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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인정된 사람 (출 3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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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원 목사 (대광교회)

  오늘은 59주년을 맞이하는 광복절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36년간의 생활은 너무도 굴욕적이고 비참한 세월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본권은 완전히 박탈당했습니다. 우리는 강제노동과 징병에 시달렸고, 우리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우리의 민족의식과 문화를 완전히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쓰지 못하게 강요했습니다. 또한 이름까지도 일본식으로 고치게 했습니다. 나라를 잃은 설움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실감했던 시절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인은 ‘신사참배’라는 시련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신사참배란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Shintoism) 사원(寺院)인 신사를 곳곳에 세우고 강제로 참배하게 한 일을 말합니다. 나중에는 천황도 신격화하여 절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일이 학교를 중심으로 시작하더니 급기야 중일전쟁 이후 교회까지 뻗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개교회로부터 시작하여 노회, 총회 등 교단적 차원에서 신사참배를 실행하도록 압력을 가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강압을 이기지 못하고 1938년 9월 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했습니다. 그 뒤 기독교는 급격히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교단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거부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압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주기철 목사’입니다.

  나라의 주권을 잃어버리고 남의 나라의 식민지가 된다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일을 역사에서 경험했기에, 이런 일을 겪은 나라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시기와 방법은 달랐지만, 이스라엘도 나라를 잃어버리고 식민지의 생활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때에 쓰임을 받던 사람이 모세입니다. 우리는 지금 모세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모세는 ‘극복된 사람’인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인정된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인정받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는 그의 인격입니다. 모세의 인격을 가장 잘 알려주는 말씀이 민수기 12장 3절에 나옵니다. 이렇게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이것이 모세의 인격이었습니다. 성경에 사람의 인격을 자세히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은데 모세는 온유한 그의 인격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도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라고 한 것을 보십시오. 그의 인격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그는 인격자중에 인격자였다는 말입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말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에 있습니다. 표준 새 번역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아도 뛰어난데, 그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뛰어난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 겸손한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외유내강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런 인격에서 출애굽이라는 큰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서 도덕책에서 배운 것처럼, 세상에는 3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난 사람, 든 사람, 그리고 된 사람’입니다. ‘난 사람’이란 한마디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이름을 날리고 명예를 얻은 유명인 들입니다. 연예인이 될 수도 있고, 정치인이 될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이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난 사람입니다. ‘든 사람’은 지식으로 성장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똑똑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을 가리킵니다. 유명한 교육자나 또는 지식으로 인류에 공헌한 사람들, 무슨 일에 타의 추정을 불허하는 전문가들이 여기 해당될 것입니다. ‘된 사람’은 무엇이겠습니까? 말 그대로 참된 인격자를 뜻합니다. 많이 배웠다고 남을 무시하지 않고, 많이 가지고 있다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유명하다고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된 사람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먼저 사람이 되고, 그리고 이름도 날리고, 배워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될 때, 좋은 일을 하고, 좋은 남편, 좋은 성도, 좋은 직장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자신을 향한 호칭이 많았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한 것 중에 하나가 ‘인자’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이 말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곧 예수님은 ‘나는 참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격자이심을 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인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따라가는 우리도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도 모두 인격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인격자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중인격자입니까? 모세처럼 인격자로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귀한 부분입니다. 참 사람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격자로서 인정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지도력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지도력은 얼마나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고 존경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60만 장정과 200만의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사실 출애굽의 역사는 이룰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모세의 인격이 특출해도 그것은 인격이지, 지도력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지도력입니다. 처음 모세가 부름을 받을 때 주저한 것도 이 부분이 매우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존경하고, 모두가 따르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잘 이끌 수가 있었습니다. 과연 모세는 지도력의 인정을 받았을까요?

