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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사람 (3) (눅 19: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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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창인 목사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여 가장 높은 곳에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이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눅 19 : 36∼40>

누가복음 19장 28절에서 40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예수의 사람”이란 제목으로 세 번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III. 신자된 사람(36∼40절)

예수님의 사람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신자가 되어야만 예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신자’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신자가 되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실감이 안 날 겁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생각해보면 실감이 날 겁니다. 여러분들의 집에서 길리움을 받는 어린아이들은 부모를 하나님처럼 믿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버지가 일평생 먹고 입고 쓰고도 남을 거창한 재산을 쌓아놓고 죽었다 합시다. 그럴 때 아이들은 재산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재산은 다 가지고 가더라도 아버지 어머니를 살려달라는 것이 어린아이들입니다. 재산은 다 없어져도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나시면 문제가 아닙니다. 걱정할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만 계시면 전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꼭 하나님 믿듯 믿고 삽니다. 그렇게 의지하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믿고, 예수님을 그렇게 믿을 때 예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봉사하는 신자(36절)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는 마땅히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이 말씀 가운데서 봉사하는 세 가지 면을 볼 수 있습니다.

① 때에 맞는 봉사(36상반절)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가실 때 어디로 가시느냐 하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예루살렘 성을 향해 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향해서 입성하시느냐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뜻을 이루러 가시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죄로 말미암아 멸망당할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만민의 죄를 지고 죽으시기 위해 지금 예루살렘 성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가실 때’란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러 가시는 바로 그 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러 가실 때에 사람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는 봉사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러 가시는 예수님께 봉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아무리 손해를 보고, 아무리 밑지더라도 또 희생하는 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봉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의 사람은 바로 이런 봉사를 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에베소를 지나가면서 - 에베소 교회는 바로 자기가 개척해서 장로까지 세운 교회입니다 - 에베소 교회의 장로를 불려놓고 잘 부탁을 했습니다. 이 교회에 절대로 이단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교인들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가는 길이 마지막 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살아 생전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바울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종종 음성으로 들려주시기를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환란과 결박이 너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죽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뜻이 바로 그것이라면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갔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내가 희생되더라도, 내가 밑지고 손해나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갖 어려움을 다 각오하고 따르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② 은사대로 봉사(36중반절)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가지고 봉사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제자들에게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수중에 돈 한푼도 없었습니다. 있다면 겉옷밖에 없었습니다. 두 벌도 아니고 한 벌밖에는 없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봉사했습니다. 이 사실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그대로 봉사하면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돈 버는 재능이 있어서 돈을 많이 법니다. 그 사람은 돈 버는 것을 은사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그 돈을 가지고 봉사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 버는 재능이 없는데 손재주가 아주 좋습니다. 이것은 큰 밑천입니다. 손만 놀리면 의식주가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이 손재주를 가지고 봉사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헌금도 많이 하는데 하고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에게 주신 손재주로 봉사하면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손재주도 없고, 돈 버는 재능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매우 건강합니다. 일 년 동안 감기도 한 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건강이 얼마나 큰 밑천입니까? 이런 사람은 몸을 가지고 봉사하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비상합니다. 다른 것은 내놓을 것이 없지만 두뇌는 명철합니다. 이런 사람은 머리를 가지고 봉사하면 됩니다.

그 제자들은 겉옷 뿐이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겉옷을 가지고 봉사했습니다. 있는 대로 봉사, 받은 대로 봉사하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봉사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봉사입니다.

③ 본을 받아 봉사(36하반절)

제자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놓았습니다. 즉 제자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새끼 위에 걸쳐놓고 예수님을 태우는 것을 본받아 백성들이 봉사했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겉옷을 펴놓는 것을 어디서 배웠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열 두 제자 중에 택함 받은 두 제자가 베다니와 벳바게에서 나귀새끼를 풀어다가 자기들의 겉옷을 그 나귀 위에다 펴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그 위에 올라탔습니다. 이것을 본 백성들이 바로 그것을 본 받아 자기들의 겉옷을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다 펼쳤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봉사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봉사하는 것 중 잘하는 봉사를 본받아서 하는 것이 귀하다는 교훈인 줄 압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주 모범적인 신앙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을 보면 이렇다 할 특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난히 믿음생활을 잘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첩을 얻어서 가정에 문제를 크게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이삭은 죽을 때까지 아내 하나밖에 몰랐습니다. 이삭의 믿음생활은 자기 아버지에게 배운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쁜 것도 있었지만 좋은 것만 본을 받아 믿음생활을 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혹은 성경 중에 봉사생활 잘하는 사람의 좋은 점만 본받아서 봉사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는 봉사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봉사입니다. 신자된 사람은 봉사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때에 맞는 봉사, 둘째는 은사대로 봉사, 셋째는 본을 받아 봉사입니다.

