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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의 본질 (의를 갈망함) ! (마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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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삼철 목사 (천호교회)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본질에서 벗어나 행복의 껍데기만 핥고 있는 상태에서 헤메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행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행복의 본질을 상실하고 행복의 수단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넷 동아일보 사진 코너의 "독자갤러리의 동식물 코너" 759번 "오빠를 묶어 주세요, 주인님"(하르방)이란 제목으로 진돗개 복동이와 싯츄 아롱이의 다투는 사진 두장이 올라있습니다. 지금까지 8,982명의 독자들이 방문했습니다. 보통 사진은 100-200명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인터넷 동아일보 사진코너의 "독자갤러리 풍경 코너" 1578번 "춘천호의 석양"은 약 3,000명 정도, 언양의 작천정, 그리운 금강산, 푸켓의 제임스 본드의 007섬 등등의 사진에도 1200명 이상이 관람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진으로는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나 그러한 것들 가지고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특히 "cool 코너"에 들어가 보면은 보통 몇만 명씩 관람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속을 쿨하게, 시원하게 하는 사진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전연 손을 댈 수 없는 여자들의 누드 사진이나, 여자들의 아슬아슬한 몸매를 자랑하는 반 누드 사진이 "cool코너"를 도배질 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스팸 메일이  sex에 관한 것이 귀찮을 정도로 들어왔습니다. 정부의 규제와 단속이 강해서 그런지 지금은 그런 것이 중단되었고, 대신에 즉석 대출정보에 대한 것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전화로는 부동산 정보를 놓치지 말고 활용하라는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대강은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행복의 수단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즐겁게는 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의 본질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의 본질은 "의를 갈망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 원래 인간은 의롭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행복하게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르고 의롭게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 하나님을 닮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것이 있고, 하나님을 닮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의로움"은 사람이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처럼 인간도 의롭게 창조되었습니다. 의란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떳떳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바르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기도생활을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한 자들이 많이 소개 됩니다.

노아는 항상 기도했습니다. 에녹은 300년을 하루같이 기도에 힘썼습니다. 아브라함은 늘 기도에 힘썼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일평생 기도하다가 마쳤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재미를 본 사람입니다.

신약에 와서 시므온과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했더니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생활은 기도생활이었습니다. 기도생활이 바로 의로운 생활이었습니다.

다윗은 절망중에라도 3가지를 늘 실천했습니다. ①사랑의 하나님을 늘 기억했습니다. ②이미 받은 은혜, 은사, 구원을 늘 기억했습니다. 절대 이미 빋은 것은 절대 상실되지 않는 다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언제나 자신이 있었습니다. ③절망중에라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의 의로운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을 성군이라고 합니다. 의로운 왕이라고 합니다.

2. 인간이 범죄 하므로 의를 상실했습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는 세례를 베풀기 위해 떠놓은 성수에 파리가 빠지자 물이 오염되었으니 버려야 된다는 측과 파리가 성화 되었으니 그냥 그 물로 세례를 베풀어야 된다는 측이 싸우다가 회교도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1910년 러시아가 공산화되던 때 러시아정교회는 "바늘 위에 천사가 몇 명이나 설 수 있느냐"를 다투다가 교회의 문을 닫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인간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상실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사람 앞에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내외간에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아내 하와를 원망하고 핑계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과 뱀을 원망하고 핑계했습니다.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의로움을 상실하면 곧 망하게 됩니다. 인간이 망하는 길은 바로 의를 상실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바로 떳떳하지 못한 것이 불의입니다.

엘리 제사장 시절에는 제사장이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의 의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니 하나님이 떠나셨고, 하나님이 떠나시니 하나님의 축복이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아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가 망한 것은 공의를 상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리를 거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렘6:10-11)라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욕으로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죽일꼬 "라고 궁리나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이 욕으로 여기고 이를 갈았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을 돌로쳐 죽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스스로 상실했습니다.

사람이 한번 의를 상실하면 그 여파가 오래갑니다. 그 댓가를 오래도록 치루어야 합니다. 아니 어쩌면 평생에 치루어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3-4대를 치룰수도 있습니다. 절대 그리스도인들은 의로움 즉 바르게 사는 것을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3. 성령의 역사로 의를 갈망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말했습니다.

성령은 오늘도 역사 하십니다. 행악자들의 행악까지라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와 축복이 되도록 말입니다. 

고라의 자손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42:1-3)라고 자기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다시 상세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3-34)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시리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릭 워런 목사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부를 쌓기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종류 사람들 사이에는 놀랄 만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맡겨진 사업을 성장시키고 사고 팔 때 이익을 남기는 수완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즉 나름대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무엇이든 업적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종류의 사람들 사이에는 놀랄 만한 차이점도 있음을 "릭 워런"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를 쌓기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해왔는가에 상관없이 그저 더 많은 부를 갖기 위하여 계속 일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이제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 즉 그들은 나름대로 돈을 많이 벌기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들의 목적은 돈을 쓰기 위함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와 세계 복음 화를 위한 도구로 그 부를 사용하려 한다."...

끝맺는 말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함을 받습니다. 의롭다 인정을 받음으로 우리들은 떳떳하고 바르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비로소 행복의 본질을 회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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