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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는 감사를 낳습니다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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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곤 목사 (열린교회)

우리 나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는 삼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121조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예산(111조원)보다 10조원이 더 많은 규모입니다. 삼성이 1년간 낸 세금 6조 5000억원은 국가 조세예산의 6.3%에 이르고 삼성 계열사들의 주식 시가총액은 지난 4월 현재 126조원으로 재계 2∼15위 대기업의 시가총액을 더한 것보다 많으며, 국내 전체 상장회사 시가총액의 31.2%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수출면에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총 무역 수지 흑자가 150억 달러쯤 되었는데 삼성의 무역수지에서는 200억달러 흑자라고 하니 삼성이 없으면 한국은 곧장 무역수지 적자국으로 전락할 판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쟁력있는 기업이 되는 비결은 우수한 인재 확보에 있었다고 합니다. 박사만 약 2000 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경쟁력있는 사람이 있을 때 회사가 세계 속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도태되지 않고 성장하려면 품질 경쟁력, 가격 경쟁력, 서비스 경쟁력이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인물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 한명이면 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경쟁력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전경련이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국내 굴지의 11개 기업을 통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주요 요건 네 가지였다고 합니다. (1)개인 역량 (2)국제 감각 (3)원만한 대인관계 (4) 올바른 가치관이었다고 합니다. 기업은 품질과 가격, 서비스에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가정이 경쟁력이 있고 우리 교회가 경쟁력이 있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어야 하지만 감사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면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풍요롭게 살 수 있습니다. 풍요롭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면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성공했기 때문에 감사가 아니라 감사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면 손해보고 궁핍해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삶을 살면 유익이 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라이트훗(J.B.Lightfoot)는 "감사는 말로 하든지 행동으로 하든지 인간다운 최고의 미덕이다"라고 했습니다.

1. 행복 경쟁력

마이로 H 게이트는 "신앙을 알아보는 가장 정교한 방법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실속있는 감사를 하느냐로 판명될 수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감사를 늘 표현하는 사람은 매력이 있고 대인 관계를 하는데 성공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늘 감사를 하며 살면 가난하여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말했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듯이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뭐 보리도 거두지 않았는데 감사할 것이 무엇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불경기에 마지 못해 견디고 있는데 무엇이 감사할 것이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많이 겪은 단풍나무일수록 그 잎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히려 감사해 보십시오. 그 고통은 풍요로 변하고 아름다움과 인생의 경륜으로 쌓이게 될 것입니다.

전기가 없는 사람들의 수가 20억이 넘습니다. 식수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아무데서나 퍼 마시는 사람들의 수는 10억이 넘습니다. 12억이 하루 1달라 미만으로 살고 있습니다. 1억명의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8억명이 영양실조이고 5세 미만만 매년 4만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아핀이라는 사람은 세 가지만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첫째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 셋째는 소망만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옷이 몸에 좀 끼이며 뭐 불평할 것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위장이 튼튼하다는 증거이니 감사할 일입니다.

고쳐야 할 하수구와 닦아야 할 유리창이 있으면 귀챦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내 집이 있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정부에 대한 불평 불만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그건 언론의 자유가 있으니 감사하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것 불평하지 말고 세금을 낼 만한 돈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주차장 맨끝 먼 곳에 겨우 자리가 있다면 이웃들을 보며 얌채라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불평하지 말고 그건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구나하고 감사하면 됩니다.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여 장수하게 하기 위해서 시키는가 라며 감사하면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음악 지휘자'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미네소타 의과대학교 데일 앤더슨박사는 지휘봉을 흔드는 것이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유연성을 길러주며 엔돌핀을 증가시킨다고 밝혔습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95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89세, 카라얀은 81세, 아드리언 볼트는 93세를 누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고 남편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 원망하지 말고 "아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기도 제목 주시는 구나" 감사하면 됩니다. 사업이 잘 안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난 가운데 지혜를 터득하게 하기 위해 주신 기회이구나"라고 감사하면 됩니다. 방귀가 나오면 원망할 것없습니다. 건강하여 감사할 일입니다. 수술한 사람이 방귀가 나오지 않아 얼마나 초조합니까? 무좀이 있으면 그것 원망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무좀도 안 생기면 그것은 인생 다 될 때입니다. 이제 아주 천국 갈 때가 되면 무좀도 발에서 떠나 버립니다.

