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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물질 (마 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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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표 목사 (한신교회)

태어날 때부터 우리 생명을 지탱해주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 본능 가운데 가장 큰 본능은 먹고 싶은 본능, 되고 싶은 본능, 소유하고 싶은 본능입니다.
먹고 싶은 본능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먹으려고 하는 욕망입니다. 이것 때문에 인간은 먹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죽을 때까지 먹고 싶은 욕망은 사라지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욕구는 줄게 됩니다.
되고 싶은 본능은 성공하려고 하는 욕망입니다. 성공하려고 공부도 하고, 경쟁도 하고, 자기 인격을 높은 수준으로 올리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명예욕에 근거한  것입니다.
소유하고 싶은 본능은 부자가 되려는 욕망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유화의 욕심이 있습니다. 부자가 되려는 욕망 때문에 많은 물질을 소유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모든 욕망이 쇠해집니다. 식욕도 쇠하고, 명예욕도 쇠합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쇠하지 않는 욕망이 있습니다. 소유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물질에 대한 집착과 소유에 대한 욕망에서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찬양하지만 물질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 마음이 선한 사람은 진짜 선한 사람입니다. 거의 대부분은 물질에 손해가 날 때 마음이 흔들립니다.
누구든지 잘못을 범했을 때 회개하면 용서를 받았습니다. 살인자도 용서를 받았고, 간음한 자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탐욕을 가진 자는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지 못했습니다. 물질의 탐욕에서 자유함을 얻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당시에는 유대 땅이 농경사회였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겼던 세 가지가 의복, 곡식, 금은보화였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이 빈번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난을 갈 때 가장 귀중하게 여겼던 세 가지를 항아리에 담아서 땅에 묻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서 항아리를 열었을 때 의복은 좀이 먹어 해어졌고, 곡식은 벌레들이 먹어서 상했고, 금은보화는 녹슬고 도둑이 훔쳐가서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은 옷을 상하게 하는 벌레입니다. 동록은 ‘녹이 슨다’는 말이지만 다른말로 말하면 먹는다는 말입니다. 벌레들이 곡식을 먹어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은보화는 도둑이 훔쳐갑니다.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 23:5)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최고다.” 돈은 돈다고 해서 돈입니다. 돈에 눈이 달려서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가난한 사람에게 가고, 공부 잘하는 유학생에게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돈은 눈이 없기 때문에 아무데나 갑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고 그럽니다.
돈 때문에 도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 때문에 남편 버리는 아내도 있고, 돈 때문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식도 있고, 돈 때문에 친구를 배신하는 사람도 있고, 돈 때문에 양심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돈 때문에 숭고한 명예를 더럽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이 돌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돈은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도 돌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을 몰라보게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24절). 주인이 하나님이 되든지 물질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지 하나님도 좋고 물질도 좋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목 위와 목 아래입니다. 목 아래는 땅을 먹고 삽니다. 목 위는 하늘을 먹고 삽니다. 목이 잘라지면 생명을 잃습니다. 그래서 머리와 몸은 반드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머리와 몸이 연결되어 있을 때 반드시 주인은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물질을 다스리면 충복한 종이 되지만 물질이 주인이 되면 혹독한 주인을 만나게 된다.” 물질을 섬기면 물질이 혹독한 주인이 되지만 물질을 잘 다스리면 충직한 종이 되어서 주인을 유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물질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20절).
어떻게 물질을 하늘에 쌓습니까 엄밀히 말한다면 물질은 땅에 쌓는 것이지 하늘에 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실까요? 이 말은 곧 예수님에게 물질을 맡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 공중에 있는 대기권이 하늘이 아니라 하늘을 안고 땅에 오신 예수님이 하늘입니다. 물질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르게 섬기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다른말로 말하면 예수님에게 물질을 맡기라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물질을 맡기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못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잘 믿다가도 물질만 주면 예수를 잘 못 믿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물질을 맡길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부모에게도 못 맡깁니다. 형제에게도 못 맡깁니다. 자식에게도 못 맡깁니다. 누구를 믿고 물질을 맡기겠습니까 우리가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교회 집사님 가운데 인색한 집사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얼마나 인색한지 자기 집에서는 절대 구역예배도 안드립니다. 다른 집에서 드릴 때는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자기 집 차례가 오면 안드립니다. 과일 사고, 과자 사는데 돈 드니까요. 그리고 주일날 헌금할 때도 천원짜리 넣기가 아까우니까 백원짜리로 바꾸어서 넣는데 그냥 넣으면 ‘땡그렁’ 소리 날까봐 손을 깊숙이 넣었다가 뺍니다. 이렇게 인색한 집사님이지만 미장원에 가서 머리할 때는 미용사에게 5천원짜리 팁을 스스럼없이 줍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인색한 집사님 집에 도둑이 들어왔습니다. 도둑이 집에 있는 귀중품을 다 훔쳐갔습니다. 구역장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구역장님, 어젯밤에 도둑이 들어와서 큰 시험이 들었습니다.” 이 얘기를 목사님에게 하니까 목사님이 “하나님 말씀대로 되었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역장이 놀래가지고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 뜻대로 되었습니다.”  “목사님, 기도하러 가셔야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잘 되었다고 전해주시오.” 구역장이 목사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도둑 맞았으니까 안되었다고 기도하고 위로해 주어야 되는데 ‘하나님 말씀대로 되었다’고 얘기하니까 집사님이 교회 안다닌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안다닌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셔서 말씀대로 되었으니 기뻐하라고 전해주시오.”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마태복음 6장 19절을 읽어보라고 하세요.”
