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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할 수 있다`의 의식구조 파일 (히 10: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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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도 목사(광림교회)

1929년, 30년, 32년, 33년에 미국에 큰 경제공황이 일어나서 미국이 부도를 낼 뻔했지 않았습니까. 그때에 후버 대통령은 제대로 일을 잘 처리하지 못했는데 비해서 프랭크 루즈벨트 대통령은 장애인이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과감하게 은행을 통합하고, 모든 질서를 과감하게 결단하고, 개혁함으로 말미암아 네 번이나 대통령에 재선이 되면서 경제공황을 해결했습니다.
마침 그 직전에 1917년에 저 볼세비키의 승리로 말미암아 러시아에 정치혁명으로 사회주의가 생겨나면서부터 이 사회주의가 흥왕하면서 이젠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느냐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국민들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의식구조가 변화되면서 해결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와서 공산주의는 무너지고 그들이 자본주의를 따를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의 번영을 가져오는 경제대국이 된 것은 어디부터 시작했느냐, 의식구조부터 달라졌기 때문이다. 루즈벨트의 유명한 얘기가 있지요.

지금 우리는 공포, 신 그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생각 자체를 바꿔야 된다. 그래야 경제적 회생이 있다. 심리적인 의식구조의 변경으로부터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담력과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라고 하는 절대 가능성의 의식구조가 개혁이 되고 갱신이 되어질 때에 우리는 이 아픔을 딛고 또 하나의 기적을 일으키는, 보아라, 우리 위대한 국민의 이 결단과 용기. 6.25의 잿더미 속에서 일어났던 기적을 또 한번 보여 주는, 세상 사람들에게 희롱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이 다시 새로운 역사의 창조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한국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려고 합니다.

첫째로는 가능성의 의식구조로 바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2절에 보면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과거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 튼튼하게 서서 싸워서 승리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라. 오늘 우리는 잿더미 속에서 경제부흥을 일으켰던 나라입니다. 그때는 우리는 할 수 있다, 가능성의 사고로 모두 다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도 잘 살 수 있다한 대로 됐습니다.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꿔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다분히 한이 맺히고, 그리고 남이 잘 되는 걸 잘 보지 못하고, 부정적이고 깎아 내리고 하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소모가 많은지 모릅니다. 칭찬할 줄 모르고, 잘했다고 박수를 보낼 줄 모르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가 이 의식구조를 긍정적으로 바꿔 놓아야 됩니다. 마음의 이 방향을 바꿔야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의식구조가 가능성으로 변해져야 됩니다. 우리의 마음의 돛의 방향을 바꿔야 됩니다. 의식구조를 긍정적으로 바꿔가지고 목표에 이르는 가능성의 의식구조를 가지고 이거부터 우리가 구조를 바꿔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거기에서 다섯 가지만, 그 안에서 첫째는 뭐가 중요한고 하니, 선택이 중요합니다. 선택은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선택의 자유의지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긍정적인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빛을 선택할 수도 있고, 흑암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수도 있고, 사탄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의를 선택할 수도 있고, 불의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선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악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빛이 비추어질 때에 빛을 등지고 있으면 우리는 언제나 그림자만 바라보고, 그 그림자의 어두운 면만 바라보고 짜증스럽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방향을 바꿔 가지고 빛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림자는 뒤에 드리고 우리는 빛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방향 전환입니다. `메타노이아` 이것이 회개의 근원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선하고 의롭고 바른 대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그리고 선택했을 때에 모든 과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변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고속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변화의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으면 역사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변화되지 아니하고는 남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결혼하고 난 다음에 둘이 시간이 지났는데 좀 성격이 맞지 않으면 "당신이 먼저 변화되시오", 내가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둘이 함께 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종교를 가지고 교회 나와서 예배드릴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같이 변화될 때에 행복이 이루어지고, 하모니가 이루어지고,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남을 강제로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오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어 놓는 변화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부터 긍정적인 변화,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변화될 때에 부정이 긍정적으로 바꿔지고, 창조적인, 생산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는 위임입니다. 커미트(commit), 커미트먼트(commitment)라고 그럴까요. 현대인의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인고 하니, 자기를 위임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나를 맡기고 살 것인가? 내가 누구에게 신탁을 하고 살 것인가? 내가 맡길 대상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고독합니다. 방황합니다. 일생동안 시간낭비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어저께도 결혼식 주례를 했습니다마는, 결혼식 주례를 할 때마다 결국 무엇입니까?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약속을 한 이 두 분은 "이제부터 나는 당신에게 위임합니다" 신부는 신랑에게 "내가 당신에게 위임합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나 전적으로 당신에게 위임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위임해야 됩니다. 다 의심하고, 다 믿을 수가 없고, 하나님도 교회도 의심하고, 위임할 존재를 찾지 못하면 일생동안 방황하다가 그 고귀한 시간을 한번도 가치있게 써보지 못하고 무덤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위임했느냐?
예수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 가운데, 사람이 모래 위에 세운 집도 있고 반석 위에 세운 집이 있다. 반석 위에 세운 집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온전히 튼튼한 기초 위에 자기를 위임할 때에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지만,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바람이 불 때 쉽게 무너지나니, 절대자 하나님께 자기를 위임하고 예수님께 위임하고 사는 사람은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아니한다, 그 얘기입니다.
위임의 대상을 찾지 못한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이 무엇이냐? 절대자에게 나 자신을 위임할 때에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로는 연결입니다. 연결성, 커넥션(connection), 관계성. 사람은 누구나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관계성이 좋아야 됩니다. 모든 연결이 누구와 연결이 되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높은 산에 등정한 사람은 밧줄을 거기다 매고 무슨 자일을 가지고 올라가서 정상에 이르게 됩니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누구와 연결이 되어 있느냐? 어떤 정치적인 권력가, 대선주자, 내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뭐가 되는 것처럼, 근본적인 것은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야되고,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야 살 길이 열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허리케인이라고 태풍이 한번 불어오게 되면은 집이 몽땅 날아 없어집니다. 수십 명이 죽습니다. 그런데 허리케인이 불어온다 할지라도 굵은 바위에다가 연결이 되어 있고, 아주 철근에다가 연결이 되어 있는 건물은 끄떡을 안하고 서있습니다. 연결이 바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하고 연결이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인간입니까?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말 어떤 권력이라든지 돈이라든지 명예입니까?

