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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브라가의 축복(대하 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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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창인 목사 (광성교회)

모압자손과 암몬자손 그리고 세일산자손, 즉 에돔 자손이 연합하여 유대나라를 쳐들어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쳐들어왔는지 유대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수적으로 싸움이 전혀 안되었습니다. 워낙 적군의 수는 많고 유대인의 수가 적기 때문에 싸워봐야 싸움 자체가 안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호사밧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 일이 뭔가? 그런 상황 하에서 할 일은 세 가지였습니다. 저 사람들과 더불어 싸우다가 패하게 되면 종이 될 수도 있고 도망을 가거나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디 가서 도움을 청할 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이런 상황 하에서 세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로 기도했습니다. 3절에서부터 보면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또 12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 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하고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문제가 심각하면 이러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모든 백성들이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들, 어린아이들까지 전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라는 자세를 갖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할 일이요 도우심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일으키시리라는 말씀도 같은 뜻을 지닙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하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 혹은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 또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고 할 때 할 일은 오직 위만을 쳐다보는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두 번째는 찬송을 했습니다. 지금 유다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그런 상황 하에서 누구가 찬송을 부르라 한다고 해서 부르겠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찬송을 부를 수 없는 상황 하에서는 아무리 돈을 주면서 부르라 해도 부르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찬송을 부를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기도했더니 응답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받은 응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전쟁이 너희들에게 속한 줄로 아느냐 내게 속하였으니 너희들은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라는 것입니다. 싸움은 내가 하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의 결과는 이미 다 판가름이 났다는 말입니다. 이런 응답을 받고 보니 급박한 상황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반드시 응답을 주실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위기는 계속되고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데도 찬송을 부릅니다. 다른 사람은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나 받은 자밖에 모릅니다.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미치고 돌았다고 해도 분명히 응답을 받았기 까닭에 찬송을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 성경을 보면 사건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15절서부터 19절을 보면 "야하시엘이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큰 무리를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저희가 시스고개로 말미암아 올라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어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여호사밧 왕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그핫자손과 고라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찬송을 누구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선지자를 통해서 전쟁은 너희가 할 것이 없으니 너희는 잠잠하고 구경할 장소만 알아 놓으라는 겁니다. 그리하면 싸움은 내가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 같은 응답을 받고 찬송을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앞으로 1년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런 어려운 상황이 없다고 단정 못합니다. 그런 경우 먼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본문에 말씀과 마찬가지로 꼭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찬송을 부르라 안 해도 찬송이 저절로 나온다 그 말입니다.

세 번째로 한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20절을 보면 이에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아가니라. 나아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신뢰하라는 것은 믿고 맡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싸우겠다고 하셨으니 생사를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시오"라고 맡기는 겁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짐을 받을 때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합니까? 어찌할 방도가 전혀 없을 때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맡깁니다 하고 맡겼더니 사자 굴에 천사가 먼저 와있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인생을 맡기는 겁니다. 어린아이들이 등록금 통지서를 받아오면 부모에게 맡기고 자기 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도 돌봐주고 우리의 사업을 더 잘 지켜주고 우리의 인생을 크게 키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할일 세 가지를 열심히 하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1년 동안에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기도하라, 찬송하라, 의뢰하라는 말씀을 그대로 지키어 살면 다음과 같은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I. 형통의 복(20하-23)