교회를 보며 원망하기 보다는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이 없다. 돌봐 주지 않는다. 뜨거움이 없다. 말씀에 능력이 없다. 비좁다. 프로그램이 없다." 갖가지 구실을 붙여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웰즈가 "완전한 교회를 찾지 마라. 찾을 수 없을뿐더러 찾아낸다 하여도 당신이 그 교회의 교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듯이 완전한 교회는 세상에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것을 느끼면 나에게 사랑하라고 하시는 군요라고 감사하세요. 말씀이 능력이 없게 들리면 나에게 더욱 설교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는구나 받아들이고 감사하세요. 그러면 감사의 조건들은 더 많아지고 신앙생활은 더 풍요로워집니다.
남편 아내 자식 부모를 보고 원망할 것없습니다. 남편이 돈을 적게 벌어오면 돈 많이 벌려고 중노동 하다가 빨리 천국에 대려가지 않고 오래 이곳에 살게 하시려고 하시는 구나 감사하면 됩니다. 남편이 진급이 늦으면 빨리 명퇴시키지 않게 하시려고 하시는 구나 감사하면 됩니다.

2. 태도 경쟁력

정신의학자 칼메닝거는 "태도는 지식보다 중요하다"라고 했습니다. 태도에 타라 미래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커밍워크는 성공의 4요소를 머리, 지식, 기술, 태도라고 말하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사건이기 보다는 해석입니다. 사건보다 미래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은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우리 불경기이고 참 어려운 일이 많이 있지만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 경쟁력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만큼은 저 김집사님 따라갈 사람이 없어, 감사 만큼은 저 오권사님 비교할 사람이 없어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설교할 때 마이크 없이 3만 명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하신 분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촛불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전깃불 주시고, 전깃불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별빛 주시고, 별빛 은혜를 감사하면 달빛 주시고 달빛 은혜를 감사하면 햇빛 주시고 햇빛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영원한 어둠이 없는 하나님의 빛으로 비추어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면 감사는 감사를 낳지만 불평하면 불평은 불평을 낳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감사한 만큼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을 살면 손해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에디슨은 1914년 12월 예순 일곱살 때 그의 실험실에 화재가 발생하여 하룻밤에 필생의 과업을 다 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손해액은 200만달러가 넘었지만 보상금은 겨우 23만 8000달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폐허가 된 실험실을 바라보며 “재난도 가치가 있지. 내 모든 실수가 다 타버렸으니까. 하나님, 제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답니다. 화재에도 감사한 에디슨은 3주 후에 최초의 축음기를 세상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3. 미래 경쟁력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에 대한 이야기 중에 이런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조지아주에 말터벨이라는 여 선생님이 있었답니다.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너무 가난하여 피아노가 없어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에게 1000불만 보내달라고 간곡한 편지를 보냈답니다. 이 편지를 받고 포드는 마음이 상했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헨리 포드에게 돈을 요구해 받아갔지만 대부분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것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답니다. 이 선생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절할 수 없어 10센트를 보내주게 했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것을 감사하게 받았답니다. 10센트 만큼 땅콩을 사서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다 심었답니다. 수확을 거두어 팔아 그 돈의 일부를 헨리 포드에게 감사와 함께 보내었답니다. 또 다음 해에도 더 많은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었답니다. 그 결과 5년만에 피아노를 살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너무 감사하여 헨리 포드에게 다시 감사의 편지를 보내었답니다. 포드는 여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너무 기뻐서 선생님이 요구한 천불의 10배나 되는 만불을 보내면서 거기에 "당신이야말로 내가 미국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보내오, 나는 당신을 만나므로 감동을 받았소."라는 편지를 동봉했답니다.

