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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할 수 없는 것 세 가지 (히 9: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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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백장흠 목사

우리나라에 살면 해마다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세 가지 재해를 맞게 되는 데 하나는 수재입니다.  여름에는 수해를 당합니다.  물난리 이것 해마다 당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태풍입니다.  매미니 메기니 이름도 이상하게 달고 오는 태풍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황사입니다.  봄에 맞는 재해입니다.  그것이 평범한 먼지가 아니라 카드륨이라는 중금속과 납 등이 포함된 게 우리들에게 해를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피할 수 없는 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피할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죽음입니다.

옛날 마게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은 매일 사환을 시켜 필립포스 왕이여 죽음을 생각하시오(meneto mori)라고 인사하게 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 있으면 죽게 됩니다 라고 하면 처음에는 부정하고 반항하다가 나중에는 수용하게 된다는 심리학자들의 보고입니다.  영웅도 열사도 미인도 다 죽게 됩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던 사람도 죽고 성공한 사람도 죽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래서 공평한 게 죽음입니다.  죽음은 슬픔입니다.  왜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중단입니다.  성인군자도 죽었습니다.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 다 죽었습니다.  공자는 73세에 석가는 80세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소크라테스는 70세에 독배를 마셨습니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입니다.

죽음은 대신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 맞이하여야 합니다.  자식을 백 명이나 둔 백 살이 넘은 늙은 왕이 있었습니다.  그 앞에 어느 날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수명이 다했으니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은 지금 죽기는 너무 억울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사자에게 통사정을 합니다.  나는 아직 살날이 있소.  나는 나라를 바르게 통치하여야 합니다.  내 많은 아들들 중에 혹 나를 대신하여 줄 것 같으니 기다리시오 비통하게 말하는 것을 죽음의 사자가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러면 그렇게 하시구려 라고 허락하였습니다.  왕은 많은 아들들을 모아놓고 사정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대신하겠다는 이가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다가 제일 나이가 적은  막내가 일어나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막내아들에게 말합니다.  네가 너무 어려서 아직 무엇을 모르는구나.  어린 네가 살날이 많은데 네가 나서느냐 그때 아들이 그럽니다.  아버지께서 100년을 넘게 살았어도 아쉬워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저도 그럴 것이 아닙니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제인가는 죽을 것이고 그때마다 아쉬워할 것이 죽음인데 일찍이 제가 가겠습니다. 그랬답니다.  죽기 싫어도 죽음은 맞이하여야 합니다.  문제는 그 죽음을 어떻게 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1) 죽음을 후회 없이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노력합니다.  희망이 있기에 인내합니다.  기다립니다.  왜 자살합니까? 자살하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 것 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마다 자살율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왜 자살합니까?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끝이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죽음은 이 세상을 잠시 떠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6절에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소멸이 아니라 잠시 떠난다는 말입니다.  떠난다는 말은 새로운 목적을 위하여 출발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젊은이가 공부하기 위하여 유학을 떠났다면 그는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시 돌아옵니다.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도 그러한 것입니다.