2) 찬송하는 신자(37∼38절)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서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우리 신자들은 열심히 찬송을 해야 합니다. 찬송은 신자의 간증이요,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 찬송은 네 가지로 설명이 됩니다.

① 장소를 가려서 찬송(37상반절)

아무데서나 부르지 말고 장소를 가려서 하라는 뜻이 본문의 가르침입니다.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들이 찬송하더라”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에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야 합니다. 감람산은 낮은 산이며 내려오다 보면 기드론 골짜기가 있습니다. 감람산은 예수님이 즐겨 찾으시는 곳이었으므로 이곳에서 찬송을 즐겨 불렀습니다. 지금도 그 곳에는 주님이 항상 기도하시던 장소에 기념 예배당이 서있습니다. 그러므로 밤중에 예수님을 만나려하면 제자들은 다른 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곳이 기도의 장소요, 거기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요, 가기가 바로 찬송을 부르는 장소로서, 가려서 찬송을 했다는 것입니다. 왜 베다니와 벳바게에서 안하고 감람산에서부터 했습니까? 찬송을 부를 장소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찬송을 부르는데 조심하길 바랍니다.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합니다. 술집에서 찬송 부르면 안됩니다. 계모임에서 찬송하면 안됩니다.

② 체험을 인하여 찬송(37중반절)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찬송을 합니다. 따르는 무리들은 예수님이 아주 능력 있게 행한 온갖 일을 다 보았습니다. 직접 체험을 한 것입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받은 증거가 없으면서도 “받은 증거 많도다”하면 안됩니다. 찬송은 남이 가사를 지어 곡을 붙여 주었다고 남의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은 내 체험에서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뜨겁고 간절한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찬송을 어떻게 불렀습니까? “자기가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찬송했습니다.

③ 기뻐하며 찬송(38절)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하여.”찬송은 기쁨으로 불러야 합니다. 기쁨으로 찬송 할 때는 큰 소리로 부르게 됩니다. 목이 터져라 아주 뜨겁게 부릅니다. 아주 간절하게 부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받으시는 찬송입니다. 이런 찬송을 부르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④ 메시야를 찬송해야 합니다(38절)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이 말은 “메시아여”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메시야에 대해서 구약성경은 두 가지로 예언을 했습니다. 하나는 고난의 메사야입니다. 그 메시야가 와서 수없이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즉 초림의 메사야입니다. 두 번째로 예언하는 메사야는 영광의 메사야입니다. 다시 말하면 재림하시는 영광의 메시야입니다. 고생을 겪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난의 메사야를 싫어합니다. 영광의 메시야만 좋아하고 영광의 메시야만 기다립니다.

고난의 메시야는 1986년 전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초림의 예수입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초림의 예수이던 재림의 예수이던 예수님이 정치하러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한번도 정치에 가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증거 하셨습니다. 우리는 메시야가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메시야로 믿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찬송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는데 장소를 가려서 찬송해야 하고, 메시야를 찬송해야 합니다.

3) 꾸준한 신자(39∼40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하시니라.”우리 믿는 사람들은 꾸준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변덕스러운 사람은 피곤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꾸준한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사람은 꾸준한 법입니다. 변덕스러운 사람을 사귀어보면 좋을 적에는 자기의 살이라도 베어 먹일 것처럼 하다가도 하루아침에 돌아서면 그럴 수가 없다 싶게 너무나도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변덕쟁이는 참 피곤합니다. 예수님이 제일 피곤해 하는 사람은 변덕쟁이 신자입니다. 열심일 때는 자기 혼자 잘 믿는 자처럼 보이지만 식어지면 언제 교회에 다녔느냐는 듯이 돌아섭니다. 매우 피곤합니다. 주님은 꾸준한 신자를 좋아하십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 훼방 중에도 꾸준해야 합니다(39절)

바리새인들이 봉사와 찬양으로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는 무리 가운데 떼를 지어 섞여서 주의 일에 훼방을 하고 다녔습니다. 수적으로 당할 수 없으니 예수님께 따지고 들었습니다. 이런 훼방을 알면서도 그들은 할 일을 꾸준히 해 나갔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훼방 중에서도 변함 없는 충성을 해야 합니다. 어떠한 훼방이 있더라도 꾸준히 믿음을 지키는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② 말씀을 들으며 꾸준해야 합니다(40절)

바리새인들이 악랄한 훼방에 대해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나섰습니다. 즉 그들의 찬송을 기뻐하시고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라도 소리 지를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꼭 받아야 할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아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믿음생활을 변함 없이 꾸준히 하는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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