감사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돈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감사한다고 세금 내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으로 표정으로 언어로 행동으로 표현하면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 싫어할 사람없고 감사하는 얼굴에 침 뱉을 사람 없습니다.
양이 양을 낳고 소가 소를 낳듯이 불평은 불평을 낳고 원망을 원망을 낳지만 감사는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한 만큼 삶은 풍요롭고 여유 있으면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 5병 2어 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감사하여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서 감사하였습니다. 다니엘을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감사하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감사한 대로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 당시에 일어난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리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한센씨 병(문둥병) 환자 10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자 마자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마 이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모도 외면한 사람들입니다. 형제도 친구도 다 잃은 사람들입니다. 신경조직이 썩어 얼굴이 일그러져 흉측한 모습으로 변한 그들을 환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통도 없이 코가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갑니다. 눈이 떨어져 나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 죽어야 할 병이었습니다. 전염병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래야 갈 수 없는 처지입니다. 백성들이 사는 마을에서 쫓겨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나타나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 입술을 가리우고, 멀리서서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를 쳐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를 어길 경우 돌로 쳐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 보건 기구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한센씨 환자는 8백만-1천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희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자 마자 부정하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한 번 불쌍히 여겨주시면 예수님이 한 번 긍휼을 베풀어 주시면 그 지긋지긋한 병에서 고침받을 줄 믿었던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이 말은 무슨 말인줄 그들은 알았습니다. 당시 문둥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보이고 최종적인 완치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가는 도중 완치를 받았습니다. 모두 너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너무 감사해서 다시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리고 살려달라고 외쳤던 것보다 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생명의 은인입니다. 10명이 고침을 받았지만 9명은 감사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혼혈인들이 많아 유대인들로부터 개취급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9명의 유대인들은 그저 고침만 받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한 명의 사마리아인은 고침을 받을 뿐 아니라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감사한 결과입니다. 성경은 감사를 못하면 우리의 마음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우둔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롬1:21,22) 반면에 감사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시 50:23) 기쁘시게 하고 우리가 풍요롭게 산다고 말씀합니다.(눅17:19) 감사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삶은 풍요롭고 행복합니다. 감사는 경쟁력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감사가 매마른 시대입니다. 감사 불감증에 걸린 시대입니다. 감사 결핍증에 걸린 시대입니다. 노동자들이 감사를 모릅니다. 사용자들이 감사를 모릅니다. 지도자들이 국민을 감사할 줄 모릅니다. 국민이 지도자를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저 적으로 생각하고 타도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사회가 그렇습니다. 부르즈와는 플로리타리아 혁명의 대상입니다. 다 남 때문에 잘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민족으로 변해야 합니다. 이 정도 사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 사람이 절간의 쥐처럼 가난하다고 했습니다. 초기한국교회의 찬송가 가사가운데 "옷과 밥을 주시고 좋은 것을 다 주네!" "천국 떡을 날 싫도록 먹여주오"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하였으면 이런 찬송가 가사를 불렀겠습니까? 봉건 이씨 왕조, 식민지 생활, 해방하자마자 민족상잔의 비극을 격은 나라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탄가스에 질식사했습니까? 그것이 불과 20-30년 전의 일입니다. 자원도 기술도 아무것도 없는 나라가 자생력으로 선진국 대열에 끼여들려고 하는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저 앉아서는 아니됩니다. 감사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 우리 한국교회가 얼마나 감사가 풍요로웠습니까? 1900년에 한국에 교회가 840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20개 정도가 부분적으로 선교사의 보조를 받고 있었고, 그 외에는 모두가 자력으로 세워진 교회였다고 합니다. 너무나 가난했지만 1987년 인도에 참혹한 기근이 들었을 때 한국 최초의 교회였던 황해도 솔내교회는 56원 84전을 연보해서 인도에 보내었습니다. 이때가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지 겨우 12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사회를 이끌어 갔습니다. "미신타파, 도박, 술 담배의 절제운동, 남녀평등운동, 한글보급과 문맹퇴치사업"에 앞장섰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워 한국을 근대화하는 일에 선구자적인 일을 감당했습니다. 감사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맥추 감사절이 되며 보리를 가져오고 떡을 해 놓고 풍성한 감사 잔치를 한 기억이 납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기독교가 가는 곳마다 감사를 넘치게 하는 종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점점 감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치열한 마케팅이 횡행하고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감사가 경쟁력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지켰던 맥추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자유민의 축제였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는 축제였습니다. 불쌍한 이웃을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 "절기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 함께 참여하라"(신16:11)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는 절기였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우리는 가만히 인간성대로 방치해 버리면 감사 불감증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지적했듯이 감사를 의도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쉽게 입술에서 잊혀지게 됩니다. 의도덕으로 감사를 해야 합니다. 체스터튼(G. K. Chesterton)은 "나의 주된 인생관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감사를 의도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그의 책 '열정'에서 감사의 생활을 실천하려면 첫째, 감사할 대상을 찾아 칭찬하고 마음을 전하고, 둘째 우리가 열망하는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감사하며 셋째 우리에게 닥친 문제와 도전 과제에 감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교훈입니다. 한 명의 한쎈씨 환자를 예수님을 의도적으로 찾아갔습니다.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우선순위를 감사에 두었습니다. 겸손하게 무릎을 끓어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은혜를 망각하지 않고 은혜를 은혜로 갚았습니다. 9명의 군중심리에 휘말리지 않았습니다. 홀로라도 감사한 것은 감사로 표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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