여러분, 오늘 이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어 있고, 반석 위에 연결이 되어 있을 때에 바람이 부나 창수가 나도 무너지게 되지 않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할 수 있는 자세는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어 있을 때에, 포도나무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을 때에 열매를 맺고 진액을 빨아들여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커넥션, 그리스도와 관계를 바로 맺어야 됩니다. 그래야 거기서 진액을 공급받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경로가 있어야 됩니다. 경로, 채널.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경로를 따라 살아왔습니까? 경로가 바로 열려져야 됩니다. 거기에서 승리의 자원을 공급받아야 됩니다. 능력을 공급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 새로운 아이디어와 파워와 에너지를 공급받을 때에, 이 경로가 문이 활짝 열려져야 됩니다. 이 문이 닫혀 있으면은 우리는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가능성의 능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서 4장 13절에
`네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리스도와의 촉매, 그리스도와의 경로가 활짝 열려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여러분에게 능력과 아이디어와 모든 좋은 것을 넘치도록 풍요롭게 채워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인간의 잔꾀를 가지고, 자기의 의식구조를 가지고, 그걸 가지고 다 하지만은 결국에 가서, 어떤 분이 얘기를 하기를 "이게 새 머리보다도 못한 거예요." 군의 최고의 사령관직을 지내고 장관까지 지낸 분 말씀이 이거예요. "다 지나고 보니까 이게 새 머리보다 더 못했던 걸 가지고, 이걸 가지고 이걸 믿고 살았지요. 하나님 믿고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에요." 채널, 하나님과의 이 경로가 활짝 열려질 때에 우리는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해지고, 할 수 있는 의식구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실패에서 배우라. 실패에서 배우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이 성경 말씀 중에 보니까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할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신앙적으로 여러분이 산업을 빼앗기는 실패가 있다고 할지라도 더 좋은 산업이 기다리고 있는데, 소망 가운데 믿음을 가지고 그 장차 우리에게 주시는 영구한 산업을 얻도록 하라. 히브리서의 유명한 얘기입니다. 여러분,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실패가 없으면 성공이 없습니다. 실패가 두려워 앉아있기만 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뛰어다니다가 실패했다고 할 것 같으면은 그 자체가 유익한 것입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습니다. 비록 실패한다고 해도, 달리다가 넘어지고 쓰러져도 그 사람에게는 그 실패를 통해서 가장 값비싼 것을 배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가 문제입니다. 지금은 실패에서 배우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녹다운(knockdown) 당했느냐 안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일어났느냐 일어나지 못했느냐가 문제입니다. 다운 당한 다음에 일어나지 못하면 원, 투, 쓰리 ... 녹다운(knockdown), 녹아웃(knockout)!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실패에서 위대한 교훈을 받을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위대한 성공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과거의 실패에서부터 일어났던 민족입니다.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던 백성입니다. 혹 비방과 혼란에서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는, 실패의 위대한 교훈을 배우는 담대한 백성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서 6천 번이나 실험을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6천 번. 그랬을 때에 주변 사람이, 그렇게 실패해 가지고 뭘 얻으려고 하느냐고 할 때에 "아닙니다. 실패가 아닙니다. 6천번의 좋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배우기 전에 실패를 먼저 배워야 됩니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패의 값비싼 교훈을 우리가 얻을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공의 기회를 만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35절과 36절에 보니까, 성경 말씀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니라`

