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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회복 (요 21:1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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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양인 목사

< 주의 부르심을 받은 시몬 베드로 >

오늘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시몬 베드로 사이에 오간 대화를 살펴봄으로 성도님들과 더불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시몬 베드로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펴봅시다. 성도님들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어부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시몬은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빈 배로 돌아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비록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저녁에 고기 잡으러 나가려면 헝클어진 그물을 씻어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그 때 베드로의 심정은 절망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썩 유쾌한 편이 못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배에 오르셔서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셨을 때 기꺼이 협조했습니다. 예수님은 배에 앉으셔서 해변에 선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일러주시다니 정말로 뜻밖이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아시는 대로 예수님은 목수 출신이십니다. 물고기 잡는 일이라면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시몬이 더 낫지 않을까요? 더구나 물고기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시각에는 수초 사이에 숨어 버립니다. 그러나 시몬은 대답하기를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했습니다.

그 날 아침, 시몬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누가복음 5장에 보니 “6)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간밤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수고만 했던 그들이 두 배에 가득 차게 잡았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요? 그러나 이를 본 시몬은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몬은 이 놀라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성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 시몬은 자기의 누추함을 깨달았습니다. 이같은 시몬의 언행을 볼 때 그가 매우 경건하고 영적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물위를 걸은 시몬 >

그러한 시몬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으며, 시몬은 그 날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결단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제자 중 수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열 두 제자 중에서 시몬 베드로에 관한 일화가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솔직하고 적극적이어서 무슨 가르침을 받으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곧장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한번은 저녁 무렵에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무진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밤 서너 시가 되기까지 여러 시간째 바다 한복판에서 사투를 벌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아시고 밤 사경에 제자들을 돕기 위해 바다 위로 걸어서 오시니 그들은 주님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니,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다가 그만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시몬이 소리 질러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혹 보면 베드로의 실패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캄한 밤중에 파도가 넘실대는 물위를 선뜻 뛰어 내려서 바다 위를 걸어간 그의 믿음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놀랍습니다.

< 시몬의 신앙고백 >

그뿐 아니라, 그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을 고백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아무도 답을 못하고 있는데, 시몬이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시몬을 칭찬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올바로 알고 믿었습니다. 구원 받는 믿음이란 시몬이 고백한 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 고난을 예고하신 예수님 >

그 후에,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떠나 유대 지역을 거쳐서 유월절 절기를 맞추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셨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비로소 제자들에게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은 제자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주님이 죽임을 당하시다니, 그러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번에도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을 붙들고 말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딴에는 예수님을 위한다고 한 것이지만 그것은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 >

드디어 유월절을 한 주 남겨둔 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주일날 주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까는가 하면,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까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외치면서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구약의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염두에 둔 행동이었습니다. 스가랴서 9장 9절에 보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했는데, 이는 메시야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문을 들어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이심을 행동을 통해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 날, 군중의 환호 속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제자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오늘 당장 예수님께서 유대 나라의 임금이 되실 줄로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시면 제자들은 대신들이 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렜을 것입니다.

<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반응 >

한편,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선지자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다는 소문을 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그렇지 않아도 유월절 기간에는 예루살렘에 수십만의 유대인들이 모여드는데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야라고 선전하면 로마 제국을 배척하는 민중 봉기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면 로마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함락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지위와 특권이 위태롭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 수 있을까 모의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해서 명절이 지나서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 예수님을 죽이기로 했으나, 가룟 유다가 찾아와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하자 계획을 바꾸어서 유월절 이전에 예수님을 체포해서 처형하기로 정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다른 날이 아닌 유월절에 고난 받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모세 당시에 이스라엘 자손은 유월절 어린양을 죽여 그 피를 문에 바름으로써 장자가 죽는 재앙에서 건짐을 받았으나 애굽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장자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세 당시에 죽임 당한 유월절 어린양들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드디어 목요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식탁에 준비된 것은 어린양의 고기가 아니라 떡과 포도주였습니다. 열 두 제자가 둘러앉은 가운데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시고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최초의 성만찬 예식은 주님께서 친히 주관하셨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 예수님은 열 한 제자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가룟 유다는 유월절 만찬이 시작되고 나서 곧장 그 자리를 빠져나와 대제사장들에게 갔기 때문에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 시몬의 장담과 실패 >

