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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과 시험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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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강국 목사 (신시내티교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셨습니다. 성령을 “비둘기가 내려오는 모습”으로 눈에 보이게 보내주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음성으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께 임하신 성령께서는 이 예수님을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인에게는 거쳐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일 신앙의 목적이 단지 복을 받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예수님을 시험을 받도록 광야로 이끄시는 성령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시험을 받으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례 받고 물에서 올라오는 예수님을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이 사실로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했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3절과 6절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하면서 시험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우리들도 바로 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시험을 받았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시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모습은 이렇게 시험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한 필요한 지침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은 시험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입니다. 이러한 시험이 주어진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이나 주린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공중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명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해 주실 것”이라는 시험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첫 번째 시험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를 거절하니까, 거기에 빗대어서 사단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한 시험입니다. 세 번째 시험은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시험은 비록 예수님에게 주어진 시험이기도 하지만, 사실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수님께서 대표적으로 받으신 시험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이 세 가지 시험을 해석해 보는데 있어서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험이라는 말은 헬라말로는 “페이라조”라는 말입니다. 이 “페이라조”라는 말을 오늘날 의미로 번역한다면 두 가지가 됩니다, 하나는 “시험”(test)이라는 의미와 또 하나는 “유혹”(temptation)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의 사건을 이러한 두 가지 차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시험(test)의 차원에서의 해석입니다. 이 해석을 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는 발달심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인생의 발달과정에 있어서 그 시기에 주어지는 욕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인생의 각 발달단계에 있어서 거기에 충족되어야 할 욕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욕구들을 잘 충족해야만 그 다음 인생의 단계로 건전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학생이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기말시험을 잘 치러야만 그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학교 학생에게는 시험을 잘 못 치르면 낙제해서 1년을 더 공부해야 하겠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지요. 그 때에 알맞은 욕구를 채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이는 저절로 먹어가게 되는 것이니까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도 세월만 가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게 됩니다. 따라서 이를 잘 극복하지 않으면 결국은 실패하는 인생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인생의 각 단계에 있어서 채워야 할, 혹은 극복해야 할 욕구를 잘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의 발달과정에 있어서 제일 어린 시절에 주어지는 기본적인 욕구는 바로 “먹는 문제”라고 합니다. 이는 어린 아이들의 경우 먹을 것만 해결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사실, 어린아이들의 제일 기본적인 욕구는 먹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이러한 먹을 것에 대한 욕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것이 계속 욕구불만으로 남게 됨으로 정신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인생의 그 다음 단계인 청소년기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첫 번째 시험도 바로 이러한 음식에 대한 욕구의 문제, 즉 “먹는 문제”라는 사실인 것을 볼 때, 이렇게 연관지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먹는 문제”는 이런 점에서 본능적인 문제라고도 말할 만큼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욕구는 그 사람의 인격형성에 가장 기본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주로 소년기와 청년기에 주어지는 시험인데, 이는 일종의 명예심 같은 것과 관련된 욕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든지 하는 이성적인 매력을 통한 명예심이나, 다른 사람은 흉내 내지도 못할 일들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그러한 욕구를 말합니다. 이러한 욕구는 특별히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집중적으로 주어지는 욕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욕구는 대부분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자연히 이러한 경쟁에 따르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려고 하는 과도한 모습이 이러한 욕구에 뒤따르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과도한 경쟁심으로 말미암아 파생되어지는 모습은 그 여파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여기에 따르는 믿기 어려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이러한 경쟁에서 낙오되는 경우, 자살까지도 감행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나게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명예심과 관련된 욕구는 또한 지식에 대한 욕구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문을 통하여 이러한 욕구를 채우고자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진리를 탐구한다는 학문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출세를 위해, 학력이나 학위를 위해 학문을 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되기도 쉽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젊은 사람들 층에서 성형수술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형수술은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이러한 명예나 지식의 욕구 그리고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칭찬과 찬사와 인기와 명예를 얻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도 이와 비슷합니다. 공중에서 뛰어내려서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고 멀쩡하다면 이는 사람들에게 선망과 신비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단은 바로 이러한 점을 노린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시험입니다. 이는 주로 중년시절과 장년기에 주어지는 시험입니다. 그것은 권력이라는 욕구입니다. 인생의 절정기에 이르러 그만한 캐리어(Career)에 따르는 직책이나 자격,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권세에 따르는 힘을 구가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 이러한 권력이라는 욕구는 그동안의 삶의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나올 수 있는 정당한 힘이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청소년 및 젊은 시절의 노력과 고생의 결과로서 당연하게 주어지는 결과로서의 힘과 권력이라고 한다면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편에서 말씀하듯 “울면서 씨를 뿌린 가운데 주어지는 기쁨의 열매”의 경우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경우의 권력이라면 이는 참으로 주변에 고통과 어려움을 안겨다줄 뿐만 아니라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권력투쟁”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권력투쟁으로 점철된 나라나 단체는 참으로 역사 속에서 큰 해를 끼치는 것을 우리는 보고 또 알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권력투쟁의 결과로 교회가 분열되고 상처를 입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권력에의 욕구는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 쟁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피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에의 욕구는 결과적으로 “보복의 악순환”을 낳게 되는 결과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여기에 대한 바른 자세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달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각 발달단계에 주어지는 시기마다 거기에 따르는 욕구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거나, 채우지 못할 때에는 그 다음 인생의 단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유아기에 어머니의 젖을 빤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커서 담배를 통해서 거기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년시절에 이성에게 호감을 갖지 못하거나 그러한 욕구를 정당하게 채우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 나름대로 능력이 주어지면 바람을 피우는 경향이 많아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나이가 들어서 어떤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 