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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을 잃게 되는 이유 같지 않는 이유 (요 6:6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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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현 목사 (한광교회)

  때때로 믿음은 터무니 없이 보이기도 합니다. 지식 있는 자에게는 믿음이 무식한 것처럼 보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은 힘없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터무니 없어 보이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거룩한 믿음의 바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힘있게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거룩한 바보들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들은 이리저리 계산하고 스스로를 억제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지성과 그럴듯한 외모, 확신에 찬 태도와 정교함 등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계획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 오로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밖에 모르는 단순하고 믿음 밖에 모르는 못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일이 일어 납니다. 믿음은 당연히 왕성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곳에서는 약화되고 믿음은 거의 기대되지 않는 곳에서 잘 자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들어서는 정말 그것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하게 되고 기대치도 않는 사람들로부터 용기를 얻고 도전을 받고 감동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군중들이 이유같지 않는 이유들로 인해서 하나 둘 다 물러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정말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이 때 다행스럽게도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가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했습니다. 이 한마디로 주님은 위로가 크셨을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이유같지 않는 이유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갖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믿음조차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면 세가지 정도로 크게 모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이란 신적 존재 자체를 본적도 없고 만난적도 없고 그 분에 대해서 보여주거나 손에 잡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아야 하고 만나야 하고 손에 붙잡아 보아야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보고 만나고 손에 붙잡고 있는 것이라면 구태여 믿음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믿음이 필요한 것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는 만져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목적지가뚜렷이 보이지 않고 심지어 다음 단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며 만나지 못했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며 손에 붙잡히지 않는 분이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믿음을 가지 모든 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주 만물은 지금도 그 지으신 이를 송축하며 그 권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주만물은 그 지으신 자의 정하신 뜻대로 움직여가고 있습니다.
  받은 증거가 없을 때 믿음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증거가 부족하다고 느낄때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막 9:24)하는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아름다운 선택적 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기적의 능력은 예수님 편에서만 일방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침받은 사람들의 믿음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모은 믿음의 티끌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2. 상처를 받거나 환멸감에 빠질 때
  믿음 생활하면서 그 믿음생활 때문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물가에 가면 그 물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산에 가면 산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온동을 좋아하면 운동 때문에 상처를 입습니다. 저도 지난 여름에 운동하다가 새골이 부러졌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온전치 않습니다.
  부모가 있으니 부모에게 상처를 받고 자식이 있으니 자식에 의해서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같은 성도와 교회가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환멸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부대끼며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는 이가 없어도 홀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이기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상처를 받기도 하고 환멸감에 빠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보다 나은 대안이 없으므로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가운데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도 누구하나 믿음을 잃어버릴뻔한 기회가 한번도 없었던 사람은 아마도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3.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며 곁길로 빠질 때
  사람들은 고의적이고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며 곁길로 빠지기도 합니다.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집으로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리셔야 합니다. 인간의 계획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농부의 비유에서 보는 것과 같이 풍성한 수확을 거둔 농부가 먹고 마시고 놀 계획과 그 쌓을 것을 위하여 계획하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그 영혼을 부르시는" 그 단순한 한 가지 것으로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여러가 핑계를 대면서 불순종에 빠지거나 믿음을 잃어버리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망서리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의도로 믿음을 잃거나 버린다고 해서 다른 확실한 대안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믿음을 잃어버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더 분명하고 확실하지 않습니까?
  당나귀 한 마리가 정확히 두 건초더미 중간에 서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양쪽을 번갈아바라보았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습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 이저졌고 결국 당나귀는 굶어죽었습니다. 결국은 그렇습니다. 끝은 뻔한 것입니다. 우리의 불신앙으로 하나님이 상처를 입거나 손해를 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그 믿음대로 사람이 영향을 받고 살거나 죽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잃게 되는 이유같지 않는 이유가 어디 이것들 뿐이겠습니까?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저 수많은 죽엄들이 어찌 이유없는 죽음이 있겠습니까? 이유를 찾고 이유를 붙일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베드로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어디로 가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니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제자 베드로처럼 영생의 말씀만 있으면 됩니다. 더 이상 다른 이유를 붙이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호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바라보지 말고, 가지도 말고 오직 주님만 따라야 하겠습니다. 말씀만으로 만족하고 말씀의 능력 그 안에서 충만한 믿음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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