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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배들의 믿음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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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흥준 목사 (전주광성교회)

지난해에 있었던 수능시험장에 풍경을 보도하는 TV 뉴스가운데서 후배들이 시험치는 선배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학교에 정문에 내 걸었던 그 현수막 중에 <선배님들 능력을 보여주세요>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이 선전문은 월드컵 당시 <히딩크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하는 그런 선전 문구를 빌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 현수막을 뉴스를 통해서 보면서 <선배와 능력>이란 두 단어가 제 마음속에 새롭게 들어왔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배들의 중요성과 능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배가 왜 중요합니까? 선배는 후배가 따라가는 목표요, 인생의 길잡이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후배는 선배의 발자취를 뒤따르며, 더 나아가서는 선배를 극복하고, 또 선배를 넘어서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후배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만나고 따르고 싶어하는 선배들은 능력이 있는 선배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능력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전수 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은 뭐냐 면 그것은 믿음의 능력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11장은 바로 이런 믿음의 능력으로 우리보다 앞서서 인생을 살아간 선배들의 믿음을 보여 주고 있는 장입니다.

미국에 가면 스포츠 스타들, 영웅들을 기리고, 또 그들의 업적을 전시하여 후세에 남기기 위한 소위 <명예의 전당>이라는 곳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선배들의 명예의 전당이라고 일컬을 수가 있습니다. 서론 격인 히브리서 11장 1-3절은 우리의 선배들이 붙잡고 살아간 그 믿음의 능력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세 가지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게 하는 것입니다.

한 미디로 말하면 <믿음이 희망>이라는 말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이 희망의 근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실상이라는 단어의 뜻은 <설 수 있도록 아래서 받쳐준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우리가 바라고 있는 것들을 바쳐 주는 근거, 기초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희망의 기초요, 희망의 근거다란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더 이상 앞으로 나 갈 수 없도록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절망의 벽을 만난다든지, 더 이상 건널 수 없는 절망의 강 앞에 우리가 부딪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절망의 벽이나 절망의 강을 넘어 건너갑니다. 왜하면 그들은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래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루에서 살았습니다. 갈대아우루라는 땅은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느 날 갑자기 절망의 땅인 고향을 등지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을 향해서 떠나가기로 모험적인 결단을 합니다. 그 이유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희망의 땅,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서 그는 나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희망의 땅, 약속의 땅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었고,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땅을 향해 나간 것입니다.

이렇게 나갔던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서도 크고 작은 삶의 시련들은 계속되는 중에 가장 큰 시련은 <자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고대시대에서는 자식이 없다는 것은 일종의 절망의 극이었습니다. 왜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로마서 4:18절에 보시면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이런 믿음 때문에 아브라함은 우리들의 믿음의 조상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혹은 믿음의 선배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선진들>이란 <조상들, 선배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진정한 선배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바로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살수가 있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 이 믿음이 바로 우리의 희망의 근거입니다.

매우 희귀한 병명을 가지고 살았던 박진식 청년이 쓴 책이 있습니다. 그 병명이 <부갑상선 기능 항진에 의한 각피 석회화증>이란 긴 이름을 가진 회귀 병입니다. 쉽게 말하면 <온몸이 돌처럼 석회화(돌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병의 원인은 우리의 몸 안에서 칼슘이 과잉 생산될 때에 그것이 뭉쳐져 가지고 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독한 병입니다. 이것이 8살 때에 발병을 했습니다. 발부터 시작해서  허리 가슴, 머리 나중에는 심장과 폐까지 마치 돌처럼 굳어져 버리는 그런 지독한 병이라고 합니다. 22년 이상을 그는 죽어 가는 자기 육신을 붙들고 병과 싸움을 사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더 이상 일어설 수 없도록 쓸어져 버리던 날 그는 절망을 거부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자기의 절망 앞에 도전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①자기를 사랑했던 어머니를 위해서도, ②또 자기를 지켜보고 있던 이웃을 위해서도, ③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도구가 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 절망을 거부하고 절망 속에 희망을 붙잡기로 그는 결심을 합니다. 한 손으로는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한 권의 베스트 셀러를 탄생시킵니다. 무려 30개월 여 만에 원고지 800장 속에 자기의 고통의 이야기를 탈고합니다.

그런데 SBS에도 휴먼 드라마에도 소개되었습니다. 그의 이야기의 책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신앙 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독한 고통과 절망을 대결하면서 서서히 마침내 욥의 믿음을 갖게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고통 앞에 의연한 모습으로 대결하는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게 하는 것>입니다. 또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랄 뿐만 아니라

2. 두 번째는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희망입니다. 믿음은 비전입니다. 비전이란 것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 그게 바로 비전입니다. 믿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능력일 뿐만 아니라 믿음은 또한 비전이요, 창조하는 비전이라고 오늘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보이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그 약속의 땅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는 바를 따라 확신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비전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요>라고 말합니다. <증거>란 단어는 헬라어로 <엘렉코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내적 확신> 강렬한 확신을 뜻하는 말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없는 것에 관한 강렬한 내적인 확신이라고 합니다.

