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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 올림픽 (히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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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식 목사 (평화교회)

2004년의 찜통더위가 태풍 매미와 함께 물러갔습니다만, 새로운 열풍이 온 세상에 불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테네에서 불어오는 올림픽의 뜨거운 소식들입니다.

사람들은 운동 경기를 좋아합니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굳센 체력과 불타는 투지가 하나로 엉켜 탄생시키는 극적인 장면에 통쾌함을 찾습니다. 이번 올림픽 경기를 세계인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만,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어찌 보면 공 하나가 날아가는 방향에 따라,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에 따라, 때론 기뻐하고 때론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좀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운동 경기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승패를 미리 알 수 없다는 매력이 큽니다. 만일 모든 경기의 승부가 수준이나 실력에 따라 미리 결정된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지만, 한편 도처에 깔려있는 우연과 뜻밖의 상황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승패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강자는 완벽한 승리를 준비하고, 약자는 기적 같은 승리의 꿈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운동 경기 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살이가 그러합니다. 잘 나가는 사람이 항상 성공하는 것이 아니요, 못 배운 사람이 항상 뒤에 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 저 사람은 얼마만큼 성공하겠다는 예측 가능하지만, 때로는 우리 인생이 뜻밖의 일들을 만나 실패와 성공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무한한 가능성과 맞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이런 삶의 모습의 축소판으로서의 올림픽 경기가 지금 전 세계의 축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스포츠를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때로는 운동 경기에 흠뻑 빠질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운동 경기를 통해서 많은 교훈과 진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교훈의 첫째는 말씀드린 대로 영원한 승자가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일입니다. 오늘의 승자는 내일의 패자입니다. 이 땅에서는 영원한 승자나 권좌는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영원한 영광도 없습니다.

둘째, 자만은 금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만한 자세를 가지면 패합니다. 자만해 연습을 소홀히 하면 그 결과가 그대로 나옵니다. 승리에는 인내와 겸손과 자기 절제가 필수적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진 사람은 경기를 아직 안 해도 이미 진 사람입니다. 앞으로 질 사람입니다. 자기를 이긴 자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남도 이길 수 있습니다. 정신력의 싸움, 자기 절제와의 싸움, 감정의 싸움, 끊임없는 훈련의 싸움 이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운동 경기는 상대방을 이김으로 승리자가 됩니다. 승리는 영광이요 패배는 비참합니다. 한 팀이 이기면 한 팀이 집니다. 그러나 우리 생활의 대부분이나 우리 신앙은 상대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습니다.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고,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셋째로 승리를 위해서 지불하는 대가는 크다는 사실입니다. 운동선수는 바람직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입니다. 때로는 힘듭니다. 때로는 고독합니다. 때로는 고통스럽습니다. 시간도 정력도 인생의 목표도 오직 하나를 위해 쏟아 붓습니다. 한 분야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다 포기합니다.

승부는 몇 분, 또는 몇 초라는 잠깐 사이에 판가름이 납니다. 그러나 이런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서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불했는지 모릅니다. 몇 분을 위해서 10년 이상을 공들인 것입니다. 참 귀한 인생의 교훈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상 재미도 모르고, 일요일 쉬는 즐거움도 빼앗기면서 교회에 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장 큰 영적 만족을 위해서 덜 중요한 세상일을 버린다는 이 진리를 이해 못합니다.

미국이 낳은 유명한 부흥사 무디 선생은 부흥회를 인도하는 도중에 과로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염려하고 위로합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나의 승리입니다. 오늘도 전도자의 책임을 다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대로 죽는다 해도, 다른 기쁨 다른 즐거움 다 누리지 못한다 해도, 내 삶의 목표를 향해 살다 가는 것,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궁극적 승리를 위해서 다른 것 다 포기해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넷째, 반칙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운동은 철저하게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규칙에 벗어난 행동을 하면 심판의 판정을 받게 됩니다. 경고를 받거나 심한 경우에는 퇴장을 당합니다. 아무리 골을 넣었다 하더라도 규칙에 어긋난 것이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편만한 부조리를 강조한 나머지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가 없다고 너무나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거짓된 자에게는 결과적으로 볼 때 결코 영광이 주어지지 주지 않습니다. 공의의 규칙이 인생살이를 공정하게 심판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잃지 말고, 이 믿음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아니면 유혹받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다섯째, 우리는 운동 경기를 통해 일체감을 갖습니다. 어떻습니까? 경기를 보면서, 선수 한 사람이 넘어지면 우리 모두가 아프고, 선수가 한 골을 넣을 때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하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팀의 승리가 마치 내 생애 최고의 날인 것처럼 많은 이들이 기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메달을 딴 그 선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얼마나 가깝습니까? 얼마나 사랑합니까? 그러나 같은 동족이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합니다. 분명히 선수는 선수이고 나는 나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운동 경기에 가 있으면, 선수보다 내 마음이 더 급합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고 나는 나입니다. 어떻게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 분이 오늘 나의 구원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 분이 나의 죄와 허물을 다 속죄해 주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과 내가 일체감을 가질 때, 마음과 감정과 영혼이 하나가 될 때, 우리는 그 구원의 신비를 내 것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당신은 둘이 아니요, 하나임을 우리는 운동 경기를 통해서 느끼면서, 신앙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자, 지금 올림픽 경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우리 삶의 자리에서는 신앙의 경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서는 국가 대표 선수들이 경기하지만, 여기서는 나 스스로가 신앙의 선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신앙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입니다. 선수들이란 뽑힌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향해 달리도록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불러낸 선수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기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8절에는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경기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는가? 오늘 성경 본문은 3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벗어버릴 것이 있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둘째는 인내로써 경기하라는 것입니다.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계속 달리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신앙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바라보면서 경기해야 합니다.

