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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광복의 길 (롬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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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찬 목사 (전주동부교회)

세계적인 문호 헤밍웨이는 1953년에 발표된 영웅적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한 쿠바의 늙은 어부가 대어(大魚)를 잡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과 자기 극복으로 과감하게 죽음과 대결하는 인간의 존엄성이 담긴 이 작품은 5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5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61년에는 카스트로 혁명때 쿠바에 갔다 돌아와 엽총으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유서에서 그는 자살의 이유 중에 한 가지를 자신의 영혼은 필라멘트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고 어둡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지성과 문학적인 재능으로 빛나던 그의 정신 깊은 곳에는 자살로 탈출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필라멘트 끊어진 전구의 어두움 같은 것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좌절과 불안과 절망과 죽음의 어두움은 아무리 문을 꽁꽁 걸어 잠근다고 해도 그 어디에나 스며들게 마련입니다.

인간실존 어디에다 이 어두움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두움은 지성으로 밀어내 지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이나 높은 지위로도 몰아낼 수가 없습니다.
큰 소리로 명령을 하고 폭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어두움은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 어떠한 것도 인간의 내부와 삶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어두움을 몰아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은 오직 빛 밖에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은 자연히 자취를 감추고 물러가게 됩니다. 그러나 빛이 없으면 자연히 어두움이 자리잡기 마련입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 코화 산맥에 있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2500피트의 계곡에는 자생 종려나무들이 장엄하게 솟아 있습니다. 수년 간 식물학자들은 어떻게 열대 식물인 이 나무들이 어둡고 가파르고 경사진 좁은 협곡 뒤편에서 그것도 하루에 2시간 동안만 햇볕을 볼 수 있는 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침내 학자들은 계곡의 암벽이 충분한 햇빛을 반사해 주고 또한 암벽이 하루 동안의 따뜻한 열을 충분히 저장해 주고 있음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 나무들이 자랄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종려나무처럼 하나님과 가깝게 친교하면서 살아가는 믿는 자들은 어두움의 압박과 열악한 환경을 잘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사람들의 반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를 빛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겪은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빛의 충만함을 발견하고 풍성한 간증의 잎들과 지극한 찬양의 열매를 맺습니다. 번영이라는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고통이라는 좁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아름다운 ‘의의 나무들’이 됩니다. 우리의 힘이 되시고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기초를 둘 때, 우리는 코화 산맥의 종려나무들처럼 무성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예화뱅크-자생 종려나무)

  그런데 살다보면 나름대로의 어두움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아킬레스 건은 발꿈치의 뼈 위에 붙어 있는 힘줄로서, 인체에서 가장 튼튼한 힘줄입니다. 그러나 그에 걸맞지 않게 알킬레스 건은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불사신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고사에서 유래하는데 유일한 약점인 이 힘줄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전설로부터 <치명적인 약점>을 뜻하게 되었다합니다.  라틴어 이름이 아킬레스이며, 프티아왕 펠레우스와 여신 테티스의 아들입니다. 어린 시절, 바다의 신 테티스는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저승의 강 스틱스에 적셨으나, 그때 잡고 있던 그의 발뒤꿈치만이 젖지 않아 불사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친구인 파트로클루스가 출전하였다가 적장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하자 아킬레우스는 격노하여 어머니에게 부탁하여 화신(火神) 헤파에스투스에게서 새로운 무구를 만들어 받아 이튿날 무장하고 전쟁터로 나가 얼마 뒤 원수 헥토르와 대결하여 그를 죽이고, 시체를 전차에 매달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모욕합니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바로 그 발꿈치를 맞아서 어처구니없이 전사하고 맙니다. 유일하게 불사가 아닌 조그만 부분, 발꿈치가 약점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합니다.

아킬레스 건(Achilles tendon)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는 분이 혈기를 많이 낼 수도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화투와 노름을 끊지 못합니다. 명 예, 돈, 정욕에 약합니다. 이 아켈레스 건 같은 어두움을 빛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라고 합니다.

어거스틴은 옛 아프리카 북왕국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aste)에서 AD 354년 11월 13일에 태어났습니다. 부친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로서 로마제국의 관리였고, 모친 모니카는 철저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호탕한 기질이 있어 17세의 나이로 여인과 동거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키케르(Cicero)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고 철학에 흥미를 느껴 바벨론 종교와 헬라 철학과 인도 사상이 종합된 이단 마니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회의를 느끼고 어머니와 동거했던 여인과 아들의 만류도 뿌리친 채 로마로 갔습니다. 밀라노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암부로시우스 주교를 만나 그 인생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교의 따뜻한 사랑에 감화를 받아 세상의 명예와 육신의 정욕에 얽매인 삶을 청산하고 새롭게 살아야 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애굽의 수도사 인토니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집 정원 무화과나무 밑에 주저앉아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주여 당신은 영원히 나에게 진노하십니까? 나의 이전의 죄를 기억치 마옵시고, 이 시간에 내 불결이 끝나게 해 주소서!」하고 번민과 고뇌 속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하늘로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집어 들고 읽으라"(tolle lege)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옆에 있는 성경을 들고 펼쳤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을 읽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의 마음속에 큰 광명으로 비춰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종교개혁가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세상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로마서 1장 17절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그 말씀한마디가 그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으며 마침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유명한 선교사 리빙스턴이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선교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도 마태복음 28장 20절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는 주님의 말씀이 그를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 약속을 굳게 믿고 주어진 사명을 다함으로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존 뉴턴이라는 유명한 노예상인이 있었습니다. 아주 잔인하고 혹독하기로 유명했던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되어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아유도 말씀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애굽의 종 되었던 것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구속하는 자임을 알라"는 신명기 15장 15절 말씀을 읽는 순간 애굽의 사슬에 갇혀 노예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형편이 바로 자기 자신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구원자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그가 말년에 지었던 찬송이 그 유명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입니다. 


