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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신앙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막 5: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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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구 목사 (창원한길교회)

아프리카 선교사로 서원을 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열심히 선교훈련을 받고 드디어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던 중에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하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은 "아 죽었구나, 이 망망한 대해에서 어떻게 살아나겠나?" 해서는 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허우적 거리던 청년의 손에 큰 널빤지가 하나 잡혔습니다. "휴, 살았구나" 그 청년은 그 널빤지를 붙잡고 표류를 하던 끝에 어느 섬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섬에 도착하자마자 원주민들이 달려들어 자기 주변을 휭 둘러싸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젠 진짜 죽었구나.." 그 원주민들은 복장을 보아하니 식인종임이 분명했습니다. 아프리카선교를 하겠다고 그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는데 이렇게 꼼짝없이 죽게 생겼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원망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죽었습니다. 이럴바에는 왜 저를 선교사가 되라고 하셨습니까?"...

그 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너는 아직 죽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말을 하냐? 아직 살아있다" 그 청년이 대답합니다. "아니 하나님 저는 죽었습니다, 저것 보세요. 저렇게 나를 잡아 먹으려고 달려오는 식인종들이 안 보입니까? 저는 죽은겁니다" "아니 너는 아직 안 죽었었어" "아니요 저는 이제 죽었다니까요?"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럼 좋다. 지금 네 발밑에 파란 돌이 하나보이지? 그 돌을 들어서 그 가운데 서 있는 추장을 향해 힘껏 던져라"

그 말에 이 청년이 용기를 내어서 돌을 들어 추장을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셨는지 돌이 정확하게 추장의 이마에 딱 하고 맞도니 추장이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습니다. "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저 추장을 돌로 맞추어 죽였습니다." 청년이 기뻐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넌 이제 진짜 죽었다"  (청년이 보니 격분한 원주민들이 창을 들고 달려오고 있더랍니다)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계십니다. 죽었다, 죽었다 하면 진짜 죽는 것이고, 살았다 살았다 하면 살려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선교사로 아프리카까지 보내실 때에는 분명한 뜻과 섭리가 있고 자기를 향한 계획이 있으신 겁니다. 그런데도 이 청년은 자기 눈앞에 나타난 일만 보고 지레 겁먹고 두려워하고 죽었다 죽었다...하다가 진짜 죽을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괜히 부르신 사람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분명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시고 이 자리로 부르셨고 예수 믿게 하셨고 또 하나님 섬기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환경으로 인도하시든지, 어떤 자리, 어떤 처지에 처하게 하신다 할찌라도 결코 낙망하거나 두려워하지말고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환경을 넘어서는 믿음을 가지실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36절에서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두려워말라,..고 하시는 형편이 어떤 형편입니까?
35절입니다. "딸이 죽었나이다...."

지금 이 회당장은 자기 딸의 병을 고쳐줄 것을 예수님께 간청하며 나아왔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간청을 들어주셔서 지금 그 딸의 병을 고쳐주시기 위해 회당장의 집으로 가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지금 회당장의 집으로 가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서둘러서 가시지 않고 뭔가 좀 지체하시는 듯이 보입니다. 21절부터 24절까지를 읽어봅시다.....

이렇게해서 지금 가시게 되었으면 좀 빨리 가셔서 손을 얹어 병을 낫게해주셔야 됩니다. 그런데 25절이하에서 예수님은 한 여인을 만나 그 자리에서 지체하시는 것을 보게됩니다. 바로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를 고치시는 일 때문입니다.
지금 한시가 급한데 다른 병자의 병을 고치신다고 예수님이 지체하시는 것을 본 회당장의 마음이 얼마나 갑갑했겠습니까? 저 여자는 시간을 다투는 질병이 아니니까 나중에 천천히 고쳐주셔도 되지만 내 딸은 지금 생명이 경각에 달렸는데 빨리 가셔야 되는데 왜 저리 지체하시나...? 답답했을 것....
또 중간에 예수님을 막아선 여자가 원망스러웠을 것...

