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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 번 씻으라 (왕하 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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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준 목사 (효자교회)

TV 드라마 재미있게 보는 방법

여러분 중에 TV 드라마 좋아하는 분들 많으실 것입니다. 모든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을 그냥 쭉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의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배치함으로서 더 재미있는 드라마가 됩니다. 주인공이 마냥 잘 되기만 하면 절대 재미없습니다. 반드시 주인공과 라이벌이 되는 사람이 등장해서 두 사람이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드라마가 재미있습니다. 또 드라마에 착한 사람만 등장하면 재미없습니다. 반드시 주인공과 정반대되는 사람들이 나와서 주인공을 미워하고 못되게 굴어야 스릴이 넘치고 재미있는 드라마가 되는 것입니다.

한 동안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드라마 역시 장금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특징을 엮어 가는데 아직도 그 이름들 기억하세요? 장금이 편에 서있는 한상궁, 민정호, 연생이 등의 축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금영이와 최상궁, 오겸호 대감 등의 인물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일정한 라이벌 관계로 첨예하게 대립될 때 드라마는 재미를 더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부러 주인공과 정 반대되는 성격의 등장인물들을 배치해서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하고 드라마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드라마 <나아만>의 출연자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의 치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많은 출연자들의 특성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출연자들을 살펴보면 주연급에 해당되는 나아만 장군과 엘리사 선지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주인공은 아니지만 극중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연급으로 나아만 장군 부인의 종인 작은 계집아이와 나아만 장군의 종들, 그리고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나옵니다. 또 나아만의 아내나 아람과 이스라엘의 왕 등 엑스트라 급 출연자도 몇 명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등장인물들은 묘하게도 서로 대조되는 성격으로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의 반대되는 성격을 서로 대조시킴으로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교훈을 좀더 분명히 하려는 것입니다.




1) 주인공 :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

먼저 주인공 나아만 장군이 나옵니다. 1절에 보면 이 나아만이라는 사람은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아람은 당시의 최대 강대국 중 하나였으므로 이 나아만 장군은 오늘날로 치면 미국의 국방장관 쯤 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문둥병 환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절대적인 권력을 쥔 사람이었고 또 큰 재물도 가진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 권력이나 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큰 짐을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에는 안 나오지만 틀림없이 이 나아만 장군은 이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다 했을 것입니다. 아람 전국은 물론 그 인근국가에 용하다는 의사는 다 불러보고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을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좋다. 누구든지 용하다면 다 데려오고, 좋은 약이라면 다 가져와라. 최선을 다했겠지만 결국 치료에 성공하지는 못 했던 것입니다. 이제 실망만 커지고 점차 절망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중에도 이런 현실에 부딪힌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나아만의 이야기는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절망적 현실에 부딪힌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2) 이스라엘 왕과 엘리사, 그리고 나아만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처한 나아만을 둘러싸고 세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이 나타납니다. 바로 이스라엘 왕과 엘리사, 그리고 나아만 장군 자신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왕이라는 인물을 살펴봅시다. 나아만 장군에게서 이스라엘에 병을 고칠 선지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한 통 써 보냅니다. 물론 그 편지에는 반드시 이 나아만 장군을 낫도록 해주시오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겠지요. 아람 왕은 그 편지와 함께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예물로 보냅니다. 적어도 이 예물만 보면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예의를 갖춰 부탁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부탁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말로 할 때 이스라엘 왕 네가 책임지고 나아만 장군이 완치되도록 해라.” 하는 명령인 것입니다. 겉으로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춘 부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강대국의 왕이 주는 엄청난 압력이고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왕은 이 편지를 받자마자 자기 옷을 찢으며 괴로워합니다. 이스라엘 왕의 말을 보십시오.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왕은 이 일이 틀림없이 무슨 음모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도저히 나을 수 없는 문둥병자를 보내 고쳐내라고 하는 것은 이 일을 핑계 삼아 우리나라에 시비를 걸려고 하는 음모라고 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이스라엘 왕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현실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현실만을 보면서 때로는 절망하고 괴로워합니다. 그의 눈에는 가능성보다는 불가능이 먼저 보입니다. 암담한 현실과 어려움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늘 말합니다. “난 못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 이렇게 환경도 어렵고 여러 가지 문제들도 많잖아. 난 못 해.”




