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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는 우리가 믿습니다 (요 16: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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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인 목사

요한복음 16장 25절에서 33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이제는 우리가 믿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본문 31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에 예수님 이제는 우리가 알겠고 이제는 우리가 믿습니다 라고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이제는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정했습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우리의 광복절과 같은 명절로 지키고 유월절이 지나 50일째 되는 절기를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다음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7 × 7=49, 그래서 사십 구일이 지난 오늘이 오순절. 바로 성령강림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기독교는 다락방에서 기도로 시작했고 성령 충만을 받은 성도들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I. 성령의 계시로 믿습니다(25절)

계시라는 말은 가리워져 있던 것을 열어서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가리워져 있던 것을 열어 보여줄 때 밝히 알고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 말씀은 숨겨졌던 하나님을 보여주는 특별 계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알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또 성경을 읽어도 예수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것은 성령이 깨우쳐 주지 않고 감동이 없으면 절대로 성경을 읽고 들어도 예수를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반드시 우리를 깨우쳐 주고. 감동하시고 신령한 눈을 열어 줄 때 성경에서 예수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바로 믿게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옛날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굉장한 꿈을 꾸었는데 잊어 버렸기 때문에 속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있는 박사들과 점쟁이들을 다 불러서 잃어버린 꿈을 찾아내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누가 꿈을 꾸고 누가 잊어 버렸는데 누구에게 그 꿈을 찾아내라는 것입니까? 그러나 왕은 할 말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박사요, 점쟁이로써 다른 사람들의 앞날에 신수를 봐 준다고 하면서 왜 내 꿈을 못 찾아내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못 찾아내면 지금까지 사기꾼 노릇한 것이니 한 칼에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합니다. 이때 다니엘도 박사인지라 끌려가서 죽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엄두도 못 낼 때 다니엘은 왕께 아뢰었습니다.

"나에게 며칠만 여유를 주시면 반드시 내가 꿈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 왕에게 며칠 기한을 허락 받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꿈의 내용을 환상 중에 전부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느브갓네살 왕 앞에 가서 잃어버린 꿈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 모양의 큰 우상을 보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모양인데 머리는 금으로 되어 ,있고,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넙적다리는 동이요, 종아리는 철로 되어 있고. 발과 발가락은 철과 흙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을 대지 않은 뜨인 돌이 와서 그 우상을 박살내어 가루로 만들고. 바람이 부니. 흔적도 없고 돌은 점점 커지더니 천하에 가득 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꿈을 고스란히 찾아 주었습니다. 꿈은 찾았는데 해석이 문제입니다. 굉장한 꿈인데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이 그 뜻을 풀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보여 주는 것으로서 금의 시대, 은의 시대를 거쳐 발과 발가락까지 인간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금의 시대가 있는데 이것은 느브갓네살의 시대, 즉 바벨론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 바벨론 시대가 끝나면 은과 같은 시대가 오는데 메대 파사 시대입니다. 또 동의 시대가 오는데 이것은 헬라 시대입니다. 다음에 종아리는 쇠로 되어 있는데 강한 나라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밝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 시대입니다. 로마 시대는 벌써 천여 년 전에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는 흐르고 흘러 발가락의 시대로 다가왔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내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소리에 넘어가지는 마십시오. 내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하는가 아닌가는 바로 믿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안됩니다. 언제든지 재림하시면 들림 받아 가면 됩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시험 친다고 걱정을 합니까? 공부를 하나도 안한 학생이 난리를 피우는 것 아닙니까. 예수를 엉터리로 믿는 사람이 거기에 가서 난리를 피우고 부화뇌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을 대지 않은 뜨인 돌, 즉 말세가 되면 뜨인 돌 되시는 예수님이 재림을 하십니다. 그래서 인간 역사를 다 정리하고 돌이 점점 커져서 온 천지에 가득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룩됩니다.

이렇게 다니엘의 꿈 의석을 들은 느브갓네살이 그를 제일 높은 자리에 앉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라고 밝혀 주었고, 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이러하시다고 보여 주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느브갓네살의 꿈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이 계시와 그 해석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였고, 또 느브갓네살에게도 확신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계시를 받는다 할지라도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계시를 받는 사람만이 예수를 바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25절을 보면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예수님이 비유로 설명을 해 주는데도 제자들은 못 알아 듣습니다. "때가 이르면" 이라는 말씀은 성령 강림의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성령이 오시면 너희에게 일러준 말을 깨우쳐 주고. 분명히 알고 믿게 된다는 말씀입니다(요 14: 26). 그리고 능력을 받아 그 말씀대로 살고 증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 없이 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2000년 전에 우리 죄를 대속하신 복음도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길 되신 예수님 을 통해서 보내 주시기 때문에 성령이 아니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또 예수님을 주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 성령으로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예수님의 대속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세례를 받아 믿게 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25절에서는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때가 이르면 즉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분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런 일이다라고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십니다. 계시를 받은 사람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나와 어떤 관계가 되고, 무슨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바로 믿고. 그 결과 믿음 생활에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계시가 중요합니다. 구약성경에 없는 이야기입니다만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장가들고 처가집 ,생활을 40년이나 하였습니다. 처가집의 양무리를 치면서 모세는 그 동안 기도를 참 많이 했습니다.

