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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은 자의 은총 (단 11: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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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정호 목사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여러 종류입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가 있고, 안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가 있고, 위에서 들려오는 신의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소리들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가운데는 위로의 소리, 희망의 소리, 따뜻한 격려와 사랑의 소리도 있지만 아프게 하는 소리, 비난과 비판의 소리, 절망의 소리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요즘 외로워 보인다, 쓸쓸해 보인다, 혼자 서있는 것 같다고 한다면 비난의 소리도 따뜻한 소리도 아니지만 무엇인가 깊이 깨닫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이 외로워 보인다, 혼자 서있는 것 같다고 하면 가정의 위기가 시작된 것이고, 큰 회사의 회장이 혼자 서있는 것 같다고 하면 회사의 위기이고 국가의 지도자가 혼자 서있는 것 같다고 하면 나라의 위기입니다.

한국은 거의 홀로 서 있는 것 같다

주한독일 대사가 며칠 전 대한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독일은 주변국이나 북미대륙의 파트너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은 거의 홀로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우리 국민들로서는 아픔을 느끼게 하는 말입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점차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요즘의 불안감이 우리만의 걱정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이미 그렇게 비쳐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길에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절대적 협력을 얻었던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고립무원 상태인 듯한 오늘의 한국이 답답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갈수록 네트워크로 엮어지는 국제사회에서, 더구나 통일 과업이란 중요한 과제를 앞두고 있는 한국이 ‘홀로 서 있는’ 처지로 비쳐지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중대 상황인 것입니다. 홀로 서 있는 처지는 한없이 외롭고 고독한 법입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건강, 물질, 명예, 사람  등 모든 것이 그 사람으로부터 떠나므로 혼자 서있게 되었을 때가 곧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길에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절대적 협력을 얻었던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고립무원 상태인 듯한 오늘의 한국이 답답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갈수록 네트워크로 엮어지는 국제사회에서, 더구나 통일 과업이란 중요한 과제를 앞두고 있는 한국이 ‘홀로 서 있는’ 처지로 비쳐지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국가의 중대 상황인 것입니다. 홀로 서 있는 처지는 한없이 외롭고 고독한 법입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명하시는 바가 많은데 그 명하시는 것들 중에는 엄청나게 힘들고 어려운 것들도 있고 조금 쉬운 일도 있고 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정말 목숨을 걸지 않으면 못할 일'라고 할 수 있는 어려운 일부터 하려고 하면 '난 못해'라고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쉬운 일도 못하겠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아직도 해야 될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 걸고 충성하는 일부터 먼저 하라고 하면 힘들고 지겹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충성하라고 할 때 재미있고 쉽게 할 수 있는데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지겹고 힘들어서 못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려고 하거나 무조건 순종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못하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일이 남은 우리의 해야 할 도리라는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70여세 되는 흑인 노파 하나가 백인교회에서 감사헌금을 바치면서 간증을 하는데 '나는 60평생 이 교회를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하면서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동생 다섯 식구가 브라운이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종으로 있었습니다. 브라운이 파산을 하는 바람에 온 식구가 팔려가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상하게 이 교회만은 개방적인 교회가 되어서 어느 백인교회에서도 흑인을 받아 주지 않을 때 이 교회만 흑인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교회를 다니는 교회 학교 학생이었습니다. 바로 이 교회 앞에 넓은 마당은 노예들을 사고파는 노예 매매 시장이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 나가는 교회 학교 학생이었으나 팔려 나가는 날은 마침 주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가족이 끌려나와 팔려 뿔뿔이 헤어지는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불려 나와서 노예 매매대 위에 올려 세워진 다음에 전부 옷을 벗긴 상태로 샅샅이 신체검사를 한 후 목화밭으로 팔려갔습니다. 혼자 헤어져 팔려갔습니다. 통곡을 해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어머니가 노예 매매대 위에 올라가더니 같은 절차를 통해서 전부 검사를 하고 이번에는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갔습니다. 세 번째로 오빠가 나와 철공소로 팔려갔습니다.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어린 소녀일지라도 얼마나 부끄럽고 무섭습니까? "하나님 저는 지금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한번만 도와주십시오. 날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마침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목사님과 교인들이 그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기 우리 교회 학생 아니야?"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주머니를 털어서 그 어린 소녀를 사서 "이제 너는 자유다. 마음대로 살아라" 하면서 자유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잠깐 동안 기도했는데 죽고 싶은 심정뿐인 나에게 간단한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이 교회를 60평생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60평생 결혼도 안하고 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 입고 싶은 것 안 입고 모으고 모은 것이 70만 불입니다(70만 불이면 그 때 당시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바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거금을 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는 60평생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소녀가 하나님의 선행적 사랑을 받았다면 우리도 못지않게 그 사랑 받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우리 살아남은 자의 도리입니다. 충성이나 순종도 그 다음에 해도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것들을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충성한다면 그것은 위선이요, 형식적인 것입니다. 힘들어서 하지 못합니다. 먼저 하나님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은 자의 역사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남은 자’를 통하여 이어져 가고 있는 ‘남은 자의 역사’를 보고 듣는 중에 있습니다. 그 남은 자의 역사는 첫 사람 아담을 위시하여, 족장 전후 시대 셋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롯을 보았습니다. 출애굽시대에 남은 자로 모세와 그를 잇는 여호수아 갈렙을 보았습니다. 다시 가나안 정복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생 라합을 보았고, 정복시대 이후부터 이스라엘 신정국가가 수립되고 약 300년 어간에 사사들이 남은 자로 그 시대를 이어갔음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신정국가 시대에 와서 엘리야를 위시하여 하나님이 남겨두신 칠천 명의 선지자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유대의 포로기와 포로 후 시대에 와서 하나님이 남겨 두신 히브리 소년들 그리고 포로 후 시대에 에스더와 모르드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에스라 느헤미야를 위시한 학개와 스가랴 같은 선지들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살던 그 시대로부터 약 300년 이후에 나타날 헬라 제국과 로마제국의 역사를 미리 예언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주어진 본문은 헬라 제국의 말기에 나타날 선민 멸종의 위기를 예언하는 중에 남은 자를 가리켜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단11:33, 38, 12:3).