20절 하반절을 보면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전도하는데 귀신들린 여자를 만났습니다. 점을 치는 귀신이 들린지라 점을 잘 쳤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돈을 많이 벌기는 버는데 돈 먹는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여자가 너무도 불쌍했습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구가 먹는 식이었습니다. 점치는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점을 칠 수 없게되고 수입이 끊어졌을 때 주인들이 동네 사람들 즉 빌립보 사람들을 충동시켜 소란을 피우고 바울을 걸어 고소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무수히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방을 보니 뚫고 나갈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기도하고 찬송했지 기도 없이 찬송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기도한 후에 응답 받고 찬송 불렀다는 뜻입니다. 응답 받았으니 찬송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니 응답 받았다는 말씀이 없어서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찬송을 불렀더니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렸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문이 열린 것입니다. 간수장이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이 도망을 갔습니까?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응답을 못 받았다면 "이때다" 하고 도망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이 다 열렸지만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죽지 않고 살아 나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당히 여기 앉아있으면 나를 모셔 내보낼 때 나간다는 태도입니다. 간수가 자결해 죽으려고 할 때 그런 짓을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외쳤습니다. 간수장이 와서 넙죽 엎드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너의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대답에 그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모셨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기어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기에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당당히 걸어나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날이 밝고 상부에서 지시가 왔는데 바울을 빨리 내보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치! 당당히 나왔습니다. 바울이 그런 상황에 놓였을 적에 기도하고 응답 받고 찬송 부르니 문이라는 문은 다 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형통이 아닙니까 문제가 풀렸고 문이 열렸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같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그렇게 많은 숫자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꼼짝없이 망했구나 싶지만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신뢰를 했더니 깨끗이 이기지 않았습니까? 이 한해동안 꼭 기도하고 응답 받아 찬송을 부르고 신뢰하므로서 하나님이 열어주시고 해결해주시고 풀어주시는 형통의 축복이 꼭 있기를 바랍니다. 형통이 첫 번째의 축복입니다.

II. 재물의 복(24-26)

24절에서 26절 상반절을 보면 "유다 사람이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 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여호사밧과 그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취할 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는 고로 각기 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동안에 취하고 제4일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내용이 무엇입니까? 암몬자손, 모압자손, 그 다음에 세일산자손 이 각각 자기 백성에게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군량물자, 전략물자든 필요로 하는 것은 몽땅 싣고 전선으로 나간 겁니다.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싸우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형통함 주시매 모압과 암몬 족속이 합하여 세일산 자손을 공격하고 죽였습니다. 세일산 자손을 다 죽이고 난 후에는 모압과 암몬사이에 생사결단의 싸움을 하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죽였습니다. 결국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습니다.

즉 내분 까닭에 연합군은 스스로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산더미같이 쌓인 전략물자는 고스란히 이스라엘 수중에 들어왔습니다. 멸망시키고 빼앗으러 왔던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도움만 주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그물자가 많은지 3일 동안에 걸쳐서 거두어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묘합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동안에 직장에서나 사업에서나 학교에서나 대적하는 적대자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우리를 해치려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도움만 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의 고난이 가져다준 축복은 물질의 축복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가난하게 살아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광성교회 교인들이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 새해에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하나님께 실컷 바치고 이웃에게 실컷 베풀고 실컷 누리고 그리고도 남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예배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신년 정월 초하루 첫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시작하는 것과 축복을 받지 못하고 시작하는 것은 결과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이삭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의 아들에게 쌍둥이 아들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시작했으나 시작은 심히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엄청난 재산을 유산으로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그 대신에 축복은 받고 시작했지만 맨 주먹 이었습니다. 맨손 쥐고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축복은 받지 못하고 재산은 엄청나게 가지고 시작한 에서와 축복을 받고 시작한 야곱 중에 누가 잘되었습니까? 나중에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는 천하가 다 아는 갑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자기형 에서에게 오히려 한떼 두떼를 떼어주었습니다. 그 형에서의 족속이 본문에 나오는 에돔족속이요 나중에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패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셨습니까? 거기에는 야곱이 가져올 재산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가져오라고 보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야곱처럼 새해 첫 시간에 축복을 받고 시작하면 오히려 야곱처럼 어려운 일을 먼저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축복을 가지러 가게 될 것입니다. 본문이 금년에 여러분들에게 약속하시는 축복입니다.


III. 승리의 복(27-28)

27절 말씀에 보면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여호사밧을 선두로 즐거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유대사람으로 하여금 그 적군을 이김을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는 그들의 몫으로 돌아갔지만 싸움은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싸워서 주신 승리, 선민은 구경만 하면 된 승리, 이 승리를 주셨기에 즐거움이 넘쳤습니다.