땅에 쌓은 것은 반드시 잃어버릴 때가 옵니다. 마지막 인생이 끝날 때 다 내게서 떠납니다. “땅에 보물을 많이 쌓는 사람은 세월이 갈수록 주님과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물을 다 잃어버리게 될 때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게 되니까 결국은 주님과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번개 다음에 천둥이 따라오듯 모든 물질이 주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의 집에 불이 났습니다. 한 사람이 달려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집에 불이 나서 온 집안이 다 타버렸습니다.” 잠잠히 있던 웨슬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집은 불난 일이 없소. 다만 주님의 집이 불탔을 뿐이오. 그래서 조금 부담이 됩니다.” 웨슬레는 모든 소유가 다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침례교 신자가 주머니에 지갑이 있는 것을 깜빡하고 침례를 받으려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이 속에 지갑이 들어있는데 지갑을 빼고 침례를 받아야겠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지갑도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물질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이 말은 곧 ‘너는 물질을 예수님에게 드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물질을 예수님에게 드리지 않고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사람은 언제나 그 마음이 하늘을 향하고 예수님이 그의 마음 가운데 와 계십니다. 날마다 자신의 마음이 하늘을 향하고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 내 마음에 와 계십니다. 보화를 가지고 주께로 나아가는 사람은 엄청난 하늘의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모두 나그네, 이 지구는 여관방, 전세 기한동안 빌려 살다가 주께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나그네가 호텔에 잠깐 투숙한다고 해서 자기 돈을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호텔 벽을 금으로 바르고 가구를 사 넣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집에 가구를 사고 금은보화를 두는 것입니다.
30개월 된 우리 손자가 자기 집을 알았습니다. 우리집에 놀러왔는데 냉장고를 열고 수박을 보더니 “수박 있네” 하면서 수박을 꺼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은준네 집으로 은준네 집으로” 하면서 수박을 끌고 문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어쩌면 어린 것이 벌써 제 소유를 알아가지고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것도 제 집에 갖다 놓으려고 수박을 가지고 가요. “그래 가져 가라. 네가 하늘나라로 많이 가져가야 한다.’
집은 사는 곳이요, 보물을 쌓아두는 곳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마음이 하늘에 있는 사람은 하늘에 보물을 쌓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로 보화를 가져갈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 사랑하는 것을 뭘로 표현하겠습니까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내 물질이 가지 않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물질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내 마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셔서 내 물질이 오기를 원하십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 14:20)
아브라함이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왕에게 포로로 잡혀가 고통을 당할 때 318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롯을 찾아옵니다. 아브라함이 돌아올 때 멜기세덱이 나타나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멜기세덱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1-3)
멜기세덱은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예수님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왜 십일조를 드렸습니까?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십일조는 예수님을 만나는 입장권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면회의 확증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비밀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물질이 아닙니다.
혹시 십일조를 안바치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부터 마음을 바꾸십시오. 처음 나온 사람들은 괜찮습니다. 세례 안받은 사람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세례 받고도 십일조를 안바치는 사람은 예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입으로 예수를 말하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마음 없는 예배, 마음 없는 찬송, 마음 없는 기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세례 받고도 십일조 안바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택함받은 확증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중심을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세계적인 부자 록 펠러가 이천년 교회사에서 최고의 복을 받은 비밀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죽기 전에 록 펠러에게 세 가지 유언을 했습니다. 첫째 “언제나 교회에 가면 앞자리에 앉아라”, 둘째 “목사님 말씀에는 절대 순종해라”, 셋째 “십일조를 꼭 바쳐라” 그 신앙의 유언을 따라 그는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바쳤고 그로 인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큰 축복을 받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성경을 읽었습니다. 한번은 창세기 11장 3절을 읽는데 이런 말이 씌여 있었습니다.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바벨론에 역청이 얼마나 많은지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역청은 헬라어로 ‘카파르’인데 영어성경에는 ‘아스팔트’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스팔트는 원 재료가 석유입니다. 폭 펠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영감이 벌개처럼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역청이 많았으면 역청으로 벽돌을 만들었을까 역청이 많다면 지하에는 석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즉시 스탠다드라는 석유 회사에 연락을 해서 이라크, 중동, 바벨론 일대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조사 결과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 때문에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되었습니다.
십일조를 잘 바치는 사람은 성경을 읽는 눈이 다릅니다. 십일조를 안바치는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이런 것이 안보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마 6:22) 돈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은 성경이 제대로 안보입니다.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부모를 봐도 부모로 안보입니다. 사람을 봐도 사람으로 안보입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살리는 물질
예수님의 물질로 예수님의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번성케 하신 것은 내 생활수준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헌금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업의 복을 주시는 것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베풀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물질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위해서 더 쓸 수 있는가를 시험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바치지 못하고 있다가 다 잃어버린 후에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바칠걸’ 하면서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때 하나님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1888년 노벨은 스웨덴 화학자로서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형 루드빗히가 프랑스에서 사망했습니다. 신문 편집자는 그의 형과 노벨을 구별하지 못하고 신문에 이런 기사를 냈습니다.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드디어 죽다.” 신문 기자는 노벨이 사람을 죽이고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된 것으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노벨은 그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유산을 인류의 선한 일과 평화를 위해 일한 사람과 역사를 살리는데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금을 수여하도록 전부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이 상은 ‘노벨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는 명예로운 상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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