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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혀를 길들이라 (약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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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하준 목사 (효자교회)

혀의 기능

여러분이 만일 길을 지나는데 어떤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혀를 내밀면(동작을 취하면서)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아마 대단히 화가 날 것입니다. 왜요? 당연히 나를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지구상의 대부분 나라에서 이렇게 남한테 혀를 내미는 것은 대개 상대방에 대한 우롱이나 경멸의 표시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 혀를 내민 사람이 티베트 사람이거나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인 경우는 화내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에게 혀를 내미는 것이 티베트에서는 ‘나는 당신을 참 존경합니다’ 하는 존경의 인사가 되고, 마오리족에서는 환영의 표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오늘 예배 마치고 가면서 서로 혀 내밀어 인사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티베트인이나 마오리족이 아니니까요.

방금 말씀드린 이야기는 우리의 신체 부분 중 이 ‘혀’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크고 다양한지를 말해줍니다. 백과사전에서 ‘혀’라는 낱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사람의 혀는 구강바닥 뒤쪽에서 구강으로 돌출한 가로무늬근 덩어리로 표면은 점막으로 덮여 있으며 모든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미각․씹기․삼킴․발성을 돕는다. 전체는 설근․설체․설첨(舌尖)의 3부분으로 나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지요? 백과사전은 왜 항상 이렇게 어렵게 나와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백과사전의 내용은 대강 이런 뜻입니다. 혀는 크게 네 가지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맛보는 일, 씹는 일, 삼키는 일, 발성하는 일말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아마도 말하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혀만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청과 혀, 입천장, 이 등이 종합적으로 움직일 때 말 한 마디가 나오는 것이지만 특별히 말을 하는 데 있어 이 혀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뿐 아니라 어느 나라말이든지 이 ‘혀’가 말(언어)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혀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혀는 우리 신체 부분에서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정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만 우리나라나 중국의 옛 이야기에도 보면 세 치 혀로 여러 가지 술책을 꾸미는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 한 치는 약 3cm이므로 세 치라면 9cm 정도 됩니다. 이 보잘것없는 작은 혀가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부정적 기능, 긍정적 기능

이 혀가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말은 혀가 우리 인생에서 매우 유익한 역할과 매우 나쁜 역할 두 가지를 다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말에도 보면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좋은 뜻의 속담이 있는가 하면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라는 아주 부정적인 표현도 있습니다. 사실 말 한 마디 때문에, 이 세 치 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까?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듯이 한 마디 말로 상대방에게 큰 위로를 주거나 힘을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반대로 한 마디 말로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듯 아프게 하고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이 혀를 잘 길들여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현인이라고 말 한 것입니다. 성경도 여기에 대해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중에 2절 말씀을 봅니다.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그만큼 말을 잘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고 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 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도 이 혀와 말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반 세상에서도 말과 혀가 정말 중요하지만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언어습관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 치심을 받은 우리 성도들의 삶이 사실 어디에서 나타나겠습니까? 제일 많이, 쉽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언어생활입니다. 제일 성화되지 않아서 문제 되는 부분이 어디입니까? 바로 이 언어습관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세 차례에 걸쳐 ‘크리스천의 언어습관’이라는 부제를 달아 우리의 말과 언어습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설교에 귀를 잘 기울이시고 우리의 부적절한 언어습관을 바꾸고 언어부터 성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말 많은 자에 대한 경고

오늘 본문을 살펴봅니다. 먼저 1절에서는 말이 많아서 문제가 되는 사람이 나옵니다. 말 많은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야고보서가 기록된 당시에는 교회에 ‘교사’라는 직분이 있었습니다. 이 ‘교사’는 오늘날의 교회학교 교사와는 좀 다릅니다. 이들은 목회자처럼 성경을 가르치고 신앙을 지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교사가 남들 앞에 자꾸 서다보니 상당히 화려해 보이기도 하고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화려함과 명성만 보고 앞 다투어 교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1절 말씀은 “너희가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교사들이 교회 안에서 남을 가르치다보니 얼마나 말을 많이 했겠습니까? 그런데 말이 많고 열심히 가르치다보니 어떤 현상이 일어났겠습니까? 이들이 말을 잘 하고 제대로 가르치면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을 불어넣어 주고 구원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복도 많이 받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을 잘못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면, 잘못 가르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1절에 나온 대로 더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고 가급적 말도 너무 많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의 ‘양’(量)의 문제입니다.

