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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내를 들려주십시오 (약 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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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성경은 말세의 특징을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조급해진다고 했고 믿음이 없다고 했습니다. 조급함과 믿음 없음은 서로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바꾸면 인내는 바로 믿음이라는 교훈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믿음을 보여 준다는 것은 인내를 보여 준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도 믿음으로 주를 위해서 고난 받았던 선지자들의 공통점을 말씀할 때에 인내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성숙한 사람을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혀를 다스리는 사람이고 둘째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며 셋째는 인내심을 보여주는 사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열매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눅 21:19)"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시는 기준이기 때문에 인내가 없이는 하나님을 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내가 없이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열매는 인내하는 자가 거두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믿음의 사람 욥을 말씀하시면서 사람 가운데서 가장 믿음의 힘을 보여준 사람이 욥인데 욥이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바로 인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믿음을 보여주기를 원한다면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내하는 자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행위인데 인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영적 환경인 것입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인내로써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준 사람들입니다.

조급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빨리 나타나시면 좋을 것인데 그러면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좋은 조건이 될 터인데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그 믿음이 바로 인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항상 믿음을 지식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으로 믿음을 증명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도의 참음은 기질의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성도의 참음은 포기도 아닙니다. 성도의 참음은 믿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기 때문에 내가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결과를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오늘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오직 믿음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말세에 조급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결국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농부가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참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의 참음은 내 뜻이 성취되도록 참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이 그 뜻을 이 땅에 나타내시는 통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참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참된 인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을 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아들은 아브라함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아들로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아들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성도에게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믿음을 지키기 위한 인내입니다. 인내가 없으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내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소망의 인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인내 안에 들어 감이라고 말씀했습니다(살후 3:5) 그리스도의 인내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는 1478년 영국에서 출생하여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52세 나이로 재상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그 때 임금이었던 헨리 8세가 자기 부인을 버리고 안나 브레인과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토마스 모어는 이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재상직에서 떠나게 됩니다. 당시 영국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토마스 모어에게 왕은 회유를 했고 자기의 부인이 울면서 말렸지만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리를 버리고 국왕 편에 선다면 우리가 몇 년을 더 살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일이요" 했습니다. 1535년 7월 6일 단두대에 오르던 날 그에게 술을 주자 "주님은 초와 쓸개를 마셨다" 하며 거절하였고, 재상의 목을 베기가 두려워 떠는 사형 집행인에게 "너는 내 목을 베는 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요, 나는 너의 칼에 죽는 것이 우리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다"라고 하며 오히려 안심시켰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소원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스데반이 죽을 때에도 사도 바울은 이 일에 가담하였다. 그런데도 스데반은 끝까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이는 자를 위하여 기도를 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마침내 그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고 그도 스데반처럼 순교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당신의 손에 죽지만 언젠가 당신들도 회개하여 주님 앞에서 친구로 만나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을 믿고 기도한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내는 마지막까지 참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주님의 강림하시기까지 참으라는 말씀과 농부가 열매를 바라보고 길이 참는다는 말씀은 마지막까지 참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인내한다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인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죽기까지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참으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내할 때에 불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심판을 면한다고 했습니다. 인내를 방해하는 것은 원망과 불평입니다. 인내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보상이 있지만 불평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가장 보편적인 죄악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원망하지 말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조들의 심판 사실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그 마음 속에 원망이 채워지게 됩니다. 반면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찬송하며 산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에 있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내 마음에 원망이 있는가 아니면 감사가 있는가를 점검하면 됩니다. 또한 내가 불평을 하고 있는가 찬송을 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사람이 참는다고 말할 때에 두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하나는 불평하면서 참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참는 것이 있습니다. 참는다는 자체가 이미 고통이기 때문에 사람은 불평하면서 참기 쉽습니다. 그러나 불평하면서 참는 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면서 광야를 지나는 것은 전진이 아니라 방황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욥의 인내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 인생의 삶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성도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인내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에 한결 같이 참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내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이 반드시 복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인내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삶입니다. 인내하는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2004-08-22 08: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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