죽음은 이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다가 천국으로 이사하는 겁니다.  사망 집에서 생명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보는 죽음관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 L 무디는 임종을 당하여 슬퍼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내일 아침 무디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거든 내가 죽은 줄로 생각지 마시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좀더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졌다고 합니다.  이 사람 형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이제야말로 새로운 생명에 들어 간 것이다.  이세상의 모든 삶이 고통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생노병사 외에 108번뇌가 있다고 하는데 수고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요 힘든 일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영국의 설교가 조셉 파커(1830-1902)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 그는 아내의 묘비에 통상적인 글을 세기지 않았습니다.  몇 년 몇 일에 죽다라는 단어 대신에 올라 가다 라는 단어를 썼다고 합니다.  파커는 아내의 몸이 무덤에 묻혔지만 그녀는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옮겨갔다는 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에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은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계 21:4)  이런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들이 말하는 죽음입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당황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때로는 억울한 죽음이라는 말을 합니다. 죄인이 아닌데 누명을 쓰고 죽었다든지 살아야 할 날이 많은데 다른 사람보다 일찍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억울한 죽음은 준비되지 않고 맞게 되는 죽음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하여 무서워하거나 혐오하는 태도도 버려야 합니다. 이런 이들은 죽음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합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죽는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죽음을 괴롭게 맞이합니다.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후회하고 울면서 죽습니다.
신앙인들은 “오 주님 제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나는 지금 천국을 보고 있다.  어떤 이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철저하게 준비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노인이 갑자기 염라대왕에게 불려 갔습니다.  노인은 당황하면서 염라대왕에게 항의를 합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불러오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요, 내가 정리할 것도 있고 죽음에 대하여 준비하였다가 와야 하는 거 아니요.  예고라도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말이오.  날씨도 예고 해주는데 왜 죽음은 예고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염라대왕이 하는 말 이 사람 기가 막힌 사람이군.  내가 5차례나 예고해 주었지 않았오.  먼저 눈 밑에 잔주름이 있게 한 것이 1차 예고요, 귀밑에 머리색깔이 희어지게 된 것이 2차 예고였소.  입가에 잔주름이 3차 예고 그리고 4차 목주름이 생기게 한 것이요.  그래도 더 이상 분명하게 예고하였는데 그것이 뱃가죽을 당기면 30cm나 늘어나도록 한 것인데 네 이놈 딴전을 피우고 되레 큰소리냐? 라고 호통을 치더라는 우스개 소리입니다.
죽음의 준비는 어려서부터 해야 합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탁구 단식에서 우승을 한 선수는 아홉 살 때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입니다.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철저한 준비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천국 갈 준비입니다.  뉴욕 주 빙 햄튼에 있는 한 은행이 최근 새 건물로 이전하는 경쟁 은행에 꽃을 보냅니다.  꽃집에서 착각하여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라고 쓴 카드를 꽃과 함께 보냈습니다.  꽃가게 주인은 굉장히 당황하여 사과했습니다.  원래 보내려고 했던 카드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가신 것을 축하합니다였습니다.  조의를 표합니다 라는 글은 초상집에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이 살다가 세상을 떠날 때 조의를 표합니다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가 있고 새로운 곳으로 가신 것을 축하합니다의 죽음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살 동안에는 온갖 고생과 수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이들은 새로운 곳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죽음을 소망으로 맞이할 수 있는 이는 축하 받을 죽음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세요.  한국의 실정에서 보면 중학교에 다니는 것은 고등학교 가기 위함이고, 고등학교 다니는 것은 대학가기 위함입니다.  대학 다니는 것은 좋은 직장을 얻고자함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준비할 것은 천국 가기 위함입니다.  천국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  누구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렇게 절망이 아닙니다.  천국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천국 가고 다시 만나는 죽음이 있고 지옥 가고 형벌을 받는 죽음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5남매나 둔 어머니가 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에게 입 맞춰 주면서 어머니가 인사를 합니다.  see you again Heaven이라고 인사합니다.  그런데 넷째 아들에게는 Good bye 라고 인사하였습니다.  그 인사를 받는 아들이 묻습니다.  엄마 나는 왜 Good bye 입니까? 침묵을 지키면서 눈물 흘리던 어머니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영원히 나를 만나지 못하니까? Good bye 란다.  너의 형과 동생은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에 see you again이지 그 말을 듣던 넷째 아들이 엄마 나도 예수 믿을 거야.  이제 see you again 이라고  말해 주세요.  그 말을 듣던 엄마는 웃으면서 그래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을 너의 마음에 주님으로 영접하자구나.  영접기도를 아들과 함께 하던 엄마는 웃으면서 see you again 이라고 인사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고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죽음은 천국에서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2.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심판입니다.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것만은 좋은데 시험 치루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길지도 않은 삶을 사는데 자기 마음대로 살면 그나마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잊지 아니할 것은 심판이 있다.   죽음이 있다.  심판이 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합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경기의 심판들은 오류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오심을 합니다.  심판 주 예수는 오심이 없습니다.  정확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고 있다고 그러나 심판은 분명하고 정확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수는 있는 것 같은데 마지막은 분명히 우리 모두가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지구상에서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아니 지상에서는 자유롭습니다.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그대로 둡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심판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심판은