첫째,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거운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경기장의 선수들은 체중 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몸이 무거우면 이길 수 없습니다. 또 무거운 옷은 벗어버려야 합니다. 무거운 짐이 있다면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앙에 방해가 되는 짐은 다 벗어 버려야 됨을 의미합니다. 어떤 이는 취미 생활 때문에 신앙생활을 소홀히 합니다. 친구들과의 사귐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이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업도 장사도 중요합니다만, 때로는 이것이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것들 때문에 신앙생활을 소홀히 합니다. 이런 짐들은 다 벗어 버려야 하는데, 이런 짐들 때문에 신앙의 경주를 포기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신앙의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 이런 짐들을 벗어 버립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또 얽매이기 쉬운 죄도 벗어버려야 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 이것은 우리를 끈덕지게 쫓아다니는 죄, 나를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는 죄,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죄를 말합니다.

사람마다 강하고 약한 면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붙어 다니는, 얽매이기 쉬운 죄는 각각 다 다릅니다. 에서는 남자답지만 배고픈 것에는 약했습니다. 야곱은 지혜가 있었지만 남을 잘 속였습니다. 모세는 참 위대했지만 분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울 왕은 지도자였지만 남을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얽매이기 쉬운 죄가 하나씩은 있습니다.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이겨 나가야 합니다.

한 사람이 꿈을 꾸는데 사람들이 모두 높은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그 계단 저 위쪽 끝은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발에 쇠사슬을 하나씩 매달고 그 계단을 오릅니다. 쇠사슬이 잡아당기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고, 그런대로 잘 올라갑니다.

한참 올라가면 갈수록 점점 이 쇠사슬이 무거워 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쇠사슬을 뚝 끊어버리고 날듯이 올라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쇠사슬 줄이 아래서 잡아당겨 아무리 힘을 써도 더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꿈을 깨어 생각하니, 아, 그렇구나,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 우리 자신을 돌아  보면서, 내게 달라붙어 있는 이런 무거운 약점,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인내심입니다.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아마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심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현대인은 느긋한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진득한 마음이 없습니다. 너무 조급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신앙생활에서 인내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장거리 경주와 같습니다. 마라톤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마태복음 24장 13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되 응답해 주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을 주실 때, 우리가 그 응답받기를 포기하고 있다면, 그래서 인내가 부족해서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전도하되 열매 맺기까지 인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생명이 천국 백성이 되는 것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 존재가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돌아서는 것, 참으로 귀한 일인 만큼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전도하되 인내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해야 합니다. 징계의 채찍을 맞을 때, 고난의 쓴 잔을 마실 때, 이 어려움이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될 때 필요한 것은 인내하는 일입니다. 고난이 참으로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지만, 인내의 결과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11절에 말씀합니다.

셋째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경주의 목표는, 골인 지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천문학자가 멀리 우주를 바라보듯이, 비행기 항해사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 도착 지점을 바라보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때론 해운대 앞바다에서 요트들이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 당장은 바람 부는 대로 갈지자로 움직이지만, 그러나 목표는 분명합니다. 직선 코스로 달리지 않는다고 해서 최종 목표를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등산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정을 향해서 직선으로 올라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둘러서 올라가기도 하고, 오히려 때로는 내려가기도 하지만, 최종 목표인 산 정상을 향해 가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 굴곡이 있고, 때로는 신앙에 의심과 회의가 있지만, 우리는 우리 목표인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참 약하고, 죄가 많고,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성공한 내 자신을 바라보면 교만하기 쉽고, 실패한 내 자신을 보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 믿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예수를 믿다가는 낙심하기 쉽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건강할 때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병들 때도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기쁠 때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슬플 때도 바라봅시다.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결국 신앙의 경주에 승리해 생명의 면류관을 내 것으로 소유하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 도 >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셔서, 신앙인으로서 생활 경기에 나서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아름답게 이 선한 경기를 시작했습니다만, 그동안 이 삶의 경기에 얼마나 많은 반칙이 있었고, 얼마나 많이 지쳤으며, 얼마나 많이 패배하고 실격된 채로 살아왔습니까?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시고, 우리의 과거는 십자가 밑에 묻어 버리게 하시고, 이제는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하사, 진정 주님의 말씀과 진리로 내 신앙 인격을 길들여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경건의 경기에 강하고 온전한 선수가 되어서 최후의 승리로 면류관을 얻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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