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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를 부르는 추억 (빌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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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성 목사 (멋진교회)

남아프리카 잠비아의 북부 고원지대에 미개 부족 바벰바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벰바족이 사는 마을은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쩌다 죄 짓는 사람이 생기면 그들은 정말 기발하고 멋진 방법으로 다스립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마을 한복판에 있는 광장에 세웁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든 일을 중단하고 이곳에 모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죄인을 중심으로 둘러섭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들이 외치는 말은 죄인이 과거에 했던 좋은 일들입니다. 그의 장점, 선행, 미담들이 하나씩 밝혀집니다. 과장이나 농담은 일체 금지됩니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모두 그를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 법정은 검사도 없고 판사도 없습니다. 오직 변호사만 수백 명이 모인 법정입니다.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칭찬의 말이 바닥이 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 다음은 축제를 벌입니다. 죄인이 이제 새사람이 되었다고 인정하고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운 ‘칭찬 폭격’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칭찬 폭격은 죄를 짓고 위축되어 있는 사람을 회복시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이웃의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겠다고 눈물로 다짐하게 만듭니다. 바벰바족 마을에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칭찬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빌립보서의 앞부분입니다. 편지를 시작하면서 바울은 칭찬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또한 빌립보교회를 향한 축복이 가득합니다.

3-4 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3 절에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4 절에서는 간구할 때마다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감사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5 절부터 7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먼저 5 절을 보면 빌립보교인들과 여전히 복음으로 교제하기 때문입니다.
또 6 절을 보면 그들이 착한 일을 멈추지 않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는 성령님이십니다. 빌립보교회는 성령의 인도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 착한 일은 바울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또 7 절을 보면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예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는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도를 최선을 다해 도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나눠질 수 없을까 했습니다.

이렇게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몸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는 언제나 바울과 함께였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교회입니다.

이런 바울의 생각과 기쁨은 자연스럽게 기도로 연결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추억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에는 바울의 사랑과 축복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9-11 절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립보교회가 사랑에 지식이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선한 것을 분별하기를, 또 의의 열매를 가득 맺도록, 또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의 첫 번째 기도제목은 사랑에 지식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 1:9>

사랑하는데 지식이 없으면 사랑하는 이를 위하지 못합니다.
요즘 비만 아동이 너무 많아져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비만 아동은 아이가 잘 먹는다고 좋아하는 부모들이 만든 작품입니다. 우리 아이는 기 안 죽게 키우겠다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이를 파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좌절을 모르고 과잉보호를 받고 큰 아이는 자기 힘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만 지식이 없으면 사랑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공부해야 합니다. 은혜는 받았는데 성경을 모르면 그 은혜를 지킬 수 없습니다. 지식은 은혜를 더 깊고 풍성하게 해줍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두 번째는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10>

분별하는 것은 시험해보고 그 결과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뭘 먹이려면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소년원에 들어온 청소년들의 머리카락을 성분 조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알루미늄 수치가 정상의 열배가 넘었습니다. 중금속에 중독되면 성격이 날카로워집니다. 울컥 치미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합니다. 죄를 짓게 만든 원인을 추적해보니 매일 먹는 음식이 주범이었습니다. 그래서 햄버거, 콜라, 피자, 식품첨가제가 가득 들어있는 페스트후드 제품, 인스턴트 음식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토속 음식을 먹였습니다. 그랬더니 재범률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선한 일에도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착한 일도 앞뒤를 보면서 해야 합니다. 착하다고 순수하다고 다 용서가 되진 않습니다. 사랑에 분별력이 없으면 그 사랑은 쓰레기가 됩니다. 그러나 사랑에 분별력이 더해지면 그 사랑은 가치가 높아집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세 번째는 의의 열매가 가득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 1:11>

인생의 목적은 인생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열매가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여행을 하는데 친구가 휴게소마다 화장실을 들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곳에 왔다가는 기념으로 내 몸의 일부를 남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농담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들이 전봇대에 흔적을 남기는 게 생각이 났습니다. 짐승들은 자기 영역을 표시하느라 제 몸의 냄새를 남깁니다. 그러고 보니 평생 남긴 것이라고는 자기 배설물 밖에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짐승과 다를 것이 없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의하면 의의 열매입니다. 그 열매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

인생의 열매도 있지만, 교회도 열매가 있습니다. 교회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멋진교회가 왜 있습니까? 멋진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있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수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사랑스러운 빌립보교인들을 추억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런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만남은 참으로 행복한 만남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에도 서로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7 절에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7 절은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개역 성경과 같이 “내가 여러분들을 나의 심장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여러분들이 나를 여러분의 심장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번역은 바울의 심장에 빌립보교인들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번역은 반대로 빌립보교인들의 심장에 바울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번역은 헬라어 어순을 따라 번역한 것입니다. 두 번째 번역은 의미 위주로 번역한 것입니다.