  1) 복음 심판입니다.
  예수 믿었느냐 아니 믿었느냐입니다.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영생 천국으로 믿지 아니한 사람은 영벌 지옥으로 가는 심판입니다. 사람이 범죄하고 교도소에 처음으로 들어가면 먼저 들어온 선배가 묻는답니다.  야 무조건 야 입니다.  나이도 상관없고 학벌도 세상에서 무엇을 했느냐 관계없이 야 입니다.  너 왜 왔어.  이런 이런 짓 하다가 왔습니다.  그래 저는 얼마야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믿지 않고 사는 이들은 영원형벌 지옥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2)행위 심판입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공적인 회사에서 손익계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계산은 회계가 하는데 분명한가? 하는 감사를 받습니다.  감사가 있어야 그 회계의 보고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대하여 자신이 계산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인생에서 얼마를 남겼는가? 손해나는 일을 계속하지 않아야 합니다.  투자하는 이들이 손해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반드시 심판이 따른다.  하나님 앞에서는 속이거나 숨길 수 없다.  시편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시편 기자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아시고 그대로 심판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17절에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고 권면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두려워하면서 해야 합니다.  내가 계획하고 실천하는 일들이 과연 모든 이들에게 유익한 일인지도 계산해 보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하고 있는 일이 주님 앞에서 인정되고 칭찬들을 일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니라고 그리고 내가 잘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하나님이 마지막은 판단하십니다.
아주 쉬운 말을 기억하세요.  심은 대로 거두느니라.  악을 심으면서 불충성을 심으면서 면류관을 받겠다.  이건 대단히 잘못된 망상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심판이 따라 옵니다.  주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 되게 살았으면 면류관입니다.  미국이 낳은 유명한 목사님 중에 에드워드라는 분이 이렇게 결심하고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첫째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전력을 다해서 주님의 뜻을 이룰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셋째는 앙갚음이나 혹 분하다고 해서 복수하려는 마음은 갖지 않겠다.  넷째는 걱정거리나 부끄러움 남길 일은 하지 않겠다.  자랑스러움을 남기겠다는 결심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지금은 잘하는 것 같았는데 역사에 부끄러움을 남기는 이들이 얼마입니까? 그 날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3)마지막 심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활되어 흰 보좌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15-17 “땅의 임금들과 모든 족속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틈에 숨어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진노의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서리요”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라도 이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양 예수를 믿고 그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은 이 심판과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3.  피할 수 없는 것이 영생입니다.

사후에 가는 곳이 두 곳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자는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지옥으로 갑니다.  지옥에 가도 영생이고 천국도 영생입니다.  사람은 영생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상에 살아갑니다.  죽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는가 하면 불신자들은 음부라는 곳으로 갑니다.  음부라 하면 지옥으로 가는 대합실과 갔습니다.  믿는 자들은 낙원에 갑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는데 그분이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이것을 재림이라 합니다.  그분이 오실 때에 이미 믿는 자들과 믿다가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공중으로 들림 받습니다.  들림 받은 자들은 주님과 공중에서 혼연 잔치가 열립니다.  지상에는 대환란이 계속됩니다.  7년이 지난 후에 우리 주님이 지상에 강림하시어서 천년동안 우리와 함께 지상에서 왕 노릇 하고 지냅니다.  천년이 지난 후에 그간 믿지 않고 죽었던 많은 사람들을 부활시켜서 흰 보좌 앞에서 심판하여 모든 악령과 함께 지옥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과 천군천사 하나님의 사자들이 함께 천국으로 가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인가 지옥인가 둘 중에 하나를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인정하고 마음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믿었던 이들은 영생 천국에 믿지 아니한 이들은 영생 지옥형벌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참석하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시작이 좋으면 마지막도 좋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부족함 없이 살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가장 복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준비하십시다.  예수 믿는 것이 준비입니다.  구원받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있습니다.  믿고 바르게 삽시다.  주 앞에 충성합시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날을 위하여 철저하게 믿고 회개하고 주님 오시는 날 영생의 천국 백성이 되시기를 축원해 드립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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