다. 그는 관직 때문에 신앙을 저버린 신앙의 변질자들을 모조리 내보냈습니다. 그 대신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관직까지도 포기했던 기독교인들을 다시금 불러 그들을 중심으로 해서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인 콘스탄틴 대제 때 로마제국은 밀라노 칙령에 의해서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신앙을 저버리면 안됩니다. 믿음을 더욱더 굳게 잡아야 합니다. 결국 믿음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이기게 하는 힘입니다. 믿음으로 날마다 세상을 이기면서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수동적인 면에서 본 믿음의 능력입니다.

꼬마들에게는 두 발 자전거보다는 세 발 자전거가 더 좋아 보입니다. 더 값진 줄 압니다. 그러나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면서 세 발 자전거보다는 두 발 자전거가 훨씬 더 값지다는 사실을 절로 깨닫게 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어리고 약할 때는 무조건 이기고 승리하면 좋은 줄 압니다.  물론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해 나가면서 사는 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핍박과 환난 속에서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은 더 귀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순교하는 것은 제일 귀한 신앙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35절 하반부부터 우리의 선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당했던 핍박과 환난을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32절 끝 부분에서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35절 하반부에 있는 말씀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그 사례를 다 살펴보려면 우리에게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그저 다시 한번 읽어만 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엄청난 핍박과 환난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자신들의 목숨까지 바쳐서 순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동구 루마니아에 조셉 톤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너무 과격하게 공산주의에 대해서 반대하니까 공산 당원들이 견디지 못했습니다. 결국 공산 당원들은 그를 국외로 추방을 시켜버렸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여러 교회에서 설교도 하고, 신학교에서 강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신학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그럴 때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학의 핵심은 한 마디로 순교입니다. 순교 신학 이외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영생도 믿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순교에 초점을 맞춘 신학과 신앙만이 바른 신학이요, 바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잇을 것입니다."
일제 시대 때 신사 참배에 반대하다가 감옥에 갇혔던 주기철 목사님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모진 악형을 받았니다. 그는 굵은 못이 수 백개 박혀 있는 널빤지 위를 맨발로 걸어가는 악형도 받았습니다. 그는 조금만 자신의 신앙을 굽히고 타협을 하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차히 자기의 목숨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순교하기를 택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35절 이하에 있는 것처럼 더 좋은 부활,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그 엄청난 핍박과 환난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이 그들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놀라운 힘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암에 걸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그 집사님은 목사님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차마 제 아이들 때문에 아직은 죽고 싶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지금까지 이 기도원 저 기도원으로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은사 집회가 있다고 하면 어디든지 부지런히 쫓아다녔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일이 되어도 교회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누구라도 집사님의 경우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 집사님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곧 제가 하나님 앞에 가야 할텐데, 제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기가 송구스럽습니다."
목사님은 가만히 생각하시다가 그 집사님에게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은 이제부터 하실 귀한 일이 있습니다. 물론 집사님은 엄청난 곤궁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아니하고, 이 엄청난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라도 집사님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써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시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신다면 집사님은 인생의 패배자가 아니라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인생의 승리자가 되실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다 이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집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반석과 같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 믿음을 따라서 아름답게 우리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본향에 기쁨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수직적인 면에서 본 믿음의 능력입니다.
히11:38의 상반 절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그렇습니다. 어두움이 빛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하늘나라 본향을 바라보면서 나그네와 같이, 순례자와 같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분토처럼 여기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 세상은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후 4세기 중엽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였던 크리소스톰은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설교도 잘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감화를 끼쳤던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핍박자들의 손에 붙들렸습니다. 핍박자들은 어떻게 하면 크리소스톰을 완전히 패배를 시켜 버릴까를 의논했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그를 깊은 감옥에 가두어서 평생토록 감옥 속에서 썩게 만드십시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반대했습니다.
"안될 말입니다. 그러면 그는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을 가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기도 생활을 힘쓸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를 굶겨서 죽여 버리십시다."
또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는 자동으로 금식 기도를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천국에 가게 되었다고 좋아할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를 불러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데서 심하게 매질을 합시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매를 맞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맞는다고 더 기뻐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화를 벌컥 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그의 목을 당장 베어 버립시다."
그러니까 또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는 순교하면서 영생의 면류관을 얻게 되었다고 오히려 좋아할 것입니다."
그래서 핍박자들은 그 한 사람을 놓고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어두움이 어떻게 빛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서 날마다 나그네의 삶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승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핍박과 환난이 우리를 거꾸러뜨리지 못합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 유혹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분토처럼 여기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의 어떤 순교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믿음을 지키다가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장작더미 위에 올라섰습니다. 재판관은 그에게 마지막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담담한 어조로 재판관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리 가까이 오셔서 당신의 손을 내 가슴에 대어 보십시오. 그리고 내 심장의 박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당신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느끼기에 내 심장의 박동 소리가 지극히 평온하게 느껴진다면 부디 당신도 나처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재판관이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마치 잠을 자러 가는 사람의 심장처럼 지극히 평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순교자는 불 가운데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그 재판관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그 성도의 말과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그 힘, 그 능력, 그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재판관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그 힘은 영원한 하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에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재판관은 마음의 문을 열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믿음의 능력을 세 가지 면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능동적인 면입니다. 믿음은 이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면서 살아갑니다.
둘째로, 수동적인 면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인내하게 합니다. 견디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어떤 환난도 인내하면서 살아갑니다.
셋째로, 수직적인 면입니다. 믿음은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영원한 본향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몹시도 어렵다고 합니다. 국민 개개인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이보다 어려운 일들도 다 이겨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힘이 빠지셨습니까? 사실은 믿음이 빠진 것입니다. 걱정거리가 많습니까? 사실은 믿음이 그만큼 약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잃었을 때 믿음으로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6.25동란이 있었습니다. IMF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우리는 다 극복해 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어려움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데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망하도록 내버려두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을 가지고 믿음 위에 굳게 설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업의 문제, 교회의 문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날마다 승리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매일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축복된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2004년 8월 1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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