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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된 사람 (신 3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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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해원 목사

  우리는 지금 모세의 개인적인 생애를 통해 본받아야 할 귀한 부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극복된 사람, 인정된 사람, 변화된 사람입니다. 이제 오늘 한가지를 더 말씀드리면서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 모세는 ‘복된 사람’입니다. 그는 많은 복을 누리다 간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복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특히 한국사람의 경우는 더욱 강한 것을 봅니다. 사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자기의 삶이 불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기대하고 갈망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도 복과 연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사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성경을 보면 성경은 복에 관한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불행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말씀이기에 성경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복을 여러 방면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처럼 복을 강조하기에 문제는 복이 무엇인가라는 정의와 기준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과 세상에서 말하는 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을 영어로 happy라고 말합니다. Happy는 Happening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연이 일어난 일, 행운을 잡은 사건이 행복입니다. 예를 들어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되었다든지, 몇 백년 묵은 산삼을 발견했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갑자기 생기는 것입니다. 언제나 유동적이고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happy가 아니라 blessing입니다. ‘행복’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면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우연’이 아니라 어쩌면 ‘필연’입니다. 이 필연적인 복을 위해 두 개의 귀한 통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쪽에서의 통로, 다른 하나는 인간 쪽에서의 통로입니다. 하나님 편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 편을 수고와 노력이라고 말합니다. 이 둘의 아름다운 조화를 통해 복을 받습니다. 인간이 노력한다고 다 복을 받지 못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나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필연의 사건을 위해 수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의미의 복입니다.

  우리의 앞서간 신앙의 선진들이 우리처럼 이 땅에서 복된 삶을 누리다가 갔습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려야 하고, 이 땅에서 복된 사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해프닝이 아니라 블레싱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모두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많은 축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먼저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누린 복이 무엇일까요? 과연 성경은 모세의 복된 삶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본문은 그것을 몇 가지로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의 복입니다. 여기에서 그가 받은 육신의 복을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장수의 복입니다. 7절에 보는 것과 같이 모세는 120세를 살았습니다. 물론 족장들과 비교하면 오래 산 것은 아닙니다. 969세를 살았던 사람과 비교하면 짧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장수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노아의 홍수이후 사람들의 수명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175세를 살았고, 이삭도 180세를 살았습니다. 그렇게 점점 수명이 줄다가 모세 시대는 평균 수명이 오늘 우리와 같이 되었습니다. 시편 90편에 보면 모세가 지은 시가 나옵니다. 그 시에서 모세는 인생을 노래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우리 인생의 연수를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오늘과 같은 연수입니다. 모세 당시 인간의 수명은 칠십과 팔십입니다. 이것이 모세가 살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모세는 120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니 장수한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장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어떻게 장수할 수 있는가를 십계명을 통해 잘 알려 주셨습니다. 그 약속이 임한 것입니다.