옛날 어른들은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말 많으면 예수장이라고들 합니다. 그만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합니다. 또 말도 청산유수로 잘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면 입만 둥둥 떠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을 많이 합니다. 말이 많을 뿐 아니라 자꾸 남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남의 말 듣기보다는 자기 말만 많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 많으면 좋은 말도 많이 하겠지만 또 실수하기도 쉽습니다. 우리도 말을 좀 줄이고 골라서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의 중요성

다음으로 2~8절 말씀은 혀의 놀라운 힘에 대해 말씀합니다. 먼저 2절에서 우리가 다 말에 실수가 많아서 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가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 이것은 말에 완전한 자라는 뜻이 아니라 말을 잘 제어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자를 뜻하는데 이런 자가 되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혀를 가지고 온 몸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혀가 작은 것이지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첫 번째 예는 말과 재갈입니다. 여러분 말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실제로 곁에 가서 말을 보니 정말 크더군요. 그런데 그 큰 말을 자그마한 재갈 하나를 먹여서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두 번째 예는 배와 키입니다. 그 큰 배를 작은 키 하나로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세 번째 예는 불과 많은 나무, 즉 숲입니다. 작은 불 하나가 큰 숲을 태웁니다. 우리나라에서 산불이 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등산객이나 성묘객이 부주의로 흘린 작은 불씨입니다. 그 작은 불씨가 온 숲을 다 태웁니다. 이와 같이 말과 재갈, 배와 키, 불과 숲이 나오는데 그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작은 것이 큰 것을 좌우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재갈이나 키, 불과 같은 작은 것을 잘 다룰 줄 알면 정말 큰 힘을 발휘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 작은 것을 잘못 다루면 말은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배는 난파하게 되고 불은 숲을 모두 태워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작은 재갈과 키와 불을 잘 다스리고 잘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혀도 마찬가지입니다. 5절 보면 작은 세 치 혀가 온 몸을 좌우하고 인간관계를 좌우하게 됩니다. 이렇게 큰 힘을 가진 혀가 잘 제어되면 재갈이나 키처럼 우리 온 몸을 자유자재로 좌우할 수 있지만 잘 못 놀리면 작은 불씨가 큰 산불이 되어 온 숲을 태우듯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6절에 이렇게 길들여지지 않은 혀는 불처럼 태워버리는 것이고 악한 세계에 속할 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혀는 결국 우리 온 몸을 더럽히고 인생을 파괴시키고 불타는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혀를 길들이라

그래서 혀를 길들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의 혀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길들여진 혀와 길들여지지 않은 혀입니다. 아까도 길들여지지 않은 혀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남에게도 상처를 주고 나아가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고 맙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의 인생을 파괴함으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혀가 길들여지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한 입으로 두 종류의 말을 하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이 나오다가 쓴 물이 나오다가 할 수 없는데 이상하게도 사람의 입은 한 입에서 아름다운 말도 나오고 더러운 말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9절부터 봅시다.

본문은 우리의 혀가 길들여지지 않으면 한 입으로 주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그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일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두 입이 아닌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번갈아 가며 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땅치 않은 일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에 대한 말입니다. 우리 입은 어떻습니까? 한 입으로 교회 와서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거룩한 말을 하다가 나가서는 거짓말도 하고 욕도 하고 저주도 하고 헐뜯기도 하며 온갖 악한 말, 더럽고 추악한 말을 하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물을 낼 수 없듯이 이렇게 우리의 한 입으로 두 가지 언어를 내는 것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런 설교를 하면서 저도 부끄러운 일이 많습니다. 저도 목사로서 설교도 하고 서로 사랑하라고 서로 용서하라고 말하고 열심히 찬송도 부르다가 남을 미워해서 욕도 하고 저주도 한 일이 꽤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그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으로 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변하면 어떻게 되나요? 제일 먼저 입이 변합니다. 혀가 변합니다. 남을 태워버리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혀였는데 이제는 남을 세우고 남을 살리고 화평을 가져오는 혀가 됩니다. 말의 재갈처럼, 배의 키처럼 혀를 잘 제어할 줄 알아서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잘 구분해서 하게 됩니다. 남에게 아픔을 주는 말, 저주의 말, 헐뜯는 말은 하지 않고 사랑의 말, 용서의 말, 기쁨의 말을 하게 됩니다. 사실 말 한 마디 하기 전에 0.1초만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말의 실수를 줄일 수 있겠습니까? 이걸 못하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내뱉다 보니 문제가 생기고 상처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0.1초만 생각하는 훈련,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한 번만 생각해 보는 훈련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혀를 능히 제어하는 사람이요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혀는 어떤 혀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혀를 한 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혀는 길들여진 혀입니까? 아니면 길들여지지 않고 마음대로 놀려서 불처럼 남을 태우고 내 삶을 태워버리는 혀입니까? 잘 길들여진 혀는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잘 길들여지지 않은 혀, 성화되지 않은 혀, 제멋대로 놀려지는 혀는 나도 죽이고, 남도 죽이고, 가정과 교회도 파괴합니다.

