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장 강한 십자가 (요 18:1-11)

  • 잡초 잡초
  • 247
  • 0

첨부 1


- 강재식 목사 (구미등대교회)

☞본문: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이냐?'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가장 강한 것은 돌이다. 그러나 돌을 깨뜨리는 것은 쇠다. 쇠를 녹이는 것은 불이다. 불을 끄는 것은 물이다. 물은 구름에 흡수되어 버린다. 구름은 바람에 날려간다. 바람은 사람을 어찌하지 못한다. 사람은 죽음을 향해서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런고로 죽음이 가장 강하다. 죽음보다 강한 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죽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상징이요 심볼인 십자가는 알고보면 그리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험한 것이 십자가요, 보기 흉한 것이 십자가요, 다시없었으면 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그런 험하고, 흉한 것으로 보기보다, 낭만적이고, 심플하고, 쌈빡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말씀을 그리 심각하게 듣지 아니하고 가볍게 들어 넘기고, 그 말씀에 대한 의미를 깊이 있게 되새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괴롭고, 험하고 흉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온갖 저주, 멸시, 천대, 조롱, 고통등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다 포함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거웠습니다. 쓰러지고 또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지신 그 무거운 십자가는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구원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 된 줄 믿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런 흉악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물론 우리 죄가 그렇게 흉악했고, 우리가 받을 진노가 그리 컸기 때문에 그것을 대신하기 위해 그런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군인들에게 붙잡히실 때 베드로는 칼을 빼들고 그들과 싸웠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말리시며 말씀하시기를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11)

아버지께서 마시라 하시는 잔이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고난의 잔을 마셔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시지 않아도 됩니다.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당신을 잡으려는 자들을 격퇴시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운 것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땀 속에 피가 섞여 나올 만큼 간절히 기도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결론은“나는 져야할 이유가 없지만 아버지께서 지라 하셨기에 져야 된다.”고 하여 그 아픈 십자가 포기하지 않고 졌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라하신 십자가는 바로 그 험악한 십자가를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가볍게 질 수 있는 그런 십자가를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곧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과 아픔과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즉 수고와 노력과 재정적인 소비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의 죄사함이 이루어졌다면, 나의 십자가를 통해 유혹해 오는 죄를 이기는 능력이 되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믿고 구원함을 얻을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또한 십자가 지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십자가는 바로 죄를 이기는 능력이요. 죄를 짓게 유혹하는 마귀를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이고, 십자가는 곧 죽은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됩니다. 내가 십자가 짐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최고의 능력이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지라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져야할 그 십자가는 흉악한 십자가가 아니고, 아주 쉽고, 가볍게 새끼손가락 하나만이라도 들 수 있는 심플하고 쌈빡한 십자가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예수께서 나보고 지라고 주신 십자가도 흉하고, 무거운 십자가요, 마시라고 하신 잔 또한 여전히 고난의 잔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그런 십자가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런 십자가를 지기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을 생각하고, 십자가 없는 교회를 선호하고, 십자가 설교 하지 않는 목사를 선호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고 중요한 주님의 명령이지만 대충 넘어갔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제가 금요기도회에도 말씀드렸지만 요즈음 우리 교회를 포함한 교회들이 예수 믿지 않는 90%에 목숨걸지 아니하고, 믿는 10%에 목숨 걸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교회의 부흥된 교회의 특징은 수평이동의 교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믿는 교인이 이사를 오면 그 사람에게 세일작전이 펼쳐집니다, 무슨 세일입니까? 소위 “십자가 세일”입니다. 우리교회는 십자가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십자가가 가볍고, 심풀합니다. 즉 적은 노력으로 큰 은혜 받고, 큰 복 받습니다. 

실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선정하는 기준은 적은 노력으로 큰 은혜 받는 교회를 선호합니다. 주일예배 한번만 참석해도 일주일 너끈히 살 수 있는 은혜를 구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게 값싸게 얻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값싸게 얻은 것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지만, 내게 지워진 십자가지지 않고 은혜만 누리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십자가는 희생입니다. 복음전파를 위한 나의 희생입니다.

희생은 나의 몸으로 바치는 헌신이요. 내게 주어진 시간을 교회와 이웃을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요. 내게 주어진 물질을 교회와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 주는 것입니다.

교회오면요! 시간내야지지요! 내 돈 내야지요! 몸으로 봉사해야지요! 인간적으로 볼때 손해가 이만 저만 아닙니다. 여러분 그 손해가 곧 십자가지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내것이 그렇게 희생되어지는 것이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희생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선택할 때 이런 희생이 적은 곳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세일하는 곳을 찾습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는 세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빡시게 져야 합니다. 십자가의 세일은 곧 은혜의 세일입니다. 복의 세일입니다. 은혜가 세일되고, 복이 세일되면 되겠습니까?

빡시게 십자가 지면 손해볼 것 같지만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덕이 되고, 나도 큰 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임을 믿으세요.

십자가는 힘에 겹게 지는 것입니다. 쓰러지고 또 쓰러질 만큼 무거운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 오면 헌금 많이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힘겨운 헌금이 얼마나 많은 영혼을 살리는지 모릅니다. 헌금 강조하지 않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그것은 성도들에게 십자가를 세일하는 것이 되어 은혜도 복도 차단하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 헌금뿐 아니라 봉사 빡시게 하고, 몸도 시간도 아낌없이 희생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십자가 없이 사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복이 없는 자인지!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오만합니다. 교회를 이리 저리 옮겨다니면서 V.I.P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조금만 거슬리면 떠납니다.

시편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다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않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

오만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행동하는 것 아닙니까? 교회 가서도 내가 희생할 생각은 안 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합니다. 오만이나 교만을 말할 때 뒤에 만(慢)자는 게으를 만자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자기희생이 없이 놀고먹으려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복이 없는 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복 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희생 즉 십자가지는 삶은 곧 복 있는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베버라는 신학자는 말합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관심을 두면서도 이 세상의 원리에 굴복하지 않고 더 높은 초월적 기준으로 이 세상을 조명하면서 더 나은 세계 즉 하나님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만 한다. 복음에 대한 정직과 원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성공은 최악의 실패다. 목회사역은 속도전이 아니라 올바른 기초위에 올바른 신앙정신으로 건축하는데 있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초월적 기준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복음의 정직과 원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 올바른 신앙정신은 곧 십자가를 지는 삶을 말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교회가 이루어질 수 없고, 성도의 신앙이 바르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십자가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지라고 하셨기에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서 지라고 하신 것을 내가 지지 않겠느냐!”하시고 빡시게 지고 가셔서 십자가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