② 여러분 신앙의 한 선배였던 노아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 홍수심판을 예고합니다. 그 홍수는 보이지 않는 미래였습니다. 120년 후에 나타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홍수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노아는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눈에는 온 세상이 홍수에 잠겨버릴 세상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보는 것입니다.

③ 여호수아를 생각해 보십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은 다음에 그는 그 백성들을 이끌고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돕니다. 왜요? 여호수아의 눈에는 무너진 여리고의 성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믿음은 보는 것입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바로 비전입니다. 믿음은 바로 이 비전의 산실인 것입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3. 셋 번째로 믿음을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지하다면 그 믿음은 반드시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선진들이(우리의 선배들이) 이로서 바로 믿음으로서 증거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증거>라는 단어는 <법적인 효력이 있는 증거라>는 말입니다. 확실한 증거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심증이 아니라 물증입니다. 믿음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믿음은 좋은 확실한 구체적인 결과를 가져 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① 요셉을 생각해 보세요. 요셉은 죽을 때에 믿음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유언을 했습니다(히 11:22). 요셉은 믿음으로 자기의 죽은 후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땅을 떠나 시온의 땅으로 떠날 것을 믿음으로 유언을 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던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바로 시온의 땅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을 알았기에 그는 마지막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그 약속을 믿음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불가능한 사실을 유언하고 있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그의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시온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② 모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애굽에서 당시 상황으로는 유대인 부모가 아들을 낳았을 때에 지체 없이 나일 강가에 버려야 하는 바로의 명령이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시면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바로의 명령을 거스리고 목숨을 걸고 그 아들을 키우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리고 과연 그 아기 모세가 장성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는 엑스더스의 주인공이 되는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할 수가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믿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마침내 거의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소개했던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에 저자 박진식씨도 처음에는 자기 의지로 이 싸움을 시작했지만 그는 결국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의 자리에 서고야 맙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지금 견고하게 서 있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히브리서 기자는 좀더 설명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것이 바로 3절의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나 것으로 된 것이 아니니라>우리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 가장 경이로운 것, 가장 위대한 것, 가장 거대한 것은 바로 눈에 보이는 세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발단된 현대의 과학이 아직도 그 미스터리를 벗겨내지 못하고 있는 이 거대한 우주, 이 거대한 이 세상을 히브리서 11장 3절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이 거대한 세상은, 이 거대한 세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말씀입니다.

③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능력을 보여줄 차례가 되었습니다.
너무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세상에 잡다한 소리만 듣지 마세요. 그것 때문에 여러분은 지쳐 있습니다. 피곤해 있습니다. 주저앉아 있습니다. 이제 당신을 만드시고,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 속에서 말씀을 한번 들어 보세요. 그 분이 주님이라고 여러분 고백하지 않습니까 주여 라고 고백하는 내주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말씀이신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과 나의 죄와 절망을 끌어 앉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삶과 새로운 비전을 주시기 위해서 다시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믿음을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스도! 우리의 주인 되신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 말씀을 신뢰하십시오. 그 말씀을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행동을 시작하십시오.
그렇다면 오래지 않아 당신 앞에 버티고 있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홍해의 바다가 갈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이 수난 당하신 사순절 계절에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므로 우리 안에 사랑과 감사와 비전이 회복되는 계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저자 박진식 형제가 그가 이 고통의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배웠던 가장 주요한 두 가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을 ①비전 꿈, 그리고 ②감사  두 가지였다고 그는 이 책에서 기록합니다. 이 책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하여 절망하신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를 읽어 부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꿈 꿀 수만 있어도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참담한 현실에 처해 있을지라도 살아있는 한 꿈은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울지 마십시요>라고 첫 페이지에 기록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끝머리 부분 <마침내 맞이한 내 안에 신앙>이란 장에 보면 그가 참된 신앙을 가지고 깨닫게 된 첫 번째 가장 소중한 것은 감사의 교훈이었다고 말합니다. 들어보세요
<내가 아픔으로 깨달은 것은 감사였다.
밥을 삼키기 힘겨워졌을 때 단지 음식물을 삼킬 수 있음에 감사가 우러나오고, 숨쉬기가 힘겨워졌을 때에 단지 고른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가 우러나오고,
중 장애인이 되었을 대에 단지 한 손가락, 한 손이라도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가 우러나오고,
온몸이 중증의 돌 인간이 되었을 때 단지 머리와 몸통만 정상이어도 감사하다는 것을 나는 뼈에 새겼다.
하나 덧붙이자면, 평형기관 마저 손상되었을 때 나는 어느 생명체에게나 당연하게 여기지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 절절히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줄은 이런 한마디의 고백으로 끝납니다.
<끝으로 제가 아직도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 드립니다>.
믿음이 그에게 꿈을 주었고, 감사를 선물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동일한 믿음을 키우는 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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