또한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은 더 시간을 끌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30절......여자는 남 몰래 예수님 뒤편에 와서 옷깃만 살짝 만졌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여자가 병이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예수님 옷자락을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 모릅니다. 몰래 살짝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자 병이 나았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바쁜데 옷만 잡아도 병이 나았으니까 그걸로 된 것 같은데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는 주위를 둘러 보시고 '누가 내 옷자락을 잡았느냐?'하시면서 굳이 이 여자를 찾으시려고 합니다.
회당장이 얼마나 속이 타겠습니까? 아니 왜 가다가 멈춰서서는 누가 내 옷 잡아 당겼냐? 지금 그게 뭐 중요하냐? 빨리 가서 내 딸에게 안수나 해 주시지.....
그런데도 예수님은 굳이 이 여자를 찾아내시려고 했고 결국 한참 걸려서 여자가 자백을 했습니다. 33절......"모든 사실을...." 또 여자가 말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겠습니까?
그리고는 35절입니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여자 붙잡고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회당장 집에서 사람이 와서는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이젠 저 분 모셔가도 소용이 없습니다....괜한 수고 마십시오..."

여러분 아마 제가 회당장이었다면 예수님 멱살을 잡고 흔들었을지 몰라요. 진작 빨리 가자 그러니까 안 가시고 꾸물대시더니 이게 뭐냔 말이예요. 이젠 소용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끝났다 말입니다. 당신이 가봤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36절에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사람이 죽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이제 끝났다 말입니다. 그런데 뭘 두려워말고 뭘 믿으란 말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기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고 말하는 그 자리에서 주님은 '그래도 두려워말라 믿기만 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얼 두려워말라...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는 이 상황을 두려워말라..는 것입니다. 딸이 죽었다...이건 끝났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나 모두가 끝났다.. 소망이 없다..고 말하는 그런 자리, 그런 환경에서도 너희는 결코 두려워하거나 낙망해서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무얼 믿어요? 내가 같이 가겠다고 했고 네 딸의 병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지금 내가 너와 동행해서 이 길을 가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그 말을 한 나를 믿고, 그 말대로 지금 너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 앞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 도우겠다고 했고 한번 주시겠다고 했으면 그 말은 틀림없이, 어떤 상황, 어떤 악조건이 계속된다고 해도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지금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이 가도 소용이 없다..고 말한 것은 누구의 말입니까? 회당장 집에서 온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예수님이 '아, 딸이 죽었으니 내가 가도 소용없겠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 아, 그 때 했던 말은 딸이 살았을 때 고쳐준다는 말이었지 이젠 죽었는데 무슨 의미가 있냐? 그냥 위로나 받아라...' 이렇게 말씀하신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상황이 달라지면 말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철석같이 했던 말도 상황이 달라졌다고 쉽게 뒤집고 번복하는 것이 세상인심입니다. 요새 대통령도 보니까 국민투표 한다고 했다가 상황이 달라져서 의미가 없어졌다...그러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도 자기 말에 책임을 다 지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앞에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 없습니다. 전에 말할 때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이런 것이 없단 말입니다.
주님은 한번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아무리 상황이 달라지고,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 주님은 그 환경을 충분히 넘어서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뀌어진 상황을 얼마든지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는 권세와 능력이 우리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한번 고쳐주신다고 했으면 그 문제가 질병이든, 질병을 넘어선 죽음의 문제이든지간에 우리 주님은 반드시 고쳐주시고야 마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이 신실하지 못해서 이고 다른 하나는 능력이 없어서입니다.
사기꾼은 처음부터 아예 작심하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럴듯한 약속을 수없이 남발하지만 제대로 지키는 약속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입니다. 내일부터 새벽기도를 하겠습니다...하고 약속을 했는데 다음날 되니까 못 나왔습니다. 왜 약속을 못 지켰나? 했더니 몸이 아파서 못 나왔다고 했습니다. 지킬 마음은 있는데 몸이 아프니까 새벽에 도저히 못 일어나겠더라 말입니다. 10년안에 반드시 집을 산다..하고 약속을 했는데 10년이 지나도 집을 못 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처음에 약속 할 때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살아보니까 능력이 안되더라 말입니다....