여기에 보면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그리고 인내하라. 그래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 여러분, 우리는 실패만 바라보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담대한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기회는 문제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기회는 문제를 먼저 가져다 주면서, 이 문제를 그냥 해치우고 보니까 기회가 그 속에 있습니다. 문제가 없으면 기회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밤이 오면은 아침이 옵니다. 겨울이 오면은 봄이 옵니다. 태풍이 일어나면은 햇빛이 비칩니다. 죄를 지었으면 용서할 기회도 주십니다. 패배한 이후에도 승리하는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건, 이것이 인간의 담력이요 용기요 결단인 줄로 믿습니다.

섣부르게 우리가 뭐 다 된 줄로 알았지만, 이제부터 참으로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려진 줄로 믿습니다. 미국이 경제공황이 있은 다음에 경제대국이 된 것처럼, 우리는 먼저 담대한 신념을 가집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가집시다.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확고한 믿음을 가질 때에, 우리의 믿는 대로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것이 신앙의 파워입니다.

두 번째로는,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다. 포기하는 자는 실패합니다. 포기 아니하는 사람은 성공을 합니다. 끈질기게 시도하고 챌린지(challenge), 도전을 할 기회가 우리 문 앞에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수고와 땀을 아끼지 마십시다. 우리는 다 된 줄로 알고 땀을 흘리지 않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그간 수고 안하고 잘 살게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치와 과소비와 낭비의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이제는 그럴 시기가 지나갔습니다.

네 번째로는, 믿음으로 그물을 들어 올리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그물을 쳐서 그물을 들어 올리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5장 1절로 11절에 가면, 밤새도록 고기를 낚다가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에 예수님이 또 한번 기회를 줬습니다. 또 하나의 기회를 줬습니다. "깊은데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 이 어부들은 자존심이 상합니다. 아니 예수님이 어장을 알기나 알아요? 고기 잡는 기술을 알기나 알아요? 그런데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은 자존심이 상하지만은 `또 하나의 기회를 네게 준다`, 그 얘기입니다. 순종해서 그물을 쳤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낚이는 것은 또 하나의 찬스를, 세컨드 찬스(second chance)를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순종해야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기회의 환경이 있는 것을 알고 우리가 대담하게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기회, 또 하나의 성공의 기회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사랑하시는 여러분, 희생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가능성의 기회가 활짝 열려지고, 승리의 기쁨이 여러분의 성공의 기쁨이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 : 자비하신 아버지, 저희들 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인내하면서 이 어려움을,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기회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결코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지혜를 가지고 온 국민이 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개혁을 해서 구조를 바꾸어 놓고 승리하고 성공하는 위대한 민족, 우리 크리스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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