길 가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은 주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들 질세라 자기들도 그같이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도착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떨어져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힘써 기도하셨던지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을 비롯한 제자들은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셨습니다. 마음은 깨어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몸이 피곤하니까 그만 잠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 번에 걸쳐 기도하시고 났을 때였습니다. 대제사장이 보낸 군사들이 가룟 유다를 앞세우고 동산에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홰와 칼과 몽치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나무에 기대어 졸고 있던 제자들은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7절에 보면,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큰 무리라고 했으니 적어도 백 명은 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나와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신호로 저들이 나아와 예수님께 손을 대어 잡았습니다. 바로 그 때, 제자 중 하나가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검을 휘두른 사람은 다름 아닌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은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결과적으로는 주님의 일을 돕기는커녕 방해가 되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폭력에 호소하는 것은 인간적인 방법이요 세상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밤에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님이 심문 받으시는 대제사장의 관저 바깥뜰까지 들어갔습니다. 하속들이 마당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고 있는 그 사이에 끼어 앉아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말이 불을 쬐는 것이지 시몬의 신경은 온통 심문 받으시는 예수님께 쏠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 한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말하기를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기를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일어나 앞문까지 나아갔더니 다른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고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말하기를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고 했습니다. 다급해진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기를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꼬끼오-” 하며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해 나무에 목매어 죽었으나 시몬은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

그 밤에 산헤드린은 예수님에게 신성 모독죄로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사형 집행권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었으므로 예수님을 처형하려면 로마 총독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예수님을 이끌고 빌라도에게 가서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죽일만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가들의 협박에 굴복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전 9시에 골고다 언덕에서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6시간만인 오후 3시에 운명하셨으며, 저녁 무렵에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자, 여러분, 제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존경하는 스승을 잃은 슬픔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섰던 그들의 기대가 물거품이 된 데 대한 허탈감에 사로잡혀 넋을 놓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말씀하셨던 대로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걸어 잠그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저희 가운데 나타나셔서 “평안하뇨”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으며, 제자들이 보는 데서 구운 물고기 토막을 잡수심으로 그의 죽음에서 부활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무기력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했던 지난날의 실패가 그들의 마음을 위축시켰습니다. 이는 시몬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는 데도 가겠다고 장담하던 그가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으니 무슨 면목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제자들은 갈릴리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 물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 >

하루는 베드로가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우리도 함께 가자”고 하며 따라 나섰습니다. 이는 그들이 제자의 삶을 포기하고 옛 생활로 돌아간 것이라기보다는 당장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밤에 그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새벽이 되었습니다. 빈 배를 저어 나오는데, 해변에서 약 90미터쯤 되는 곳에 이르렀을 때, 웬 사람이 해변에 서서 고기 잡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없다고 하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요한이 보고 베드로에게 “주시라”고 하니, 시몬 베드로가 웃옷을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려 헤엄을 쳐서 육지로 나갔습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준비하신 아침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저희가 아침을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말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는 뜻입니다. 지난날 겟세마네 동산으로 걸어가면서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그는 그 자신을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면서 주님께 대한 사랑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자기 장담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겸손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내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 주님께서는 세 번씩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난날 베드로가 저지른 세 번에 걸친 실패를 주님께 대한 사랑을 세 번에 걸쳐서 공개적으로 고백함으로써 만회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에 걸친 사랑의 고백을 통해서 시몬 베드로의 상처 입은 마음이 치료받게 된 것입니다.

그 아침에 주님께서는 시몬으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들으실 때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새로운 직책을 주셨습니다. 직책을 주신 것은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과오를 용서하시고 제자로 인정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 다짐하는 말 >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의 지난날의 실수와 잘못을 꼬집어 내서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다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라, 세 번씩이나 물으셨습니다. 이는 시몬이 세 번 주님을 부인한 데 대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왜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다른 말을 하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만 물으셨을까요? 그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이 회복되기만 하면 그것으로 다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은 시몬에게 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미지근한 상태로 만족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에 열심 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실치 못한 상태에 대하여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만, 알고 보면 그 모든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유는 하나,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데 대해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대지만, 그 원인도 다른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식은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충성하라, 열심 내라,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 보았자 주님께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은 곧 세상을 사랑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마음이 세상과 나누이기 때문에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을 회복하면 자원해서 신앙생활에 열심 내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을 회복한 시몬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하기까지 변함없이 주의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아무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사랑하느냐고 묻는 데 다른 대답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생명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주님께 대한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시험을 이기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되기 원하십니까?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주님께 여러분의 사랑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진실한 사랑을 고백하는 성도님들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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