  비춰 주신 빛을 따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미 7:9)라고 합니다.

한 청년이 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무단 횡단을 했습니다. 달려오는 택시에 부딪쳐서 정신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었습니다. 다리는 부러지고 머리는 깨졌습니다. 급히 뇌수술을 받았는데 뇌를 열어보니까 오른쪽 뇌가 거의 다 뭉개져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달려와 이 아들을 보고 하염없이 우는데 의사가 말했습니다. “수술을 해도 가능성 희박합니다. 너무 기대하지 마십시오.”  절망적인 상태에서 담당 의사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 어머니는 의사에게 그래도 최선을 다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죽으면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시체도 해부용으로 기증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부탁을 하고 그 어머니는 곧장 기도원으로 갔습니다.

아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식물 인간으로 있을 바에야 차라리 천국으로 데려가시고, 혹시 살려주시면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겠습니다. 죽으면 천국이요, 살면 영광이요, 좌우간에 선택하게 하옵소서.” 그때서부터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한편 중환자실에서는 점차 의식이 깨어나는 이 청년을 보고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점점 신속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영양이 공급됩니다. 호흡이 돌아갑니다. 피도 잘 돌아갑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일주일 동안 기도하고 내려오니까 아들이 중환자실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의사도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그 일주일 동안,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새 생명으로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이 청년은 교회에서 성가대도하고 청년부로 활동했지만,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었는데 병원에서 8개월만에 퇴원하면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 죽을 생명을 살려 주셨으니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결심하고 주의 종이 되기 위해서 준비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세리 마태나 삭개오 사마리아 여인 등이 빛되신 예수님이 비춰주신 빛 안에서 새롭게 된 사실을 기억하며 비춰주신  빛 안에서 빛을 찾고 함께 하는 모두가 됩시다.   

  주안에서 빛 된 사실을 잊지 말고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합니다.

1941년 12월7일 주말을 맞이해서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부대에서는 모든 병사들이 술을 마시고 신나게 댄스 파티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2월8일 아침까지 잠에 취하여 자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일본군의 비행기 편대는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으로 공격하였습니다. 일본 항공모함으로부터 수많은 비행기가 진주만을 향하여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이더 조종을 연습하던 어떤 훈련병이 레이더를 보니 태평양 쪽에서 수많은 비행기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병사는 재빨리 상부에 연락을 취했습니다만, 상부에서는 "그것은 아마 아군의 연습기일 것이다. 신경 쓰지 마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마침내 이른 새벽 무수한 일본기들은 잠에 취해 있는 미국의 진주만을 무자비하게 폭격하였습니다. 미국은 눈 뜰 사이 없이 기습을 당했습니다.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기함 '애리조나호'는 단 10분만에 격침되어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그 속에 타고 있던 1,200~1,300명의 미 해군 수병들이 그대로 물 속에 순식간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미군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고 외치며 전투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하와이 진주만에는 그 애리조나호가 침몰한 곳에 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군들은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당한 치욕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준비하고 대비하며 승리하자는 것입니다.

지난날 어두움의 자녀로 사탄의 종노릇한 우리가 이제는 주안에서 빛의 자녀 된 사실을 잊지 말고 빛을 되찾아 세상의 빛으로서 빛을 발하며 함께하는 모두가 됩시다.

광복절은 말 그대로 빛을 찾은 날이요 주권을 되 찾은 날입니다. 36년 동안 일본사람의 고통스러운 지배 밑에서 신음하다 자유의 빛을 회복한 날입니다.

일본은 말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 일본과 조선은 하나 라고 하면서 결국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민족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우리의 말을 빼앗았습니다. 우리의 성을 가는 치욕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좋은 것은 쌀이든 생선이든 과일이든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다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더구나 많은 젊은이를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징발해서 가장 위험하고 힘든 일을  시켰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우리를 종으로 취급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둠 속에서 살았었습니다. 육신은 자유를 국토는 회복 됐지만 문화적 정신적 요소는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정신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하소연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영적으로는 우리 인간이 예수님을 믿기 전의 상태를 어두움이라고 합니다. 죄라는 어두움에 갇혀서 꼼짝 못하는 상태입니다. 우리를 그 어둠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지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죄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구원의 빛을 찾게 됩니다.

말씀으로, 비춰주신 빛을 따라, 주안에서 빛된 사실을 잊지 말고 어두움을 물리치고 진정한 광복절이 되도록 구원의 빛을 찾고 발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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