한번은 다윗이라고 하는 소년이 전쟁터에 나가봤더니 골리앗이라고 하는 블레셋 대장으로 구척장신이요 배틀 채 같은 창을 가지고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백전 노장과 싸움이 안 되는 싸움을 싸웠습니다. 다윗이 그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다"라고 시편에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옛날에 전쟁은 활로 쏘고 창을 던지며 싸웠습니다. 방패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창을 던질 적에는 방패를 잡고 창을 던지지만 활을 쏠 때에는 두 손을 가지고 쏘기 때문에 방패를 잡아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분명히 골리앗 대장은 구척 장신이요 백전노장으로 싸우러 나올 때에는 방패 잡이가 그의 앞에서 방패를 잡아 주었습니다. 그런 장수 앞에 방패 잡이가 보통이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물매 돌을 던졌더니 그 방패 잡이가 그것을 막아내지 못했고 골리앗 대장은 보기 좋게 죽어 넘어졌습니다. 그때 다윗은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의 방패 잡이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창이 날아와도 화살이 날아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미쳤다고 하지만, 또 싸움이 안 되는 싸움이라고 하지만 승리는 누구에게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막아주시고 도와주시는 다윗의 편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나라 연합군이 공격해 올 때 싸움이 전혀 안 되는 싸움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막아주시니 안전했고 하나님이 되게 하시니 됐고 하게 하시니 했고 승리하게 하시니 승리했습니다. 이 한해를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감당키 어려운 도전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에 정직한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방패가 있는 한 싸움이 안 되는 싸움에서도 꼭 승리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Ⅳ. 평안의 복(29-30)

29절과 30절을 보면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한 고로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 하나님이 사방에서 저희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평강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는데 누가 빼앗습니까?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는데 누가 훼방을 놓습니까?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는데 누가 해를 끼칩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도단 성의 엘리사를 보십시오 아람나라 군대가 쳐들어 왔다가는 패하고 또 쳐들어 왔다가는 패하였습니다. 아람 왕이 노하여 너희 중에 유다와 더불어 내통하는 간첩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어느 신하가 임금님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도단 성에 가게되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는데 임금님이 침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까지 다 알고서 자기 왕에게 알려줍니다. 아람나라 군대가 쳐들어가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기습을 하니 견딜 재간이 있습니까? 미련한 아람 왕은 군대를 보내어 도단 성에서 엘리사를 잡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밤새도록 달려온 아람 군대가 도단 성을 에워쌌습니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엘리사를 시중 들던 게하시가 나가 보고는 공포에 질려 엘리사에게 달려 왔습니다. "아람나라 군대가 에워싸고 진격해 들어옵니다. 죽게 되었습니다" 라고 보고할 때 엘리사는 "걱정하지 말라. 저들과 함께 한 자보다 우리와 함께 한자가 더 많다"고 게하시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이 사람의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하고 간구했습니다. 신령한 눈이 열렸습니다. 불 말과 불 수레, 즉 천군 천사들이 지켜 주는데 아람나라 군대 보다 워낙 많았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똑같은 환경에서 그들이 취한 입장은 전혀 달랐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평안하였고 기도하지 아니한 사람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아람나라 군대는 불 말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불 말을 보고 있는 주의 종, 기도하는 사람은 적군이 들어와도 평안합니다. 그리고 아람군대가 내려왔을 때 하나님이여 저들의 눈을 어둡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더니 모두 눈이 멀어 버렸습니다. 엘리사를 붙잡지 못하고 오히려 사마리아 한복판까지 끌려와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완전히 승리한 겁니다. 그리고는 실컷 먹여서 돌려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도단성,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사람, 십만 군대도 감당을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하나님께서 태평함을 주시니 사방이 평안하더라고 본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 방면에 평안을 주시면 한쪽으로는 불행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사방에 평안을 주시면 완전한 평안입니다. 마음의 평안 즉 심령의 평안, 생활의 평안, 육신의 평안, 가정의 평안이 사방의 평안입니다.

금년 한해동안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고난이 닥쳐온다 하여도 하나님만 의뢰하고 기도하십시오. 찬송의 결과가 있을 겁니다. 유다의 브라가 축복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는 형통의 복입니다. 둘째는 재물의 복입니다. 셋째는 승리의 복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평안의 복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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