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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의 열정을 품어라! (고전 9: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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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주철 목사 (영신교회)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남과 같이 살 줄 모르는 인생은 일평생 불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과 같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현대인의 위기는 함께 살 줄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신앙이란 적응 능력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디에서나 살 수 있고, 누구하고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어디를 가도 살지 못하는 사람은 종교인이지, 신앙 훈련을 받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의 영원한 가르침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4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기억하십시오. 풀 한 포기도 혼자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남의 덕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 타인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감정의 표현 능력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극심한 자기 감정의 표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문제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쉽게 자기 본능에 지배를 받습니다. 물론 사람의 행동은 본능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감정의 표현을 통제할 줄 모르는 사람을 우리는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본능의 지배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본능의 지배를 받지 않고 본능을 통제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다스리면 우리는 육체의 본능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소멸시키지 마십시오. 성령을 속이지 마십시오. 성령을 훼방하지 마십시오. 오직 성령을 따라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에 붙잡혀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우리의 삶이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복된 인생 여정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뒤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혼돈과 좌절만 경험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지저귀게 하고, 여러분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그 사명만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보다 훨씬 약합니다. 의타심이 많아지고 독립심이 없어지고 배짱도 없어집니다. 사람의 소리에 민감해지다 보면 마음만 약해집니다. 자꾸만 사람을 의지하다보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오히려 자신을 작게 만들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환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의 소리에 민감하지 말고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더불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로마서 14장 1절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서로 남을 판단하지 말고, 형제자매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않겠다고 결심하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제 자매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사랑할 수 있는 권한만을 주셨습니다. 노아의 자녀들을 보십시오. 셈과 함과 야벳은 모두가 노아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아랫도리가 벗겨진 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을 때에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밖에 나가 폭로를 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질 쳐서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가려줍니다. 잠에서 깬 후에 그 사실을 안 노아는 함에게 저주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셈과 야벳을 축복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은 노아의 한 가정에서 일어났던 사건이지만 여기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수치를 덮어줍니까, 아니면 비방합니까?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까? 한번이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면 우리도 동일하게 노아의 저주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셈과 야벳의 자세로 모든 공동체적 갈등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노아가 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식된 함은 노아를 그렇게 대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의 경험과 이성적 판단 기준에 가두어두려고 하지 마십시오.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유한한 우리 인간의 경험과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교인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그 사람은 이제는 힘들 것이다. 안될 것이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날 저녁에 집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것도 있나요? 당신의 하나님은 안 되는 모양이지요?" 그 말을 듣고 나 자신의 판단 기준이 먼저 앞섰던 불신앙을 회개했습니다. 제가 한 말이 어쩌면 열 명의 정탐꾼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이 바라본 가나안 땅에 대한 평가는 정확했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의 평가는 이상론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사람의 평가를 인정하셨습니다. 왭니까? 열 명은 세상적인 판단으로는 정확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세상 사람들은 이상론자들이라고, 미쳤다고 말했겠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담대하게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야훼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우리는 그 땅으로 들어 가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는 우리의 비전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보고 기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됩니다. 내 안에 있는 인간적인 모든 판단 기준을 포기하는 훈련을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역사하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자주 자신의 이성적 판단 기준에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려고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유한한 이성적 판단에 하나님의 능력을 가두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못하실 일도 없고, 못 이루실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무엇이 우리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9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적 판단을 거부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되고 안 되고를 말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되고 안 되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구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히기만 한다면 마른 막대기로 홍해를 가르게 될 것입니다. 마른 반석에 물이 솟아나게 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른 막대기가 모세의 손에 들려졌기 때문에 역사를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그 마른 막대기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개입하셨기 때문에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주여, 마른 막대기 같은 나를 붙잡아서 이 죄악된 세상을 치시옵소서!"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혼돈과 좌절과 곤고함과 같은 일들을 계속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 안에서 신앙의 주역으로 산 사람들은 이런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어떤 아픔과 혼란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때마다 일마다 묘한 방법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나가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아름다운 땅을 보아도 무서운 땅으로 보게 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래를 보아도 두려워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면서 아름답게 보지 못한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일단은 아름답게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교회.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기업.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가정.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부부. 이것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때에 문제가 있습니다. 모름지기 믿음의 사람은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영안의 눈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인간적 경험과 이성의 판단으로 보는 불신앙의 장벽을 무너뜨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삶의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게 되는 일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가르친 사람과 도와준 사람이 잘되어서 성공한 경우입니다. 세상에 그것처럼 보람있고 기쁜 일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성공은 자신이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을 잘되게 하고 성공하게 하는데 까지 가야만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으로 승리하는 삶을 통하여 삶의 보람과 행복을 만끽하는 삶을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힘쓰십시오. 그리고 많은 사람을 도와주는데 열심을 내십시오. 가르치는 일과 도와주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 게으른 사람은 절대로 성공적인 삶을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에 가르친 사람이 성공하는 것과 도와준 사람이 잘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보람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전도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에 큰 일군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 보람은 세상의 어떤 보람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기쁨은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기쁨과 도와주는 기쁨을 모르거나 상실한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그것은 아주 좋지 못한 사회입니다. 세상이 도와주는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면 세상은 공산주의 혁명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다. 가르치는 일과 도와주는 일을 싫어하거나 게을리 하는 나라와 민족은 절대로 훌륭한 나라와 민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아니하고 게으르게 되어 복음 전하는 기쁨을 상실하게 되면 그것은 교회의 위기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기쁨과 보람을 상실하고 잃어버린 교회와 교인은 절대로 좋은 교회와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정체할 뿐 아니라 퇴보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 한국 교회가 영적으로 헛배가 불러서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기쁨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한국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와 선교의 열정과 기쁨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저는 이러한 전도의 열정이 우리 영신교회에서 먼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우리 영신교회가 세상의 그 어느 일보다도 전도를 열심히 하는 그런 교회와 교인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변방에 있는 작은 교회이지만 이 변방에서 이 땅을 변화시키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아름다운 예배당 때문에 성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인들이 열심히 전도하여서 부흥하고 성장하는 우리 영신교회가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우리 영신교회 교인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여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어서 복음 전하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 고린도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교통의 중심지인 신흥 대도시였습니다. 그 곳 사람들은 돈에 집착하고, 부유하고 풍족한 가운데서 타락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타락한 도시에 살다보니 그 지역에 교회가 세워져도 전도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교인들조차도 자기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복음 전파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전도의 사명과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있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전도하면 상을 받을 것이고 전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낙심하고 절망한다고 했습니다.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약해지고,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 보면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득불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에서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여기에서 '부득불'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반드시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도는 반드시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피할 수 없는 의무요, 특권이요, 필수적인 사명입니다. 하늘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이 전도의 의무를 회피하지 마십시오. 전도는 교회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영적인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에게 어둠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 건강을 주십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십시오. 어떻게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우리가 한 영혼을 주 앞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 구원받아 주 앞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앞에 충성된 자는 바로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득불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바로 우리의 사명이고 의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직장과 가정,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전도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을 다시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본문에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화'라는 말은 '슬픔을 겪고 고통에서 탄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저주를 받고 재앙을 당하고 멸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서서히 떠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의무를 저버리고, 주님의 지상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악하고 게으른 종의 자세인 것입니다.