문맥을 보면 두 번째 번역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7 절의 내용은 바울의 감옥생활과 재판 과정이 나옵니다. 빌립보교회는 이런 처지의 바울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7 절에 “나의 매임”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뿐 아니라 간수와 함께 사슬에 묶여 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망을 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나의 매임이라는 말은 극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변명함”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법정에서 자기를 변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직접 재판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로마 정부를 거스른 것이 아님을 변명해야 했습니다. 기독교는 정치가 아니고 종교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악한 네로에게 이 변호가 통할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당시 네로는 기독교 최대의 박해자였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지도자들을 죽였습니다. 이 재판은 절박한 가운데에서 한 가닥 소망을 가지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확정함”이란 말은 판결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사형을 판결 받을지, 무죄 석방을 판결 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은 좋지 않은 결과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과정을 은혜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7 절 끝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사도직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감옥에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전도했습니다. 실제로 로마 황실 사람들을 많이 전도했습니다.

빌립보서 4:22 은 편지의 마지막에 인사하는 부분입니다. 여기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니라.”

여기서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은 로마 황실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감옥 주변에 있는 간수들과 황실 가족 중 몇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얻은 전도의 결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으로 이들을 구원케 한 일을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감옥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은혜로 고백했습니다.

더구나 이 모든 과정에 빌립보교회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혼자 감옥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들은 밖에 있었지만 마음을 나눴습니다. 감옥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바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석방을 위해 여러 가지 힘을 썼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옥중에서 전도한 것을 혼자서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교회와 함께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는 고통 속에서 복음으로 동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관계는 깊은 유대로 각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사랑의 고백이 심장 안에 품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는 이렇게 아주 특별한 사랑의 고백을 나누고 있습니다.

또 8 절을 보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바울은 예수님의 심장으로 빌립보교회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 안에 빌립보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빌립보교회 교인들의 심장 안에 바울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는 서로 마음에 품었습니다.

얼마 전에 인기리에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에 “내 안에 너 있다”란 사랑 고백 대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면 서로의 마음에 상대방을 품게 됩니다.

여기서 심장이란 단어는 헬라어 “스플랑크논”입니다. 정확한 번역은 ‘내장’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내장이 감정, 특히 사랑이나 동점심의 샘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스플랑크논이란 단어는 사랑이나 동정심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는 이렇게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각별하게 여기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5 절에 나오는 ‘첫날’이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첫날이란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처음 유럽으로 건너간 날을 말합니다. 바울은 꿈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6 장에 보면 바울은 마게도냐에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유럽 선교의 요청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바울 선교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바울은 바나바와 협력 사역을 해왔습니다. 또 안디옥교회의 지원으로 선교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유럽 전도를 시작함으로 독자적인 선교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 반도에 들어가 시작한 유럽 선교의 첫 번째 지역이 바로 빌립보입니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첫날은 선교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기독교는 결국 로마에 전파되어 전 세계에 퍼지게 됩니다.

빌립보는 유럽 선교가 시작된 첫 번째 지역입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는 유럽 선교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영적 물질적 후원은 이후 서쪽으로 향하는 즉 땅 끝까지 이르는 선교에 힘이 되었습니다.

6 절에 나오는 ‘착한 일’은 구체적으로 빌립보교인들의 기도와 헌금 지원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빌립보교회의 이런 후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첫날부터 빌립보서를 쓰는 당시까지 한결같았습니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한결같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이런 후원이 없었다면 바울의 유럽 선교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는 더욱 각별했던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추억의 교회입니다. 동시에 현재 고난을 함께 나누는 동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소망을 함께 꿈꾸고 있습니다.

즉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과거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현재 함께 복음을 위해 힘을 쓰는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함께 미래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빌립보교회가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재판을 받으면서 판결을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기뻤습니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버림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감옥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고난 가운데 있는 사도 바울에게 힘을 주는 교회였습니다.

멋진교회는 개척한지 3 년 반 밖에 되지 않은 역사가 짧은 교회입니다. 과거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젊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짧지만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감당할 것입니다.

앞으로 십년 이십년이 지난 후 여러분과 제가 뒤를 돌아보면서 추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얼마나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때도 여전히 여러분과 제가 행복한 만남을 이루고 있을까요?

목사와 교인의 관계는 추억하면서 서로 기도로 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무엇을 추억할 수 있을까요?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위대한 사명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분명히 그 사명을 받았습니다. 멋진교회를 함께 개척하면서 그 사명을 감당하십시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과거의 추억이 가득한 교회이듯이, 그리고 여전히 복음의 사명이 현재 진행형이듯이,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며 세계 선교의 꿈을 꾸었듯이, 여러분과 저는 복음의 동지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이 맺어주신 너무나 소중한 사이입니다. 서로 심장에 안고 사모하며 기도할 사이입니다. 바울과 빌립보교회처럼, 서로 사랑을 고백하며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이 제 심장에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심장에 제가 있는 줄 믿습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이 사랑의 고백을 함께 나누십시다. “내 안에 ( )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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