한 번은 큰 그늘이 있고 그늘 옆에는 샘물이 있었는데 모세가 양떼를 치다가 쉴 때는 록 거기에 가서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를 하고 잠깐 쉬고 있을 때 한사람이 막 달려옵니다. 그리고 생수를 마시고 힘을 얻어 또 다시 달려갑니다. 그런데 두둑한 돈지갑을 놓고 갑니다. 또 얼마 있다가 두 번째 사람이 오더니 생수를 마시고 떠나려고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이 있으니 슬쩍 집어넣고 갑니다. 세 번째 사람이 오더니 생수를 마시고 좀 피곤한지라 쉬어가겠다 하고 그늘에 있을 때 돈지갑을 잃어버린 첫 번째 사람 이 달려오더니 우물가에서 쉬고 있는 사람에게 막무가내로 지갑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이것이 웬 날벼락입니까? 결국 싸움이 시작되고 첫째 사람이 얼마나 급한지 말도 몇 마디 안하고 때립니다. 모세가 가서 말릴 겨를도 없이 싸움은 끝났습니다. 세 번째 사람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달려가니 그 살인자는 도망을 갔습니다.

모세가 그 장면을 보고 하나님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런 일을 보시고 하나님이 왜 가만히 계십니까? 이래도 좋습니까? 라고 항변을 했습니다. 이 문제의 수수께끼가 풀리지를 않습니다. 그는 엎드려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박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몰라서 그래" 라고 들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면 항상 문제가 됩니다. 너는 지금 나타난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만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원인은 모르지 않느냐? 무슨 뜻입니까? 맨 처음의 사람은 지갑을 떨어뜨려 놓고 갔는데 그 돈이 무슨 돈인지 아느냐? 그 돈은 제 아버지에게서 훔친 돈이라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니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돈을 잃어버린 첫 번째 사람의 아버지였습니다. 자기 돈을 잃었다가 도로 찾아 가지고 간 것입니다. 여러분. 돈을 억울하게 빼앗겼다. 사기 당했다. 속상하다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찾아 주시면 고스란히 찼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의 형을 오래 전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때려 죽였기 때문에 감쪽같은 완전범죄였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영원히 미제 사건이 될 런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때를 기다려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생을 시켜 그 형을 죽인 원수를 갚게 하셨습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만 알고 원망했습니다. 그 사건의 자초지종을 다 알고 속 시원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전부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다 하는 것을 밝혀주듯이, 또한 모세에게 밝혀 주듯이 본문에 보면 성령님이 오셔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렇다 하며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밝혀 주십니다. 성령의 계시를 받은 사람은 가장 예수를 정확하게 믿고 바로 믿고, 재미있게 믿고. 승리하는 것은 믿는 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II.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26-31절)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탕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한 곳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고 작은아들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유산을 나누어주기를 간청하더니 그는 엄청난 재산을 받아 가지고 외국에 나가 창기와 더불어 다 먹어 버렸습니다.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또 아버지를 떠나 자유롭게 살겠다는 자유는 방종일 뿐입니다. 몇 해 동안에 엄청난 돈을 다 쓰고 거지가 되어 취직할 수밖에 없어서 돼지를 기르는 집에 취직하여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는 하늘이 문을 닫으니 흉년이 들었고. 그러니 이 사람은 월급은 고사하고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으시면 죽을 일만 생깁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는 1년을 하루같이. 10년도 하루같이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기다려 주시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성공하고 온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돌아온 아들도 변함 없이 사랑하는 것은 그가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공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실패했을 경우에는 미워하게 되지 않습니까 성공과 실패를 떠나 아들 자체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가락지를 준비했다가 끼워주고. 신을 준비했다가 신겨주고. 옷을 준비했다가 입혀 주고. 송아지를 준비했다가 잔치를 열었습니다. 온갖 것을 다 준비해 놓고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즉 베풀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설명했는 데 아버지가 아들을 왜 사랑합니까? 사랑할 이유가 얼지만 단순히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사랑하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 받을 조건이 없습니다. 아들과 딸이라는 것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했을 지라도 기다리며 사랑해 주고 준비했다가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공을 못하고 실패해도 기본적인 사랑은 베풀어주시지만 더 잘하면 더 큰사랑, 더 많은 사랑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본문 26절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 전에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하라는 말입니다. 27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많이 할 뿐만 아니라 예수를 사랑하는 자를 친히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서 온 줄을 믿는 자를 친히 사랑하십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 자를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다 같은 아들 딸 일지라도 아들 딸 노릇을 잘 할수록 더 많이 사랑을 받는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카프만이라고 하는 부인이 자기 책상에 고치를 몇 개 놓아두었는데 거기서 나비 새끼가 나오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구멍을 뚫고 나오느라 얼마나 애를 쓰는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아예 구멍을 크게 뚫어 쉽게 나오도록 만들면 좋을 텐데 작게 구멍을 내어 뚫고 나오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힘듭니까? 그래서 뚫고 나오려고 애쓰는 나비를 불쌍히 여겨 가위를 가지고 끝을 짤라 주었더니 쉽게 나왔습니다. 그 조그만 구멍으로 뚫고 나온 나비 새끼들은 너무 고생해서 그런지 작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위로 잘라 준 덕에 쉽게 나온 나비 새끼는 통통합니다. 이 놈이 얼마나 큰 지 어깨에 힘을 주고 기어다닙니다. 작은 나비 새끼들이 기어다니다 날개짓을 하더니 쉽게 날아가는 데 어깨에 힘주고 있던 나비는 도대체 날지를 못합니다. 왜 이럴까 하고 가서 살펴보았더니 어깨에는 힘이 많은데 날개에는 힘이 없어서 날지 못하고 병신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깊이 관찰을 해 보았더니 나비 새끼가 나을 때 고치 속에서 나오기까지 모든 영양분과 기름덩어리가 어깨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구멍으로 나오려고 애쓰는 사이에 모든 힘이 날개 쪽으로 몰렸습니다. 그래서 날개에 힘이 있어 쉽게 날아가지만 그러나 가위로 잘라 주어 쉽게 나온 나비 새끼는 힘을 안 쓴 까닭에 어깨에 있는 힘을 그대로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날개는 병신처럼 되고 어깨에만 힘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카프만 부인은 무릎을 탁 치며 하는 말이 "하나님은 과연 하나님이시다. "라고 하였답니다.