역사의 변천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그의 만년기에 세계 역사의 엄청난 변천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는 그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의 벽보를 해석하던 그날 밤에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단5:31), 새로운 신흥제국 페르시야가 등장하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습니다(5:31). 바로  그 때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된 유다의 포로 기간 70년이 끝나고, 유대인들에게 해방령을 내릴 고레스가 등장한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진행되는 역사의 현장에서 생존한 역사의 산 증인이 된 셈입니다. 그는 일찍이 느브갓네살이 꾼 꿈을 통하여 세계 4대 제국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다시 그는 이 4대 제국의 흥망성쇠를 반복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사자 같은 짐승 바벨론은(단5:30-31, 7:5) 곰 같은 짐승인 메데와 바사에게 죽음을 당하고(단5:30-31, 7:51), 또 곰인 메데와 바사는 표범 같은 헬라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표범 같은 헬라는 철이나 놋 발톱을 가진 짐승(로마)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7:6-7).

다니엘 8장에서 두 뿔 가진 수양으로 나타난 페르시아는 분노하고 성내어 달려오는 한 수염소 곧 헬라 제국에 의해서 망한다고 반복하고 있습니다(8:5-7). 8장에는 한 뿔, 긴 뿔, 큰 뿔, 뿔 넷, 작은 뿔(8:3, 8, 9) 등의 표현이 나옵니다. 이는 모두 세계를 통치하는 권력을 의미하였습니다. 

두 뿔 가진 수양(메데, 바사)은 한 큰 뿔에 의해서 끝장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10만 군대를 거느리고 나타난 헬라 알렉산더 장군의 페르시아 정복을 가리킵니다(10-20). 그런데 한 큰 뿔이 갑자기 꺾이고 뿔 넷이 나타나 하늘 사방을 향하고 있다는 말은(단8:8) 알렉산더 대왕 사후 통치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20년 동안 피로 점철된 네 사람 장군의 권력 투쟁을 가리킵니다.

11장에 나타난 중요한 사건은 알렉산더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헬라 제국이 4등분 될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32세의 젊은 나이로 일찍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20년간 그의 친 손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일곱 장군들에 의하여 권력의 희생 제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일곱 장군 가운데 세 사람이 또 죽임 바 되고 마침내 남은 네 장군은 헬라제국을 4등분하여 공존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분할된 지역들 가운데 유대와 관계된 나라가 톨레미가 다스리던 남쪽의 애굽이고, 북은 수리아 왕이었던 셀레우커스 1세였습니다. 이 두 권력자들은 150여 년간이나 서로 전쟁하게 되었고, 유대는 이 전쟁의 와중에 희생제물이 되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적어도 이러한 4대 제국 곧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세계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이러한 짐승들의 활동무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 운동이 어떻게 전개될 것을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중대한 것은 무수한 역사의 변천은 하나님 주권적인 섭리 속에서 구속사를 전재하시는 섭리적 도구였다는 사실입니다. 셀레우커스 1세는 2세, 3세를 거처 마침내 안티오크 에피파네스 4세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한 작은 뿔(8:9)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다니엘 11장 중 30절로 39절 부분에서 선민 유다가 작은 뿔 곧, 안티오크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죽음에 이르는 큰 환난을 겪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민 멸종의 정책을 국시(國是)처럼 여긴 자였고 광적인 헬라주의 신봉자였고, 유물론자요, 권력 신봉주의자였고, 극에 달한 인본주의 신봉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하여 반신적 도전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번제단 위에 헬라의 쥬피터 신전을 세우고, 예루살렘 성전에 돼지 피를 뿌렸습니다. 그것은 항거하는 마지막 유대인을 진멸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에 그의 주력부대를 주둔시켜 놓고 항거하는 남은 유대인을 진멸하고자 하는 계획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통치 영역인 동부에서 반란 소식을 듣고(11:44)그 반란을 진압하러 가다가 도와주는 사람 없이,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급사 당하고 말았습니다.

