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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내 나라, 하나님의 나라 (출 32: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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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강국 목사 (신시내티교회)

오늘은 광복 59주년이 되는 동시에 정부 수립 56주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공교롭게도 8월 15일은 해방이 된 날인 동시에 또한 우리 남한 정부가 수립된 날이기도 합니다. 1945년 해방 후 3년 동안 미국의 군정치하에 있다가 3년 후, 5월 10일 남한만이 단독으로 선거를 치르고 7월 17일에 초대 헌법을 만들어 국회에서 통과한 후 8월 15일,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가 출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출범한 우리 대한민국이 오늘 건국 56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해방 59주년, 건국 56주년을 맞이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한편으로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참회의 예배를 드림으로 주신 바 은혜를 이어가는 동시에, 우리가 저지를 잘못들은 단절시키는 모습을 지님으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나갈 수 있는 다짐을 해야 될 줄 압니다. 사실, 미국 땅에 사는 우리들이 고국의 현실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마는, 우리 고국을 위해 기도할 때, 어떠한 기도를 하면 되겠는가 하는 기도의 제목을 찾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생각해 보았으면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나라가 지녔던 과오와 잘못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를 생각하며 기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무엇인가를 발견케 해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나는 사람(백성)이요, 또 하나는 땅(국토)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권(법)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민족은 사람은 있었지만, 땅과 주권이 없었기에 나라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하신 가나안의 새로운 땅을 향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인 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이 히브리 민족에게 이들에게 필요한 주권인 헌법을 주시기 위해서 모세를 시내 산(Mt. Sinai)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이제 새로운 땅에 들어가 살 때에 지녀야 할 법을 말씀해 주시고 최종적으로는 돌로 판을 만들어 거기에 십계명을 기록해 주심으로 헌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민족이 이제 한 국가로서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법을 제정해 주시고 그 증거로 돌판 까지도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모세가 산을 내려 가려하는데 느닷없이 이 백성이 심히 부패하여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다고 이들을 심판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는 너무 뜻밖이라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겸손히 용서를 구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이러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용서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나타났습니다. 막상 하나님께는 이렇게 기도한 모세였습니다만 모세가 막상 산에서 내려와 보니 가관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난장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고서는 이 금송아지더러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도저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일들이 벌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모세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받은 그 두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산에 올라간 모세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이를 “여호와 하나님이다” 하며 섬기며 난장판을 벌인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돌판을 던져 깨뜨린 것도 잘못입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건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스라엘의 주권인 법을 함부로 망가뜨린 것 역시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지난 50년 역사 속에서 누가 과연 헌법을 파괴하였는가를 생각해 볼 때 한 가지 자명한 사실을 그것은 국가 지도자가 망가뜨렸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더 해 보려고, 그리고 현행 헌법으로는 대통령이 될 자신이 없기 때문에 국민적인 합의와 절차라고 형식적으로 대충 모양만 갖추고 헌법을 파괴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백성들이 잘못하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성한 헌법을 내 버렸던 일을 같이 취급해버린 모세의 행위와도 같다고 보여 집니다. 우리는 이 모습에서 지난 60여 년의 우리 민족의 과오를 볼 수 있습니다. 백성은 백성대로, 지도자는 지도자대로 과오를 범하였습니다. 지도자의 과오는 이렇게 모세가 하나님의 신성한 법을 내팽개친 것과 같이 헌법을 함부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백성의 과오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첫째로 조급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법과 말씀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모세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여 우상을 만들었듯이 우리 민족도 이 조급한 마음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들이 가끔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미국 사람들이 상점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모습에 한번씩은 다 말하는 것 말입니다. 사실, 이러한 조급성이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적인 차원에까지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건물을 짓는 것이나, 다리를 놓는 것이나, 도로를 만드는 것이나 모든 일에 있어서 조급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모습의 지도자가 바로 아론이었습니다. 무언가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한 아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말만 듣고, 또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기 위해 금송아지 만드는 일에 적극 가담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어 모세가 이를 추궁하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형 아론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이 때 아론은 변명하기에 급급합니다.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라며 이들의 과실로 떠넘기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또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라며 앞뒤가 안 맞는 말로 궁색하게 대답하는 아론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아론을 성경기자는 어떻게 표현합니까?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고 평합니다(25절). 그렇습니다. 