하지만 이러한 이스라엘 왕의 태도와는 대조되는 선지자 엘리사의 모습이 나옵니다. 8절에 보니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말을 듣고 곧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을 내게 보내십시오.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가 책임지고 고치겠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내가 다 할 수 있다, 내게 충분히 그런 일을 할만한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이 아닙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권능이 자신과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된 사람입니다. 스승인 엘리야는 얼마나 많은 권능을 일으킨 위대한 선지자였습니까? 그런데 스승인 엘리야가 승천하면서 제자인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내가 승천하기 전에 소원을 들어주겠다. 소원을 구하라.” 그러자 엘리사는 지체하지 않고 이렇게 구합니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와 함께 하면서 스승이 그 수많은 권능과 이적을 일으키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권능은 스승인 엘리야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감으로만 가능했음을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수많은 권능과 이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능력의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그 나아만을 내게 보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현실만 바라보고, 불가능성만을 먼저 보았던 사람이라면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가능성을 먼저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 나아만이 등장합니다.

나아만은 분명히 이스라엘 왕과는 다른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암담한 현실만을 보면서 절망하고 고통스러워 할 때 나아만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나아만이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돈도 많이 들었고 모든 수단방법을 다 써보았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절망하고 포기할 만도 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아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린 계집종의 말 한 마디만 믿고 원수의 땅인 이스라엘로 갑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가는 적극적 신앙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적극적인 신앙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이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법입니다.




3) 나아만과 그의 종들

그런데 성경이 이번에는 나아만 장군과 그의 종들의 태도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나아만 장군의 태도에는 큰 문제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자기 생각과 선입견으로 하나님의 치유방법을 제한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사가 나아만의 병을 고친 방법은 무엇입니까? 물론 엘리사는 엘리야와 더불어 구약의 모든 선지자 중 가장 큰 역사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의 사람이기 때문에 당장 나아만의 몸에 손만 대도 깨끗이 낫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나아만도 그런 치료방법을 기대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상처부위)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그런데도 굳이 엘리사는 나아만으로 하여금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도록 시킵니다. 나아만으로서는 왜 간단한 방법을 놔두고 힘들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시키느냐? 12절에 나온 것처럼 네 고향 아람의 다메섹에도 아마나와 바르발이라는 더 깨끗한 강이 있는데 왜 하필 더러운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 하느냐?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 게다가 10절에 보면 약소국 이스라엘의 선지자 따위가 직접 나를 맞으러 안 나오고 사람을 대신 내보내 명령하는 것은 나를 우습게보고 모욕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특별히 엘리사가 이런 방법을 쓴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병이 낫는 것은 절대자인 하나님에 대한 인정과 순종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사는 이 이방인에게 병 고치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병이 낫고자 하는 사람의 자세가 문제임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 결과 나아만은 겸손하게 순종하고 병 고침을 받게 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게 됩니다. 특히 일곱 번이나 씻으라고 한 것은 히브리말로 일곱이라는 숫자가 완전을 뜻하는 완전수이므로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렇게 나아만처럼 도움의 방법을 스스로 제한하지 말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체면, 권위 따위는 일체 다 포기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고쳐주실 줄 믿고 저는 전적으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자세가 있을 때, 겸손과 순종의 자세를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완전하게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갈 길을 보여 주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그런데 이렇게 나아만이 이스라엘까지 와서 병을 고치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그 동기는 다름 아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한 작은 계집종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2절부터 보면 이 작은 계집아이에 대해 나옵니다. 그저 천한 어린 계집아이라고만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 계집아이에 대한 내용은 본문 2절과 3절에 짤막하게 나옵니다. 이 아이는 전에 아람 사람이 전쟁 때 이스라엘 땅에서 사로잡아 온 전쟁포로였는데 나아만의 아내의 몸종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계집아이는 그 주인인 나아만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더면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아마 이 작은 계집아이는 선지자 엘리사에 대해 소문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에 어떤 병이라도 나 낫게 하고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소문 말입니다. 틀림없이 4장에 나오는 수넴 과부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런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고 해서 다 이야기 하겠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한테 잘 해주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좋은 정보를 이야기 해주어야 하겠지만 지금 이 작은 계집아이는 어떤 처지입니까? 자기 고향을 떠나 억지로 포로로 잡혀와 지금 머나먼 이국땅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나아만 장군은 자기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원수 같은 사람입니다. 원수인 나아만이 문둥병으로 고통 받는 것은 고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원수 같은 사람에게 이 계집아이는 왜 그렇게 좋은 정보를 준 것일까요? 이 계집종은 종으로서의 자기 직분에 충실한 것입니다. 나는 나아만 장군의 종이므로 다만 종으로서 충성하고 주인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줄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 13절부터 나아만의 종들이 등장합니다. 이 종들 역시 성경에 이름도 안 나옵니다. 몇 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에 나온 작은 계집아이처럼 이 종들은 주인인 나아만을 설득하여 병을 치유 받게 하는데 일등공신이 됩니다. 앞서 말한 대로 나아만은 엘리사의 명령을 듣고 이건 나를 모욕하는 것이라며 몹시 불쾌해 하고 아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바로 그 때 나아만을 말리고 돌이키도록 한 사람들이 바로 이 종들입니다. 13절에 보면 이들은 나아만에게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인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엘리사 선지자가 주인님께 아주 어려운 일을 시키더라도 낫기를 원한다면 기꺼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은 결코 어려운 요구가 아닙니다. 그 정도도 못 하겠습니까? 주인의 마음을 읽은 종들의 지혜로운 충고였습니다. 바로 이 종들의 충고를 들은 나아만은 곧바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음으로 깨끗이 나음을 받습니다.

