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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눌리는 일 (고후 11:16-28, 막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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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현종 목사 (창천교회)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합니다. 인간은 조직이나 사람, 혹은 사건으로부터 억눌림을 당하면 그 눌리는 일로부터 벗어나려고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우리를 억눌리는 것을 살펴보면 그 다양함에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아주 개인적인 문제부터 시작하여 가정, 직장, 학교,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들은 산재해  있습니다. 개인의 문제만 살펴보아도 친구와의 관계, 사업의 파트너, 직장의 동료, 가족안에서 일어나는 관계, 질병, 재정적인 문제,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 등등 우리의 마음을 누르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가지는 고민이 있습니다
  같은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으로 인하여 분단되어 아직도 이산가족의 상봉이라는 만남을 통하여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민족이 우리일 것입니다. 이념의 갈등으로 인하여 6.25전쟁을 겪고, 그 결과로 인하여 군사정권 등장을 초래하였고, 그래서 민주주의는 오랫동안 이 강산에서 눌러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 억눌림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하여 많은 민주열사들이 고초를 당한 것도 사실입니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선각자라 하면 10년 후의 한국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게 눌리고 말 것입니다. “10년 후에 우리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살아남지?”
  우리는 한 가지 더 눌리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많은 염려와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1. 바울에게도 눌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됩니다.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이 말한 ‘이외의 일’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신이 겪었던 모든 고난을 앞에서 열거하였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면...’
  그러나 바울은 그가 겪은 고난보다도 그의 마음을 더 누르는 것이 교회를 향하여 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향한 그의 애정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상실하고 세속화되어 갈 때에,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잃고 타락하여갈 때에 바울은 그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눌리는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2. 바울은 기도로 주님께 그 눌리는 것을 가지고 갔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우리가 바울에게서 배워야할 점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는 그가 배운 학문이나 그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의 눌리는 문제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눌리는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에, 우리는 우리를 누르는 그 것을 주님께 먼저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마가복음2장에서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한 가정에 들어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그 집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군중으로 에워싸이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예수님이 머무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집을 둘러싸고 사람들로 인하여 예수님께 중풍병자를 데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장애에 부딪히자 포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서 그 중풍병자를 예수님의 발 앞으로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을 하시면서 그 병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 것에 실고 온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오기까지 어떤 장애 앞에서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중풍 병에 걸린 친구로 인하여 마음에 눌렸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배설물도 가리지 못하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그들은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마을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그들은 만사 제쳐놓고 친구를 들것에 실어 왔던 것입니다.
  우리를 누르는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 발 앞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 기도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눌리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다른 표현으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심히 눌리셨던 적이 있으시기에 우리의 눌리는 문제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The Passion of Christ'라는 영화를 보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은 인류의 죄악을 지시고 가야만 하는 문제로 심히 눌리셨습니다.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자신이 마셔야할 잔으로 인하여 눌리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던 그 모든 것을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기도를 총하여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보다 더 많이, 깊이, 힘들게 눌리셨던 분이기에 우리의 눌리는 문제를 알고 계시고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누르는 그 문제로부터 도피하지 맙시다.
  우리를 누르는 그 문제로 인하여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그 문제로 인하여 주저앉지 맙시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이 고난을 겪으셨던 예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들을 주님 발 앞으로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 명의 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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