남은 자의 이름은 지혜로운 자

11:35에서 '지혜로운 자'는 에피파네스의 군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마카비의 군사들을 비롯해 여호와 신앙을 수호하다가 순교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바, 35절은 이러한 자들의 순교가 곧 남은 신실한 유대인들에게 여호와 신앙 수호라는 도전으로 다가왔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1장 33절에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가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라”고 하였고  11장 36절에도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누구이며 어떤 자들일까요? 오직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요 오직 신앙의 수절자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용맹한 사람들이고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며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단12:3).

또한 그들은 죽음에 이르는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쇠패하리라(11:33)고 하였지만 마침내 그 환난을 통하여 승리하여 나올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그 환난 속에서 연단되어 거룩한 사람이 되어 살아남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1:36). 그러한 환난의 때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11:36). 또한 저들의 존재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하였습니다(단12:3). 바로 저들은 그 시대에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회당의 서기관들과, 경건파들이었습니다.

순교의 열매

믿음의 승리는 고난을 피하는 데서 오지 않고, 희생을 치르는 데서 옵니다.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이 의인의 믿음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하나님은 주를 경외하는 소수의 지혜자를 통해 이 믿음의 본을 대대로 지켜 가십니다. 그 지혜자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더 철저한 언약 신앙의 본을 보이며 “많은 사람”, 곧 동시대 사람만이 아니라 역사에 나타날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가르칩니다(33절). 지혜자 몇 사람이 악인의 칼에 순교를 당할 때 대중은 악인의 편에서 그들에게 등을 돌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으로 인해 역사에 나타나는 하나님 백성의 “무리”는 연단되고 정결케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는 것입니다(35절).

다니엘 11장 32-35절에 나오는 지혜는 영적 지혜로서 하나님을 아는 참된 믿음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극심한 박해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자”가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자,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박해 시에 그 진가가 더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박해나 시련에도 “작정된 기한”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도록 용기를 줍니다.

누군가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삶을 힘들게 할 때, 자기 분풀이를 내게 쏟아낼 때 나는 '하나님을 아는 백성으로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인해, 믿음을 끝까지 견지하는 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며, 소수의 무리로 분류 되는 것을 두려워한 적은 없는지요? 지금은 다수의 소리가 인정받고 힘을 얻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외치는 작은 소리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포로로 잡혀가서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 자들 모두가 포로 생활이 끝나고 고국 땅에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철저하게 믿음의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만이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단12:3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우리는 그리스도인 된 존재인식을 분명히 해야 할 때 입니다. 결코 지금 우리 앞에는 안티오크 에피파네스 같은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는 신앙 자유, 예배 자유, 선교자유의 때가 주어짐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선교의 열심을 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도록 전하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경건생활, 기도생활은 하고 있지만 좁은 세계 안에서 나만을 위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주님은 크신 선물을 주시려고 하는데 내게 있는 것으로 자족한다면서 이웃을 위하여 구할 엄두를 못 내지는 않습니까? 전도란 바로 자기만을 위하여 살면서 자기만을 위하여 말씀을 읽고 자기만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자기라는 좁은 틀에서,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더 넓은 세계로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같이 영원히 빛나는 스타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뛰어넘지 않으면 환난이 옵니다. 개인적이던 교회적이던지 계속해서 시야를 이웃에게로 세계로 넓혀 나가지 않으면 환난이 옵니다. 자기만 알던 사람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가 나오면 친구, 가정, 이웃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일생을 모은 재산을 병원을 위하여 학교를 위하여 드리는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실제 살면서 고생을 않거나 실패나 패배를 모르는 이들은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그렇고 하나로 키운 자들이 그렇습니다. 자기 밖에 관심이 없기에 다른 이의 아픔과 필요에 민감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억지로라도 환난을,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소년의 전도지

주일 오후가 되면 늘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주일 오후, 몹시 피곤했던 그는 자기 집 서재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11살 된 아들이 아버지가 집에 계신 것을 보고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은 왜 전도지를 나누어주러 가지 않으세요?"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구나." 그는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그럼 비가 오는 날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으시나요?" 놀란 그는 아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릴 때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단다. 게다가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거든." "아빠, 그렇다면 제가 아빠 대신 나갈까요?"

아들의 진지한 모습을 본 그는 전도지를 주면서 다 나눠준 후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지를 나눠주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소년의 손에 한 장이 남게 되어 그는 가장 가까운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시죠?" 몹시 침통한 표정의 나이 많은 여인이 문을 열었습니다. 소년은 얼굴에 큰 웃음을 띠고 공손히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아줌마, 저는 아줌마께 이 전도지를 전해드리러 왔어요."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 찬송과 기도 후 목사님께서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싶은 분이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한 나이 많은 여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하늘의 빛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후 인간의 모든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오랜 갈등 후 저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주일 밤, 목을 맬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생기발랄한 작은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전도지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지만 별것이 아니지만, 전도지 한 장이라도 이웃을 생각하는 그 곳에 하나님의 사랑,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한 신앙인이 되지 마시고 주님 나라를 위해 마지막 남은 자의 은총을 나누어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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