이 작은 계집종과 무명의 종들은 나아만을 설득하여 엘리사를 찾아가게 하고 엘리사의 방법에 동의하지 않아 돌아가려는 나아만을 설득하여 철저하게 순종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제한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일을 처리하려고 한 나아만과 달리 이들은 있는 그대로 순종하고 받아들이기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지혜로운 말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한 것이지요. 오늘 우리에게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보잘것없다 해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무명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큰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4) 엘리사와 게하시, 그리고 나아만의 종들

성경이 이번에는 엘리사와 게하시, 그리고 나아만의 종들을 대조시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엘리사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아만을 치유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15~16절에 나온 대로 나아만이 고침을 받은 후 예물을 드리려고 할 때 한사코 거절한 것입니다. 나아만이 열심히 강권하지만 끝내 받지 않습니다. 왜 안 받았을까요?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하나님만 영광 받으셔야지 내가 왜 그 예물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절부터 보면 이러한 엘리사의 태도와 대조적인 사환 게하시의 모습이 나옵니다. 사환이라 함은 데리고 다니며 여러 가지 일을 기키는 시종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엘리사의 시종 게하시가 주인인 엘리사 선지자는 치료의 대가를 끝내 거절하는데 자기는 나아만을 따라 가서 두 달란트라는 돈을 챙겨 옵니다. 게다가 22절에 보니 내 주인 엘리사께서 받아오라고 시켰다며 거짓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아 가지고 돌아온 게하시는 그 돈을 숨겨두고 주인까지 속이려고 듭니다. 결국 게하시는 큰 벌을 받아 나아만이 걸렸던 문둥병에 걸리게 된다는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주인 엘리사와 사환 게하시의 정 반대 되는 태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인 엘리사는 나아만의 병을 고친 후 나아만이 주는 예물을 한사코 거절합니다. 예물을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라는 것입니다. 반면 게하시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 나아만을 속이고 주인 엘리사를 속입니다. 이 이야기는 누가복음 17:10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종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철저한 종의식이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 당연한 일입니다. 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제가 무슨 칭찬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는 자세입니다.

가끔 저는 교회에서 수고하는 분들을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 분들은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주일날 쉬지도 못하고 저렇게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데, 교회에서 무슨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월급은커녕 자기 돈 써가면서 일하는데 하는 미안함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내가 교회에서 봉사한다고 사례 받고, 칭찬 받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무슨 상급이 있겠습니까? 그저 “저는 무익한 종일뿐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 그 어떤 대가나 칭찬도 필요 없습니다.” 하는 철저한 종 의식으로 봉사하고 충성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진심으로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게하시의 태도와 대조되는 또 다른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나아만의 종들입니다. 게하시도 엘리사의 종이었고 앞서 말한 계집종이나 무명의 종들도 나아만 장군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종이지만 이들의 태도는 전혀 다릅니다. 게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며 주인과 나아만을 속이고 자기 이익을 챙기려한 악한 종이었습니다. 반면 나아만의 계집종과 무명의 종들은 그 주인을 위해 진실로 충성을 다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종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떠올리게 됩니다. 주인이 돌아와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아 열 달란트와 네 달란트로 만든 종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반면 한 달란트를 맡았지만 땅에 묻어두었던 종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26~30)

오늘 우리는 이 두 종류의 종들을 통해 어떤 사실을 배우게 됩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종이기에 결코 내 유익이나 나 자신의 이름을 위해 충성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며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큰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씻으라

오늘 이야기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아만과 같은 불치병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나을 수 없는 큰 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불치병 환자인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의 명령대로 요단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을 때 깨끗하게 된 것처럼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씻음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하는 벧전 1:18~19 말씀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방법도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고 깨끗케 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고,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앞에서 다만 종 의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 생각, 내 선입견, 내 위신과 체면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께만 철저하게 순종하며, 오직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만 하나님의 참된 긍휼과 은혜를 받아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 받습니다. 오늘도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우리의 모든 문제와 더러운 죄를 주님의 보혈에 온전히 씻어내고 해결 받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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