그것은 지도자의 잘못이라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지도자는 잘못된 백성을 만들어 낸다는 교훈을 여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둘째로, 백성의 잘못은 이들이 물질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황금 송아지는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공통 관심사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특히 이 황금 송아지를 두고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기며 그 앞에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물질만능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부정부패라는 문제라고 합니다. 이는 지난 1~ 2년 동안에 이루어진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아주 오래된 문제요 그래서 이제는 고질적이 된 사회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부패의 한 가운데에는 “돈”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문제점도 발견해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러한 위기와 잘못에 대한 해결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바른 역할이 우리 민족에게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누구든지 하나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응답하여 나온 사람들이 “레위 자손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들에게 잘못을 저지를 백성들을 심판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자기 개인 사정에 관계없이 그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모세는 이들의 이러한 행위와 자세를 하나님 앞에서 헌신한 모습이라고 칭찬하여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나 이민 교회 역시 이렇게 레위 사람들처럼 사리사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모습과 자세로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날 우리 교회가 모세 당시 레위 지파 사람들처럼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 심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그것을 우리는 32절에 나타난 모세의 자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이 모세의 기도를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지닐 때, 우리 민족이 용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세의 기도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는 기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의 낭만적인 기도나 순간 기분에 들떠서 할 수 있는 기도는 아닐 것입니다. 이 기도는 백성과 나라의 운명에 자기의 운명을 함께 하고자 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를 가질 때 지닐 수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후에,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말하면서, 혹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서 제외될까봐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롬 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우리들도 이러한 바울과 모세와 같은 마음과 자세로 우리 민족의 구원과 평화적인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될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는 이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앞날을 예단할 수 있습니다. 이는 34절입니다.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구체적인 방향제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상당히 막연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성경 저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디로 이 백성을 인도하라는 것인지 그 장소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막연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보면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 순간이 주어질 때까지는 알 수 없는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가 인도하면 분명해지는 그러한 곳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바로 긴장이 있는 것입니다. 즉 막연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신앙의 표현으로 하면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란 우리가 그 갈 곳을 정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해야만 알 수 있고 또 갈 수 있는 그러한 곳입니다. 그렇지 않고 정해 놓고 가고자 하는 모습을 우리는 이데올로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기계적이거나 이미 만들어진 어떤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날마다 살아있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늘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는 그러한 모습으로 백성을 인도하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민족과 나라를 위한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을 내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삼고자 하는 그 노력과 모습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조국이 하나님의 나라화(化) 될 때, 희망이 있고 내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미약하고 나라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미미하고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썩어질 때, 많은 열매가 우리와 우리 민족에게 풍성하게 열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 가운데 맞이한 해방 59주년입니다. 우리가 우리 조국을 염두에 두고 모세와 같은 심령과 자세로 기도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와 은총과 복을 우리 민족에게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 남, 북간의 평화적인 통일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민족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잘 인도할 수 있는 우리 한국 교회가 되도록 또한 노력하며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여 주시고, 복을 주시며, 섭리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해방 59주년을 맞이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부족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 예배를 드립니다. 저희는 비록 이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이지만, 고국의 소식과 형편에 늘 귀를 기울이게 되며 마음을 쓰게 됩니다. 현재, 남과 북으로 갈려진 가운데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부족하여 연약한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 민족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남, 북간에 역사하여 주셔서, 평화적인 통일을 향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비옵고 원하옵나이다. 남, 북간의 모든 위정자들에게 역사하여 주셔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울러 우리 모든 남, 북간의 모든 교회에 역사하여 주셔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모습으로 우리 민족을 위하여 선교하고 기도하는 교회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가운데에 진정한 평화와 복됨이 있음을 깨닫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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