우리가 볼 때 하찮은 짐승까지도 하나님은 깊은 배려를 하시고 사랑을 베푸십니다. 하물며 자기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 대한 배려는 오죽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부족해도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딸의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리고 잘하면 잘 할수록 더 많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III. 예수 안에 평안을 믿습니다(32-33절)

32절과 33절을 보면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절에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버리고 가는 곳에 참 평안이 있는 줄로 알고 또 승리가 있을 줄 알고 잘 될 줄 알아도 결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다시 돌아와서 예수 안에서 평안을 얻고 예수 안에서만 승리를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흑인 가수로 에텔 워러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가수가 '폭풍우를 지날 때'라는 노래를 부를 때면 처음부터 끝까지 울면서 부릅니다. 얼마나 감동적인지 그 노래가 끝나면 듣는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속에는 평안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폭풍우를 지날 때는 자기가 걸어온 생을 그대로 엮어 곡을 붙인 것인데 그 내용은 자기 어머니가 처녀 때 공장에서 일하고 밤늦게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끌려가서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낳은 것이 자기였습니다. 처녀인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 남자에 대한 미움이 딸에 대한 미움으로 나타났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사생아를 낳았으니 어머니가 하도 속이 상해서 몇 번이나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온갖 수모와 멸시 천대를 다 받으며 자랐습니다.

결국 미움 속에서 자란 에텔 워러는 천지가 모두 다 미움으로만 보였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도 밉고. 자기를 기회 있을 때마다 죽이려고 하던 어머니도 밉고. 온갖 멸시와 천대를 하는 외가집도 미웠습니다. 그러나 천부적으로 노래를 잘하기 때문에 가수가 되어 우뢰와 같은 갈채는 받으나 미움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같은 동료 가수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고 성경을 통해 예수를 만나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마음은 달라졌습니다. 내 어머니인들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오히려 어머니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어머니께 오히려 용서를 빌었습니다. 외가집도 얼마나 속상하면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니 외가집 식구들도 다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얼굴도, 모습도 모르는 아버지였지만 역시 불쌍하게 여겨졌습니다. 마음속에 미운 생각을 모두정리하고 용서했을 때 비로소 평안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에텔 워러는 유명한 흑인 가수였으며 많은 사람의 박수 갈채를 받고 인기 절정에 이르렀어도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 차 있을 때는 평안이 없었으나 예수를 영접하고 미움을 정리하자 평안과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즉 용서한 마음에 평안이 깃들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평안을 먼저 얻었고 예수 안에서 먼저 기쁨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라는 말씀은 예수 밖에서는 절대로 평안과 성공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뜻은 계속되는 말씀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결과적으로 예수 안에서만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승리도 예수 안에만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떠나서 승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예수 안에서만 평안과 승리가 있는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르면서 배울 것을 배우고 볼 것을 보았으나 잘 믿어지지 않는 제자들도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떠 먹이듯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듣고 지금에야 우리가 믿삽나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성령의 계시로만 주님의 가르치심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고 예수 안에 참 평안이 있음을 제자들이 믿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이제는 우리가 믿습니다 라고 신앙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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