이와같이 사람은 신실함이나 능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한번 입으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속이거나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마귀와는 근본이 다른 분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그 능력과 권세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하늘의 태양과 별의 운행을 주장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또한 믿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능력과 권세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불가능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분명히 믿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막다른 골목같은 위기에서 구원의 손길을 입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환란과 풍랑의 바다에서 기적같은 은혜를 입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이 말씀은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보는 소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주님의 선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우리 믿음의 영역은 어디까지입니까?
1. 내 시간표를 넘어서 까지입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생각한 문제 해결의 시간계획표는 어땠습니까? 자신이 예수님을 찾아나와 겸손하게 간절히 부르짖으면 즉시로 주님이 딸을 고쳐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시간계획표대로 움직였습니다. (22절-24절)
그러나 주님은 그의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가던 길에 혈루증앓던 여인을 만났고 그의 병을 고쳐주셨고, 그녀의 고백을 끝까지 들으시고야 마는 주님의 시간표대로 움직이셨습니다.
야이로가 보기에는 더디게 보였고 지체하는 것처럼 보여서 혹 주님이 내 딸의 문제를 외면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아해했지만 주님은 약속대로 그 딸의 병을 완전하게 치료해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 생각, 내 계획대로 주님이 이루어 주시지 않을 때에도 '두려워말고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주님이 응답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시간표대로 일이 진행되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지만 내 계획과 다르게 일이 진행되거나 지체하면 금새 믿음을 잃고 낙심하고 포기를 잘 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도 두려워말고 믿기만하라" 아멘...주님은 주님의 때에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을 향한 우리 믿음의 영역은 어디까지입니까? 따라서 합시다.
"내 상식을 넘어서까지이다"
야이로를 비롯한 그 집의 사람들은 주님의 능력은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까지라고 믿었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딸이 죽어버렸을 때 끝났다..고 생각했고 안되는가보다...라고 생각해서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에도 두려워말고 믿기만하라" 무슨 말입니까? 주님의 능력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상식의 틀에 매여서 안된다, 끝났다..고 포기하지 말고 그 상식을 얼마든지 넘어서 역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믿음과 신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의 역사는 상식을 넘어선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로마에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냐?고 비웃었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로마, 그것도 바로 그 로마당국자들의 손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반역죄로 잡혀죽은 죄수를 메시야다, 인류의 구세주라고 선포하는 복음을, 로마사람들이 과연 들어주기나 하겠나? 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사슬에 묶여서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볼 때 무슨 가능성이 있고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들어간 복음은 불과 300년이 되지 않아서 로마 황제의 공인을 받았고, 급기야 세계제국 로마의 국교로, 모든 제국의 사람들이 무릎꿇고 조아리는 절대적 종교로 추앙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이루어질 줄을 상식의 틀에서는 절대로 몰랐습니다. 불가능이요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 바울의 믿음은 상식을 넘어서는 일을 하게 했고 그 일은 결국 상식을 넘어선 놀라운 열매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식의 틀에만 매여서 현실만 보고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상식과 현실을 넘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물론 상식을 존중해야 합니다. 현실을 무시하는 허황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안된다고 낙망해서는 안됩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쉽게 단정하고 너무 쉽게 포기해도 안됩니다. 우리는 상식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사람들 아닙니까? 눈에 보이는 현실만 현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도 우리에게는 분명한 또 하나의 생생한 현실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야이로곁에 동행하시는 분이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딸이 죽었다는 소식앞에 절망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곁에 서셔서 함께 걸어가고 계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 예수님이시라면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아니라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이 주님은 이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 곁에 주님이 동행하고 있음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곁에 서셔서 인생의 걸음을 같이 걸어가고 계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심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이 믿음으로 주님과의 동행이 얼마나 놀랍고 신나는 은혜로운 삶인지를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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