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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나갈 때 붙잡아야 할 것들 (막 10: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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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오늘 말씀은 에수님이 승승장구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본문 32절 말씀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놀라고 두려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주님과 동행한다 할 때, 승승장구할 때가 위기입니다. 오늘 이야기도 이러한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 제자들끼리 누가 크냐 논쟁하였습니다. 야곱와 요한이 예수님이 왕이 되면 각각 좌의정과 우의정겠다고 논쟁하자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분노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32절에서 하반절 “이에 다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미리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조금만 승리하면 본질을 떠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온전한 신앙인 것처럼 보이지만 헛된 것 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허황한 것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십자가 붙들어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부른 찬송가 135장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라는 찬송가사가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엉뚱한 것에 잡혀 있을 때 십자가의 말씀을 통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말씀을 전한 이유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헛된 욕망에 찬물을 끼얹으시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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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신이 몽롱해지고 졸음이 올 때 찬물에 세수하면 몽롱함과 졸음이 다 달아나 버립니다. 예수님도 이상한 열기에 빠져 있는 우리들에게 찬물을 끼얹으심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으면서도 얻을 이익 생각합니다. 이러한 예는 이민교회에서 많이 보입니다. 세상에서 실패한 이들이 교회에서 인정받으려 하는 폐해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섬김과 자기 죽음의 곳입니다. 세속의 욕망을 에수님 이름으로 채우려 해서는 안됩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내가 그를 위하여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이같이 내가 추구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가 세속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닌가? 엉뚱한 것 붙잡고 있는 것 아닌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 다 버리라고 찬물 끼얹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은 수동태 인생입니다. 스스로 잘나가는 것 같고 내 능력으로 모든 것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위기 한번 맞아 보면 인생은 수동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붙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100%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십니다.
 
약해지면 군더더기가 다 사라집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약할 때 강함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약해질때는 꼭 필요한 것만 추구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아니라 쓸데 없는 것 추구하지 않고 열매맺는 인생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쓸데 없는 것 추구하고 있는 우리 인생에게 중요한 것은 천국 아니냐? 죽음 이후 세계가 아니냐?고 가르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나 찬물세례 받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고난받는 인생입니다. 찬물 세례 받고 정신 차리는 인생,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 걷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만이 우리 삶 가운데 진정한 무게를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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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운데 있습니다. 조금만 잘나가면 희희낙낙합니다. 그러다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실망하고 낙담합니다. 미성숙은 모든 조건을 자기에 맞추려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모든 조건에 만족합니다. 십자가를 추구하는 인생이 그런 인생 만듭니다.

십자가의 인생은 이땅의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의 것을 추구합니다. 땅만 쳐다보는 넝마인생이 아니라 하늘나라 보며 꿈과 비전 추구하는 인생 되십시오.

독수리는 화살에 맞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낮게 날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구름 위로 올라가 버리기도 합니다. 십자가 바라보는 인생은 독수리처럼 높이 나는 인생, 부활지향 인생, 미래지향 인생입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멧돼지처럼 땅 파고 땅의 것을 추구하다 언제 하늘나라를 추구할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능력있게 살라” 명령하셨습니다. 왜 성도들이 약해졌습니까? 십자가 없으면 능력도 없고 영광도 없습니다. 십자가 있으면 핍박 당하지만 무게가 있습니다. 독수리 날개치듯 창공을 뚫고 나가는 인생이 되십시오 십자가 질 때만 그런 이생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 질 때만 무게 있는 인생 살 수 있습니다.



명확한 방향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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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것이 복이고 희생당하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기 위해서 그리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할 일은 섬김, 죽음, 희생입니다. 잘 죽는 것이 능력이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입니다. 많이 주면 많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주고 섬길 수 있습니까? 내 능력으로는 안됩니다. 성령이 함께 할 때 가능합니다. 언제 성령이 함께 합니까? 말씀이 함께 할 때입니다. 시편 119편 9절에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결심으로 예수님과 끝까지 동행한 것 아닙니다. 결심으로 했을 때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 말씀 들었을 때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한사람 한사람이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훌륭한 신앙이 되기 이해서는 영성과 지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험이 왔을 때는 지성이 있는 자가 살아남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였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에 위기 찾아왔을 때 성도가 그루터기로 남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무장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LA 박광철 목사님은 “No Bible No breakfast”를 표어로 삼아 말씀 없이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 합니다. 우리는 이에 나아가 “No Bible No bed”가 되어야 합니다. 하루 한절이라도 읽겠다는 자세 가질 때 기독교 명문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는 헛된 것 추구하는 우리에게 찬물 끼얹어 정신 차리게 하고 인생의 무게를 가지게 하며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게 만듭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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