  오늘도 오래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팔십 이상을 사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장수의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둘째 육신의 복은 건강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시면 성경은 모세의 연수를 말하고 이어서 그가 죽을 때까지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이것은 곧 건강을 말합니다. 모세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육신이 강건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축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인생은 연수가 긴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매일 약하고, 늘 병원신세만 지면, 자신도 힘들고 가족도 주변의 사람들도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그래서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오래 사는 축복을 받았고 또 건강한 축복도 받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는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가나안에 들어가 젊은 사람들과 함께 전쟁의 선봉에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은혜요 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건강의 복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모세처럼 기력이 쇠하지 않고, 눈이 흐리지 않는 건강한 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이런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소망을 삼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으로 만족하면서 날마다 새 힘을 얻으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이, 걸어도 곤비치 안혹, 뛰어도 피곤치 않는 삶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셋째,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복입니다. 8절에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삼십일 동안 애곡 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곧 모세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얼마나 많은 장례의 행렬이 이어지는가를 보면 그 사람됨을 압니다. 어떤 사람의 죽음을 보면 참으로 애통해 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눈물과 아쉬움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존경받지 못한 사람이 죽어 보십시오. 사람을 속이고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을 보십시오. 장례행렬이 무엇입니까? 애곡이 또 무엇입니까? 오히려 잘 죽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합니다. 특히 이 일을 기독교인들이 앞서서 일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좀처럼 사형을 시키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도 열심히 주장합니다만 아직까지는 사형제도가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이것이 옳다 옳지 않다는 것을 떠나서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잔인한 살인자들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바램입니다. 최근 우리 나라에 연쇄살인범의 이야기가 화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바램입니다. 그가 죽은 들, 누가 아쉬워하겠습니까? 오히려 잘 갔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비난을 받으며 그는 죽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늘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늘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 그 자리가 비워지면 찾고 또 찾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보면 그것이 우연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기 위해 삶에 좋은 흔적과 기록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시면 성경은 모세의 비석에 새겨지듯 이렇게 증거 합니다.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모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과 사람의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였고, 주어진 삶을 참 참되게 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경건과 신앙에 매진했던 사람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따랐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마치 내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것처럼 애통했고, 몸의 사지가 하나 없어진 것 같은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모세의 죽음 앞에 통곡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것, 그것이 모세에게 임한 복입니다. 이것은 장수하는 것과 비교되지 않고, 또 건강의 복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래 살고 건강하면 뭐합니까?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바르게 살지 못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인생의 연수와 건강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달랐습니다. 장수의 축복, 건강한 축복과 함께 그는 존경받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의 삶에서 좋은 흔적이 남은 것입니다.

  인생은 하얀 백지에 뭔가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흔적과 기록을 남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흔적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그런 사랑 받는 사람, 존경받은 인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주안에서 인생을 마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신명기의 마지막장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부터 여기 신명기 까지를 신학적으로 모세5경이라고 부릅니다. 모세가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여기 신명기 34장은 모세의 죽음이후를 보여주는 말씀이기에 후대의 어떤 사람이 추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 부분을 우리는 모세의 사역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의 개인의 삶에 마지막 기록이 무엇입니까? 이 34장에서 성경이, 저자가 보여주려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세는 믿음 안에서, 신앙으로 살다가, 주안에서 인생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두 종류의 죽음이 있습니다. 주 밖에서와 주안에서의 죽음입니다. 주 밖에서의 죽음은 믿지 않는 자의 죽음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화려하게 살았는지는 몰라도 죽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가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주안에서의 죽음은 믿는 자의 죽음입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 안에서 죽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세상에서는 힘들었고, 고생했고, 아파했고, 눈물을 흘렸지만, 눈물과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자의 죽음이 바로 주안에서의 죽음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길을 걸어갔습니다. 살아서도 복을 누리고, 죽어서도 복을 누린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분명 인생은 한번 죽는 것이 정한 것인데, 죽은 뒤의 나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천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주안에서의 죽음입니까, 아니면 주 밖에서의 죽음입니까? 우리 주변에 수없이 보는 죽음 앞에 우리는 헌신해야 합니다. 어떤 자의 걸어가야 할지를 결단해야 합니다.

  이미 아시는 대로 우리 교회에서 신실하게 일하시던 고영학 장로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도 예견치 못한 죽음입니다. 그래서 충격이 큽니다. 지난 주일까지만 해도 우리와 같이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고, 교제를 나누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꿈같은 현실입니다. 한문의 죽을 ‘사’(死)를 푼 것과 같이 그는 어느 날 캄캄한 밤에 갑자기 비수를 맞은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금 세상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이제 오라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우리 곁을 훌쩍 떠났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섭리를 받아드리고 인정해야 합니다. 아쉽지만 장로님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저에게 강하게 도전해 온 것이 바로 주안에서의 죽음입니다. 그는 주안에서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복된 삶을 살다가 갔습니다. 미룰 수 없는 구원입니다. 우리 삶에 가장 큰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주안에서 살다가 주안에서 가야 합니다.

  여러분, 모세처럼 복된 인생을 사십시오. 장수의 복을 누리시고, 건강을 복도 받으십시오.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도록 좋은 기록과 흔적을 남기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안에서 인생을 마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인생, 정말 성경에서 말하는 복된 인생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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