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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삼상 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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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빈 목사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 사무엘 상 7장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대국 블레셋의 침공 앞에 무서워 떨며, 심히 두려워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들 힘으로는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저들은 선지자 사무엘에게 달려와 하여 사무엘은 저 유명한 미스바 성회를 소집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네 인간들의 공통된 모습인지 모릅니다. 내 힘으론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인생의 막장에서 하나님을 찾아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 말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다하다 안 될 때, 주의 종을 찾아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 인생의 위기 앞에서 기도하는 것,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길이 없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급하게 기도해야 할 일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평소에 기도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 때 저들은 목숨과도 같았던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자기들 힘으로는 법궤를 찾아올 길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저들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 마침내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랬으면, 만사 제쳐두고 하나님의 법궤를 잘 모셨어야지요. 하지만 저들은 그 법궤를 모실만한 성막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비나답이란 사람의 집구석에 방치해 두고 말았던 것입니다. 20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살려 달라 애원해서 온갖 기적을 동원해서 이집트로부터 건져주었더니, 해서 이젠 가나안 복지에서 잘 살라 일렀더니, 자기들 입으로 하나님의 선민이라 자랑하던 저들 이스라엘이, 무려 20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았으니, 망국의 위기에 몰린 것,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다시 죽음의 위기에 몰리게 되자, 그때서야 이스라엘 온 백성이 여호와를 찾기기 시작합니다. 해서 지금 저들이 선지자 사무엘에게 달려온 것입니다. 평소엔 그렇게 말을 안 듣던 저들이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선지자 사무엘이 선포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선지자의 말을 직접 들어봅니다. / 7:3 / (읽기) / 선지자의 말씀, 간단명료하군요. <정녕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싶으냐? 그렇다면 너희 마음에서부터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라, 그리고 오직 주님만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건져주시리라! 아멘!>

거기 <전심>이란 단어와 <너희 마음>이란 단어에 표시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돌아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청소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향하던 나의 마음을 돌이켜 오직 주님을 향하게 하는 일입니다. 해서 마음 속 제할 것은 제하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라 하신 것입니다. <제할 것은 제하고 돌아와 섬길 만 한 분을 섬기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전으로 돌아와 기도하기 전, 내 마음 속 제할 것은 제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과 주의 성령은 속일 수 없는 법, 내 마음 속 버려야 할 것들, 어서 버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게 무어냐고요? 그것 있잖습니까? 내가 하나님 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주님 아닌 것이 나를 좌지우지하는 것, 내가 보기에도 좀 실망스러운 바로 그것, 그런 것들 몽땅 다 제하고 오라는 겁니다. 그럼요, 제할 것은 제하고, 찍어낼 것은 찍어내고, 씻어낼 것은 씻어내고,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합니다. 그 때 우린 다시 기도할 수 있습니다. g해서 지난 3년을 하루 같이, 우리 모두는 이 말씀 붙들고, 새벽 마다 주의 전으로 돌아와, 마음을 합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말씀드리면, 어떤 분들은 꼭 교회까지 가서 기도해야 하느냐? 집에서 열심히 기도해도 되는 것 아니냐? 반문하십니다.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꼭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집에서 기도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내 집에 앉아 전심으로 기도한다는 것, 정말 어렵습니다. 마음으로는 수없이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보지만, 몸은 엉뚱한 일을 하게 됩니다. 어쩜 그렇게 기도를 방해하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지요, 꼭 누군가 기도하는 일을 일부러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기도하는 집, 거룩한 집, 성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전에 나오는 것이요, 그래서 기도원에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마음은 원이로되, 세상 일이 너무 많아, 주의 전으로 돌아갈 시간이 없다고 사뭇 자랑스레 말씀하십니다. 어떤 이는 돈 버느라 바빠서 하나님의 법궤를 방치해 놓고 삽니다. 어떤 이는 세상에서 출세하는 재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채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세속적 쾌락을 탐닉하느라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사는 인생, 그 끝이 좋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공연한 공갈 협박이 아닙니다. 꼭 그렇습니다. 하나님 버리고 가시는 <님>들, 십리도 못가서 탈이 나고 맙니다.

그런 분들, 대개 처음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조롱합니다. 사람이 오죽 못났으면 저렇게 교회에 나가서 빌고 또 빌겠는가, 나를 보라, 내 힘만 가지고 얼마나 잘 사는가? 교회 다니느라 이렇게 좋은 <세상 재미>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인생, 얼마나 불쌍한 인생들인가, 하면서 오히려 예수 믿는 우리를 측은하게 바라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랬던 저들이, 일단 위기에 처하면, 그동안 우습게 여기던 바로 그 사람에게 달려와 도움을 청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저들이 요청하는 도움의 내용이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중보기도를 요청하는 건데요, 왜? 이제 자기는 하나님께 기도할 염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줄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꼭 오늘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저 못난 이스라엘 백성들 같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은, 일단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다시 받아주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해서 20년 만에 돌아온 저 이스라엘의 탕자들도 다시 살 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는 돌아온 저들이 선지자 사무엘의 말에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4절이지요, 눈으로 따라오실까요?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아멘>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든 저들, 제할 것은 제하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기로 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결정적인 권면을 합니다. 직접 들으며 마음에 새깁니다. / 7:5 / (읽기) /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각자 집에서 기도해서는 민족의 위기를 돌파할 힘이 나오지 않으니, 우리 다같이 한 자리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요, 선지자 사무엘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기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기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들을 땐 당연한 듯한데, 우리네 현실에선 당연하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네 인간은 조금만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기도하기를 멈추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간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하기를 멈추기 때문입니다. 난 이제 기도하는 일에서 면제받았으니, 이젠 나 말고 <너>, 나 보다 낮은 <너>, 나 보다 젊은 <너>가 기도하라는 겁니다. 젊고 싱싱한 신참 집사들이나 가서 기도하라고 거지요.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그런 이유로 기도하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습니까? 내가 피곤하기로, 우리 주님 세상 계실 때,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식사도 거르시며, 병자 고쳐주시고, 말씀 가르쳐주시느라 피곤하셨던 것 이상으로 피곤합니까? 아니오,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주께 돌아와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의 연조가 깊은 분일수록 기도하는 일에 앞장서 주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를 살려주신 이유, 지금 여기까지 오르게 해 주신 이유, 그건 솔선하여 기도하라 하시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선지자 사무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 (삼상 12:23)