또한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젊은 시절에 지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반항과 욕구불만으로, 어른이 되어서는 그러한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인생의 단계에 주어지는 이러한 욕구들을 창조적으로 잘 극복하고 해소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힘써야 한다고 그 처방을 제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세 가지 시험을 인생의 발달단계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험”(test)이라는 발달심리학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유혹”(temptation)이라는 관점에서도 이 세 가지 시험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 가지 시험 모두 우리 모든 사람들 특히 어른의 경우, 모두에게 주어질 수 있는 유혹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곧 “물질에 대한 유혹, 명예에 대한 유혹, 권력에 대한 유혹”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은 참으로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극복하기 쉬운 문제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유혹은 극복되어야 할,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유혹들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유혹의 모습들의 성격을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유혹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과 인기나 명예, 그리고 권력의 속성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내용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물질, 인기나 명예,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각 개인이 볼 때에는 무제한적으로 많은 것 같지만, 전체적인 의미에서 보면 그것은 결국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비록 미국에 돌아다니는 달라(dollar)가 셀 수 없이 많기는 하다고 하더라고, 결국은 셀 수 있는 금액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인기나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에서 아무리 인기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교인 숫자 이상으로 인기를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제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이러한 유혹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물질이나 인기, 명예 그리고 권력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요? 그것은 내가 많이 가지면, 상대방은 그만큼 적게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먹을 수 있는 피자(Pizza)의 양은 제한되어 있는데, 한 사람이 많이 먹어버리면, 다른 사람은 그만큼 못 먹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는 말하지만, 실제 현실의 삶에서는 이를 모르고 사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유혹의 내용들은 한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지니고 있는 “욕심”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욕망과 이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들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피자(Pizza)가 알맞게 돌아갈 수 있도록 나누어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의, 곧 공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갈등이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우리를 맡길 수 있고, 또 맡겨야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에 자신을 맡기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의 욕심스러운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금식”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예수님은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금식이란 바로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피자(Pizza)를 나눌 수 있는 권한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말씀하였습니다(사 58:6-7). 또 이러한 자세가 바로 진정한 경건의 모습이라고 야고보도 전해주고 있습니다(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이렇게 우리도 몸과 마음을 비워 하나님께 그 피자를 나눌 수 있는 권한을 내어드릴 수 있는 겸손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러한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합니다. 이것은 이러한 금식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유혹을 이기신 비결입니다. 이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받을 때마다 똑같은 자세로 대응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4절, 7절, 10절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기록되었으되..” 라는 말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을 때, 이를 자기 자신의 의지나 감정으로 물리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술적으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유혹을 받을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성경 말씀으로 대응을 하니까, 사탄은 두 번째 시험을 하면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시험을 하였습니다. 6절,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사탄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성경의 다른 말씀을 가지고 이를 물리치시는 것을 봅니다. 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혹은 마술적으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를 알고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혹을 극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단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하는데 사용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단의 모습을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바른 성경 해석과 적용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자 하는 자세를 지닌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유혹의 무기로 사용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러한 사단의 계략을 물리칠 수 있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말씀에 대한 분별력을 우리도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심령이 가난한 자세를 지녀야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데에는 두 가지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는 물론 동전의 양면과 같이 결국은 하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판단의 권한을 맡길 수 있는 자세와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과 적용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자세를 지닐 수 있었기에 시험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이러한 물질에의 유혹을 받습니다. 이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돈 떨어지면 어떻게 사나?” 하는 근심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돈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대한다든지,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 않느냐?”하며 무슨 일이든 돈과 결부시키려고 한다든지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러한 돈이 가져다주는 힘이 대단하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특별히 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인기나 명예의 유혹을 받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께 먼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외면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또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상대방에 대해 중상 모략하는 방법으로, 또 물질이나 권력의 힘으로 사람의 마음을 잡으려고 한다든지 하는 모습으로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는 그 모습을 하나님의 뜻과 무조건 동일시하는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권력의 유혹을 받습니다. 나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내 그릇과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경우라든지, 다른 사람의 달란트(talent)를 침범하고자 한다든지, 내 방법이나 내 식만을 강조함으로 전체적이고 조화로움을 깨뜨리려고 한다든지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단이 예수님께 제시한 것처럼, 잘못된 방법을 통해서 권력을 얻고자 하는 행위로 나타나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혹들에 노출되어 있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함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엄함(dignity)이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물질이나 인기와 명예로나 권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그러한 존엄성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존엄함을 이러한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으로 바꿀 만큼 어리석은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존엄함을 지닐 수 있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과 도우심으로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말씀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시험과 유혹을 받은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이러한 시험과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잘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도록 저희들의 심령이 늘 가난하게 하여 주시옵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적용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존엄한 모습을 이루어나가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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