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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로부터 온 대인관계의 지혜 (약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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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온 대인관계의 지혜 (약3:13-18)

이 시간 함께 나눌 말씀은 “위로부터 온 대인관계의 지혜”라는 제목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 성도들의 대인관계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지혜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계가 시끄럽습니다. 언제 한 번 안 시끄러울 때가 없었지만 과거사 청산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내세우고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상대방 죽이기 당파싸움이 한창입니다. 이 싸움에는 야당은 물론 여당의 대표가 사임하는 등 대통령까지도 자유롭지 못한 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 나라의 정치의 기초가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을 기초로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물고 먹던 중국의 삼국지를 기초로 정치를 하기 때문에 온갖 거짓과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자녀들에게 삼국지 읽히지 않기 운동도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금 정치인들이 필수 교과서로 삼고 있는 삼국지가 읽혀지는 한 이 땅에서 그런 악함은 그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 당시의 나라가 그랬듯이 그 수법으로 건설된 것이라면 오래 가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세상 지혜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것 때문에 시기와 다툼과 요란함과 온갖 악한 일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대인관계라면 백 번이라도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백성들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이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세상 악한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아름다운 지혜여야 합니다. 이 지혜가 중요한 이유는 신앙생활이란 대인관계의 결과로 이어지고, 대인관계는 전도와 삶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 위로부터 난 지혜는 어떤 특성이 있나요? 17절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그랬습니다. 그런데 18절에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습니다. 이 구절은 본문 적용에 아주 중요한 키입니다. 즉 이 지혜는 분별만이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대인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란 말씀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대인관계의 가장 아름다운 지혜는 무엇일까요?

1. 그것은 첫째가 성결입니다.

성결이란 말은 본래 구약 종교의식에서 사용된 말입니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성결’이라고 기록된 띠를 이마에 두르고 자나 깨나 하나님께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17절에 “첫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성결이 얼마나 중요한 조건인가를 잘 보여 줍니다.

온전한 대인관계를 위해서는 깨끗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만 가르는 것 아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여지없이 갈라놓습니다. 부부간에도 깨끗해야 합니다. 친구 간에도 깨끗해야 합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 사귀거나 내 이익만 챙기려고 하면 대인관계는 깨지고 맙니다. 아무리 좋은 관계일지라도 죄가 들어가는 순간 둘은 갈라집니다. 그래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2. 위로부터 난 아름다운 대인관계의 지혜는 화평입니다.

화평이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원수 맺지 않아야 합니다. 왜 화평을 강조합니까? 그것은 화평할 수 없는 상황이 많기 때문입니다. 좋을 때는 누구나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을 때도 화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맺힌 것이 있다면 늘 풀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닮아 화평케 하는 자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거룩할 듯한 목적으로라도 화평을 깨서는 안 됩니다.

지금 미국이 강압으로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지만 얻는 이익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경제적 욕심과 이슬람을 억제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방법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 나라들이 미국과 원수가 되고 수많은 동맹국들이 미국과 멀어져 가고 반미 사상이 확산되고 있으며 선교사들이 철수하는 등 복음 선교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이 북한에 으름장만 놓아 핵무기를 만들 건덕지를 부여하여 나라를 더 어렵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세계를 정보하려고 해야 합니다. 화평하지 않으면 신앙도 실패요, 인간의 제반사가 다 실패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어야 합니다. 인심을 잃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인심을 잃고 무엇을 성공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인심부터 얻어야 합니다. 인심을 얻어야 하나님의 일도 됩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인심 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도이고 선교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18절 말씀처럼 열심히 화평을 심어야 합니다.

3. 위로부터 난 아름다운 대인의 지혜는 관용과 양순입니다.

이들은 화평의 단짝 친구들입니다. 관용과 양순은 서로 화평할 수 있는 실재적인 방안입니다. 관용하다는 말은 “너그럽고 부드럽고 사려 깊다”는 의미로 남을 이해하려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양순이란 공동 번역에는 고분고분하다고 번역합니다. 내 주장만 하는 그런 것이 아닌 고집 세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남을 이해하고 올바른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에서는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남에게 기꺼이 양보합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있다면 누구와 대화가 안 이루어지겠습니까?

“이해하다” 라는 말을 영어로 “understand” 이 용어는 under와 stand가 합성된 말로 그 자리에 서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도 많이 보아야 하지만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무엇에 관심 갖는지 그들의 고충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자세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진리도 허공을 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공부도 잘해야 합니다. 참으로 사람에게 관용하고 양순함이 있다면 그 어떤 사람과도 대화의 문이 열립니다.

그래서 어린이와 대인관계를 잘하려면 어린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들의 책도 보고 그들의 언어와 놀이와 관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지도자들도 청소년과 대화해 보기 위해서 머리에 물을 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도 머리에 부분적으로 물을 들였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은 스타일이 너무 보수적이면 상대하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이것을 나쁘게만 보지 말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들과 대화하려는 최선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의 노력이라면 대인관계가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관용과 양순을 가질 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위로부터 난 대인관계의 지혜는 긍휼과 선한 열매입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불쌍히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왜 불쌍히 여겨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숭상하는 헬라인들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서 긍휼을 쳤습니다. 그들은 부당하게 고통당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긍휼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긍휼을 그렇게 한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긍휼은 죄인까지도 불쌍히 보시기 때문입니다. “뭐 자업자득이지, 고생해도 싸” 그렇게 말하는 것은 긍휼을 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긍휼이란 부모의 심정입니다(사49:15). 이 심정이 있는 한 어느 누구와도 대인관계에서 실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내가 베푼 긍휼로 내가 도움 받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대인관계에서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긍휼은 실제적인 선으로 연결될 때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그랬습니다. 선한 열매가 따라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이 마음에만 머물러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세상에 오신 것처럼 행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봉급대로만 일해 준다는 생각 버리고 나라와 주인에게 이익을 주려는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지금 회사에서 면접을 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 덕목이어야 할 것입니다.

5. 위로부터 난 대인관계의 지혜는 편벽과 거짓이 없음입니다.

여기 편벽함이 없다는 말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잘 해주는 것입니다.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배운 사람에게나 못 배운 사람에게나 잘 났든 못났든 평등하게 다 잘 대해야 합니다. 힘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다른 사람을 뭉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다는 것은 위선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진실한 인격입니다. 어떤 일에도 가면을 쓰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실수와 부족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이 솔직함과 진실함만이 인격관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온갖 외식으로 자기 인격관리를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외식이 보이는 순간 인간관계는 더욱 멀어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신앙생활이란 곧 좋은 대인관계로 나타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인간과 가장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대인관계는 어떻습니까? 이 세상의 얄팍한 지혜라면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의 지혜를 가집시다. 그래서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해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사람들에게도 칭송 듣는 가장 현명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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