여러분, 제가 굉장한 비밀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목사도 부부싸움 합니다. 놀라셨지요? 그런데 목회자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그만 서로 너무 화가 나니까 목사인 남편은 사모인 아내에게 폭언을 하고 아내의 집안 얘기를 하며 정말 아내 자존심 상할 말만 골라서 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부부싸움 해도 이런 말은 안 하시지요? 여러분 절대 부부싸움 할 때 상대방 집안 얘기 같은 건 하지 마세요. 아무튼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고 악이 받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너도 목사냐?”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퍽’ 소리가 났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읽어본 가정폭력 상담사례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너도 목사냐?” 남편의 모든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이 말의 결과는 뻔합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도 평안할 리 없습니다.

한 청소년이 가출을 해서 많은 비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사람이냐 임마? 난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어. 나가 죽어라.” 그래서 그 아들은 아무 말 없이 나가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이 역시 청소년 자살사례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제가 너무 극단적인 얘기만 했나요?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 교회 이런 일들은 더 많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유난히 말이 많고 또 남에 대한 말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의 힘을 남용하고 오용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파괴하는 능력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절대 성도들끼리 남에 관한 구설수, 남을 헐뜯는 말,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공동체를 불태우고 지옥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만저만 큰 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결국 그 함부로 놀려진 혀가 지옥불에 타버린다고 한 것입니다.




내가 경험한 말의 힘

반대로 우리의 아름다운 말 한 마디, 격려와 칭찬의 말 하나, 능력 있고 성화된 말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 엄청난 힘을 줄 수 있습니다. 말의 힘은 바로 이런 데 쓰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 남들보다 늦게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몰랐지만 점차 제 마음 속에 아쉬움과 열등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 다닌 친구들, 모태신앙인 친구들, 부모님이 교회의 장로님 권사님인 가정들... 왜 나는 이런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과 어려서부터 한 교회에서 자란 친구들이 얼마나 친한지 나중에 들어온 저는 왠지 이방인인 것 같고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실지 몰라요. 안 그래도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서먹서먹하고 아쉽기도 하고 적응하기도 어려운데 교회 식당에서조차도 교회 오래 나온 사람끼리, 친한 사람끼리만 모여서 밥 먹고 말이지요.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 교회 나온 사람에게는 이만저만 서운한 일이 아닙니다.

만약에 제가 그 때 모질게 내가 이 교회 적응하리라 마음먹지 않았다면, 작은 섭섭함에 크게 서운해 했다면 아마 교회를 떠나 영원히 교회 안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새신자가 정말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모질게 마음먹고 이 교회에 적응하리라 결심했어요. 그런데 제가 고3이 되던 어느 날 고등부 전도사님과 제 친구들 몇 명이 함께 기도회를 하는데 전도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희들 중에 하준이와 아무개, 아무개, 아무개는 신학대학에 가서 하나님 일을 하면 좋겠구나.” 물론 제 이름 하나만 나온 것도 아니고 네 명의 이름이 불리었고 그 가운데 둘은 지금 목사가 되었고 둘은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한 마디가 제게는 정말 큰 힘과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신앙적인 자부심입니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나도 잘 할 수 있겠구나.” 이 한 마디의 인정이 자칫 교회를 떠날 수도 있었던 한 고등학생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그가 목회자가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사실 우리들 가운데도 말 한 마디가 이보다 더 큰 일을 한 때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다툼을 화해로 변화시켜준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부터 여러분은 헌신된 성도로서,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언어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혀를 길들이고 좋은 말, 아름다운 말,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고 힘을 주는 말을 골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혀를 제어하고 그 혀를 하나님께 쓰임 받는 혀로 훈련시킬 수만 있다면 먼저 여러분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변화되고 여러분이 가정이, 교회가 천국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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