열왕기하 7장에 보면 B.C. 845년 경 아람 왕 벤하닷이 군사를 모아서 사마리아에 쳐들어 왔습니다. 사마리아 성을 에워싸고 있을 때에 성 사람들은 굶주리고 목말라서 짐승들을 다 잡아먹고 마침내 어린아이까지 잡아먹어야 할 비참한 형편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풍족한 복을 주시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날 성문 밖에 있던 문둥병자 네 사람이 아람 진영에 가 보았더니, 아람 군대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 군대 소리를 듣고 도망하고 거기에는 풍족한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먹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버리고 간 금과 은과 의복을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문득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그들은 자신들만 먹고 마시고 즐기면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성으로 가서 적진에 먹고 마실 음식이 풍족하게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생명을 구원하는 아름다운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를 당할 것입니다. 축복 받은 성도들이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고 감추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빼앗고 도리어 화가 미치게 될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생활이 너무 바빠서 전도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신앙이 좋지 않아서 전도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전도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할 일은 다합니다. 갈 곳도 다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핑계를 대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허송세월하지 마십시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화를 당하기 싫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상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세 번째로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임의로 전도하면 상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본문 17절의 말씀입니다. 1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개역개정판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맡았노라"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받을 분량보다 훨씬 더 많이 넘치게 축복하여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로서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의 복음을 기쁘게 전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가 부강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가정이 화목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자가 먼저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상 받을 자의 자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의롭게 사는 사람(잠 11 : 18), 주로 인해 핍박당하는 사람(마 5 : 12), 주를 성실히 섬기는 사람(골 3 : 22∼23), 하나님을 찾는 사람(히 11 : 6),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마 25 : 21), 또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그 계명대로 사는 사람(잠 13 : 13)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베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결코 이 세상에서 버림당하거나 멸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약속의 말씀을 믿으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에 열정을 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요 목사였던 스펄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나의 유익을 위해서 전도하고 싶다. 먼 훗날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을 때, 내가 전도함을 통해서 전도 받고 천국 간 사람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고 환영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기쁨으로 전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 때문에 천국 가는 사람이 있고, 나 때문에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전한 전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으며 천국에 간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오늘 저는 우리 모두가 스펄전 목사님이 품었던 전도의 열정을 품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전도의 기쁨을 온 몸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믿어야 삽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고 사는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이 철철 넘쳐흐를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구원의 사실을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과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를 믿어야만 삽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백약이 무효입니다. 어떠한 처방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기왕이면 억지로 전하는 자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민족 구원을 위해서 전 존재를 바쳤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열정을 본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의 말을 사람들은 믿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는 친척과 친구들과 이웃으로부터 치욕과 모욕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심장에 불타오르는 듯 뼈 속까지 에워싸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전도할 사람이 전도하지 않고, 기도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고, 봉사할 사람이 봉사하지 않으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숙한 신앙인은 나 자신이 전도하지 않는 것을 답답해 할 줄 압니다. 그러나 병들고, 신앙이 마비된 사람들은 답답한 것을 모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교만과 게으름과 강퍅함의 병이 든 사람들은 전도하지 않아도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영신교회 교우 여러분들은 불붙는 듯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내게도 예레미야의 전도의 열정을 주옵소서. 내게도 전도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 없는 불타는 마음을 주옵소서."

요한 웨슬레가 87세 되던 해 알렉산더 메더(Alexander Mather)에게 보낸 편지 속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죄가 아니고는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는 사람, 하나님이 아니고는 전혀 원하는 것이 없는 전도자 100명만 저에게 보내 주십시오. 그들이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상관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라야 지옥문을 부술 수 있으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만이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만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 전도하는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프란시스 자비에르(F. zavier)는 16세기 사람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라면 천 번의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는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라도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인내와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한 두 번 전도하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전도의 씨앗을 뿌리고 전도의 열매를 맺을 때까지 거기에 집착하고 충성하십시오. 전도는 때가 있습니다.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문이 닫힐 지 모릅니다. 지금 전도해야 합니다. 오늘 작정하십시오. 그를 위해, 그 영혼 구원을 위해 전도하십시오. 결과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접근하고 전도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를 영신교회로 인도합시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쉬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쉬지 말고 끈기 있게 줄기차게 전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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