그렇습니다. 우린 어떤 이유로도 기도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어갈수록, 은혜가 쌓여갈수록, 높은 자리에 올라앉을수록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지자 사무엘, <나는 이제 나이 많아, 여기서 쉴 터이니, 너희들만 미스바에 모여 기도하라!>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다 미스바로 모이자! 내가 먼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그러니 너희도 나의 모범을 따라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라!> 기도에 솔선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내 가정의 사무엘, 나의 기도가 무너지면 내 가정이 무너집니다.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를 책임지는 사무엘, 해서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속한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위해 세움 받은 사무엘, 따라서 우리 동광 제단에서 기도하기를 멈추게 되면 바로 서울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해서 우린 새벽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합심하여 기도하며, 그 날의 승리를 중보 하는 것입니다. 요즘 새벽마다 나누는 인사, 한번 나누고 갈까요?

<날마다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사무엘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 달려가서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싶은 이름, 그와 함께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이름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때마다 응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자, 그러면 미스바로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기도했기에 망국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오늘은 두 가지 사항만 풀어 살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9월, 그리고 다시 맞이하는 이 가을, 우리 함께 기도하여 꼭 승리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1. 그 날에 금식하고 회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7:6 / (읽기) / 먼저 눈에 띠는 기도의 내용, 바로 회개군요.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나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 <우리>라는 1인칭 복수 주어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고백입니다. 너만 죄인 아니고, 저 사람만 죄인 아니고, 도시만 죄인 아니고, 농촌만 죄인 아니고, 여당만 죄인 아니고, 야당만 죄인 아니고, 강남만 죄인 아니고, 서울만 죄인 아니고, 남한만 죄인 아니고 북한만 죄인 아니고,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랬습니다. 저들은 위기 앞에서 서로를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 자복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세상에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다급할수록 상대방만 탓합니다. 위기일수록 희생양을 찾느라 혈안이 됩니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죄가 있다면 우리 모두의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입니다. 하여 기도할 때에 가장 먼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든지, 그 날에 저들이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금식하며 회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 것이지요. 물론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교회 가운데 신앙의 연조가 높으신 분들, 영성 깊으신 분들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부모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나를 여기 이렇게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금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금식하며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를 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급할 때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입니다. 여러분, 이 가을에 한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여, 기도에 응답 받아 문제는 해결하시고, 꿈은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온전한 번제를 드리며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7:9 / (읽기) / 거기 맨 마지막 문장이 먼저 가슴에 와 닿는군요.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고백, 나의 고백 삼게 되시기를 기원해 드립니다. 기도하실 때마다 이와 같은 고백이 터져 나오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기도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아멘!>

그러면 어떤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인가?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먼저 온전한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온전한 번제를 드리며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는 온전한 번제만 드리고 부르짖는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부르짖어 기도는 하는데 온전한 번제는 드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느 경우든 온전한 기도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 땐 온전한 번제를 드리며, 또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기도해 보신 분들만이 잘 압니다. 참 묘하지요? 기도하다 보면 주님께 바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싶어지는 마음, 곧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마음입니다. 또한 기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나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두 마음은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 주실 때 주저하지 마시고 온전하게 바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쳤다고 방심하거나,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방심하지 마시고, 아버지 하나님, 응답하실 때까지, 온전하게 바치며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마당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7장 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 7:12 / (읽기) / 여기서 우린 기도에 응답을 받아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물리친 후, 선지자 사무엘이 취했던 저 유명한 일을 목격하게 됩니다. 선지자 사무엘, 돌을 취하여 세우고는,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이지요.

누가 도우셨다고 고백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누구를 도우셨다고 고백합니까? 우리를! 그러니 블레셋과 싸워 승리한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 그러면 승리의 영광은 누구에게 돌려야 합니까? 아버지 하나님께!

해서 지금 선지자 사무엘이 거기 돌을 세우고, 승전보와 함께, 자기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 아니라, <에벤에셀>이라 했던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시는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승리를 기리며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지요.

존경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무척 설레는 가슴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꼭 3년 하고 3일 전,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서서 동광 교회 담임목사로서 첫 설교를 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지난 3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사무엘 선지자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아멘!>

3년을 하루같이 때로 금식하며 기도해 주신 장로님, 온전한 번제를 드리며 부르짖어 기도해 주신 권사님, 어려운 고비마다 합심 기도로 새 길을 열어주신 집사님, 날마다 새벽을 깨우며 응답 받는 제단으로 지켜 오신 기도의 용사 새벽 느헤미야 120문도 여러분, 사랑하는 청년들, 우리 아들딸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마음으로부터의 사랑과 존경을 드립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우리 함께 기도하여 에벤에셀의 교회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해서 우리 교회에 차고 넘치는 은혜로 동광의 모든 가정 마다,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특히 우리의 자녀들, 부모 세대의 기도로 하나님의 크신 응답 속에 잘 되고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를 도우시어, 빛이 되는 교회, 행복한 교회, 우리 동광 교회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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