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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진정한 애국 (롬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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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의 목사 (한양교회)
 
모든 애국자가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사랑받은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의 조국을 사랑합니다. 크롬웰과 에이브러햄 링컨이 자기 조국을 진정으로 사심 없이 사랑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든 자기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모세가 자기 조국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생애 속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 민족을 중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요셉이 자기 민족을 사랑했고 다윗이 자기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얼마나 자신들의 조국을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이사야의 예레미야의 조국애를 읽다  보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그들의 조국애는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광복 59주년을 맞는 이 아침에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던 한 사람의 증언을 읽었습니다. 저들은 엄청난 축복 속에서 살았고 하나님이 저들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그의 영광의 구원을 알지 못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그의 고백 속에서 바울의 진정한 애국을 배웁니다. 진정한 애국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진정한 애국은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찌라도 원하는 바로라ꡓ (롬 9:1-3)
진정한 애국의 첫 번째 특징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근심이 있습니다.
성경은 근심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ꡒ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ꡓ (고후 7:10)
한 근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근심이고, 다른 한 근심은 망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귀한 근심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근심을 만듭니다. 자식으로 인해 근심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사랑은 근심을 만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보통 근심이 아니라 큰 근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근심만 만들지 않습니다. 고통을 만듭니다. 성경은 그치지 않는 고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의 고통은 중단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 근심은 그치지 않는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중단이 없는 고통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시면서 근심하며 우셨습니다. 그리고 끊어지지 않는 고통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성경에는ꡐ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ꡑ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단어를 직역하면 ꡐ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아픔ꡑ이라는 의미입니다. 주께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창자를 끊어내는 듯 아파하셨고, 기꺼이 희생하셨습니다.

2. 진정한 애국은 희생의 각오가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찌라도 원하는 바로라ꡓ3절

사도바울은 내 구원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이라도 투자하고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희생입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냥 기호품 즐기는 것 정도로 좋아할 수는 있지만 사랑은 다릅니다. 사랑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인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됩니다.
사도바울이 자기 동족들을 생각할 때에 큰 근심이 있었고, 그치지 않는 고통이 밤이나 낮이나 모든 시간 그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는 동족을 위해서는 자기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가하다고 말합니다.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악하기 때문에 광야에서 다 죽일 것이라고 하시고 모세로 새롭게 아브라함과 노아처럼 새 종족의 시조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람은 당신이 나를 부르셔서 사용하신 것은 동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어내 가나안 복지로 가게 하려 한 것이지 새 족장으로 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며 그들을 정 죽이려 하신다면 자신의 생명과 맞바꿔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이점에 있어서 완전한 모본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밖에 없는 그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사도바울에게 넘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누리고 있는 그의 생애 속에서 동족을 향한 사랑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심이 있습니다. 보통 근심이 아니라 큰 근심입니다.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진통제가 없는 고통입니다. 휴식이나 휴가가 없는 고통입니다.  예수님 사랑 속에서 새롭게 사는 사도바울의 민족애입니다. 이 각오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진정한 애국은 진정한 구원의 확신에 있습니다.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과 어떤 희생도 각오하며 감수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교리에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습니다. 그래서 순교가 필연적입니다. 기독교만 순교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타협이 가능하다면 순교할 이유는 없어집니다. 저들이 구원을 거절해서 이방인에게 보냄을 받지만 어디서든 그는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조국애였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사도는 그의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ꡒ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ꡓ(롬 8:35-39)

한국(남한) 교회는 부흥했습니다. 지난 삼십년 동안 백만 그리스도인이 천 이백만으로 자랐습니다. 이것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유래 없는 일입니다. 세계 50대 교회 중 30개가 한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은 이 민족을 향한 사랑이 부족합니다. 부끄러운 얘기입니다.  희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인들도 교회에 모여 축복받는 것, 마음에 평안 얻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교인들에게는 심령의 안정과 개인의 물질적 축복이 전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목사인 저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민족을 향한 근심은 없습니다. 동족의 아픔에 내 마음이 함께 고통당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조국을 위하여 크게 근심해야 할 때입니다. 그치지 않는 고통을 느껴야 할 때입니다. 진정한 근심과 고통이 없이는 기쁨과 감격도 없습니다. 눈물을 흘리면 씨를 뿌리는 자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중국에는 많은 조선족과 탈북 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니고 있습니다. ꡐ나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었다.ꡑ는 자매의 글을 보며 우리의 마음에 아픔과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내 동족들이 북에서 굶어죽어 가는데 우리 집 창고에 쌀이 있다고 안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동족의 아픔 앞에 내 마음에 고통이 없다면 그것은 신자 이전에 사람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그냥 살게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어렵고 힘든 형편을 볼 때에 근심을 갖게 만듭니다. 그것은 근심으로 끝나지 않고 고통으로 바뀌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게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애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 그 사랑이 사실이면 우리는 우리의 동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중단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으로부터 중국조선족교회 한 여성 지도자가 그렇게 도 한국교회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함경도 두만강 건너에서 목회를 아주 성공적으로 하시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탈북자가 넘어오는 길목에 있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먹여주고 입혀주는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 당회에서는 9월초에 그분을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총회 남북교회 협력위원회에서는 이를 환영리셉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일, 수요일, 금요일, 간증 초청 일정이 이미 마감되었습니다. 9월 둘째 주일 아침 우리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실 겁니다. 우리는 중국에 있는 동포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도 이분을 섬기는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 엄청난 사랑을 받은 우리 안에 조국의 현실을 보며 근심과 고통, 희생이 없다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는지를 검토해 봐야 합니다. 진정한 애국은 무엇보다 큰 근심이 있습니다.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오늘 광복 59주년을 맞아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으로 바로 설 때에 반드시 통일을 선물로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사랑하는 성도들의 삶 속에 넘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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