  본문은 그의 지도력을 인정받는 모습을 대표적으로 알려줍니다. 특히 8절에서 잘 보여줍니다.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를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으로 갈 때, 백성들은 모두 다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모세를 바라보았습니다. 백성들은 그를 존경했고, 경의를 표했습니다. 지도자로서 인정한 것입니다. 물론 미워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런 지도력에서 모세는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모세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지도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의 인격도 훌륭했지만, 나중에 그 인격에 흠이 생기게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는 지도자로서, 앞서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본이 된 것입니다.
본문도 그런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그의 삶에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회막으로 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기도하기 위해 간 것입니다. 이것이 백성들이 보기에 좋았고, 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도력’하면, 나는 해당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교회의 중직자도 아니고, 사회에서 사장도 아니고,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인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부름을 받은 순간부터 지도자입니다. 성경의 지도자는 먼저 된 사람입니다. 먼저 믿은 사람, 먼저 경험한 사람, 먼저 깨달은 사람, 먼저 직분을 받은 사람, 먼저 태어나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든지 영향을 주는 지도자입니다.

  우리가 지도력을 발휘하여 사람에게 감화를 주고, 옳은 길로 이끄는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내가 해야 따라 합니다. 본이 되는 것보다 인정받는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이끄는 가장 귀한 영향력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교사로서 학생을 이끄는 힘은 본을 보이는데 있습니다. 사장으로서 사원을 감화시키는 힘은 나부터 먼저 본을 보이면 됩니다. 먼저 믿은 사람으로서, 먼저 직분을 받은 사람으로서의 큰 영향력은 본을 보이는데 있습니다. 내가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앞서 본을 보이는 대로 따라갑니다. 이것이 때론 부담일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룩한 부담이라고 부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우리는 이런 부담을 갖고 삽니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고 공동체의 삶을 이루는 것이 기독교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감동의 말이지만,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기를 본받으라고 하지 않고, 먼저 자신이 주님을 본받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배우고, 본받는 것을 목표로 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는 본이 됩니다. 사람에게 본을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럴 때 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주님을 본받아 가는 하루하루의 삶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본을 보이는 지도력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는 신앙입니다. 본문의 전반적인 흐름은 한마디로 모세의 개인적인 신앙의 모습을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모세는 신앙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본문은 그가 신앙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을 두 가지로 증거 합니다.

  우선, 그가 회막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광야생활은 텐트를 치며 살기에 천막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보통 그들이 광야에서 텐트를 칠 때 주거용으로 치는 것을 ‘장막’ 혹은 ‘초막’이라고 합니다. 장막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요, 보금자리입니다. 그리고 ‘성막’이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고, 신실한 사람들에 의해 성막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성막은 나중에 성전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회막’이 있습니다. 회막은 장막과 구별되고, 성막과도 구별되는 곳입니다. 이곳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고요히 하나님과 묵상하기 위해 지어진 일종의 오늘날 기도원과 같은 처소입니다. 지금 모세가 바로 그 회막으로 가고 있습니다.

  둘째, 11절을 통해 그의 신앙을 증거해 줍니다. 여기에 보면 모세는 ‘사람이 마치 그 친구와 대면하여 이야기함과 같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강조합니다. 여기 ‘대면’이라는 말은 모세가 실제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친밀했고,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했습니다. 그가 회막을 찾은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말하기를 즐겼습니다. 성경에 그 어떤 사람도 친구와 이야기하듯 하나님과 친밀함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다윗도, 심지어는 영적인 능력을 행하던 엘리야도, 여기 친구처럼 하나님을 대면하지는 못했습니다. 성경에 오직 모세만이 가진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무엇보다도 인정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인데 신앙을 빼놓고 무엇을 말할 수 있습니까? 신앙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에 치중해야 합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만든 유명한 책 가운데 ‘순교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김은국씨라는 분이 썼는데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알려진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용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마을에 14명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인민군이 그들의 마을로 들어와 이들을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 살려 두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이들은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죽을 각오를 합니다. 그러다가 인민군 장교는 한사람씩 개별 심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꾀를 썼습니다. 오는 사람마다 모두 앞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너도 거부하면 살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12명이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그러던 중 국군이 오게 되었습니다. 후퇴하면서 북한군 장교는 14명중 하나님을 부인한 12명을 총살시켜 죽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킨 2사람을 살려 주고 떠납니다. 이제 피난 갔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12명이 죽고, 2명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오해를 합니다. 12명은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사람들이고, 살아 있는 2명은 배신자로 보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비난합니다. 죽여야 한다고 소리를 칩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합니다.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과연 누가 진정한 순교자입니까?

  모세는 인정된 사람입니다. 인격과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특히 신앙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도 모세처럼, 그리고 앞서간 신앙의 선진들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된 사람이 되어,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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